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神의 世界

[스크랩] 28. 귀신과 해원

검은바람현풍 2012. 3. 7. 15:41
 

귀신과 해원

 

1976년 10월 동해안에서 조난당했던 한 젊은 어부를 사랑해온 아가씨가 낙산사 법당에서 면사포를 쓰고 어부의 영혼과 결혼했다는 신문 보도가 있은 이후 가끔씩 영혼 결혼식에 대한 기사를 접하게 된다. 원래 영혼 결혼이 생겨난 것은 원귀의 해코지를 막기 위한 데서 비롯되었다. 우리나라 귀신 가운데 가장 무섭고 해코지를 심하게 하는 귀신이 바로 장가 못가고 죽은 몽달귀신과 시집 못가고 죽은 손각시 귀신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이런 외톨이로 죽은 시체를 묻을 때는 원귀가 못빠져 나오게끔 가시덤불로 관을 싸 묻거나 거꾸로 세워 묻기까지 했다고 한다. 물론 그런 것으로 막을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런데 이런 독신으로 죽은 귀신에 대한 우려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중국에서는 처녀나 총각으로 죽으면 그 화를 면하고자 살아 있는 자에게 돈을 주어 영혼 결혼을 시켰다. 힌두교에서는 독신으로 죽으면 3대 친족에게까지 해코지를 한다 하여 대단히 경계를 하고 있다. 

 무속에서 신앙하는 신들을 보면 대개 원한 맺혀 죽은 경우이다. 비운으로 죽은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 믿던 신하에게 살해당한 고려의 마지막 임금인 ‘공민왕’, 세조의 왕위찬탈에 의해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은 ‘단종’과 그 부인인 ‘송씨’, 세조에 저항하며 평생을 미치광이로 산 ‘김시습’, 그밖에 최영장군, 남이장군, 임경업 장군, 김시습, 게다가 중국의 관운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억울하게 죽은 신들이다. 

 귀신이란 죽으면서 대량의 ‘정(精)’이 이탈하여 지적작용을 잃어 몽롱한 가운데 반응하는 정혼(情魂)을 말한다. 생전과 같은 이성적 사유는 줄어들고 아집과 욕구가 위주를 이루어 적잖은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귀신이라 하여도 별다른 원한이 없는 경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원한 맺힌 귀신, 즉 원귀(怨鬼)라야 문제가 된다. 이는 귀신은 사람과 달리 통제력이 미약하기 때문에 생전에 맺힌 원한을 어떻게든 갚으려 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원귀에 관하여 전해오는 설화이다.


 옛날 이봉구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하루는 밤늦도록 책을 읽고 있었는데, 이웃집 양반의 딸이 이봉구를 사모하여 담을 넘어 봉구의 방으로 들어왔다. 이를 본 봉구는, “양반집 규수가 어디 함부로 외간남자의 방에 들어오느냐? 어엿한 양반의 규수가 이런 처신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니 썩 나가시오”하고 호통을 쳐서 내쫓았다.

 처녀는 사모하는 남자에게 모욕을 당하자 그것이 가슴 깊이 원한이 되어 죽고 말았다. 죽은 뒤에 원귀(怨鬼)가 되어 늘 이봉구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하는 일마다 훼방을 놓았다. 일이 될 듯하다가도 이 원귀가 나타나면 틀어지곤 하였다. 이봉구는 매사에 되는 일이 없자 한동안 푹 쉬려고 조용한 절을 찾아갔다. 하루는 그 절의 중 하나와 근처의 산천을 구경하러 나섰다. 두 사람은 이 산 저 산 돌아다니다가 어떤 험하고 높은 산꼭대기의 바위에 앉았다. 이봉구는 이웃집 규수가 원귀가 되어 매사에 훼방을 놓아 되는 일이 없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랬더니 중 또한 같은 처지라고 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승이 젊어서 어떤 집에 동냥을 갔지요. 그런데 예쁜 젊은 여자가 혼자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떡 본김에 제사 지낸다고 그만 그 여자를 욕을 보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자는 그만한 일을 가지고 중놈하테 더럽힌 것을 참을 수 없다 하여 목을 매 죽었답니다. 그 후 원귀가 되어 늘 따라다니며 훼방을 놉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이봉구는,

 “에이, 고얀 중놈 같으니라고. 너 같은 놈을 그냥 살려 둬서는 안되겠구나!”하고는 중을 발길로 차서 절벽 아래로 떨어트려 죽이고 말았다. 그런데 조금 있자 절벽 아래에서 무언가 ‘툭탁툭탁’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이봉구가 이상하여 아래를 내려다 보니 여자 귀신 둘이 싸우고 있는 것이다. 하나는 이웃집 처녀 귀신인데 다른 하나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한 참을 그렇게 싸우더니 이봉구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던 귀신이 혼비백산하여 도망갔다.

