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開 天 綠 (8) ♣
고시리 천제의 대에 씨족단위의 부락을 이루어 공동사회를 구축하는데 성공한 인류는 그 이전의 원시공동사회에서는 있지 않았던 재산의 사유가 생겨났고 비로소 내것과 네것의 구별이 생겼다. 나와 남을 구별하고 내것과 네것을 가르게 된 다음부터 내것을 늘리기 위한 욕심이 생겼고, 그 욕심은 내것을 위해 남의 것을 바라는 흑심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한 욕망의 시발은 식량과 재산과 같은 경제적인 필요품이 아니라 바로 이성에 대한 권리의 주장에서부터 먼저 나타났다.
이전의 공동사회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의식이 희박했으므로 자연히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기를 길러준 어머니만을 기억하게 되었고, 아버지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점차로 사람의 수가 늘어나고 서로의 경계가 좁아지면서부터 생활에 필요한 식량과 사냥터를 확보해야 할 필요가 생겼고 인간은 비로소 자기의 생존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은 바로 자신과 같은 다른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점차로 자기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동료로 삼아 그들 상호간의 믿음과 협조를 통해 생존을 확보해나가게 되었다. 그러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바로 혈연적인 관계에 의한 친족들일 수 밖에 없었으므로 자신의 보호세력을 필요로하면서 비로소 남자들은 여자를 통해서 아이들과의 유대를 주장하여 자신의 세력을 만들게 되었다. 즉 너는 내 아들이므로 내가 적과 싸울 때 나를 도와야 한다는 의무를 부여하게 된 것이고,그때부터는 아버지가 누구이냐가 중요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또한 남자는 자신의 세력으로써 가족의 수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그때부터 남자들은 여자들에게서 자신의 세력(즉 생존능력)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었다. 점차로 여자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남자들 간에 벌어졌고 이것은 때때로 씨족과 씨족간의 대규모 다툼의 성격으로 발전했다. 자신들의 숫자를 늘리는데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여자를 통한 생산과 다른사람들을 강제로 자신의 세력속에 편입시키는 두가지 뿐이었다. 따라서 이웃 씨족을 힘으로 굴복시켜서 그 구성원들을 데려오면 자연적인 방법에 의한 것보다 훨씬 빠르고 용이하게 그 세력(사람의 수)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럴수록 더욱 생존에 유리하게 됨을 알게 되면서 인간들은 서로간에 정복을 위한 투쟁을 하게 되었고, 그 투쟁의 제일의적인 목적은 여자의 획득이 되었다.
이러한 인간의 집단끼리의 투쟁은 고시리천제 시대에 와서 일상적인 것으로 자리를 잡아갔고 동시에 인류의 급격한 증가를 가져왔다. 즉 인류라는 종의 폭발적인 확대재생산에 그 불이 당겨졌고 그 이후로 이 종의 증가를 막아낼 수 있는 힘은 자연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혁서천제의 시대에 지구의 환경적인 변혁이 이루어졌다면 고시리 천제의 대에 와서 비로소 인간사회의 대변혁이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엄청난 에너지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혁서제 시대의 무위(無僞)로서의 다스림이 더 이상 곤란해졌으므로 고시리천제의 대에 처음으로 규범이란 것을 정하여 이 영물들의 행동을 타율로 규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거대한 생명계의 진화와 그 결실로의 전진을 천제께서 막으실 생각은 없었지만 최소한 이 인간들이 보다 더 원숙하게 그 길을 가기를 원하셨으므로 환국오법(桓國五法)을 제정하여 환국의 각 부족을 다스리는 여덟형제를 통하여 경계내의 모든 부족들에게 전하였다. 그러나 때에 땅은 넓고 교통은 불편하였으며 곳곳에 흩어진 모든 사람들을 천제의 령으로 다스리기는 이미 어려워져가고 있었다.
천제께서는 개벽 이후에 청령하고 순수했던 인간의 심성이 점차 사악해지고 그 생활에 악업을 쌓는 것을 한탄하시었지만 어찌하리오, 이미 세상에 태어난 인간들은 하늘의 정기와 신의 지혜를 받은 존재인 것을.. 스스로 나아가는 인간들의 그 발길을 누가 막을 수 있었으랴.
고시리 한인께서 환국의 제방(諸邦)에 내리신 환국오법(환국오훈)은... 믿음을 지극히 여겨 거짓이 없을 것. 성신불위(成信不僞), 부지런함을 받들어 게으르지 않을 것. 경근불태(敬勤不怠), 순함으로 효를 다하여 거역하지 말것. 효순불위(孝純不威), 염치를 알고 의를 행하여 음행을 삼갈 것. 염의불음(廉義不淫), 양보함으로써 화목하여 서로 다투지 말것. 겸화불투(兼和不鬪), 이 다섯가지 계율이었다.
훗날 불가의 팔정도나 유가의 삼강오륜, 화랑의 세속오계 등이 이 오훈의 범주를 넘지 않는 것인데, 오히려 후대의 계훈들은 군(君)에 대한 충과 남자에 대한 여자의 복종이 추가되면서 환국 시대의 저 순후했던 가르침에서 퇴보했을지언정 한발짝도 나아가질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