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종교

[스크랩] 심우도( 尋牛圖 )-오어사 대웅전 벽화

검은바람현풍 2011. 8. 10. 21:02

지난 19일  일에 찌들여 살다 간만에 인근 운제산을 등산하려고 아침일찍 산에올랐다.

마음속의 복잡한 세상사를 잊고 맑은 자연의 공기를 마시며 산의 위대한 기를 받기에는

몸따로 마음따로,  이를어찌하랴.내자신 부족한것을..

 앞으로 여러번의 등산으로 조금씩 나를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흐르는 땀방울은 뒤로 오르시는 길님들의 길잡이나 될려나, 톡톡 수를 놓고 오르기를

한시간, 드디어 대왕암에 올라 영일만을  바라보며, 대자연 앞에 머리를 절로 숙여진다.

창세기 여기 대왕암에서  창해역사와 왜역사의 힘겨루기에 주먹에 맞아

나가 떨어진 왜 역사의 손바닥으로 만들어진 영일만 설화를 생각하며, 힘껏 외친다.

야호!

속이 후련하다.

하산길에 신라천년 고찰 오어사에 들러 유물관에 놓여진 원효대사의 삿갓을 보며

그 옛날 혜공선사와의 도를 겨눌때도 이삿갓을...?.

대웅전을 둘러보다가 벽에 그려진 소 그림이 눈에 들어오고 10여년전 지금은

고인 되신 장모님이 떠 오른다.

그때 장모님은 대웅전에 그려진 동자와 소의 그림을 유심히 보시면서 알듯 모를 듯한

인생사와 세상사를 나타내는 그림이 아닐까 관심을 나타내셨다.

주위에 물어 볼 분도 없고 해서 수 년간  잊고 있었는데 오늘은 그 의미를 알아보고

싶어 주위  둘러보니 스님은 수도중이신 것같고,장독대에   보살님이 아실까 물어보니

 모르시고해서 집에오자마자 인터넷 검색으로 그 궁금증을

해결했다.

어머님! 제가 너무 늦게 알았군요.

 

참 좋은 세상이다. 인터넷의 위대한 힘을 느낀다.

그것은 (尋牛圖) 였다.

(尋牛圖)- 인간의 본성을 찾아가는길 을  의미한다.

 

심우도(尋牛圖)...

심우도는 주로 사찰 법당의 외벽에 벽화로 많이 그려지며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는 과정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하여 그린 선화(禪畵)의 일종이다.

보통 열 단계의 장면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십우도(十牛圖)라 부르기도 한다.

김제 금산사와 부산 범어사 등 많은 사찰에서 그 예를 찾아볼수 있으며

때로 김천 직지사처럼 주련(柱聯)에 <심우도송(尋牛圖頌)을 써놓은 예도 있다.

 

심우도는 언어와 어떤 이론에 의존하지 않으면서(不立文字),

부처님이 가르친 언어 밖의 의미를 되새겨(敎外別傳), 사람 마음의 실상을 찾아(直指人心),

바로 부처가 되는것(見性成佛)을 이상과 원리로 삼는 선(禪)의 종지(宗旨)를 담고 있다.

화면의 전개는 점수의 과정 즉 차례대로 수행 단계를 밟아

서서히 높은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심우도의 원류는 중국 송나라 때 만들어진 보명(普明)의 목우도와

확암(廓庵)의 <십우도송(十牛圖頌)>에서 찾을수 있다.

조선시대까지 이 두 유형이 함께 그려졌으나 근래에 와서는 대체로 확암의 것이 많이 채택되고 있다.

하지만 범어사 보제루의 경우처럼 보명의 목우도를 내용으로 삼은 것도 현존하고 있다.

확암의 <십우도송>에 담긴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심우도의 내용

심우도는 처음 선을 닦게 된 동자가 본성에 비유되는 소를 찾기 위해 산중을 헤매이다가

마침내 소를 발견하고 길들인 뒤에 그 소를 타고 집에 돌아왔으나

다시 소에 대한 모든 것을 잊은채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

속세로 나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오어사의 대웅전벽면을 서쪽편 벽면부터 시계방향으로 그림이 6단계로 그려져 있다.

벽면이 조금 모자라 10단계로 그리지 못한 것 같다.

아래 오어사 심우도( 尋牛圖 )를 소개한다.

 

1.尋牛 소를 찾아 나서다

 

 

 

2.見跡 소의 발자취를 발견하다

 

 

 

 

 

3.見牛 소를 찾다

 

 

 

4.得牛 소를 얻다

 

 

5.牧牛 소를 길들이다

 

 

6.기우귀가(家)

 

 

 

 

 

심우도는 소를 찾는 과정을 단순하게 그리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의 본성을 찾아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는 깊고 심오한
선종의 사상을 담고 있다.
 
