동양학/단학

丹學 관련 글. 마음이 지각(知覺)하는 것 (허미수)

검은바람현풍 2025. 1. 13. 14:59

丹學 관련 글   

  마음이 지각(知覺)하는 것 (허미수)

                                      유가경전 저팔계 http://cafe.naver.com/doraemi/1457

 

 

 

마음의 지각함이 천리(天理)에 감응한 것을 도심(道心)이라 이르고,

형기(形氣)에 감응한 것을 인심(人心)이라 이르는데,

천리란 성명(性命)의 지선(至善)한 근본이고,

형기란 음식(飮食)과 남녀(男女)관계 즉 인욕(人欲)의 사사로운 것이다.

 

이(理)와 기(氣)는 근본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형(形)은 기에서 생겼고, 기(氣)는 이(理)에 근본 하였으니, 理는 氣의 성(性)이요 氣는 理의 재(才)이다.

그리고 才는 性에서 나오고 理는 氣에서 행하여지니, 즉 측은(惻隱)이 性에서 나왔으나 서로 감응하는 것은 氣이며, 애욕(愛欲)이 氣로 이루어지나 이치는 性인 것이다.

 

천리(하늘의 이치)를 따르면 이(理)가 전일하여 氣가 바르게 되며,

인욕을 따르면 기가 전일하여 理가 변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심(人心)은 위태롭고 도심(道心)은 미미하다”고 한 것이다.

 

사람은 天地의 중정(中正)함을 받고 태어나서, 인(仁)으로써 성(性)을 삼았는데, 인이 불인(不仁)으로 변하는 것은 성(性)의 죄가 아니라 재(才)의 작용이 잘못된 것이다.

 

인욕(人欲)이 방자하면 천리(天理)가 멸하여지므로 군자는 이를 두려워한다.

 

선함을 택하고 악함을 제거함에는 정밀(精密)함 만 한 것이 없고,

독실하게 믿고 굳게 지키는 데에는 전일함만 한 것이 없으며,

덕을 이루어 백성을 가르치는 데에는 중용(中庸)의 도를 행함 만 한 것이 없다.

 

이것이 요(堯)ㆍ순(舜)ㆍ우(禹)가 전하여 준 법 이니, 배우는 사람의 대종(大宗)인 것이다.

이(理)는 기(氣)의 이(理)이니, 이 이(理)가 있으면 이 기(氣)가 있다.

기(氣)는 이(理)의 기(氣)이니, 이 기(氣)가 있으면 이 이(理)가 있다.

 

 

 

[1] 와 아니라 : 이와 기는 순서가 있는 것으로 동시에 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2] 人心은 은미하다 : 사람의 지각이 형기(形氣)에서 발한 때에는 인심이라 하고 의리(義理)에서 발한 때에는 도심이라 하는데, 인심은 사사롭기 쉽고 공변되기가 어려우므로 위태롭다 하였고, 도심은 밝아지기는 어렵고 어두워지기는 쉬우므로 은미하다고 한 것이다.

 

                                                               《書經 大禹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