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원상혹문장 (原象或問章)
혹인이 물물자에게 물었다.
어느 사람이 이 주문을 전해주면서 “상재는 칠일, 중재는 2칠일, 하재는 3칠일 동안 낭송하여 생각을 모은 즉 통령通靈(정신이 신령과 서로 통함)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하니 참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 이다”라고 하기에 제가 비록 수년간 입에서 낭송을 끊은 적이 없거늘 조금도 신기가 발동하지 않으니 저의 성의가 부족해서 그런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이 주문이 참된 것이 아니어서 그런 것입니까? 의심이 풀리지 않으니 밝은 가르침을 바랍니다.
물물자가 웃으며 대답하였다.
그대는 맹인의 길안내를 듣고 그동안 방황하고 있었으니 또한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세간에는 이와 같은 맹인의 길안내가 많이 있는 것이다. 맹인아란 자신이 길을 찾을 때도 오로지 지팡이에 의지하는 것인데 사람들이 장난으로 이 지팡이를 끌어 동으로 끌면 동으로 끌려가고 서쪽으로 끌면 서쪽으로 끌려 동서남북 모두 자기의 뜻대로 가는 것이 아니면서 감히 남에게 노정을 가리켜 주고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맹인인줄도 모르고 큰 소리로 노정을 말하는 사람이 허다하게 있으니 이들은 실상 입으로만 수도하는 무리 들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풍신이 훌륭해 보이나 속을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없으면서 그럭저럭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니 어느 곳엔들 이런 사람이 없겠는가? 그대 또한 구두선(실제로 수련해서 얻은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듣고 본 것으로만 마치 자신이 다 깨우친 양 떠들어 대는 것)하는 사람의 말을 믿고 수년 동안 고행하였으니 또한 애석한 일이구나.
순임금은 대성이지만 요임금이 심법心法으로 전하셨고 우임금 역시 성인이지만 순임금이 심법으로 전하셨으니 이 같은 사실은 경전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성인과 성인이 서로 계승해 가는 데에도 심법이 있었는데 하물며 어리석은 범인에 있어서랴 !
그대는 이 주문을 전해준 사람이 심법으로 전해주었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 주문은 공부자의 역경易經 계사전 중에서 신기처神機處만을 가려 뽑아 만든 것이다.
역경의 심오한 도리가 온전히 이 주문에 있으니 그대는 마땅히 조용한 방에서 계사전을 숙독해보면 이 주문의 참과 거짓을 알 수 있을뿐더러 칠일, 이칠일, 삼칠일에 가히 통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혹인은 물물자의 말씀을 듣고서 유유히 물러났다.
반년 후에 혹인이 물물자의 집을 다시 찾아와 말했다.
“먼저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역경 계사전을 숙독하며 조용한 방에서 수양하기를 반년 동안에 조그만치 얻은 것은 있었으나 그래도 의심이 풀리지 않으니 선생님의 밝은 가르치심을 바랍니다.”
물물자는 옷깃을 여미고 똑바로 앉아 말했다.
“훌륭하도다 그대여! 배움에 실증을 내지 않음은 옛 성현의 큰 덕이라 하겠는데 그대는 이를 실천하였으니 참으로 훌륭하도다.
그대는 반년간의 내력을 자세히 진술하여 길을 잃고 헤매는 후세 사람들의 길을 비추어주는 것도 또한 가르침에 게으름 피지 않는 한 길이 아니겠는가?”
혹인이 수 시간 동안 바르게 앉아 호흡하면서 반년 간 지나온 일에 집념하여 회고한 후 입을 열어 말했다.
“먼저 선생님의 가르치심을 받고 고요한 방에 홀로 거처하며 계사전을 숙독사기를 한 달 만에 무심중에
‘역은 생각함도 없고 하는 것도 없이 고요히 움직이지 않다가 감동해서 드디어 천하의 연고를 다 알아 낸다. 易 無思耶 無爲耶 寂然不動 感以遂通 天下之故 ’라는 구절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불굴의 정신으로 힘써 다른 생각은 모두 없이하여 이 주문에만 마음을 기울이니 호흡이 있는 듯 없는 듯이 면면히 끊어지지 않고 되기를 거의 한 달 만에 심파가 점점 고르고 숨이 길어지더니 우연히 미미한 형광이 앞으로 이끌려 오는데 마치 어두운 세계의 한줄기 광선 같았습니다.
더욱 쉬지 않고 힘쓰니 이 빛이 점차 밝은 등과 같이 되어 멀리 어둠속을 비추는데, 비추는 것들이 혹 보고 알 만한 것도 있고 모르는 것도 있어 황홀한 나머지 헤아리기 어려웠습니다.
