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부모와 자식
어떻게 하면 골치 아픈 상반된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 할 수
있을까?
살되 살지 않고 죽으며, 죽되 죽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이렇게 어려울 듯 한 문제의 해답을 모든 생명체들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 답은 번식, 생식이다.
즉, 숙명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나’이지만, 내가 죽기에 앞서 나와
똑같은 제 2의 나를 만들어 놓는다면, 나는 죽어 없어지더라도 또 다른 내가 살아 있으니 나는 죽어도 죽지 않고 계속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과거의 나를 부모 또는 어버이라 부르고, 새로이
만들어진 제2의 나를 자식 또는 자손이란 말로 쓰고 있다.
따라서 생식이란 언제인가 반드시 죽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는 유한의 내 생명을 죽되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영생의 방법이 되는 것이며, 자식이란 내 생명을 연장해 주는 또 다른 ‘나’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원칙론으로 볼 때 죽음이 멀지 않은 늙은 부모는 장래가 창창한 희망의 제2의 ‘나’ 인 자식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 할 수 있지만, 거꾸로 자식은 미래가 짧은 나 인 부모를 위하여 투자할 이유가 별로 없을 것이니 부모 사랑은 내리사랑이란 말이 쉽게 이해 될 수 있다. 또한 생명력이
약해져서 죽음을 본능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손자에 대한 사랑은 혈기 왕성하여 젊은 부모일 때 보다 더욱 애틋해 지는 것도 쉽게 이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식물들도 보라. 이들도 물을 적게 준다거나 거름을 좀 부족하게
하여 어려운 환경 여건을 만들어 주면 생식의 본능이 작동하여 많은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는 현상을 볼 수 있는 것이며, 벌레 먹은 가지에만
유독 많은 열매가 달리는 것도 같은 이치가 된다. 똑같이 사람의 경우에도 몹쓸 병을 갖고 있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색욕이 강하게 발동하는 것이니, 강하게 色氣를 발하는 사람이라면 머지않아 닥아 올 검은 그림자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 잘살기 원칙 7 : 잘 살고 싶은 자 자식 많이 만들어 잘 키워라.
자식은 바로 희망의 나 이다. 〕
여기에서 우리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性적인 교접이 단순한 감각적 유희가 아니라 나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새 생명 창조의 성스러운 행위임을 자각할 수 있을 것이고, 따라서 성적인 접촉은 생명연장의 방법으로만 쓰여 져야 한다는 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8) 창조의 원칙
이렇게 나의 탄생은 사전 계획 같은 것은 전혀 없이, 어느 날 정자와
난자의 만남으로 인하여 새로운 인생이 시작 되는 것이니, 어쩌면 수정이란 無로부터 有를 탄생시키는 위대한 창조의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체세포분열은 단순히 과거의 세포로부터 그와 똑같은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 냄으로써 우리의 몸을 유지시켜주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새 생명 창조의 수정 과정은 좀 특이해서, 반드시 서로
다른 두 종류의 특수세포가 있어야 하고, 다시 이 두 종류의 세포가 하나로 결합할 때 만이 비로소 한 생명의 시조세포가 되는 수정란을 탄생 시킬 수 있는 것이며 나아가 새로운 생명체도 탄생 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無로부터 새로운 有를 탄생시키기 위하여는 서로 다른 성질을 갖는 두 종류의 정자와 난자 같은 것들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이런
것 들을 다른 표현으로 陰과 陽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실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 대부분의 물질들도 이와 같아서
음의 전하를 띄고 있는 음이온과 양의 전하를 띄고 있는 양이온이 전기적인 인력에 의하여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게 되고 결국에는 하나로 결합하여 그 결과 물질의 기본단위라고 하는 분자를 이루고 있다.
9) 결혼은 영생을 위한 방법
생명 연장이란 관점에서 결혼을 생각하여 보자.
생물체는 숙명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 한 자신의 생명을 무한으로 연장시키기 위하여 죽기에 앞서 제 2의 나 인 자식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런데 이 지구에서 無로 부터 有를 탄생시키기 위하여는 묘하게도 서로 다른 둘의 결합을 요구 하는 것 같다.
당연히 하등한 생물들은 예외도 많이 있지만, 최소한 고등한 동식물들은 반드시 서로 다른 둘의 결합이 요구되고 있다. 왈 수정이다.
따라서 사람도 미래의 나 인 자식을 만들기 위하여는 서로 다른 둘이
결합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정자와 난자 이며, 이 정자와 난자를 만들어 낼 수 있는 男과 女가 하나로 함께하는 것이 바로 결혼이라고 볼 수 있겠다.
따라서 자식 없는 결혼이란 생각할 수 없는 것이며, 만약 결혼을 했다 하더라도 자식이 없다면 당연히 그 결혼은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에
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니 이혼하고 갈라서는 것은 자명한 일 이리라. 간혹 혈기왕성한 젊은이 들이 나는 너만 있어주면 된다는 말을 하는데
이는 맥도 모르고 하는 큰 잘못으로 나이가 들어가게 되면서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부부가 행복하게 백년해로하기 위한 첫걸음은 자식을 많이 두는 다산多産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쓰고 있는 촌수寸數란 한 사람을 마디로 보고 사람과 사람(부모와 자식)을 연결해 주는 혈연의 사슬을 一寸이라고 본다.
따라서 부부간은 직접 연결된 혈연은 없기 때문에 무촌이 되며, 헤어지면 당연히 남남이 되는 것이다.
위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남녀가 결혼하여 생산 활동을 다 마쳤으면
서로 함께 있어야 할 이유가 당연히 없어지게 되고 따라서 이혼 하고
갈라서야 이론상 맞을 것이다. 그런데도 계속 함께 살고 있는 이유는
무엇 일까?
그 이유는 이들 부와 모를 자식들이 하나로 연결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즉 부와 모는 서로 각각이지만 ‘부↔자식↔모’ 이렇게 부와 모 사이에
그들의 공통 자식이 혈연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줌으로써 같은 자식을
공유하고 있는 부부는 한 덩이로 묶여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부부가 이혼하지 않기 위하여 자식은 얼마나 필요 할까?
당연히 연결 고리가 많을수록 끊어질 가능성은 적어지겠지만 그에 대한 해답은 전래동화 “ 나무꾼과 선녀 ” 에 숨겨 져 있다. 좀 더 세심한 관심을 갖고 살펴본다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요, 나아가 숨겨져 있는 깊은 진리의 교훈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전래동화도 단순히
재미로만 읽었던 옛날이야기로 그치지 말고 새로운 각도에서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야 할 것이다.
〔 잘살기 원칙 8 : 잘 살고 싶은 자 자식 많이 만들어라. 그래야
이혼 당하지 않고 백년해로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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