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一章(제일장) 太一論(태일론)
第一節(제일절) 有無論(유무론)
1. 自存體(자존체)와 第一原因(제일원인)의 糾明(규명)
存在(존재)하는 모든 것은 ‘形(형)’을 具備(구비)하고 있음이며, ‘形(형)’이란 곧 ‘있는 것’인즉 ‘無(무)’와 區分(구분)하여 이를 ‘有(유)’라 한다. ‘有(유)’와 같은 槪念(개념)으로는 ‘形(형)’, ‘色(색)’, ‘存在(존재)’, ‘形而下(형이하)’ 等(등)을, 그리고 ‘無(무)’와 같은 槪念(개념)으로는 ‘空(공)’, ‘虛(허)’, ‘象(상)’, ‘幻有(환유)’, ‘形而上(형이상)’ 等(등)을 들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存在(존재)하는 모든 ‘有(유)’는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이 물음에는 두 가지로 豫測(예측)할 수 있다. 그 중 첫째는 ‘有(유)’는 ‘有(유)’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유’에서 비롯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後者(후자)의 假設(가설)은 곧 存在(존재)하는 모든 ‘有(유)’는 ‘有(유)’가 아닌 ‘無(무)’에서 비롯되었다는 主張(주장)이 되는바, 結局(결국) 어떻게 ‘無(무)’에서 ‘有(유)’가 生成(생성)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問題(문제)를 남기게 된다. 그렇다고 前者(전자)의 假設(가설)도 容易(용이)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存在(존재)하는 모든 것은 例外(예외)없이 그 原因(원인)을 隨伴(수반)하기 때문이다. 假令(가령), ‘有(유)’의 最初(최초) 原因(원인)을 ‘有(유)’에서 찾다 보면 結局(결국) 더 以上(이상)은 遡及(소급)할 수 없는 段階(단계)의 ‘有(유)’에서 멈추게 되는데, 이때의 ‘有(유)’를 ‘自存體(자존체)’로 받아들여야 하는 理論的(이론적) 限界(한계)에 부딪치고 만다. 다시 말해서, 삼라만상은 存在(존재)하게 된 저마다의 原因(원인)이 있어야 함인데, 形狀(형상)있는 어떤 存在(존재)가 永遠(영원)의 前(전)부터 理由(이유)도 原因(원인)도 없이 그냥 存在(존재)하고 있었다는 主張(주장)이 되어 理論的(이론적) 妥當性(타당성)을 잃고 마는 것이다. 우리는 이 假設(가설)에서 知的(지적) 探究心(탐구심)을 멈추고 基督敎(기독교)의 絶對神(절대신)과 같은 自存體(자존체)의 槪念(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아직은 풀리지 않은 그 무엇인가가 있음을 믿고 理性的(이성적) 判斷(판단)에 의한 理論的(이론적) 接近(접근)을 다시금 試圖(시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갈림길에 直面(직면)하게 된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自存體(자존체)로서의 唯一神(유일신)의 槪念(개념)을 언급한 句節(구절)을 찾아볼 수 있다.
『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全能(전능)하신 주 하나님이시여! 그는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 오실 분이로다!』
- 요한계시록 4.8 –
『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며, 시작과 끝이다.』
- 요한계시록 22.13 –
이 句節(구절)대로라면 基督敎(기독교)의 ‘여호와神(신)’은 그 어떤 原因(원인)도 없이 그냥 스스로 存在(존재)하였고, 이 神(신)의 攝理(섭리)대로 萬物(만물)이 創造(창조)되었다는 主張(주장)이 된다. 이는 ‘여호와神(신)’이 本體論(본체론)의 ‘第一原因(제일원인)’이 되는 것을 意味(의미)한다. 그러나 哲學(철학)이란 疑心(의심)하고 疑心(의심)하여 疑心(의심)이 생기지 않는 段階(단계)까지 疑心(의심)하는 行爲(행위)인바, 아무런 理由(이유)도 原因(원인)도 없이 그냥 存在(존재)한다는 主張(주장)은 理性的(이성적)으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虛言(허언)이 아닐 수 없다.
