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야생버섯

[스크랩] 진홍빛 유혹 - 술잔버섯 (Sarcoscypha coccinea (Gray) Lamb.) 월간버섯 2010년 2월호

검은바람현풍 2012. 10. 12. 15:58

 

2010년 새해를 맞는 첫 달 1월, 폭설이 내린 제주도는 도로 곳곳이 통제되고 난리가 났다.

닥터지바고'에서 보던 설원의 풍경이 실제로 제주에서 펼쳐졌다.

'아휴..이게 따뜻한 남쪽나라 제주도가 맞아?'

 

눈길을 뚫고 어딘가로 나설 엄두도 내지 못하고 창밖을 바라보며 탄성만 지르는 아침,

하필 모 방송사에서 세계자연유산인 검은오름 내에 있는 숨골에서 버섯을 찾아달라는 부탁이 들어온다.

'에궁, 이 눈길을 어찌 가요?'

 

-거문오름 탐방로-

 

눈길을 나서기가 귀찮아 엉덩이가 자꾸 무거워지건마는, 이런 날 사진을 찍어야 폼이 난단다.

모시러 온답시고 대문 앞에까지 차를 대기시키는데 거절할 구실을 못 찾아 엉거주춤 따라 나선다.

집 밖은 눈과 바람이 만나 눈보라가 되어 있다.

 

자동차 계기판에서 가리키는 온도는 영하 1-2도를 오락가락하지만,

제주의 바람이 만들어내는 체감온도는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검은오름은 선흘곶의 빌레용암을 잉태하고 용암동굴계를 생성시킨 신비의 오름이다.

오름 속 분화구에 들어서니 바람은 온데 간 데 없고,

모든 나무들은 크리스마스 트리장식처럼 고운 눈 장식을 덮어 쓰고 있다.

  

-더운김이 모락모락 나는 숨골-

 

'숨골'이란 제주태생이 아닌 사람에게는 낯선 용어일 것이다.

 

땅이 숨 쉬는 곳,

비가 오면 아무리 많은 빗물일지라도 여과 없이 지하수로 유입되는 유입구이며,

 한여름 뜨거운 시기에는 에어컨처럼 찬바람이 나오는 곳,

요새처럼 추운 시기에는 히터를 켠 듯 더운 바람이 뿜어지는 냉난방 겸용기,

가물어서 식물들이 목마를 건기가 되면 돌연 가습기로 변신하는 놀라운 공간이 바로 숨골이다.

 

-숨골은 이끼와 버섯이 겨울나는 장소-

 

눈이 이렇게 많이 내렸는데도 숨골 주변은 눈이 거의 녹아 있고,

마치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입김을 뿜어내듯 하얀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이 보인다.

디지털 온도측정기를 숨골에 갖다 놓으니 12도를 가리킨다.

바깥이 영하 1도였으니 무려 13도 의 온도차가 난다.

  

-금새 랜즈가 뿌옇게 수증기가 서린다-

 

해마다 봐 왔으니 나는 어렵지 않게 털작은입술잔버섯이며, 애주름버섯류의 버섯들,

낙엽버섯류의 버섯들을 찾아낸다.

팽이버섯, 벌집버섯, 느타리, 털목이 등등 눈 속을 아랑곳 하지 않고 검은오름은 버섯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역시 진홍빛 립스틱처럼 화려한 색깔을 자랑하는 술잔버섯이다.

보고 또 보도 아름다운 빛깔에 감탄하며 카메라를 들이대니 렌즈에 뿌옇게 수증기가 서린다.

닦아내기가 무섭게 다시 서리는 수증기 때문에 결국

숨골 밖으로 버섯을 끄집어내서야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술잔버섯에 술을 담기엔 그래도 좀 어설픈 술잔이다.

성숙한 자실체는 보통 크기가 3~5cm 정도로 자라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10cm까지 성장한 버섯도 관찰된다.

자실체는 대부분 찌그러져 있고, 어린 자실체는 옆트임 치마처럼 한쪽이 대부분 찢어져 있기 때문이다.

자낭균에 속하는 술잔버섯은 진홍색의 자실체 내부에 자낭을 만들어 포자를 비산시키며,

 자실체 뒷면은 뽀송뽀송한 하얀 솜털로 덮여 있다.

 

 

건조한 상태의 술잔버섯을 톡-치면 버섯의 포자가 가루처럼 비산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숨골의 내부에서 뿜어지는 더운 공기와 넉넉한 습기는 마치 장마기 때처럼 이끼를 푸르게 하고,

 버섯이며 새들이 한 겨울 추위를 피해 깃드는 생명의 공간이 되게 한다.

 

 

따뜻한 제주도에 왜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아주 간단한 이유, 강수량이 많기 때문이다.

강수량이 많지 않은 지역은 온도가 무지막지 내려가도 비가 없으니 눈으로 바뀌지 못하지만

제주는 날씨가 조금만 추워지면 비대신 눈이 펑펑 오는 거다.

다만 금방 다시 따뜻해지니까 내린 눈이 금 새 녹는다.

 

 

비가 많은 한라산은 기온도 낮아서 겨울이 되면서 눈이 내리면 좀처럼 쉽게 녹지 않는다.

백록담 부근에 가면 3-4월 봄기운이 제주도 가득 내려앉을 때까지도 하얀 설원으로 존재 한다.

 

설원을 찾아, 제주의 버섯을 찾아서, 여러분 모두 올 겨울 제주도로 고고씽~~~~

 

 

출처 : 야생버섯이 좋은 사람들
글쓴이 : 팽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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