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깊어 가면 사려니숲길에 아름다운 초록색으로 신록이 내려오기 시작한다.
낙엽활엽수림이 주류인 숲이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겠지만,
숲 속으로 고불고불 뻗은 자연스런 길과 가끔씩 나타나는 작은 계곡,
숲에 깃들어 사는 생명들의 움직임과 더불어 숲을 찾아들어
개구쟁이처럼 휘젓고 다니는 바람의 몸짓에 놀란 잎사귀들의 자지러짐이 함께 한다.
사려니 숲길이 특별히 아름답다고 느끼게 되는 건,
아마도 요즈음 새로 돋는 잎사귀에 제주의 바람이 어우러져 함께 연주하는 하모니가
싱그러움을 더해주는 까닭도 있을 것이다.
번식기가 도래한 산새들의 바쁜 지저귐이 숲 곳곳에서 일고,
소스라친 꽃망울들이 서로 다퉈 벙그는 사이,
산뽕나무 꽃망울이 터지기를 기다리던 버섯도 땅 속에서 하나 둘 씩 그 모습을 드러낸다.
산뽕나무 열매가 달리기를 겨우내 학수고대하던 오디균핵버섯이다.
컵처럼 생긴 자낭반의 내부에서 버섯의 홀씨인 포자가 성숙해지고,
숲에 이는 바람을 타고 날아오른 포자는 갓 피어난 뽕나무 꽃에 삶의 터를 잡는다.
버섯균에 감염된 산뽕나무 꽃에서 영근 오디는 부드러운 과육으로 익어가지 못하고
회색의 딱딱한 석회덩어리처럼 굳어간다. 딱딱해져야 균사체들이 일년 동안
살아갈 튼튼한 집이 되어 질 수 있으니까.
아마도 균들은 자신만이 아는 특별한 방부처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라산 동쪽 산 중턱을 가로지르는 비자림로의 중간 즈음부터 시작되는 사려니숲길은
표고재배장을 찾는 사람들이나 드나들던 한적한 임도였으나
최근 걷기 열풍과 더불어 가장 인기 있는 트래킹코스가 된 곳이다.
종착지인 붉은오름까지는 9.9km나 이어지는 짧지 않는 코스의 중간 지점에는
산꼭대기에 출렁이는 호수로 된 분화구가 있는 물찻오름이 있어서 유명하다.
지금은 휴식년제로 출입금지가 되었지만
숲 그 자체만으로도 빛을 발하는 곳이고 강수량이 풍부하며,
또한 낙엽활엽수가 많은데다 사이사이 삼나무며 해송 등이 혼효림을 이루고 있어서
여름이면 갖가지 야생버섯의 낙원이 되는 곳이다.
오디균핵버섯은 꼭 사려니숲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어디나 산뽕나무, 혹은 뽕나무가 있는 곳이라면 발생할 확률이 있다.
작은 양주잔 모양으로 생김새가 매우 신기하게 생겼으나
다만 작고 땅에서 흙과 비슷한 색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선뜻 눈에 띄지 않는다.
자낭반의 크기는 1~1.5cm, 자루의 굵기는 0.1~0.2cm, 길이는 1~2cm이다.
사려니숲에는 산뽕나무가 많다.
버섯이 작긴 하지만 산뽕나무 새순이 돋아나고 꽃자루가 달릴 즈음
뽕나무 아래를 자주 서성인다면 틀림없이 만날 수 있는 반가운 얼굴이다.
같은 시기에 오디균핵버섯보다 조금 늦게 나타나는
균핵꼬리버섯(Scleromitrula shiraiana)도 역시 떨어진 오디에서 함께 관찰된다.
사려니숲길을 완주하려면 3~4시간은 족히 걸린다.
하지만 눈을 들어 주변을 살피며 숲을 만끽하기 위해 천천히 걷는다면
도시락을 가지고 가는 것도 좋다.
특히 여름철이 되면 갖가지 동충하초들이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야생버섯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니 하루를 온전히 비우고 들어가면 좋을 것이다.
해가 살포시 기울기 시작할 즈음,
삼나무 숲 사이로 내리는 햇살은 하루의 만족스런 마무리 느낌보다,
왠지 내일 다시 밝을 새 날에 대한 기대가 더 크게 일게 한다.
'버섯 > 야생버섯'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말똥 위의 군무 - 좀환각버섯(독청버섯과; Psilocybe coprophila (Bull. : Fr.) Kummer) (0) | 2012.10.12 |
---|---|
[스크랩] 낙엽지는 봄날에 만나는 소혀버섯(소혀버섯과; Fistulina hepatica Schaeff. ex Fr.) (0) | 2012.10.12 |
[스크랩] 동백균핵버섯 (균핵버섯과; Ciborinia camelliae Kohn) (0) | 2012.10.12 |
[스크랩] 진홍빛 유혹 - 술잔버섯 (Sarcoscypha coccinea (Gray) Lamb.) 월간버섯 2010년 2월호 (0) | 2012.10.12 |
[스크랩] Gymnopilus junonius 갈황색미치광이버섯 (0) | 2012.1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