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開 天 綠 (16) ♣
환웅이 이끄는 밝달족의 이동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건이었다. 모세의 출애급보다. 2천년 앞서 있었던 한민족의 이동은 당시의 세계였던 동북아 전체를 뒤흔들었다. 눈앞에 펼쳐진 땅은 누구도 걸어가 본적이 없는 원시와 동물의 땅이었다. 길도 없고 지도도 없었으며 기다리고 있던 것은 곳곳에서 살고 있던 원시종족들과 사나운 맹수들과 독충들이었다. 환웅은 수십만의 무리 속에서 날래고 용감한 삼천인을 뽑아 몸소 인솔하고 길을 개척해 나갔다.
환웅의 선발대와 가장 뒤에서 따라오는 부족 간에는 오천리의 간격이 있었다. 후미의 부족들은 환웅의 소식을 몇 달이 지나서야 듣기가 일쑤였다. 이동 중에 낙오한 부족들은 따라가기를 포기하고 더러는 그 자리에서 정착하기도 하였다. 곳곳에서 미개한 정착민들의 필사적인 저항에 직면했다. 그들은 이동 중이거나 겨울을 나기 위하여 머무르는 밝달족의 캠프를 습격했고, 한발을 옮길 때마다 피를 흘려야 했다.
불을 숭상하던 화족(火族)의 근거지를 지나갈 때 상저(湘猪) 땅에 머물렀 던 선비족은 오천명이 그들의 습격으로 몰살당하기도 했다. 화족은 밝달족의 이동 중에 가장 그들에게 위협이 되었던 사나운 용사들의 종족이었다. 환웅이 이 천도역사 중의 영웅이었던 아배지에게 팔천의 군사를 주어 화족을 삼멸하라 하니 그들의 본거지인 둔성에서 마침내 화족은 떼죽음을 당하고 상강은 붉은 핏물이 되어 흘렀으므로 신시시대에 이 강을 적하(赤河)라 불렀다고 한다. (구름 주:신지에 나오는 지명들이 오늘날 어디를 말하 는지는 모르겠음)
밝달족의 이동은 환웅이 천계를 떠나서 백두산에 도착할 때까지 27년이 걸렸고, 천계를 떠난 한민족의 대부분이 신시에 도착해 합류하는 것은 수백년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여러 세대의 사람들이 천계와 신시의 사이에서 태어나고 죽어갔다. 그들은 흰머리산(白頭山)을 찾아 서른세개의 큰 산을 넘고 열아홉개의 강을 건넜으며 끝없는 들판을 맨발로 걸어, 뚫을 수 없는 숲을 지나고, 넘을 수 없는 준령을 넘어 동쪽으로 동쪽으로 나아갔다.
뜨거운 여름의 태양이 그들을 달구어 광야에서 수없는 사람들이 기갈로 숨졌고, 폭포처럼 쏟아지는 빗줄기가 만든 홍수와 탁류 속에 휩쓸려 죽었으며, 짐승 한마리 눈에 뜨지 않는 설원에서 서로를 안고 얼어죽은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수없이 넘기면서 한민족은 하늘이 정해준 땅을 찾아 해뜨는 곳으로 움직여 갔다. 어떤 때는 한 자리에서 수십년을 살다가 이동하기도 했고, 아예 그 땅에 누질러 살기도 했다. 밝달족의 이동은 그때까지도 신석기시대였던 동북아에 청동기문화를 전파하면서 세계에 새로운 문명의 여명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청동검을 휘두르며 말을 탄 기마민족의 출현은 야만의 대지를 충격으로 흔들었다. 서구열강이 잠들어 있던 동양에 침략자로 나타났을 때, 서구열강의 기술문명이 가져다준 아시아인에게의 충격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석기문명이 정복되어 흡수되고 붕괴되어가면서 이동하는 밝달족의 수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늘어갔다. 오십만 정도였던 환국의 무리는 환웅이 백두산을 발견할 즈음에 장도의 미개인들을 흡수하여 이미 백만에 가까운 수로 불어나 있었고, 치우천황의 시대에는 천계로부터 신시까지 만리의 지역에 수백만의 밝달족이 흩어져 살게 되었다.
신시는 만리 강역을 그 영토로하는 대제국의 토대를 대이동을 통해서 마련했다. 환웅은 삼천의 무리를 데리고 숲을 뚫어 길을 만들고 강에 다리를 놓으면서 뒤에 오는 부족들이 머물자리를 만들고 다시 이동하기를 거듭했다. 마침내 환웅이 한 언덕에 올라서자 멀리 산의 머리가 흰눈에 덮인 듯 하얗게 빛나는 장엄한 산을 보게 되었다. 때는 여름이었는데 산에 눈이 있음을 괴이히 여겼으나 산에 도착해 본즉, 그것은 눈이 아니라 산의 정상 부분을 뒤덮은 웅상나무의 흰꽃이었다. 마치 만개한 벗꽃처럼 여름이면 웅상나무의 흰꽃이 산의 머리를 완전히 뒤덮었다. 사마천이 기록한 사기(史記) 에 중국의 옛천자가 웅상나무의 껍질을 구하러 매년 동이에 사신을 보냈다 는 기록이 나온다. 지금은 이 웅상나무가 멸종되어 백두산은 머리가 희지 아니해서 왜 백두산인지를 모르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신지의 예언에 후천개벽시 백두산의 검어진 머리가 다시 희어진다 했으니 기다려 볼 일이다. 환웅이 백두산에 도착해 찾아보니 과연 그 나무의 키가 백척이요 그 가지가 사방으로 백장이나 펄쳐져 그늘 아래 수백명이 앉을 만한 거대한 나무가 있었다. 신단수였다. 환웅이 우물을 파게 하니 땅이 갈라지면서 한 마리의 용이 나타나 황웅에게 절하고 하늘로 올라갔는데, 용이 나온 땅 속에는 옥같이 맑은 물이 가득 차 출렁거렸다. 이 우물을 용정이라 이름하여 용정 주위에 집을 짓고 도시를 건설하고 나라를 세웠다. 이 나라의 이름이 신시(神市)이다. 때가 지금으로부터 오천팔백구십사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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