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민족학

開 天 綠 (11)

검은바람현풍 2012. 3. 3. 08:46

♣ 開 天 綠 (11) ♣

 

 

구을리 환인의 대에 천하 환국의 모든 선인들께서 한자리에 모여 하늘에 제를 올리고 이것을 "소도제천"이라 했는데, 천하 지상의 선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단을 쌓고 축원을 하며 소도의 한가운데에 십팔층의 나무단을 쌓고 불을 붙여 그 기운으로 하늘과 땅을 이었다. 그리고 문자가 발달하여 옛 환인의 가르침과 삼신의 교를 가르치고 배우며 이를 남겨줄 수 있게 되었을 때 삼묘산 아래에 "서자부(庶子部)"를 세웠 다. 삼신의 교를 가르치는 세계 최초의 종단이 설립되었던 것이다. 인도에 가람이 서기 2천년 전의 일이었다.

 

환인과 삼신의 도를 배우는 사람들을 서자(庶子)라 했는데 지위리 환인대에는 이 서자의 수가 삼백명이 넘었다고 전한다. 훗날 불교에서 말하는 "출가자(出家者)"의 뜻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이 서자였다.

♣ 지금은 이 서자란 단어를 정실부인이 아닌 측실에게서 얻은 아들의 뜻으로 변해져 쓰이지만 당시의 서자는 우두머리가 될 삼의 뜻이었고 "서"는 머리를 의미하는 "수"의 발음이었다.(수머리-->우두머리) 한자 "서"의 뜻은 빛과 같은 의미도 있었다. 훗날 이 "서"자의 풀이가 변해버리면서 서자의 뜻도 다른 것이 되었다. ♣

 

구을리 환인 때에 사람은 더욱 많아지고 천계 주위의 환경도 갈수록 한냉한 것으로 바뀌어 사람들이 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져가자 마침내 사람들은 아득한 옛날 백호가 해돋는 곳으로 가 준비해둔 그 땅에 대한 전설을 말하기 시작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가족들을 이끌고 동쪽으로 떠나기도 했다. 정든 땅 천계를 떠나면서 사람들은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아루라 아루라(기억해 줘 생각할 거야)" 소리치며 고개를 넘어갔다.

 

당시에 "안다"는 말은 "기억한다"는 말과 "생각한다는" 말과 분리되어 쓰이지를 않았다. 즉 안다는 것과 기억한다는 것은 그 뜻이 혼재되어 쓰였던 것이다. 천계에서 천해의 남쪽을 돌아 동방으로 가는 길목에는 까마득히 삼청궁이 보이는 고개마루가 있었고, 그 고개를 넘으면 환인 계신 삼청궁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넘어가면서 마지막 돌아보며 "아루라!"하고 외치던 그 고개를 사람들은 "아루리(기억하리)고개" 또는 "아르이고개, 아랑고개"로 불렀다고 한다. "아랑 아랑 아르리 아르이고개" 마침내 안파견께서 천계에 처음으로 하늘백성의 나라를 여신 후 하늘의 일주기인 3000년이 차매 천계의 지덕이 쇠하고 천하의 기운이 동쪽으로 옮겨가므로 드디어 천신역사의 마무리를 할 때가 오게 되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번성하고 생육하여 지상의 주인으로서 부동의 위치를 가지게 되고 인류에 더 이상 위협이 될만한 아무 것도 없음을 확인한 천제께서는 하늘이 인신을 빌어 인간을 교화하고 보호해 줄 시기가 지났음을 아시고 이제 인간이 스스로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천계를 봉할 것을 명했다. 마지막 환인이 되시는 지위리께서 그 대업을 위하여 천계로 가시게 되었 다. 때에, 천계의 주위에는 사방 이백리에 마을들이 있었고 큰 부락에는 삼백호가 넘는 집들이 모여 있었는데 어느덧 혈거생활의 티를 벗고 비록 흙벽돌을 쌓고 짚으로 이은 지붕이라 해도 정지와 방들이 나누어진 가옥들을 짓고 살 무렵이었다. 집집마다 아녀자들이 말린 삼줄기에서 실을 뽑아내고 그것으로 베를 엮었으며 부족장이나 그 가족들은 신발을 신고 다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맨발이었고 신을 신는다는 것을 생각도 못해보고 있었다) 대대로 토숙의 후손들이 쇠를 다루는 비법을 전수받아 구리나 청동으로 갖가지 물건들을 만들었는데, 그 공방은 비밀로 되어 있어 보통사람들이 그 안을 볼수가 없었다.

 

거울과 칼, 각종 장신구나 장식물들을 금,은,청동을 사용해 만들었는데 이러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모든 물건은 신분을 나타내는 귀중한 신표로 쓰였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길들여진 말을 가지고 있어 타고 다녔는데 안장이나 마구같은 것이 없이 말의 맨등에 그냥 타고 다녔으며 삼사와 오가를 비롯한 지배계층의 사람들이라야 호피나 녹피를 말등에 얹고 타고 다닐 수 있었다. 수레는 선대 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나 바퀴와 축의 제작은 당시의 기술로서는 지난한 것이어서 극히 만들기가 어려웠다. 오늘날 인공위성을 제작하는 것과 당시의 사람들이 바퀴를 만들고 그것이 잘 구를수 있도록 축을 만들어 끼우는 작업은 그 기술적 난이도에서 비슷한 것이었다. 커다란 돌을 돌로 때려 둥근 바퀴로 만드는데 일년이 넘는 시간과 작업이 소요됐고 바퀴 한가운데를 둥글게 뚫어 꼭 맞는 나무를 끼워 축을 만드는 것은 대부분의 연장이 돌이었던 당시에는 엄청난 숙련을 요하는 첨단기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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