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이 뚝뚝 낙화하는 시기이다.
만개한 꽃이 시들기도 전에 싱싱한 꽃잎이 붉은 피 떨구듯 잎 떨어지면,
아무리 화무십일홍이라 하나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처연함이 일어난다.
혹자는 떨어져 다시 한 번 피는 꽃이라고도 하였지만,
떨어진 꽃을 손에 집어 들어 가까이 보면 영락없이 만추인 내 나이,
50을 목전에 둔 모습처럼 시들어가고 있다.
나무에 매달린 동백꽃에는 눈길이 머물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 꽃만 아쉽다고 들여다보노라면
접시 같기도 하고 주발 같기도 한 작은 버섯들이 더러 눈에 띈다.
살그머니 잡아 댕기면 뚝 잘라지며 긴 자루가 딸려 나온다.
"응! 이거 뭔가 있네?"
잘려지는 느낌 때문에 궁금해져서 골갱이를 들고 버섯의 자루를 끝까지 추적해보았다.
짧게는 2~3cm에서 길게는 10여cm까지 긴 자루에 혹 같은 추가 매달려 있다.
이 녀석의 이름을 찾다보니 국내에는 보고되지 않은 미기록종,
떨어진 동백꽃을 기주로 살아가는 버섯이다.
동백꽃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작년에 떨어진 꽃잎에서 겨울을 난
균핵버섯과의 균사체에서 버섯이 돋아나 포자를 비산시킨다.
포자는 새로 떨어진 동백꽃을 감염시켜 새 둥지를 삼아
꽃잎이 썩지 않게 방부처리를 하고나면 다시 그 해 여름과 겨울을 보낼 균사체의 집이 된다.
동백꽃만을 먹고 사는 버섯이어서 동백균핵버섯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해마다 동백꽃이 질 즈음에는 동백균핵버섯이 돋는다.
제주도에선 집집마다 울타리 안에 한 두 그루씩은 심어놓는 나무,
가로수로 정원수로 또는 조경수로 인기가 매우 좋지만
떨어진 동백꽃잎만 먹이로 삼아 살아가는 버섯 이야기는 또 새로운 감동을 준다.
좀 더 추해지기 전에 자신의 전성기 때 스스로 꽃잎을 떨구는 동백꽃의 자존심처럼,
동백꽃잎 아니면 먹기를 거부하는 버섯도 꽃을 닮아 곱다.
비록 빨간 꽃잎이 시간이 흐르면서 검게 변해있긴 하지만,
부드러운 꽃잎을 딱딱하게 만들어서 일 년이 지나 다시 새 꽃이 떨어 질 때까지
썩지 않게 만드는 버섯의 능력에 새삼 감탄을 한다.
주변에 동백나무가 있다면, 동백꽃이 낙화할 즈음 꽃잎 앞에 쪼그려 앉아
떨어진 꽃잎 주변을 들여다보자.
오늘 보이지 않으면 며칠 후 다시 찾아보고,
다시 또 며칠 후 들여다본다면 틀림없이 동백균핵버섯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이것저것 다 먹는 잡식성 하지 말고,
팽이나 느타리 같은 한 종의 버섯만 먹고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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