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단학

봉우수단기 4. 원상혹문장 (原象或問章) (2)

검은바람현풍 2012. 1. 20. 19:59

 

하루는 물물자가 정사에 홀로 앉아 문을 닫고 정양하고 있는데 혹인이 기쁜 빛을 얼굴 가득히 하고 곧장 물물자의 집에 들어와서 몸을 던져 절을 하고 말했다.

“선생님의 가르치심이 참으로 지극하고 빠짐이 없었습니다.

제자로 하여금 무난히 12절을 관통하여 삼생을 환히 깨닫도록 해 주셨으니 이 길을 얻어야 이 문을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

물물자가 웃으며 대답하였다.

“헤어진 후 별 탈은 없었는가? 지난 일을 자세히 말하여 뒤따라오는 초심자들로 하여금 그릇되는 일이 없도록 해 준다면 이는 그대의 공이 아니겠는가? ”

혹인이 천천히 답하였다.

“먼저 번 선생님의 가르치심을 받고 다시 행장을 정리하고 길을 재촉하여 나아가기 몇 달 만에 겨우 앞일을 아는 경지에 이르렀고 다시 1개월에 전지前知가 점점 단순해져서 유의만 하면 반드시 나타나는 고로 반생 동안의 과거를 회광반조 해 본 즉 혹은 나타나기도 하고 나타나지 않기도 하기를 1개월이 되었는데 정신이 현로 玄路(정신계로 통하는 길)를 출입하면서부터는 현상되는 것들이 점점 변하여 밝고 뚜렷해졌습니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삼생을 환히 깨닫고 나니 비로소 12관절을 관통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과 죽고 사는 일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물물자는 한참동안 생각하고 나서 대답하였다.

“이상의 12관절의 관통은 문에 들어가는 길을 찾는 첫 단계에 불과하다. 그대는 모름지기 눈 먼 거북이가 나무조각에 매달리듯 죽어도 놓치지 않는다면(맹구집목 盲龜執木;올은 길에 들어선 것이니 절대로 이 길을 버리지 말고 전진하라는 의미) 삼화 三火(도가 계제에 오르면 니환궁에서 훤하게 광채가 나오는 것인데 이 광채가 세가닥으로 나온다 하여 삼화라 함)가 점차 원만해 지고 마침내 그 빛이 북극에 닿을 날을 가히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인이 홀연히 머리를 숙여 절을 하고 물물자의 집을 물러갔다.

 

수개월 후에 혹인이 다시 물물자의 집에 찾아와서 그동안의 지난 내력을 빠짐없이 말하였다.

“재차 정사를 찾아가서 부채와 화로를 멀리하고 자고 먹는 것도 모두 잊은 채 과거, 현재, 미래의 망상을 떨쳐버리고 단숨에 1개월간을 공부해가니 저쪽 경계 중에서 황색, 백색, 청색, 자색의 5, 6척 길이 되는 수건을 머리에 동인 사람들이 와서는 저를 앞뒤로 인도하는데 한없이 많은 기이한 현상들이 나타나니 학인으로 하여금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게 하였고 온갖 괴로움과 여러 가지 형상의 시험을 당하였습니다.

또한 선경으로 끌려들어 가서는 봄 밤의 잠간 동안에 천금도 아깝지 않을 정도의 즐거움에 취하여 돌아올 줄 모르게 하는 경계가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이곳에서 학인은 여러 가지 고통을 견디기 더욱 어려웠습니다.

이와 같이 고통스럽고 즐거운 가운데를 왕래하면서 끝없는 여러 경계의 시험을 받고 있을 때 홀연히 광명한 천지에 한 명산이 나타나고 그 산 위에 무수한 도인이 나타나고 그 산 위에 무수한 도인이 나타나서 한 폭의 방목을 걸어놓으므로 자세히 훑어보니 옛부터의 유명무명의 무수한 명인 달사들의 명자가 적혀있고 그 중 제일 밑에 제 이름도 적혀 있었습니다.