그 열 단계의 과정을 다시 정리해보면
'심우'는 불도의 까달음을 얻으려는 마음을 일으키는 발보리심을 나타내고
'견적'에서 '기우귀가'까지는 수행의 과정

 

 

'망우존인'과 '인우구망'은 보리심을 성취하는 과정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반본환원'은 열반의 경지에 진입하는 모습을
'입전수수'는 깨달음을 얻은 뒤에 중생을 제도하는 단계를 나타낸다

 

 

 

 

 

 

 

 

 

 

 

 

 

 

 심우도(尋牛圖)- 인간의 본성을 찾아가는길

 

심우도는 주로 사찰 법당의 외벽에 벽화로 많이 그려지며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는 과정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하여 그린 선화(禪畵)의 일종이다.

보통 열 단계의 장면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십우도(十牛圖)라 부르기도 한다.

김제 금산사와 부산 범어사 등 많은 사찰에서 그 예를 찾아볼수 있으며

때로 김천 직지사처럼 주련(柱聯)에 <심우도송(尋牛圖頌)을 써놓은 예도 있다.

 

심우도는 언어와 어떤 이론에 의존하지 않으면서(不立文字),

부처님이 가르친 언어 밖의 의미를 되새겨(敎外別傳), 사람 마음의 실상을 찾아(直指人心),

바로 부처가 되는것(見性成佛)을 이상과 원리로 삼는 선(禪)의 종지(宗旨)를 담고 있다.

화면의 전개는 점수의 과정 즉 차례대로 수행 단계를 밟아

서서히 높은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심우도의 원류는 중국 송나라 때 만들어진 보명(普明)의 목우도와

확암(廓庵)의 <십우도송(十牛圖頌)>에서 찾을수 있다.

조선시대까지 이 두 유형이 함께 그려졌으나 근래에 와서는 대체로 확암의 것이 많이 채택되고 있다.

하지만 범어사 보제루의 경우처럼 보명의 목우도를 내용으로 삼은 것도 현존하고 있다.

확암의 <십우도송>에 담긴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심우도의 내용

심우도는 처음 선을 닦게 된 동자가 본성에 비유되는 소를 찾기 위해 산중을 헤매이다가

마침내 소를 발견하고 길들인 뒤에 그 소를 타고 집에 돌아왔으나

다시 소에 대한 모든 것을 잊은채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

속세로 나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 심우(尋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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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풀밭을 헤치며 쫓아 찾아가니( 忙忙撥草去追尋)

물은 넓고 산은 먼데 길 또한 깊구나(水闊山遙路更深)

힘이 다하고 정신이 피곤함에 찾을 곳이 없는데(力盡神疲無處覓)

다만 단풍나무에 때늦은 매미소리 들리네(但聞楓樹晩蟬吟)

처음 발심한 수행자가 아직은 선이 무엇이고 본성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것을 찾겠다는 열의로 공부를 시작하는 단계를 상징한다.

 

2. 견적(見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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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수풀아래 발자국이 널려 있고(水 林下跡偏多)

아름다운 풀꽃이 활짝 피었으니 그 무엇을 보겠는가(芳草離披見也磨)
비록 깊은 산 또 더 깊은 곳에 있다 한들(縱是深山更深處)

하늘을 휘젓는 콧구멍은 어찌 숨길수 있는가(遼天鼻孔 藏他)

순수한 열의를 가지고 꾸준히 공부를 하다보면 본성의 자취를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된다.


 

3. 견우(見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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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위의 꾀꼬리는 한결같이 지저귀는데(黃鶯 枝上一聲聲)

날은 따뜻하고 바람은 온화하며 언덕 위 버들은 푸르구나(日暖風和岸柳靑)
다만 이곳에서 다시 돌아가 피할 곳이 없으니(只此更無回避處)

우뚝 솟은 뿔의 진면목을 묘사하기 어렵구나(森森頭角畵難成)

본성을 보는 것이 눈앞에 다다랐음을 상징한다.


 

4. 득우(得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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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통을 다하여 저것을 얻었으니(竭盡精神獲得渠)

마음과 힘은 강건하나 끝내 다스리기 어렵구나(心强力壯卒難除)
때로 가까스로 높은 언덕 위에 오르고(有時裳到高原上)

또 안개구름 깊은 곳에 들어가기도 한다네(又入煙雲深處居)

이 경지를 선종에서는 견성(見性)이라고 하며

땅속에서 아직 다듬어지지않은 금강석을 찾아낸 것에 비유한다.

이때의 소는 검은색을 띤 사나운 모습으로 그려지며

아직 탐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삼독(三毒)에 물들어 있는 거친 상태임을 상징한다.


