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단학

鳳宇修丹記 8. 제결미 ( 題訣尾 )

검은바람현풍 2025. 1. 9. 12:06

鳳宇修丹記

8. 제결미 ( 題訣尾 )

 

(1) 題訣尾  一

수단修丹에 관한 책이 다섯 수레에 실어도 오히려 부족할 정도로 많은 고로 후학들이 그 책들 중에서 공부하는 길을 알고자 하여도 바른길을 얻지 못하였으니 본디 공부의 이치가 다 그러한 것이다.

내가 修丹에 관한 글을 많이 열람하고 보니 그 내용이 정밀하고도 깊으며 쉽고도 간단하여 한 눈에 환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마땅히 정공鄭公(북창 정렴)의 용호결이 가장 뛰어나다 할 것이므로 동고자同苦者와 동호자同好者를 위하는 마음에서 난초亂草하여 뒷날의 군자君子에게 전하고자 하니 나의 오늘의 이 심회心懷를 양해하여 준다면 그것으로 족하게 생각하리라.

     남한원년 무자 (1948) 후학 권태훈 삼가 적다.

 

 

(2) 題訣尾 二

용호비결은 대학, 중용과 더불어 서로 표리(表裏:겉과 속, 안과 밖)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논하건대 도는 상생相生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며, 덕은 相生하고 상극相剋하여 왕래불궁(往來不窮:오고 감에 끝이 없음)하는 것을 이르는 것이니,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이 여기에 다 갖추어져 있다.

희노애락喜怒哀樂이 속에 감추어져 드러나지 않는 것이 相生이며, 喜怒哀樂이 겉으로 드러나되 절도에 맞는 것은 相生相剋이다.

사람이나 물건에 있어서 相生하는 이치가 없을 수 없고, 相生相剋하여 往來不窮하는 이치가 없을 수 없다.

본래 밝았던 것을 다시 밝히고자 하거든(欲明明) 용호결의 가르침에 따라서 쉬지 않고 노력하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활연관통豁然貫通하는 경지에 있을 것이다.

어찌 성인聖人이 가신지 오래됨을 근심하며 어찌 재질才質의 청탁淸濁을 걱정하리오. 성문(聖門:성인의 -여기서는 孔子를 말함)의 전수심법이 중용과 대학에서 벗어나지 않은 즉 대학과 중용의 심법으로 마음에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용호결로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를 올리면 마음이 편안하고 온 몸이 다 말을 잘 듣게 될 것이다.

전성(예전 성인)과 후성(뒤에 오는 성인)이 대대로 이어받아 온 법이 바로 이 심법心法이니 안자가 순임금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이냐? 舜何人也 余何人也라고 한 말과 같이 분발하며 노력하는 사람은 모두 순임금처럼 심법을 전수 받을 수 있다함을 이르는 말이다.

남한 무자 (1948) 가을 9월 어지러이 옮겨 적던 중 도덕해道德解 1편을 용호결 말미에 붙여 후일의 동고자를 기다린다.

무진(1928) 1010일 유신정사有莘精舍에서 경신일민耕莘逸民 봉우鳳宇 삼가 적다.

 

 

(3) 題訣尾 三

옛부터 삼신산三神山의 불사약不死藥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우리나라를 찾아왔으며, 가 하나 둘이 아니었다. 道書에서 말하기를 삼신산은 봉래蓬萊산 방장方丈산 영주瀛州산을 말하는데 발해渤海 가운데 있으며, 모든 신선과 불사약이 모두 그곳에 있다고 전하며 옛부터 仙人의 굴집窟宅이 삼신산 속에는 많이 있어서 鍊氣공부로 神仙이 된 사람의 를 알 수 없다고 하였으니 이 말은 삼신산이 우리나라를 가르키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옛부터 神仙이 된 사람이 많았는데 신라의 말기부터 당나라를 숭모하는 바람이 불기 시작 하더니 고려의 김부식에 이르러서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서적을 모두 없애버렸으니 이로부터 이전의 古書를 얻어 볼 수 없게 된 것은 실로 김씨가 저지른 화 때문이다.

그러한 연고로 산천의 경치 좋은 곳을 유람하노라면 여러 가지 전해 내려오는 신선의 자취가 있는 곳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으나, 다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것이 있을 뿐 입증할 만 한 서책이 하나도 없으니, 이는 참으로 한탄스러운 일로서 이는 오직 당나라를 숭모하는 사상 때문에 생긴 이다.

고사에는 이른바 중국이 우리나라로부터 제후로 봉함을 받은 구절이 반드시 실려 있고 또한 우리나라가 중국을 제압한 기록이 역력한데도, 사대하는 마음에 감히 역사책에 이런 구절을 남겨 둘 수 없다고 하여 모두 없애버린 것이다.

다만 단군檀君과 기자箕子의 역사에 겨우 , 의 두 자만 없어지지 않았을 뿐 그 밖에 상세한 것은 별로 찾아볼 수 없는 것도 바로 이런 까닭임이 분명하며 고려 중엽에 불도佛道가 크게 성하여 사대파와 더불어 우리나라에 입으로 전해 내려온 전래의 유적들의 형적조차 모두 없애려 든 것 또한 명백한 일이다.

