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종교

[스크랩] 도교의 여성적 구원관 (1)

검은바람현풍 2011. 9. 10. 18:16

도교의 여성적 구원관

 
- 손불이 원군 법어를 중심으로 -

 

이보람

 

 

서 론

 

  도교전통에서 여성성, 또는 여성적 원리를 매우 중요하게 여겨져왔다는 점은 여(女)仙, 혹은 女神의 모습 속에 반영되어 있다. 특히 이러한 여성신이 단지 초월적이며 상징적인 존재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이상적으로 살아 온 여성의 모습으로서, 그리고 도교적 세계관에서 여성 수련자의 모범이 될 만한 여성의 이상으로서 그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도교적 여성관은 다른 어떤 종교적 전통보다도 돋보인다. 이러한 전통은 후대 교단 도교의 신관과 교단체계에 영향을 미쳐 많은 여성신과 여성 도사를 배출하게끔 하였고, 여성을 위한 고유의 수련법을 개발하고 수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 나아가 여성으로 하여금 종교의 가장 핵심적인 영역까지 참여하도록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는 여성들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진리에 도달한 이상적 인물로 인정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도교적 여성관을 여실히 보여주는 존재는 전진도 7진 중의 하나인 손불이(1119-1182)이다.


  손불이는 전진교 칠진 중 유일한 女道士로서 같은 칠진 중 하나인 마단양의 아내였다. 법명은 不二이며 호는 淸淨散人이다. 산동 지방 명문 출신인 그녀는 박식하고 이치에 밝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大定 7년(1169)에 전진교의 개조인 왕중양을 만난 뒤 부부가 입도하고 서로 별거하며 수련하다가 후에 보다 정진을 하기 위해 출가하였다. 그녀는 출가 후 스승인  왕중양의 명령에 따라 걸식 행위를 하면서 수련을 하였고 수련 6년 만에 丹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도사들 가운데 가장 사랑받았던 존재 가운데 하나였고, 그녀의 이야기는 <<七眞傳>>이라는 대중 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명대의 대중소설이었던   <<七眞傳>>의 영역본 Seven Taoist Masters에 의하면 손불이는 칠진 중 가장 높은 득도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녀는 득도를 위해 아름다운 용모를 감추기 위해 뜨거운 기름을 부어 얼굴을 얽게 만든다. 그리고는 미친 여자 행세를 하면서 떠돌아 다녔다고 한다. 그녀는 원래 매우 지적인 여인이었는데, 그녀의 지성이 득도에 방해가 됨을 깨달은 후로는 모든 지식과 소위 인지적 활동을 그치고 오직 신비적인 수련에 몰입하였다. 그리하여 그녀는 마침내 높은 득도의 경지에 이르렀고 죽어서는 칠진 중 천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한다. <<칠진전>>이 비록 소설이기는 하지만, 이 안에는 깨달음을 얻었던 역사적 여성의 이상적인 모습과 아울러 그것에 대한 승인과 긍정적 시각이 투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말 논문에서는 손불이의 저작인 <<孫不二元君法語>> 가운데 <坤道功夫次第十四首>와 <丹道秘書三卷>을 연구하면서 여성에게도 평등하게 개방되어 있었던 도교적 구원관의 특성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손불이 산인의 저술은 秘傳되어 왔던 것으로서 수많은 난해한 상징들로 이루어져 있기에 필자는 토마스 클리어리(Thomas Cleary)의 영역본과, 그가 소개하고 있는 20세기 초 도교 수련자였던 첸잉닝(Chen Yingning)의 주석에 의존하였다.
 
