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야생버섯

[스크랩] 털작은입술잔버섯-내 인생의 2막1장

검은바람현풍 2012. 10. 11. 19:53

 

삶에 비가 내린 어느날,  흠뻑 젖은 몸을 떨며 심하게 앓았다.

비를 가린 그 무엇도 없이 나는 그냥 세상에 던져져 있음을 알았을때의 긴장감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삶의 터는 양지바르지 않았고 스산한 습기가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사는동안 비 내리는 날만 계속되었다면 삶은 그냥 끝났을테지.

죽어가며 그렇게 썩어갔을 테지.

작은 햇살이 나뭇사이로 스며들어와 삶의 온기를 불어넣어 주지 않았더라면..


 

 다시 찾아온 인생의 봄에서 나는 물오른 털작은입술잔버섯처럼 삶의 찬가를 부르고 있었다.

삶의 향기가 무르익은 내 나이는 마흔다섯, 그리고 9월에 나를 찾은 반갑지 않았던 손님 '암'


 

초기라고 했지만, 이제 갓 자리잡은 작은 세포덩어리라고 했지만

'암'이라는 한 글자에 담긴 의미는 전률과도 같은 긴장을 전하려 했다.


 

왜 이렇게 아쉬움이 많을까.

할 일은 아직도 많고, 하고픈 일들도 그 끝이 다 드러나지 않았는데, 버섯들은 아직도 곶자왈과 오름에서 피고지고를 반복하며 나의 관심을 희망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내 내부를 열어 상처를 도려내었다.

아이를 셋 키운 宮이 있던 자리는 터만 남았다.

이제 여자는 없고 그냥 사람이 되었다.


 

1막1장은 끝나고 다시 막이 오르는 새 장이 열렸을까.

아직은 알 수 없다.

내부의 저 깊숙한 곳에서 어느 장기인가는 다시 반란을 일으킬지 알수 없음이니..


 

어머니가 세상을 등지셨던 그때 그 나이 마흔다섯과 암.

그리고 다시 마흔다섯이 된 나는 현대의학의 힘을 빌어 조기발견, 조기치료라는 행운을 얻었다.

마감해야 하는 생을 예감하셨던 어머니의 눈물이 28년 세월을 훌쩍 넘어 입원해 있던 기간 내내 다시 내 눈앞에서 어른 거렸다.
병은 세습되었지만, 한숨은 세습되지 않음을 알게 했다.




비는 다시 내릴 것이다.

빗물에 튕겨진 흙이 그를 옴팡 덮씌워도 털작은입술잔버섯의 내부에는 버섯의 포자가 무르익어 갈 테지.

나는 다시 달릴 준비나 하자. 박쳐도 오라이~~~

출처 : 야생버섯이 좋은 사람들
글쓴이 : 팽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