전해오던 역사책들이 이와 같은 큰 난리를 당하여 남아있는 것은 천에 하나, 만에 하나도 없고 이따금 산야의 촌부村夫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그 유적의 남은 흔적을 얻어 들을 수 있는 정도이니 매우 한탄스러운 일이다.

조선에 이르러서는 유교가 크게 번창하여 더욱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옛 성인의 유적을 믿지 않게 되었으며 단지 소국이 대국을 적대하는 것이 불가하니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려면 대국을 잘 섬기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으므로, 혹시 대국사람의 눈에 걸리는 것이 있으면 모두 없애버리고 책에서 삭제하는 일이 고려 때보다도 심하였으니 후생들이 어느 곳에서 옛적부터 전해온 비결을 얻어 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오직 한 분, 북창 정렴 선생은 조선 중엽에 깊이 古人의 도리를 깨달아 영원히 이것이 없어질 것을 염려한 나머지 용호비결 3三篇에 그 비결을 자세히 기술하여 후일의 학자에게 전하였으니 그 공로가 크다고 하겠다. 이 밖에 세인의 안목에 걸리는 것들도, 말하지 않은 가운데 모두 들어있으니, 학자들이 자세히 살핀 즉 정공의 불언중의 묘결妙訣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남한 원년 무자 (1948 ) 후학 봉우 권태훈 삼가 적다.

 

 

(4) 題訣尾 四 ( 대학장구의 진정한 의미 )

내 나이 8세에 정무정 선생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내가 대학지도재명명덕재신민재지어지선 大學之道在明明德在新民在止於至善이라는 구절을 읽고 선생님에게 물었다.

은 비록 나눌 수 없으나 옛 聖賢들이 늘 하신 말씀에서 은 한 가지 사항이 아님을 알 수 있으며 혼동해서도 안 된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까닭으로 大學之道明明德에도 있고, 新民에도 있고, 止於之善에도 있습니까? 이란 一部類에 불과한데 옛 성현들이 을 아울러 말하고 있으니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너의 나이가 어려서 고성古聖의 가르침을 깊이 연구할 수가 없으니 반드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오래도록 많이 읽으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강론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시었다.

나는 그 후 비록 마음을 가라앉히고 많이 읽지는 않았으나 항상 마음속에 의심을 두고 있었다.

그 후 13세 때에 다시 四書三經을 가을 겨울의 6개월에 걸쳐 읽었는데, 대학의 그 구절에 항시 의심을 두고 있던 중, 마침 무정 선생님이 우리 집에 왕림하셨으므로 의심 둔 곳을 다시 한 번 말씀드렸더니 역시 전일과 같은 가르침뿐이고 별로 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그래서 부득이 의심을 풀지 못한 채 해를 넘기었다.

그 후 반평생의 세월이 흘러갔는데 우연히 북창 선생의 용호결을 얻어 보고 잠심潛心하여 수련한 지 일 년 여 만에 비록 하루아침에 활연관통한 것은 아니지만 조금은 얻은 것이 있어서 다시 대학의 의심나는 곳을 펼쳐 보고는 혼자서 웃고 말았다.

고인古人의 후세에 전하는 교훈이 이와 같이 지극히 정밀한데 후학들이 범범凡凡하게 보아 넘겨 대수롭지 않은 평범한 장구로 생각하여 해석하니 어찌 틀리지 않겠는가?

이 대학장구는 유학儒學의 큰 관문關門이므로 내가 재론할 필요는 없겠으며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죄인 줄 알지만 여기에 대하여 같은 의심을 둔 사람들과 그것을 풀려 애쓰는 이 들을 위하여 간략하게 몇 자 적어 의심나는 곳을 풀어보려 한다.

明明이란 것은 해와 달이 차고 기우는 것과, 하늘과 땅이 퍼졌다 오므라들었다 하는 것과, 음양의 호흡을 밝히는 것( 明明이라는 것은 日月消長이요, 天地屈伸이요, 陰陽呼吸을 밝히는 것 )을 말함이니, 는 그 본래 밝았던 것을 밝히는 것이고, 은 그 새로운 것을 더욱 새롭게 하는 것이며, 은 지극한 에 머무는 것임을 깨달으면 거의 大學 본래의 뜻에 가까워서 옛 聖人의 가르침을 잃지 않을 것이다.

     무진(1928)55일 권태훈이 신야에서 잡서 중에 초고하여 적다.

     무자(1948)9월 앞서 적은 것을 용호비결의 끝에 옮겨 적다.

 

※ 필자 첨언

공자님이 쓰신 대학 첫머리에 나오는

大學之道在明明德在新民在止於至善이라는 구절을 유교에서

大學之道在明明德, 在新民, 在止於至善이라고 끊어서 가르치는 것에 의심을 가졌다가, 본래의 뜻이

大學之道在明明, 德在新, 民在止於至善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이를 밝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