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야생버섯

[스크랩] 말똥 위의 군무 - 좀환각버섯(독청버섯과; Psilocybe coprophila (Bull. : Fr.) Kummer)

검은바람현풍 2012. 10. 12. 16:54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제주가 태생인 사람이라면 한 두 번은 꼭 들었을 속담일 것이다.

어릴 적에 듣기에는 귀가 별로 편안하지 않았던 문장이지만,

이제는 제주인으로서 품고 살아가는 당연한 이야기로 느껴지고

 몸속을 흐르는 혈관의 일부처럼 여겨진다.

    

 

말과 함께 했던 제주의 역사가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나 아픈 상처자국투성이어서,

그래서 더 애착이 가는지도 모른다.

곶자왈, 오름, 말, 이제 이런 단어들은

꼭 제주를 위해서 만들어진 단어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생태기행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과 함께 자연학습을 나갈 때가 많아지다 보니,

가장 많이 찾게 되는 장소가 오름과 곶자왈이다.

비록 방목 두수는 줄었지만 아직도 소와 말이 뛰어놀고 있는 목장,

여름이면 야생의 복분자가 지천으로 익어가고,

소와 말의 똥을 분해하는 버섯들이 눈길 머무는 곳마다 관찰되는 곳,

오름과 곶자왈은 야생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에게 천혜의 낙원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소와 말이 들판의 풀을 뜯다 똥을 싸면 애기뿔소똥구리가 소똥을 굴리고,

똥풍뎅이가 알을 낳으며 오소리는 애기뿔소똥구리를 잡아먹는다.

똥풍뎅이와 애기뿔소똥구리가 먹다 남은 말똥이

비바람에 노출되어 말랐다가 젖기를 반복하는 동안,

좀환각버섯의 포자가 삶의 터를 삼아 분해시키며 말똥을 자연으로 회귀시킨다.

 

오름 주변이나 곶자왈의 대부분은 오랜 세월 목장으로 이용되어 왔다.

흙길이었던 목장길들은 농용트럭이나 경운기가 드나들기 용이하도록

시멘트 포장으로 더러는 덮여 있지만,

그래도 소와 말이 지나다니며 떨어뜨린 배설물은

여느 흙길이나 다름없이 어지러이 흩뿌려져 있고,

 배설물은 시멘트길 위에서도 버섯에 의해 분해되어간다.

 

 

좀환각버섯은 초여름이면 돋아나기 시작하여 가을 즈음까지 소나 말의 배설물,

혹은 퇴비더미 위에서 다수가 무리지어 군생한다.

버섯 발생 시기만 맞추면 제주에서는 어디서나 쉽게 관찰이 가능한 편이다.

갓의 지름은 1cm내외로 소형이며 초기에는 반원형이나 후에 살짝 더 펼쳐지나

편평하게 펼쳐지지는 않는다.

 

습할 때의 갓 표면은 윤기가 흐르는 적갈색으로 반투명한 선이 나타나며,

점성과 광택이 있고, 갓 가장자리로 백색의 가루가 붙어 있다.

 자루의 길이는 1.5~3cm, 굵기는 1~2mm정도로 가늘고 길며

다소 질긴 편이어서 쉽게 부서지지는 않는다.

 

 

자루의 전체에 백색의 가는 섬유상 인편이 덮여 있고 속은 비어 있다.  

말똥은 더럽다는 생각이 드나 버섯은 더럽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윤기가 흐르는 앙증맞은 모습을 들여다보노라면

똥 위에서 이렇게 고운 생명이 살아간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말똥이 말라가는 대로 버섯은 건조되어져 가고,

소똥이 분해되어져가며 버섯과 그 안에 깃든 곤충의 삶도 명멸을 겪는다.

옹기종기 사람 살 듯 버섯들도 생노병사를 겪어간다.

 

 

아직도 제주의 들판에서 소와 말이 방목되어지고 있다는 것이 고맙기도 하다.

목장에 들어서서 나도 한 마리의 말 이 된 듯 말들의 무리에 섞여,

말은 풀을 뜯고 난 버섯을 살핀다.

이런 날 제주의 하늘을 맑은 물이 뚝뚝 떨어질 듯이 곱기도 하다.

 

소똥이나 말똥을 의지해 살아가는 버섯은 물론 좀환각버섯만은 아니다.

찻잔버섯류의 버섯이나 말똥버섯류, 볏짚버섯류의 버섯들,

그리고 독청버섯아재비 등도 똥 위에서 삶을 영위한다.

키 작은 관목이나 들풀만 살아갈 듯 싶은 목장 안에는

곤충이며 버섯이며 동물들이 어우러져 삶의 터를 이룬다.

    

제주의 긴 장마도 서서히 막바지에 이르러가고,

긴 장마가 가져온 습기는 더위에 얹어져서 더 불쾌감을 불러 오고 있다.

무더위는 땀을 뽑아내듯 사람을 쥐어짜는 느낌마저 든다.

이렇게 땀을 뽑아내고 나면 말똥 위에서 자연 건조되고 있는 좀환각버섯처럼

나도 혹시 쪼글쪼글 말라가지 않을 건지......

출처 : 야생버섯이 좋은 사람들
글쓴이 : 팽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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