도인 한 분이 저를 별실로 인도해 들어가서 방목을 다시 펼쳐 보일 때 철패에 양각 된 저의 이름을 보았으며 또 저에게 부채 하나를 주기에 부쳐보았더니 몸이 비행하는 것 같고 더디지도 빠르지도 않으면서 천리나 만리를 순식간에 갈 수 있으며 타인의 밀실에 들어가서 비장한 책들을 열람하면 한눈에 환하게 알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명산대천을 왕래할 수 있었는데 전 세계 어느 곳인들 거칠 것이 없었으므로 스스로 생각에 이것이 고인의 활연관통한 곳이라 생각 했습니다.

고로 다시 수개월을 지내보았으나 더 이상 별다른 경계가 나타나지 않아 선생님께 묻사오니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물물자가 웃으면서 말하였다.

“ ‘도道의 높이가 한치 쯤 자라면 마魔의 높이는 한자쯤 자란다’는 고인의 말씀이 근거 없는 말씀이 아니니라. 그대가 자나온 경계는 2계요 패를 받을 때의 현상은 활연관통처가 아니다. 그대는 이 근처에서 옆길로 빠져 헛되이 시일만 보내지 말고 다시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면 점점 아름다운 경지에 들어갈 것이다. ”

이에 혹인은 황홀한 듯 무엇인가 깨달음이 있는 것 같았다.

혹인이 물물자의 집을 물러나와 수개월간 면벽을 하고 정사에서 내려오지 않는 중이므로 물물자는 그 경로를 기록하여 후일의 동고자同苦者를 기다려 암실의 등을 삼기로 하였다.

 

물물자가 명산대천과 성안의 저자 사이를 유람할 제, 아침에는 동쪽, 저녁에는 서쪽, 봄에는 북쪽, 가을에는 남쪽으로 발길을 옮기면서 고해苦海의 진미를 맛보다가 재차 산문에 들어와 고요함을 지켜 스스로 희열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는데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문전이 쓸쓸하였으나 물물자는 이런 시골구석에 살면서도 그 즐거움을 고치려 하지 않았다.

마침 뜰 앞에 오래된 배나무가 한그루 있었는데 만발한 꽃이 떨어져 뜰에 있으나 동자는 게을러 쓸지 않고 주인도 또한 실증이 나서 졸음을 즐기면서 세월이 가는 것을 잊고 괴안국槐安國(당나라 때 순우분이란 사람이 느티나무의 남쪽 가지 밑에서 잠이 들었다가 꿈속에서 괴안국에 이르러 그 나라 임금의 딸을 맞아 아내로 삼고 남가군의 태수가 되어 수십년간 영화를 누렸다는 고사에 나오는 나라 - 남가일몽)의 꿈을 꾸고 있었는데 문밖의 삽살개가 짖어대며 손님이 찾아온 것을 알려주기에 물물자가 천천히 일어나 창문을 열어보니 찾아온 손님은 다름이 아니고 수년전까지 물물자의 집을 왕래하다가 면벽하고 내려오지 않던 혹인이다.

매우 기뻐서 반갑게 맞이하고 보니 신색이 훤하니 몸은 살찌고 미목이 청수하여 그간의 소식은 묻지 않아도 알 만 하였다.

혹인이 머리 숙여 절을 하고 묵묵히 어리석은 사람처럼 앉아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어 말하였다.

“비로소 몇 길의 담장 높이도 손쉽게 넘어들어 갈 수 없다는 것도 알았으며 가면 갈수록 길이 멀어지는 것 같아서 발걸음이 수년 동안 머뭇거리고 있었던 것도 차츰 알게 되었습니다. 원중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겨우 문에 들어가는 길을 찾았으나 역시 바른 것과 삿된 것을 분간할 수가 없어서 다시 선생님의 문하를 찾아 왔습니다.”

물물자가 미소하며 말하였다.

“이 경계에서 들려줄 만한 소식은 ‘다만 가고 가고 가는 가운데 알게 되고 행하고 행하고 행하는 속에서 깨닫는다(去去去中知 行行行裡覺).’는 것 뿐, 그 밖에 별다른 소식은 없느니라.”

혹인이 말하였다.

“지난 내력을 선생님께 자세히 보고하겠습니다.

눈을 감고 묵묵히 앉아서 무념무상하게 된즉 미미하게 되는 호흡이 면면히 끊이지 않고 숨이 있는 듯 없는 듯 하더니 부지중에 하단전에 폐기가 되고 하단전은 부지중에 팽창되어 점점 참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 홀연히 한 길이 좌복左腹으로 통하면서 하단전은 시원해 졌습니다.

