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丹學人物考 매월당 김시습 梅月堂 金時習 ( 2 )

丹學人物考   매월당 김시습 梅月堂 金時習 ( 2 )                                                              硏精會報 24, 25 호 에서  한번은 자신의 전답을 타인이 빼앗아 농사를 짓는데 갑자기 그 사람에게 내놓으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사람이 듣지 않자 관가에 재판을 제기하여 타두는데 마치 장사꾼이 다투는 것 같았다. 승소를 하여 문서를 받게 되자 그 문서를 품속에 소중히 넣고 문밖에 나서자 앙천대소를 하면서 그 문서를 갈기갈기 찢어 흐르는 개울물에 던졌다. 이것은 아니꼽고 추잡한 현실을 부정하는 비판의식의 발로였는지도 모른다. 높은 벼슬에 있는 자가 혹 인망(人望)에 어긋나는 자로 알려졌을때는 “이 백성이 무슨 죄가 있어서 이른 임무를 맡기셨습..

동양학/단학 08:38:38

丹學人物考 매월당 김시습 梅月堂 金時習 ( 1 )

丹學人物考   매월당 김시습 梅月堂 金時習 ( 1 )                                                              硏精會報 23, 24호 에서  [ 1435(세종17)~1493(성종24), 本貫은 강릉(江陵). 字는 열경(悅卿), 號는 매월당(梅月堂), 동봉(東峰),벽산(碧山). 시호는 청간공(淸簡公). 법호는 설잠(雪岑). ]  매월당 김시습은 고려의 시중(侍中) 태현(台鉉)의 후손인 충순위(忠順尉) 김일성(金日省)의 아들로 세종 17년(1435) 서울의 성균관 뒤에서 태어났다.시습은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세상 사람들이 신동이라 불렀는데 그의 이름이 시습이라 지어진 것도 그가 태어난지 여덟달 만에 글자를 깨쳐 친척이었던 집현전 학사 최치운이 그의 재주..

동양학/단학 08:3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