본 론

 

몸 중심의 수련과 여성적 원리


  손불이 산인이 추구하고자 한 수련의 목표는 도(道)와의 합일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단도 비서에서는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수련법으로서 정(精)→신(神)→기(氣)의 순서를 취한다. 이는, 精→氣→神의 수련 단계를 취하는 일반적인 방식과는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氣를 중심으로 하는 그녀의 수련은 몸을 중심으로 도를 체험하고 도와 합일하려 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고 하겠다. 또한 노자가 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던 곡신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도의 여성적 구원성, 여성적 원리를 분명히 보이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孫不二 산인의 <丹道秘書> 세 권은 도교적 우주관과 인간관, 그리고 구원을 얻기 위한 수련법의 기본적인 틀이 설명되어 있다. '衡嶽眞子'로부터 전수받았다고 하는 <<大道守一寶章>>에서는 세상을 구성하게 한 원리인 道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한다.

 

  道는 무위이지만 하지 않는 바가 없다. 가히 마음은 증명할 수 있으나 지식은 알 수 없다. 무엇을 일러 '안다(知)'고 하고 무엇을 일러 증명한다(證)고 하는가? 지식은 지식을 버린다.


  마음이면 곧 통한다. 마음이 비워져서 작위함이 없음이 오래되면, 곧 道를 이해하게 된다. 道를 이해하게 되면 곧 神이 통하게 된다 


  一이라는 것은 大道의 근본이자 으뜸가는 것이다.

 

  또한 '大羅眞天元天大聖后紫光天母'로부터 전수받았다고 하는 <<玉淸无上內景眞經>>에 따르면, 元始至眞大聖은 생명을 낳고 세계를 음과 양으로써 배합하시고 조화를 베풀었으며, 여러 외부 模像으로써 내부의 정경을 표상하게 하였다고 한다. 우주와 인간과의 이같은 관계는 그녀의 <<玉淸胎元內養眞經>>의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도 뒷받침한다.

 

  外玄牝으로써 內玄牝을 합하고 外眞神으로써 內眞氣를 돕는다. 하늘의 수많은 보배를 모아 너의 胎의 元精을 기르며, 神으로 하여금 胎 안에 살게 하고, 氣로 하여금 변하여 神이 되게 하라.

 

  아울러 하나인 도와 합치하기 위한 수련법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설명하면서 정(精)→신(神)→기(氣)의 수련 순서를 명확하게 보이고 있다.

 

  너는 마땅히 사람들에게 먼저 마음을 정해야 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마음이 확고해(定)지면 기가 머물러있게 되고(住) 기가 머물러있게 되면 神이 완전(全)해지고 신이 완전해지면 신체(形)가 굳건해(固)진다. 면면히 이어져서 쉼이 없으면 그것을 사용함에 다함이 없으니 그 성과를 보게 되리라. 谷神이 죽지 않고 나의 참된 근본과 합해진다.

 

  손불이는 이 대목에서 노자의 <<道德經>>의 谷神에 대한 구절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道德經>>에서는 곡신이란 결코 죽지 않는 존재이며, 신비의 여인인 玄牝으로서, 현빈의 문인 玄門은 하늘과 땅의 근원이라고 밝히고 있다. 도덕경에서 "가장 秘敎的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인 이 구절"에서는 도를 골짜기에 비유하여, 자기를 낮은 곳에 두고 고요하고 비어있으며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동시에 그 품에서 모든 것을 길러내는 일을 한다는 뜻으로 도를 설명하는 것이다.


  계곡과 여인은 갓난아이나 물 등과 함께 노자가 즐겨 사용하는 도의 상징이다. 道는 여인과도 같다는 것이다. 牝이란 암컷이라는 의미로, 자식을 낳고 기르는 어머니로서의 여인, 생산적 기능의 상징으로서의 여인을 의미한다. 그래서 계곡과 여인을 묶어 도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막스 칼텐마르크에 따르면, 도덕경에서 도는 종종 어머니, 곧 만물을 낳아 기르는 어머니의 형상으로 묘사되며, <<道德經>> 제1장에서도 이름지어 부를 수 있는 유명의 관점이나 인식 가능한 측면에서 관찰된 도는 만물의 어머니라고 불리고 있다고 한다. 세상의 근본원리는 하나인 도이며, 세상은 낳고 낳는 여성적 원리로 이루어졌으며, 외부 세계와 내부세계는 각기 상응관계에 있고, 우주적 어머니이고 결코 죽지 않는 존재인 곡신과 하나가 됨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도교의 전통적 세계관과 인간관, 그리고 구원관이 집약적으로 나타나 있다고 하겠다.