이와 같이 오래 계속한 즉 좌복이 팽창하여 참기 어려워지더니 홀연히 또 명문命門 근처로 통하였습니다.

또 먼저 번과 같이 천천히 기氣를 밀었더니 기는 밀려 우복右腹으로 내려가고 또 천천히 기를 끌어다가 밀었더니 하단전에 가서 뭉쳤습니다.

오래도록 숨을 삼키고 토하기를 되풀이하며 묵묵히 앉아 회광반조 해 보니 기가 콧구멍으로 들어가 돌아 나오고 다시 되풀이되는 경로가 눈으로 분명하게 보이며 몸 속 장부의 동정과 바른 것과 치우친 것도 환히 보이더니 알지 못하는 사이에 과거 삼생을 흔적도 없이 왕래하고 타인의 삼생까지도 능히 볼 수 있었습니다.

오고가는 현로玄路에서 여러 진인眞人(도의 계제가 매우 높은 사람)들이 기쁘게 맞아주었고 마귀들은 굴복하였으며 산에 들어가면 호랑이와 표범이 감히 접근하지 못하고 처음으로 낯선 땅에 가면 지신地神이 먼저 와서 고하니 스스로 도통이라 생각했습니다.

하루아침에 현문玄門에 들어가 스승을 뵙고 여러 도우들과 실력을 겨루는 시합을 하는데 저쪽의 변변치 않은 재주가 나의 가장 능한 재주와 같아서 여러 번의 비교시합에서 한번도 이겨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현문의 여러 장로들로부터 지도를 받게 되었는데 알지 못하는 사이에 봄비에 새싹이 자라듯 자라는 줄 모르게 점점 성장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오랫동안 실력을 연마하고 재차 금비金秘(선계의 극히 비밀스러운 곳)에 들어가니 제 이름이 방목의 끝에 적혀서 높이 걸려 있기에 자세히 보니 예부터의 유명 무명의 현인과 철인들의 이름을 환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는 만물의 생양수장生養收藏과 춘하추동이 중단 없이 순환하는 현상을 볼 수 있었고 끊임없이 호흡으로 기를 제어하면 기가 뜻하는 대로 가게 되어 가히 타인의 마음이나 새나 짐승의 마음도 볼 수 있었는데 때때로 미혼진迷魂陣(무엇에 홀려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태)에 빠지면 빛이 없는 캄캄한 밤중 같았습니다.

오래오래 묵상하고 있으면 다시 회광반조 되었으므로 제자의 의혹이 너무 심해서 재차 선생님을 찾아와 지난일의 正邪를 묻습니다. ”

물물자가 웃으며 답하였다.

“이는 2계의 중간에서 2계의 말까지를 완수하고 다시 3계로 나아가 3계를 확충해가는 과정이며 아직 4계에는 미치지 못한 고로 이는 3계의 上이요 4계의 처음에 당하는 경계이다.

쉬지 않고 추진하면 문로를 확실하게 알 수 있고 승계升階와 승당升堂(수련진전에 따라 계제가 올라가는 것을 문을 통과하여 뜰 안에 들고, 집에 올라가며 다시 방안에 들어가서 자리에 않는 것에 비유하는데, 승당은 집에 오르는 것을 말함)도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계제에서 옛사람들은 천추에 이름을 남긴 사람이 적지 않으니 사회인이 되고 싶으면 좀더 나아가 맹렬히 수련하면 만족하게 쓸 수 있는 실력이 될 것이고 신선이 되고자 하면 다시 백척간두까지 나아가야 비로소 계방桂榜(과거에 급제한 자를 써 붙이는 방으로 여기서는 높은 계제에 오르는 것을 말함)에 이름이 오를 것이다.

현 세계에는 그대와 견줄 만 한 사람이 몇 사람에 불과하니 중도에서 길을 바꾸면 비록 쓰임새는 무궁하나 혹시 적수를 만나면 승부를 가릴 수가 없을 것이니 좀더 나아가 더욱 수련한다면 이는 그대의 복이 될 것이다.

 

 

물물자가 동고자를 위하여 지난일의 몇 조목을 대략 위에 적어 후일의 군자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