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언제 떨어지나요? 라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을을 말한다.
낙엽 지는 건 가을이니까.
그렇지, 낙엽이야 당연히 가을에 지지.
하지만 제주도에는 봄이 되어 신록이 무르익어갈 즈음마다
낙엽이 소복소복 떨어져 쌓이는 커다란 숲이 있다.
나무엔 아직 짙푸른 녹색 잎이 가득한데,
땅에는 마치 융단을 깔아 놓은 듯 푹신하게 낙엽이 떨어져 깔려있다.
2년 혹은 3년 정도 사용한 묵은 잎을 새 잎과 교체하는 작업들이 한창 일어나고 있는 곳,
바로 상록활엽수들이 숲을 이루어 사는 곶자왈과 계곡이다.
이때에는 가을과는 또 다른 분위기로 낙엽이 쌓인 길을 걸으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니까 낙엽은 사실 일 년에 두 번 떨어진다.
낙엽수는 가을에 일시에 잎을 떨어뜨리고,
상록수는 봄에 노화되어 있는 일부분의 잎을 떨어내는 것이다.
낙엽이 깔린 숲길을 걸으며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시간,
새로 막 돋아난 신록이 눈을 행복하게 하는데 귓가에 들리는 삼광조 소리,
구실잣밤나무가 개화하며 뿜는 향기는 코끝에 알싸하고,
싱그럽고 청량한 공기가 피부 속 모공 하나하나마다 파고드는 느낌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곳이
이 곳 말고 또 있을까?
제주의 상록활엽수 숲은 이렇게 오감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어린 소혀버섯
소혀버섯은 이런 환경을 좋아하는 버섯이다.
그렇잖아도 음습한 숲속에 봄장마를 거치며 수분이 풍족해지면 5월에서 6월 사이,
가끔씩 살아있는 나무의 병든 부위에서 소혀버섯은 혀를 내밀 듯 쏘옥 돋아난다.
죽은 나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
살아있는 구실잣밤나무나 조록나무, 종가시나무 등의 상처나 죽은 부위에서 간혹 발견될 뿐,
흔하게 발생하는 버섯은 아니다.
성숙한 소혀버섯은 너무 높아서 갓 하면밖에 찍을 수 없었다.
발생시기가 되어도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지, 작년에 발생한 나무에 다시 발생하지 않기도 하고,
다시 찾아내는 게 또 그리 쉽지도 않다.
대부분 어두운 곳에 꼭꼭 숨어 산다.
자실체의 크기는 7~15cm 이고 두께는 1~5cm 이다.
자실체 표면은 성장 초기에는 진한 홍적색의 화려한 모습으로 돋아났다가
성숙해지면서 차차 홍갈색으로 어두워지며, 그리고 홍갈색으로 노화되어 간다.
살은 핏빛이다.
따 내서 찍고 말다.
소혀버섯의 자실층은 관공 모양이다.
작은 빨대들을 무수히 세워놓은 듯 한 모습이 클로즈업시킨 카메라 렌즈에서도 확인이 된다.
초기에는 흰색이었다가 황갈색으로 퇴색되어 간다.
갓 표면은 갈아놓은 낟알 부스러기 같은 작은 돌기들이 덮여 있다.
관공만 접사해 보았다. 하얀 빨대들이 세워진거 같다.
나무에 발생하는 버섯이니 균 배양이 가능하다고 한다.
엊그제 흠뻑 내린 비로 축축해져 있어 오염의 염려가 있지만, 균 분리를 해 보기로 했다.
그동안 건조표본을 만들기만 했지 직접 잘라보지 않았는데,
잘린 육질 부분을 보니 영락없는 소고기 모양이다.
고깃살 같은 질감에 누르면 육즙이 촉촉하게 분비가 되는 모습까지 닮았다.
균분리를 위해 잘라보다.
시큼한 맛을 내며 외국에선 샐러드로 먹는다고 하니 '먹어보자' 하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아가씨들은 살짝 맛만 보고는 인상을 찌푸리고,
나는 신맛이 제대로 느껴지나 어떤 맛이 또 느껴지는지 세심하게 맛을 봤지만
약간 신맛 외엔 별다른 느낌이 없다.
다만 생고기를 먹고 있는 느낌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와....진짜 소혀같다....아래부분 흰 띠는 포자가 담기는 관공이다.
포크 대신 핀셋을 들고, 크린벤치에서 사용하는 절단용 칼로 고기 썰듯 저며 내어
마치 스테이크 썰어 먹듯 소혀버섯을 시식하는 모습들이 우스꽝스러워서 카메라를 들이대니,
실험실 왕고참 김박사님이 아주 리얼하게 왕창 썰어 드신다.
탈이 없어야 할 텐데, 먹는 버섯이라고 큰소리는 쳐 놓고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한다.
호기심 많은 김박사님...맛보기로 하고...실험실원들..다 맛보다.
균 분리하고 시식까지 마친 소혀버섯을 건조하려고 건조기에 넣으며
소혀버섯의 육질을 살피다가 엉뚱한 호기심이 또 발동을 건다.
곱게 썰면 또 얼마나 스테이크 같을까.
혹시 회처럼 썰어 곱게 담으면 또 어떤 느낌이 들까.
양념장을 바꾸며 맛보면 맛이 어떨까?
밤은 이슥하게 깊어 가는데,
썰어서 모양 내 보고,
초고추장에 찍어서 맛보고,
기름장에 찍어 맛보고......
그렇게 내 손에서 소혀버섯 하나가 분해 되어갔다.
소고기 육회를 썰어놓은 듯한 소혀버섯 육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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