  이는 쉬뻬르(K.Schipper)의 도교 신체관 분석과도 일치한다. 그에 따르면 몸 안은 몸 밖의 물리적 세상의 풍경에 다름 아니다. 몸 밖에는 산, 강, 길, 집이 있으며, 좋은 장소를 뜻하는 명당이 있고 세상을 다스리는 관료조직이 있다. 이러한 외부 세계는 모두 신체 내부의 기관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독특한 신체관이 개인의 신체와 세상, 혹은 자연과의 조화를 꾀하려는 의식 체계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손불이 산인의 세 가지 문헌은 순수하게 심리적인 명상법을 도교적 性수행과 관련하여 명료하게 밝히고 있으며 아울러 심신의학적, 정신육체적 수행과 치료법과 관련된 命수행 역시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인간의 마음과 정신의 궁극적인 본성에 대해 깨닫는 수련과 육체적 질병과 부패를 없애고 죽음을 지연시키려는 수련이 동시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전체적인 구조 안에서 손불이는 <坤道功夫次第十四首>를 통하여 수련의 단계에 따른 내단 수행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내단수련의 첫 단계

 

(1) 收心
  내 몸이 있기 전에 하나의 氣가 이미 존재하였다.
  마치 玉이 다듬어져서 더욱 빛나는 것처럼, 황금이 정련되어 밝아지는 것처럼,
  생멸의 바다를 쓸어 비우고 총지의 문을 고수한다.
  반서는 영처에서 비워지고, 부드러운 불길은 따뜻하다.


(2) 養氣
  본래 무위에서 시작함이 옳은데, 어찌 후천에 떨어지기를 기대하려 하는가?
  한 가지 소리가 입으로부터 나오자마자, 세치 혀는 이미 관리되고 통제되니,
  어찌 객진의 수고로움과 소모됨을 겪겠는가? 이렇게 질병을 견디어 낸다.
  어린이가 살찌면 능히 어머니를 이롭게 할 수 있으니 도를 멈추면 되돌아가지 못한다.

 

  一氣라는 것은 元氣, 즉 陰과 陽으로 분극화되기 이전의 본래적 기이다. 도에 도달한 사람은 <<道德經>>42장에 나타나 있는 우주 생성의 과정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총지란 비교적 긴 장구로 이루어진 주문을 지칭하는 불교 용어인데, 밀교에서는 眞言과 다라니를 지송(持誦)함으로써 마음을 통일하고 궁극의 경지에 도달하여 부처가 되기 위해 사용하였다. 여기서 설명된 총지의 문이라는 것도 불교 밀교에서의 쓰이는 총지의 의미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노자가 현빈(玄牝)의 문에 들어가기 위해 마음을 집중하고 수련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시 도교 신자들이 인간의 신체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가를 알아야만 한다. 그들은 "인간의 신체를 우주를 그대로 복제한 소우주로 여겼고 인간 신체의 서로 다른 여러 특징은 외부 세계에 반드시 그에 대응하는 무엇인가를 가졌다"고 믿었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세계는 도의 발현이다. 처음 음기와 양기가 도 안에서 결합했을 때에는 元氣라는 미분화된 상태의 정기를 형성한다. 음기와 양기가 분화하면 하늘과 땅을 형성하고 둘이 결합하면 인간과 모든 생물을 생성시킨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음기와 양기, 곧 천기와 지기로 이루어져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첸잉닝은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인간은 태어나기 전에 기본적으로 차별이나 이름이 없고 형태도 없는, 본래적이고 통합된 하나의 기였다. 작위함이 없이 자연스럽게 자발적으로 흘러나오는 것이 본래적 도이며, 인간의 노력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과 인위적인 것이 후천의 도이다. 어린이는 후천기이며, 어머니는 선천기이다. 임시적 기, 즉 후천기가 완전히 자라고 발달하면, 본래적 기 역시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어린이가 살찌면 어머니를 이롭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回旋이란 본래적 元氣로 돌아가기 위한 수행을 일컫는다. 이 시들 역시 그녀의 세 개의 秘書와 마찬가지로 인체와 우주를 소우주-대우주의 상응관계로 보는 도교적 세계관과, <<道德經>>에서 설명되어 있는 우주 생성과정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내단 수행의 목표를 소개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여성의 몸 수련
 
