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야생버섯

[스크랩] 소녀먹물버섯 Corprinus neolagopus Hongo & Sagara

검은바람현풍 2012. 10. 12. 16:59

 

 

 

뜨거운 한여름, 어쩌다 올레길을 걷고 싶어졌다. 가자.

모처럼 쉬러 집에 내려온 딸아이를 데리고 뜬금없이 그렇게 길 위에 섰다.

북풍한설만이 살을 에는 건 아니다.

8월의 찬란한 태양이 바다를 치고 들판 위로 부서지다가는

 얼굴 위에 작렬하며 살을 에인다.

 

 

제주 올레길의 첫 문을 연 곳은 시흥-광치기올레로 말미오름(두산봉) 입구가 출발지이다.

제주에 있는 360여 개의 오름 중 첫 방문객을 맞는 곳,

 나지막하고 넓적하며 분화구 속은 아직까지도 농사짓는 밭들이 있는 말미오름과

1코스의 끝자락에 위치한 성산일출봉은

솟구치던 용암이 물이 있는 환경을 만나 폭발을 일으키며 형성된

수성화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몇 안 되는 오름이다.

 

  

이렇게 형성된 오름을 응회구라 하며,

응회구는 폭발의 크기만큼 분화구도 넓고 크다.

 

  

오름을 오르고 내리며 고불고불한 흙길을 걷고,

소떼들 사이를 지나며 길 위에서 한낮의 시간을 보낸다.

 

 

흐르는 땀방울과 습기, 작열하는 무더위와 살을 에는 태양,

끈적끈적한 소금기 머금은 바람, 흙길을 걷다가 복병처럼 나타나는

아스팔트 길 위에서는 8월 더위의 진수를 맛본다.

 

 

얼마나 더울지, 얼마나 뜨거울지를 미리 어느 정도 예측하고 길을 나섰지만,

15km가 되는 첫 올레길에서 절반 가까이 되는 아스팔트 길 위의 더위는 나를 삶을 듯 하다.

1코스를 걷는 구간은 총길이가 15km 이다.

4~5시간이면 족히 걷는다고 안내하지만 소똥 위에서 버섯을 만나고,

걷는 길목에 버섯이 서 있기도 하고, 풀 섶 사이 살짝 숨어있는 버섯들도 찾아내며,

사진을 찍으며 쉬엄쉬엄 걷다보니 7시간이 넘게 소요되었다.  

 

 

커다란 말미오름 분화구 속은 농사를 짓는 농토가 형성되어 있고,

보리농사 후 사료용으로 묶어가던 보리짚단이 싣고 가다 떨어졌는지 묶인 채 썩어가고,

그 위에 버섯이 무더기로 나 있다.

 

 

자루는 싱싱하고 고운데 갓은 이미 먹물이 되어 있어 안타깝게 했다.

조금만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싶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진을 찍으며 들여다보니,

작은 버섯들이 짚단 사이사이에 숨어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집으로 가지고 가고 싶어졌다.

작은 버섯들이 곧 또 자랄 것이다.

하지만 길을 걷던 중간에 그냥 포기하고 버섯을 싣고 나르기도 그렇고,

올레걷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실어 가리라 싶다가 그만 잊고 말았다.

 

 

그날 밤, 사진정리를 하면서 비로소 기억이 떠올랐다.

다음날은 출근해야 하는지라 아침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말미오름으로 차를 몰았다.

어제의 어렸던 버섯들이 성숙해 있기를 바랐는데,

아뿔사 그새 다시 또 먹물이 되어 있다.

 

어제 자루만 있던 버섯들은 툭툭 자루가 이미 꺾여있고,

어렸던 버섯들은 다시 액화가 되어 있다.

성장이 이렇게 빨리 진행되는 것이다.

아무래도 싣고 가야 다시 돋고 있는 어린버섯들을 관찰 할 수 있을 듯 했다.

 

  

기계로 묶은 짚단은 썩어가고 있는데다 제법 커서

혼자 들기엔 무게가 만만치 않았지만,

다행히 바로 옆에까지 자동차를 댈 수 있는 장소였다.

 

 

하지만 2인승 짚차인 내 승용차는 오늘따라 왜 그렇게 화물칸이 높은지,

출근길 복장을 먹물로, 퇴비가 되어가는 짚단 썩은 물로 온통 적신 후

겨우겨우 차에 실었다.

퇴비 썩는 냄새가 차에서,

내 몸에서 폴폴 난다.

자동차속에 남은 이 냄새는 아마 오래 갈 듯 싶다.

   

  

털북숭이 어린 버섯들은 더러 털도 벗겨지고,

곧고 멋지게 서 있던 자루들도 다 부서졌지만,

그래도 새로 나오는 버섯들이 있어서 일하는 틈틈이 카메라를 들이대었다.

퇴근시간 무렵이 다 되어도 유균은 거의 미동조차 없다.

그냥 꼼짝 않는 듯한 모습이다.

 

  

다시 집으로 싣고 와서 마당에 내렸다.

퇴비를 한 짐 싣고 온 내 얼굴을 바라보며 남편 눈이 동그래진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마당을 내다보았다.

다시 먹물이 되어 있다.

이 녀석들은 밤에만 성장하나 보다.

 

  

그날 밤 10시가 넘어선 시간,

잠들기 전에 마당에 나가 보았다.

아침에는 어렸던 소녀먹물버섯 몇 개체가 제법 길쭉하게 자루가 올라와 있다.

하지만 갓은 펴질 기미가 없다.

 

 

밤새 지켜 설 수도 없고, 내일 아침이면 틀림없이 또 먹물이 되어 있을 것이다.

캄캄한 밤에 카메라를 꺼내봤자 찍히지도 않을 듯싶어

버섯 몇 개를 뽑아내어 관찰하느라 잊고 있던 표본을 건조시켰다.

 

그런 후 짚단은 마당에 한동안 방치되었다.

새로운 소녀먹물버섯들이 매일매일 나고 지며,

짚단은 눈에 띄게 제 부피를 줄여갔다.

 

 

 

출처 : 야생버섯이 좋은 사람들
글쓴이 : 팽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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