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민족학

開 天 綠 (17)

검은바람현풍 2012. 3. 3. 08:54

♣ 開 天 綠 (17) ♣

 

 

 돌이켜보면 신고의 세월이었다. 얼마나 많은 산과 들과 강을 넘어왔던가? 천계를 떠날 때 장년의 모습이던 환웅은 어느덧 수염과 머리가 희어져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진인의 풍모를 보이고 있었고, 환웅과 함께 길을 열어온 영웅들은 어느덧 보이지 않고, 그 자리를 그들의 아들들이 메우고 있었다. 영산(靈山)을 눈에 보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도중에 눈을 감았다. 하늘백성들의 땅은 인간이 그 경계를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비단자락 같은 은빛 강물이 동서로 흘러 여기가 신의 땅임을 보여주었다. 인간이 땅에 그은 경계 중 천년을 가는 것이 없는 법이나 하늘이 정해준 백성의 땅은 그 누구도 경계를 지우니 못하니 백호의 숨결인 압록과 두만은 만년의 세월을 흐르고 있음이다.

 

성산(聖山)의 장엄한 모습을 눈앞에 보고 사람들은 말을 잊었으며 이윽고 서로 부등켜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두고 온 천계가 그리워 환인을 향해 엎드려 절하니 만리 서쪽의 고향은 아마득한 구름 저편의 꿈이었다. 구름은 흘러 동서 만리를 떠돌건만 사람은 백리를 경계로 삼고 살아가는 몸이니 사람들은 애써 고향을 잊고 새로운 땅에 삶의 터전을 일구었다.

 

백두산은 동해에 뛰어든 백호의 코끝에 해당하는 자리다. 거대한 신수가 숨을 쉴 때마다 대지의 기운이 뿜어져 하늘로 솟구쳤다. 부여잡은 앞발에 힘을 줄때마다 대륙은 흔들리고 하늘이 바뀌었다. 자고로 백호의 땅을 침범한 자들의 말로를 보라. 천리땅을 연결하는 운하를 만들었던 백만 대군의 수나라는 백호를 범하고 이대를 못 이었고, 당태종이 백호의 발톱 앞에서 화살 한대로 쓰러졌으니 정관의 치는 허망한 꿈이 되었다. 백호의 심장에 칼을 들이댄 당고조의 이후가 어떠하드냐, 천년제국 대당이 양귀비의 눈물 속에 사라졌다. 나니와의 영화가 아침이슬로 사라지니 이 땅을 침범한 히데요시의 외아들이 무너지는 오사까성에서 불타죽는 날까지 고작 30년이었음이다.

 

을사년에 이땅을 가졌을 때, 왜왕조의 앞날은 정해진 것이었다. 하늘의 진노는 섬나라의 하늘을 불로 덮었으며 마침내 우주원래의 화기(火氣)가 그 땅에 죽음의 재를 뿌렸다. 이 땅에 발을 들여놓고 무사했던 것은 오로지 같은 밝닥족의 자손들 뿐이었다. 징키츠칸의 아들들이나 누르하치의 자손들이 그들이다. 그들 역시 환인과 환웅의 후손들이었으므로 백호의 땅을 괴롭히고도 수백년의 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

 

몽고의 말발굽이 지나간 자리에 살아남은 왕조가 어디 있었던가? 오직 이땅에만 그들이 공주를 보내었다. 주원장의 대명(大明)은 흔적없이 사라지고, 중화(中華) 만리가 애신각라(愛薪覺羅)의 노예로 전락하여도 백호의 나라는 없애지 못하였다. <구름 주:만주족(여진족)을 이끌고 후금(後金)을 세운 여진족의 수장 누르하치는 그 성(姓)이 "애신각라(愛薪覺羅)"이다. 누르하치가 자신의 본래 성을 버리고,애신각라를 새로운 성으로 삼으면서 모든 여진족에게 공표하기를, 우리는 신라의 아들들이니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생각하여 우리 뿌리를 잊지 않아야 하니 성을 애신각라로 하노라 하였다.>

 

누르하치는 임진왜란 당시 자신들의 뿌리요 어버이의 나라인 조선이 왜의 침략을 받음을 보고 군대를 보내어 돕겠다고 자청해 왔으나 명의 눈치를 본 조정이 이를 거절했고, 누르하치가 자기들을 한 핏줄의 형제로 여겨줄 것을 여러번 간청했는데도 이를 뿌리치는 우를 범하였다. 그나마 광해군 때는 명과 후금과의 사이를 잘 조정하여 현명하게 대처했으나, 인조반정 이후에 친명배금으로 외교정책을 바꾸고 명의 장수 모문룡이 평북 앞바다의 작은 섬에 주둔하는 것을 용인하면서 마침내 누르하치가 군대를 보내게 되어 정유호란이 일어났다.

 

전쟁은 "형제의 맹"을 가지므로서 끝났다. 그러나 후금이 명과 전쟁을 하는 동안,이 형제지맹을 지키지 않고 일방적으로 명의 편을 들므로 훗날 병자호란을 불러오고 형제가 아닌 군신지례를 지키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 왕과 전 조정 대신을 남한산성에서 포위하고 명목뿐인 군신관계가 아니라 청의 영토로 아예 복속시킬 수도 있는 상황에서 강화를 맺고 청군이 즉각 돌아간 것은 이 땅을 정복대상으로 생각지 않은 누르하찌의 모국애(母國愛) 때문이었다.

 

몇년전에 상영되었던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부의가 모택동시절 재판받는 광경이 나오는데, 판사가 피고인 부의의 성을 묻자 "애신각라"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있다. 그러자 판사가 "거참 별 희한한 성도 다 있군' 하고 중얼거린다. 우리민족이 대대로 중국의 지배를 받는 것 같았으나, 그것은 명목상의 지배였을 뿐이지만, 밝달족에 의한 중국의 지배는 확실한 정복의 형태였다. 원조와 청조가 그랬다. 우리민족이 변방의 약소국이 되어 이웃 강대국들에게 이리저리 시달리기만 하면서 살아온 것으로 보이나,그 실은 반대로 백호의 땅을 침범한 쪽이 언제나 먼저 멸망해 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예정된 하늘의 뜻이고,역사의 힘이다. 이 하늘의 뜻을 아는이 오늘에 몇이나 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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