(3) 行功
  숨을 거두어들여 神을 응결시키고 동방에 처하면 生氣가 오며,
  온갖 연이 모두 달라붙지 않게 된다.
  하나의 氣가 대(臺)에서 돌아오고, 어두움은 마땅히 앞으로 내려오며 밝은 빛은 뒤에서      받아들이니
  산봉우리와 해저에 비가 지나가고 하나의 뇌성이 들린다.


(4) 斬龍
  고요함이 극에 달하면, 능히 운동을 낳는다. 음과 양이 서로 더불어 합해진다
  바람 속의 옥 호랑이를 잡아라. 달 속에 있는 금으로 된 새를 잡아라
  눈은 배태과정에 두고 너의 마음을 순행과 역행에 두어라
  오작교가 거듭 지나가면 단의 기가 화로로 돌아간다


(5) 養丹
  호랑이를 잡아 매어서는 참된 거처로 돌려보내라.
  용에게 굴레를 씌우면 점차 내단이 증가한다.
  자연은 물처럼 깨끗해야 하고, 마음은 산처럼 고요해야 한다.
  호흡을 조절하면서 쇠솥으로 거두어들여라. 神을 안정시키고 玉의 관문을 지켜라.
  만일 날마다 쌀알을 키워갈 수 있다면
  학의 털처럼 하얀 백발의 노인도 붉은 얼굴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宋, 元 시대에는 가장 많은 여성 내단 수행자가 배출되었고, 그 당시 여성 수행자들 중 가장 영향력이 컸던 인물은 손불이였다. 여성과 남성은 생리적 구조가 다르므로 수련방법 역시 다를 수밖에 없었는데, 손불이의 내단관계 저술은 정통도장에는 전해지지 않으나, <<道藏輯要>> 중 <<孫不二元君法語>>에 여러 종류의 여단에 대한 저술을 담고 있으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坤道功夫次第十四首>인 것이다. <<손불이원군법어>>를 처음으로 영역해낸 클리어리(T.Cleary)의 영역본과 그 주석에 따르면, 이 세 개의 시는 여성들을 위한 것이다. 특히 <行功>의 마지막부터 <養丹>의 첫 번 째에 이르는 구절은 여성에게만 해당된다.


  통상 丹書에 기재된 수련법은 대개 수많은 은유로 이루어져 있어 일반인들이 손쉽게 접근하지 못하기는 하지만, 그 핵심은 호흡을 고르게 하여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것 이상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영역본에 덧붙여, Chen Yinging이라는 20세기 초의 도교 수련자의 주석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바람은 호흡을, 호랑이는 납이나 금을 의미한다고 한다. 호랑이는 사람의 신체 안에서 靜이 극에 달했을 때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하는 본래적 陽氣를 의미하며, 납과 달은 氣를 상징하고, 수은과 태양은 神을 상징한다고 한다. 또한 玉은 陰을 새는 태양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러한 설명에 근거한다면, 바람 속의 玉 호랑이를 잡는 것, 그리고 달 속에 있는 새를 잡는 것은 모두 "고요함이 극에 달하면 능히 운동을 낳고, 음과 양이 서로 더불어 합해진다"는 말을 상징적으로,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손불이의 단도 비서에도 호랑이와 용이 등장한다. 이 때 호랑이는 氣를, 용은 神을 의미하며, 참된 거처란 일반적으로 가슴 사이 부분을 말한다. 이 역시 動과 靜, 陰과 陽 등 서로 상이한 가운데서의 합일과 응결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남단 수련과 구별되는 여단 수련 이론이 독자적으로 발달했다는 점이다.