 

5. 목우(牧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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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몸에 고삐를 항상 매어두는 것은(鞭索時時不離身) 

걸음을 함부로 해서 속세에 들어갈까 지어해서라네(恐伊縱步入埃塵)
도와서 순하고 온화하게 길들이려면(相將牧得純和也)

굴레로 억제하기 않고 스스로 사람을 잘 따르게 하려네(羈鎖無拘自逐人)  

삼독의 때를 지우는 단계로 선종에서는 이 과정을 가장 중요시한다.
이때의 소는 길들이는 정도에 따라 검은색이 차츰 흰색으로 바뀌어 간다.

6. 기우귀가(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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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타고 느릿느릿 집으로 돌아오려 하는데(騎牛이리欲還家)
피리소리 저녁 노을에 퍼진다(羌笛聲聲送晩霞)  
한 박자 한 노래에 무한한 뜻 담겨 있으니(日拍一歌無限意)
노래의 뜻을 아는 이 있다면 굳이 설명하리오(知音何必鼓唇牙)
동자가 소를 타고 구멍 없는 피리를 불면서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정경을 그리고 있다.
이때의 소는 전체가 완전한 흰색을 띠고 있다.
소와 동자가 일체가 되어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뜻하며
구멍 없는 피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깊은 마음 자리에서 흘러나오는 본성의 소리를 의미한다.


 

7. 망우존인(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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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타고 집에 이르니(騎牛已得到家山)  
소의 마음 비었고 사람 또한 한가롭다(牛也空兮人也閑)  
붉은 해는 정오인데 오히려 꿈을 꾸네(紅日三竿猶作夢) 
고삐만 부질없이 초당에 버려져 있네(鞭繩空頓草堂間)
집에 돌아와보니 애써 찾은 소는 간데없고 가신만 홀로 남은 상태를 표현한다.
결국 소는 본성을 찾기 위한 방편이었고
이제 고향집으로 돌아왔으니 그 방편은 잊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뗏목을 타고 피안에 도달했으면 뗏목을 버려야 한다는 교종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8. 인우구망(人牛俱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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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삐와 사람과 소 모두 공으로 돌아갔으니(鞭索人牛盡屬空)
푸른 하늘은 텅 비고 넓어서참으로 통하기 어렵구나(壁天遼闊信難通)  
화로의 불꽃 위에 다투어 눈을 받아들이듯이(紅爐焰上爭容雪)
이 경지에 이르면 바야흐로 조종과 합치된다네(到此方能合祖宗)
소 다음에 자기 자신도 잊어버린 상태를 묘사한 것으로 텅 빈 원상만을 그리고 있다.
객관이었던 소를 잊었으면 주관인 동자 또한 성립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주관과 객관이 분리되기 이전의 상태를 상징한다.
이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완전한 깨달음이라고 일컫는다.


 

9. 반본환원(返本還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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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원으로 돌아감에 있어 정력을 너무 허비했으니(返本還源已費功)
어찌 눈먼 봉사나 귀머거리처럼 하느냐(爭如直下若盲聾)
집안에서 집앞의 것을 보지 못하나(庵中不見庵前物)
물은 스스로 아득히 흘러가고 꽃은 절로 붉도다(水自茫茫花自紅)
주관과 객관의 구별이 없는 속에 있는 그대로 비치는 자연의 경지를 표현한다.
산은 산, 물은 물 그대로의 모습을 꿰뚫어볼수 있는 지혜를 터득한 경지이다.



 

10. 입전수수(入鄽垂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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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드러내고 맨발로 가게에 돌아와(露胸跣足入廛來)
흙과 회를 바르니 뺨에 웃음이 가득하구나(抹土途灰笑滿?)
신선의 비결을 쓰지 않고도(不用神仙眞秘訣)
곧 마른 나무로 하여금 꽃이 피게 하는구나(直敎枯木放花開)
동자가 큰 포대를 메고 사람들이 많은 곳을 향해 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때 큰 포대는 중생들에게 베풀어줄 복과 덕을 담은 것으로
불교의 궁극적인 뜻이 중생 제도에 있음을 상징한다.
 
심우도는 소를 찾는 과정을 단순하게 그리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의 본성을 찾아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는 깊고 심오한 선종의 사상을 담고 있다.
 
그 열 단계의 과정을 다시 정리해보면
'심우'는 불도의 까달음을 얻으려는 마음을 일으키는 발보리심을 나타내고
'견적'에서 '기우귀가'까지는 수행의 과정을
'망우존인'과 '인우구망'은 보리심을 성취하는 과정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반본환원'은 열반의 경지에 진입하는 모습을
'입전수수'는 깨달음을 얻은 뒤에 중생을 제도하는 단계를 나타낸다.

 

출처 : 하모하모의 포항Life
글쓴이 : 주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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