丹 经
옥추보경 (玉樞寶經) 번역문 3
브로그 대안에서
천존께서 설(設)하신 선악(善惡)의 인연(因緣)됨을 듣고 뇌사호옹(雷師晧翁)과 모든 천신(天神)과 선군(仙君)들이 귀를 열고 송구(悚懼)스럽게 듣고 있었다.
천존께서 앉아 계실 때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바람이 아름답게 불어옴이 맑고 시원하고 화려하며 고요한 가운데에 잠시 계시다가 뭇 군선(君仙)들을 대하여 다시 현문(玄文)을 연설(演說)하셨다.
뜻에 말씀하시기를
선근(善根)은 마땅히 심고 악업(惡業)은 만들지 말라. 천진(天眞)이 좋아하여 오래도록 공(功)을 쌓아 행(行)하심인데 어찌 하물며 후학(後學)의 군자(君子)는 마음을 다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해석하여 말씀하시기를
뇌사호옹(雷師晧翁)은 천지(天地)와 더불어 동체(同體)이시며, 해와 달이 깨끗하여 밝음은 이렇기 때문이다. 천존께서 말씀하시되 뇌사(雷師)가 숙세(夙世)에 공(功)을 쌓았다함은 대공(大功)을 초시(初始)에 먼저 있었다는 말이며, 행이 이미 누세(累世)에 나타난 정기(精氣)를 얻어서 화(化)함을 이루어 형상(形像)을 이루었나니, 이러한 고로 옥부(玉府)를 얻어 나아가 사용(事用)하니 경궁(瓊宮)에 이름이 있도다.
이제 또한 선(善)을 장악(掌握)하고 악(惡)을 다스림에 구별하여 사람을 제도(濟度)하니 그 공(功)이 적지 않으며 마음을 맡은 직책(職責)에 다하니 이는 뇌사호옹(雷師晧翁)의 근본(根本) 정기(精氣)이다. 날이 갈수록 그 공(功)이 쌓아지고 달이 갈수록 더해지며 이름은 높아지고 행(行)함이 깊어지니 원기(元氣)를 온전히 하고 성품을 깨끗이 하며 정신(精神) 신소지기(神 之氣)를 융화(融化)함이 헛되지 않음을 말씀한 것이다. 그러므로 능히 고상진왕(高上眞王)과 더불어 명증(明證)의 신(臣)이 되었나니 드디어 대도(大道)의 품계(品階)에 반열(班列)하셨다.
천존께서 선(善)과 악(惡)의 두 길로 모든 천진(天眞)께 비유하시고 다시 뇌부(雷部)의 귀신(鬼神)들에게 책임을 맡게 하니, 낮에나 밤이나 힘을 다함이 두루 쉴 사이가 없이 맡은 바 직책을 다한 것을 말함이다. 설운(屑雲)은 분주(奔走)함이 사방(四方)으로 구름을 가지고 진(陣)을 만드는 수고로움이며 주설(주雪)은 소나기를 몰아 바람을 타고 비를 모아 꽃을 만들어주는 간절함을 말한 것이며, 바다에 들어감에 이르러서는 용(龍)을 부리고 수풀(林野)에 달림에 있어서는 까마귀, 까치에게 명령하시니 동(東)을 지으면 서(西)에 그치고 동(東)을 살피면 서(西)에 일어나나니 이렇게 잠깐이라도 쉴 사이가 없음은 모두 선(善)과 악(惡)의 인연(因緣)의 까닭을 밝힌 것이다.
천존(天尊)께서 이때에 뇌사(雷師)에게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큰 권리를 얻어 교화(敎化)하여 상진(上眞)에 자리함은 대게 마음을 먼저 도(道)에 꿰어 매었으므로 이와 같이 자리를 얻었나니. 이와 같이 선계(仙界)에 오르고자 하거든 복을 기르고 현문(玄文)으로 교화(敎化)함을 도와 나의 공(功)으로 공(功)을 삼으면 도(道)는 스스로 이루어지느니라. 이금청언(爾今聽言)은 모든 하늘의 제군(帝君)들이 이와 같이 설함을 듣는 것이 모두 귀를 기울여 공경하여 듣는 뜻이다. 천존의 위의(威儀)는 가히 말로서 할 수 없으니 신비스러운 바람과 비단구름이 맑고 명랑하며 더욱 빛나신다.
천존께서는 구기(九氣)와 더불어 다시 합하여 하나가 되니 고요하여 움직임이 없으시다.
찬에 말씀하시기를
선(善)과 악(惡)의 두 길은 신(神)의 그림자와 메아리와 같고, 선(善)은 천진(天眞)이 되고 악(惡)은 도깨비(허개비)가 되도다.
천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천오백겁 옛적에 먼저 마음으로 이도를 꿰어서 드디어 천진(天眞)에 자리하여 뜻을 빚은 이 공(功)으로 큰 덕화(德化)의 권병(權柄)을 이루었나니. 일찍이 대라원시천존(大羅元始天尊)의 앞에서 청정(淸淨)한 마음으로 넓고 큰 원(願)을 내었으니 미래세(未來世)에 일체(一切) 중생과 천룡(天龍)과 귀신(鬼神)들이 원(願)을 세워 한가지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모두 다 빠르고 바르게 바라는 바와 같이 하며 아니면 내가 마땅히 몸으로서 보여주고 들려주리니 너희들은 마음을 깨끗이 하라. 너희들을 위하여 설하리라.