  여단수련과 남단 수련은 모두 인체를 하나의 화로와 솥(爐鼎)에 비유한다. 머리는 솥이고 배는 화로로서,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는 것과 같다. 호흡을 조절하는 리듬과 힘은 여단의 火候, 즉 화력의 정도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간주된다. 외단을 제련할 때 불의 사용이 필수적이듯, 내단의 제련에도 화력의 작용은 필요하다. 정신력이 바로 불이다. 그리고 호흡이라는 외기는 바로 바람이 된다. 연단은 바람을 빌어 불을 일으키고 그 불로 약물을 정련한다. 바람과 불을 같이 사용하여 神氣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둘로 나누어지지 않고 기혈 중에 응신하게 되면, 내장의 정기와 외래의 기가 단전에서 서로 결합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반 원리는 남녀단법 모두 공유하는 바다.


  그러나 여성 수련은 남성 단수련에는 없는 특징들을 갖추고 있다. 여단 수련의 기본 이론은, "남자의 외면은 양성이나 내면은 음성이고(男子外陽而內陰), 여자의 외면은 음성이나 내면은 양성이다(女子外陰而內陽)"는 곳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또한 남성에게는 대개 하단전을, 여성에게는 대신 흉부, 즉 중단전을 사용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권고한다. 여자의 수련은 남자수련과는 달리 기혈이 배꼽 아래 하단전이 아니라 양쪽 가슴 사이 삼푼되는 지점에 있다. 이곳을 기혈로 삼는 까닭은 이 곳이 陰血의 본원이기 때문이다.


  손불이의 時와 秘書에서 볼 수 있듯, 여단수련은 육체를 다스리고 극복하는 한 부분으로 이해되어 왔다. 여성이 인간을 창조할 잠재성에 순행(順行)한다면 임신을 하게 될 것이고, 역행하여 불사의 몸이 되려고 한다면 약을 모아 단을 회복할 것이다. 생기가 아래로 흘러내려가면 생리혈이 될 것이고, 이는 '순행(順行)'이다. 반면에 생기가 위쪽으로 올라가 생리혈이 되지 않는다면 이는 역행이다. 그러므로 도교 경전들은 남자들에게는 정액을 방사하지 않을 것을 얘기하면서 여성들에게는 월경현상을 멈추도록 훈련하라고 권고한다. 이를 도교적 전문 용어로 斬赤龍, 즉 '붉은 용을 베다'라고 한다.


  斬龍은 남성의 수련법과는 상반되는 것으로서, 남성의 수련법에서는 흡기를 할 때 기운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도록 유도하지만, 여성의 수련법에서는 그와 반대로 기운을 아래에서 위로 끌어올린다고 한다. 그리고 凝神返照하여 오래도록 앉아 있으면 전신과 기운이 충만하여 陽氣가 왕성해져서 다달이 있던 天癸, 즉 월경이 그쳐지게 된다. 이러한 수행을 계속 꾸준히 실행하게 되면 나중에는 불구슬(火珠)이 血海인 자궁으로 치달려 온몸에 약간의 전율이 일게 된다고 한다.


  참적룡을 행하여 온몸에 약간의 전율을 느낀 다음에는 곧바로 小還丹工法을 시행하며, 기운이 온 몸에 흘러다니면서 小丹이 형성되면, 정좌할 때마다 전신에 열기가 휩싸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고 한다. 이 때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히고 단전을 지키면, 얼마 후 明堂, 즉 양미간에서부터 콩알만한 불구슬이 번갯불처럼 번쩍하며 한길 남짓 허공으로 쏘아져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곧 축기(築氣)가 완성되어 약물인 丹이 형성되었음을 말한다. 行功 마지막 부분의 뇌성이란 곧 이러한 체험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후의 수련 과정은 손불이의 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胎息, 脫胎, 哺乳, 面壁 등이 있으나 대개 남성 수련법과 대동 소이하다.