오래오래 쉬지 않고 정진하니 불빛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어두운 세계에 비추어지는 물건들은 온통 한데 뒤섞여 마치 야시장을 달리면서 구경하는 것처럼 다만 물건의 형체만 보이고 무슨 물건인지 확실하게 볼 수 없는 경지가 오래 계속되었습니다.
쉬지 않고 정양(정을 기름)한즉 불빛이 대낮같이 환해지면서 현상現象되는 것들이 백화점에 들어간 것처럼 물건 하나하나가 뚜렷하게 보이더니 잡다한 현상들이 점점 단순해졌습니다.
다시 이렇게 쉬지 않고 더욱 힘썼더니 현상되는 것은 전과 같았으나 의식적으로 보고자하면 혹은 나타나기도 하고 나타나지 않기도 하며 마음의 왕래도 더디기도 하고 빠르기도 하여 자유롭지를 못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상태가 오래 계속되더니 무심중에 천시天時와 인사人事가 가끔씩 미리 보이기에 이 경지에 이르러서는 침식을 잊고 고통을 참아가며 수행을 하니 미리 보이는 일 들이 꼭꼭 들어맞아서 앞일을 알려고 전념만 하면 모르는 일이 없게 되니 스스로 신통神通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하고 믿게 되었습니다.
다만 심신의 왕래가 혹은 생각하는 대로 되기도 하고 혹은 무심중에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상태로 거의 몇 달이 지나니 집념 해 보아도 어두운 세계에 한 물건도 비추어지는 것이 없어 답답한 심회를 펼 수 없는 경우가 종종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반복되다가 혹 현상이 비추기도 하고 비치지 않기도 하는데 처음 비칠 때와 같이 확실하지 않으니 자연 마음은 초조해지고 의지는 메말라서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어 이 경계가 참된 것인지 아닌지를 선생님께 질문 하오니 속 시원히 밝혀 제자의 의혹을 풀어주심이 어떻겠습니까?”
물물자가 단정히 앉아 미소하며 말했다.
“그대의 성력誠力은 출중하고나 !
반년간의 경로가 거의 보통사람의 수년간 공부한 경지에 이르렀으니 이와 같이 쉬지 않고 공부하면 백척간두에 이르러 다시 일보 전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제어하는 것은 마치 수레를 모는 것과 같아서 수레를 모는 법이 모름지기 앞서 간 수레의 수레자국을 따라가면 수레를 뒤엎는 후회는 절대 없을 것이다.
그대의 집념이 앞일을 미리 말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 꼭꼭 들어맞을 때는 고인의 수레자국을 따라 잘 몰아 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지에 이른 사람이 옛사람의 수레자국은 보지 않고 산수의 경치에 심취하여 이쪽저쪽 구경하다 보면 말은 말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가니 옛 수레자국은 이미 아득히 간 데 없고, 따라가던 길마저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대가 전지(前知;닥쳐올 일을 미리 알음)에 전념할 때 호흡과 직관을 병행하여 점점 전지가 가능하게 되었을 때 다만 전지에만 전념하고 또한 여러 가지 생각에 깊이 빠져들어 호흡은 고르지도 길지도 못하여 주문 생각은 도외시 한 까닭이니 이는 경치에 취하여 돌아가는 것을 잊은 것과 같다.
수련정진은 죽절竹節을 관통하는 것과 같아서 한마디를 통하면 경계가 있고 또한 한 공간이 나오고, 다시 한 마디를 통하면 경계와 또한 공간이 나오는 것이니 이와 같이 계속하면 이 마디가 저 마디를 통할 수 있게 하고 나아가서 12절을 활연히 관통할 수 있을 것이다. 중간의 낙공처落空處(대나무의 빈 통속)에 이르러 똑바로 직진하지 않고 만일 머뭇거리다가 옆으로 뚫고 나가면 죽절을 관통하는 것이 아니라 죽간竹幹(대나무 줄기)을 뚫게 되는 것이다.
대나무 밖으로 한번 낙공하면 다시는 전진할 가망이 없을 것이다.
이는 수레를 모는 사람이 옛사람의 수례자국을 밟지 않고 풍경을 구경하는 데 빠져서 가시밭으로 잘 못 들어가 진퇴의 길이 막힌 것과 같으니 마땅히 몇 걸음 뒤로 물러서서 자세히 옛사람의 수례자국을 살피고 다시 수례를 몰아 전진하면 그 대나무 12절을 무난히 관통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인이 물물자의 설명을 다 듣고 부끄러워하며 물러가 반년간이나 물물자의 집에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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