주에 말씀하시기를
심봉차도자(心縫此道者)라 함은 포백(布帛)을 재단하여 필요하게 쓰는 것과 같음이요, 만약 모든 천을 재봉하지 않으면 어찌 능히 옷을 만들 수 있으리오. 또한 천지(天地)의 일점원기(一點元氣)가 태허(太虛)에 두루 흩어져 육합(六合)을 이루었고 사람은 부모의 일점원기(一點元氣)를 품수(稟受)하여 몸이 있게 되었으니 곧 이것이 조상이 남겨 준 몸이다.
만약 갈고 닦은 지혜로 청정(淸淨)한 마음을 정(定)하여 관(觀)하면 일곱가지의 보배를 취(聚)하여 걷으며 취(聚)한 보배를 단전(丹田)에 환원(還元)시키면 이를 일러 심봉(心縫)이라고 한다.
그러면 대도(大道)를 합해 이루어져 지위(地位)가 상진(上眞)이 되고 또한 천지(天地)에 변화(變化)하여 순수하게된 기(氣)와 천도(天道)에 혼합(混合)한 충화(沖和)의 묘(妙)가 빚어져 큰 공을 이루니 끝내는 권(權)을 잡아 크게 교화(敎化)함이 천지(天地)를 끌어잡을 수 있고, 숨고 나타나는 신통(神通)은 측량(測量)할 수가 없다.
천존께서 대라원시천존(大羅元始天尊) 앞에서 넓고 큰 원(願)을 발(發)하였으니, 일체중생(一切衆生)과 천룡(天龍)과 귀신(鬼神)들이 한번이라도 명호(名號)를 원(願)을 세워 부른다면 모두 다 빠르고 바르게 바라는 바와 같이 하게 하며 아니면 천존께서 응신(應身)으로 몸을 낮추심이니 이를 보면, 천존께서 널리 인천(人天)을 보호(保護)하고자 크나큰 서원(誓願)을 발(發)하셨느니라.
뜻에 말씀하시기를
다행히 사람 몸을 받아 꺾이거나 실수를 않고 이 도(道)를 지켜서 이 경(經)을 독송(讀誦)하니 일취월장(日就月將)으로 도(道)와 함께 몸을 합하니 적은 일이 아니다.
해석하여 말씀하시기를
도(道)를 얻기도 어렵지만 도(道)에 합(合)하기도 쉽지 않다. 우리의 천존께서 천오백겁(千五百劫) 옛적에 처음 마음을 먼저 이 도(道)에 합(合)하니 곧 구기(九氣)의 형상(形像)이 생겨났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진왕(眞王)께서 드디어 대화(大化)를 장악(掌握)하셨다고 하셨다.
우리 천존께서 일찍이 대라원시천존(大羅元始天尊) 앞을 향(向)하여 구천(九天)의 섞임이 없는 진(眞)으로 삼승(三乘)의 가없는 원(願)을 발(發)하시되 미래(未來)의 세상(世上)에 계시면서 원기의 물(物)을 받아 능히 내가 교화함으로 돌리리니, 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모두 다 능히 죽음에서도 살리리라. 혹시 이를 믿지 않는 자는 내 마땅히 원시(元始)의 일기(一氣)로 화(化)하여 구기(九氣)를 이루어 처음과 같이 되돌아가게 하셨노라 하셨다.
천존은 모든 하늘의 임금이시니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마땅히 맑게 하라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대도(大道)의 신비한 실마리를 열겠노라.
찬에 말씀하시기를
도(道)는 이에 천지(天地)의 마음이니 우치(愚癡-어리석고 어질지 못함)한 자는 깊은 진리(眞理)를 찾아내지 못하나니. 찢어진 옷을 깁고 꿰매고자 하면 모름지기 바늘을 다듬어 사용하여야 한다.
천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 모든 하늘과 사람들이 지극한 도(道)를 듣고자 하나 지극한 도는 깊고 절묘하다. 도(道)는 먼 곳에 있지 않나니 네가 듣고자 하나, 들을 수 없는 것이 이것이니, 들을 수 없으나 볼 수 있는 것, 이것이 참다운 도(道)니라.
듣고 보아도 또한 어리석어 잘 듣고 보지 못하나니, 오직 너에게(있을)뿐이다. 너도 또한 있지 아니한데 어찌 하물며 도(道)가 있으랴. 들려 주어도 듣지 못하는데 어찌 도(道)를 가히 말하겠는가.
주에 말씀하시기를
지극한 도(道)는 다른 곳에 있지 않고 자기(自己)에게 있나니 네가 이미 듣고자함은 자기(自己)의 도(道)를 밝히려고 함과 같나니. 곧 이는 들을 필요가 없느니라.
이에 말씀하시되 들을 수 없다함은 이를 들을 수는 없으나 볼 수는 있나니 이것이 참다운 도(道)니라. 만일 다른 사람에게 말을 들어 자기를 볼 수 있으면 이것이 참다운 도(道)이니라.
보고 듣고 또한 어리석어 잘 보지 못하면 모두 다 보고들을 필요가 없나니. 사람이 만일 그릇되어 있다고 말한다면 이미 도(道)를 듣지 못한 것이니 듣고자 하여도 가히 더불어 도(道)를 말할 수가 없느니라.
뜻에 말씀하시기를
크나큰 도(道)는 모습이 없고 나라고 함도 없으며, 상대도 없고, 없는 것도 있고, 있음도 없나니 곧 이것이 참다운 도(道)니라.
행함이 있고 모습이 있다하면 도(道)는 어느 곳에 있는가. 도(道)에 들고자 하는 선비는 마땅히 처소(處所)가 없는 곳에서 지음과 밟을 곳도 없어야 한다.
찬에 말씀하시기를
도(道)...... 말하면 웃음뿐...... 하늘과 땅 나와 모든 사람들이 한 집 식구이며 한 구멍으로 통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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