이 第一原因(제일원인)에 대한 假設(가설)로서 現代科學(현대과학)은 [빅뱅론]을 擧論(거론)하기도 한다. 이 學說(학설)은 宇宙生成(우주생성)의 以前(이전)에 高度(고도)의 密度(밀도)로 壓縮(압축)되어 있는 ‘COSMOS EGG’가 있었고, 이것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至境(지경)에 이르러 爆發(폭발)하게 되었고, 여기서 宇宙(우주)가 生成(생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COSMOS EGG’ 또한 第一原因(제일원인)으로서의 價値(가치)는 基督敎(기독교)의 唯一神(유일신)과 다를 바가 없다. 왜냐하면 ‘COSMOS EGG’ 以前(이전)의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며 또한 이 ‘무엇’도 그 原因(원인)인 또 다른 ‘무엇’이 있어야 하는 것이므로, 이렇게 遡及(소급)한즉, 어느 段階(단계)에서 멈춘다는 것은 실로 不可能(불가능)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빅뱅論(론)’ 이외에도 ‘定常宇宙說(정상우주설)’, ‘脈動宇宙說(맥동우주설)’ 等(등)과 이 領域(영역)안에서 많은 假設(가설)들이 擧論(거론)되고 있으나 ‘第一原因(제일원인)’을 糾明(규명)함에 있어서는 별다른 進展(진전)이 없는 實情(실정)이다.
智者(지자)라면 누구나 盲從(맹종)과 疑心(의심)의 갈림길에서 理論的(이론적) 理解(이해)를 얻고자 疑心(의심)할 것이 分明(분명)하나, 問題(문제)는 第一原因(제일원인)을 指定(지정)한즉, ‘어떻게 自存(자존)할 수 있는가? 에 대한 理論的(이론적) 理解(이해)를 도저히 얻을 수 없는 데 있다.
斷言(단언)컨데, ‘原因(원인) 없이 自存(자존)하는 有(유)’에 대한 論理的(논리적) 理解(이해)는 科學(과학)이 아무리 發展(발전)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그 解答(해답)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自存體(자존체)’에 관한 問題(문제)는 形而上(형이상)의 問題(문제)이기 때문에 形而下(형이하)를 다루는 科學的(과학적) 探究(탐구)로서는 그 眞相(진상)을 究明(구명)하기가 容易(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어떻게 原因(원인) 없이 存在(존재)하는가?’ 에 대한 問題(문제)는 科學(과학)이 아무리 發展(발전)한다고 하더라도 그 實例(실례)를 들어 解明(해명)할 수 있는 形而下(형이하)의 分野(분야)가 아닌 것이다.
여하튼, ‘有(유)’에서 ‘有(유)’가 비롯되었다는 主張(주장)은 ‘自存體(자존체)’의 問題(문제)에 直面(직면)하여서는 더 이상 論理的(논리적) 接近(접근)이 어렵게 된다. 여기서 새로 등장한 것이 곧 ‘無(무)’에서 ‘有(유)’가 비롯되었다는 理論(이론)으로, 이 主張(주장)은 佛敎哲學(불교철학)이나 東洋哲學(동양철학)의 주된 觀点(관점)이 되어 왔다.
<般若心經(반야심경)>의『 色不異空(색불이공) 空不異色(공불이색) 色卽是空(색즉시공) 空卽是色(공즉시색) 』의 句節(구절)은 色(색)과 空(공)이 一體(일체)라는 理論(이론)으로서 ‘有(유)’의 根源(근원)은 곧 ‘無(무)’에 있음을 說明(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空(공)에서 色(색)이 비롯되었기에 色(색)의 本質(본질)은 結局(결국) 空(공)이라는 것이며, 이런 事實(사실)을 통해 色界(색계)가 眞有(진유)가 아닌 幻有(환유)임을 일깨워 모든 번뇌망상에서 초월할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老子(노자)의 <道德經(도덕경)>에서는 <般若心經(반야심경)>의 色空一體論(색공일체론)보다 좀더 具體的(구체적)으로 ‘有(유)’의 根源(근원)이 ‘無(무)’에 있음을 指摘(지적)하고 있다.
『 天下(천하) 萬物(만물)은 有(유)에서 나오고, 有(유)는 無(무)에서 나온다. 』
- 도덕경 40 –
이 句節(구절)에서는, 萬物(만물)은 ‘있는 것’들의 相互(상호) 生剋(생극)을 通(통)하여 이루어진 것이지만, 最初(최초)의 ‘있는 것’은 ‘無(무)’에서 비롯되어 生成(생성)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즉, 第一原因(제일원인)이 ‘有(유)’가 아닌 ‘無(무)’의 屬性을 띠고 있음을 主張(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無(무)’에서 ‘有(유)’가 어떻게 創出(창출)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論理的(논리적) 說明(설명)은 諸般(제반)의 宗敎(종교), 哲學(철학) 等(등)을 통틀어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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