  남녀 수련의 이런 차이점은 남녀 양성이란 생물학적 차이를 고려한 것으로서, 획일화된 평등을 주장한 것이 아닌 상호 다양성과 차이성을 존중하고 배려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페미니스트인 이리가레에 의하면 기존의 모든 이데올로기들은 중성적이고 중립적인 허구적 개인을 상정해왔으며 성적 차이를 무시한 이런 환원 속에서 여성은 언제나 타자로서만 존재하게 될 따름이고, 이런 환원은 이미 하나의 소외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상황에서 독자성과 특수성을 가진 여성 주체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의 성이 대립하는 성을 포섭하는 방향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내부적 교통의 원활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無性的인 인간을 상정하고 있는 성에 관한 종래의 담론과 윤리에 깔려 있는 은폐된 이중 잣대, 이중 도덕을 해체하고, 성별화된 가치와 윤리를 재구성해내는 것이 성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핵심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도교에서는 인간의 몸을 액체적인 것인 精으로 보았고, 이를 생명과 관련시켜 이해했으므로 이러한 생명의 원소가 몸 밖으로 빠져나간다면 단을 이룰 수 없으리라고 여긴 것 같다. 이는 여성의 생리적 현상과 차이점을 금기시하고 부정한 것으로 여겨 차별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이러한 여금단법은 생물학적 성차에 기초한 배려이자 존중으로서, 도교적 구원관인 逆의 정신을 구현한 것이라고 평가된다.


  여성 존중의 태도는 교단의 구조에도 똑같이 반영된다. 도교 전통에서 기본적인 의례와 교도들의 도덕적 지도자 역할을 하는 인물들은 도사였다. 이러한 지도적 위치에 오르는 데 있어서 남녀 모두 동등한 참여자격을 가졌다. <<金史>>, <<百官志>> 禮部 注에는 도사와 여관(女冠)에게 자격시험이 있어서 도덕경과 영부도인경 등의 경전을 외어서 그 구절을 암송하고 음을 불러주고 그 뜻을 해석하는 등의 과정을 치룬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여관의 경우 최소한 글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여성에게도 시험을 통한 직위획득의 기회를 주었다는 것은 현대와는 다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감안할 때 상당히 혁신적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도교의 남녀 평등적 전통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라 할 수 있다.


  클리어리는 도교의 사회적 의의와 역할에 대하여, "중국의 역사에 있어서 사회적 저항의 역할을 담당했다"고 평가한다. 특히 여성들의 출가수행과 도교 교단내에서의 여성의 높은 지위는 유교적인 인간관계상에 비추어볼 때 심각한 도전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볼 때, 도가는 분명 지방 규모를 넘어서서 교권을 행사하지 못했으나, 도가는 유교의 제도화와 체제화된 이후 전통적으로 거부된 여자나 다른 억압받는 집단에게 교육과 심리적 성장의 기회를 제공해왔다. 또한 몇몇의 뛰어난 여성 도교 수행자들은 항상 존재해왔고, 그들이 얻은 깨달음과 달성한 도는 같은 인간의 진보와 향상으로 인식되어 인정받았다. 손불이도 그러한 여성 가운데 하나였다.


  칠진전에서 보여지는 손불이의 모습, 그리고 그녀의 저술 가운데에는 초월적이며 상징적인 존재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이상적으로 살아 온 여성의 모습, 그리고 도교적 세계관에서 여성 수련자의 모범이 될 만한 여성의 이상이 투영되어 있다. 이는 도교 전통이 곧 여성에게도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 실제로 진리에 도달한 이상적 인물로서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출처 :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은
글쓴이 : 지식창고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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