 싸움에서 이긴 낯 선 처녀 귀신이 봉구 앞에 나타나서 말했다.

 “안심하십시요. 내가 당신을 괴롭히던 원귀를 쫓았으니 이제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봉구는 이상히 여겨 뉘시길래 나를 돕느냐고 물었다.

 “저는 그 중놈한테 욕을 당하고 억울하게 죽은 여자의 원귀입니다. 원수를 갚으려고 지금까지 따라다녔지만 중놈이 빈틈을 안보여 뜻을 이루지 못했지요. 그런데 당신이 그 놈을 발길로 찰 때, 당신을 따라다니던 원귀가 그 중을 살려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막으려고 그 원귀와 싸웠던 것입니다. 이제 저도 원수를 갚았고, 당신도 아무 탈이 없을 것입니다.” 처녀 귀신은 이렇게 말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봉구는 그 뒤부터는 아무 탈 없이 공부도 잘되어 무과에 급제하고 나중에는 장군까지 지냈다고 한다.

                                (문화재관리국,《 한국민속종합보고서(전북편)》)

 

 신립은 권율장군의 사위로 임진왜란 때 탄금대에서 전사한 장수이다. 신립이 젊었을 때의 일이다. 강원도 금강산을 유람하다가 그만 날이 저물이 길을 잃고 말았다. 인가를 찾아 한 동네에 들어갔는데 사람들이라고는 통 보이지 않았다. 그 중 가장 큰 기와집을 찾아 들어갔는데, 처음에는 인기척이 없더니 얼마 후 한 처녀가 나와 어떤 일이냐고 물었다.

 “길을 가는 나그네인데 하룻밤 재워 달라고 왔습니다. 다른 사람은 없고 처녀 혼자뿐이오?”

 “예 그렇습니다. 저녁 진지는 해 올릴 수 있으나, 여기서 주무실 수는 없으니 다른 데를 가서 주무시지요.”

 “아니, 무슨 이유라도 있습니까? 연유를 말해 보시오.”

 “다름이 아니오라 저의 집에 흉사가 있어서 그럽니다.”

“무슨 일인지 자세히 말해 보구료. 내 도울 수 있으면 돕겠소.”

“그럼 말씀 드리지요. 저의 집에는 힘이 센 종놈이 하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놈이 저를 탐하여 아내로 달라고 하였읍니다. 집안 식구들이 말을 듣지 않자, 식구들을 다 죽이고 저만 남았습니다. 저도 따라 죽어야 마땅하오나 부모님 삼년 상을 치르기 전에는 죽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종놈에게 뜻대로 할테니 삼년의 시간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이 바로 삼년이 되는 날입니다. 오늘밤에 그놈이 와서 저를 겁탈하려 할 것인데, 저는 항거할 힘이 없어 필경 죽을 것입니다. 당신이 여기 있다가 자칫하면 화를 당할지 모르니 다른 데 가서 주무시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 걱정은 말고 저녁밥이나 해 주시오.”

 혈기 왕성하고 싸움에는 일가견 있던 신립은 자신만만하게 저녁밥을 먹고 안방에는 촛불을 환히 밝히고 느긋이 앉아 있었다. 한밤중이 되자 대문이 ‘덜컹’하고 열리더니 기골이 장대한 청년이 들어왔다. 순간 신립은 활에 화살을 꽂고 들어오는 놈에게 냅다 쏘았다. 그런데 그놈은 화살을 맞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신립에게 덤벼들었다. 힘으론 안되겠다 싶어 신립은 숲으로 줄행랑을 쳤다. 성이 난 종놈이 계속해서 쫓아 왔다. 그런데 그만 또아리를 틀고 있는 이무기를 밟아 물려 죽고 말았다. 신립은 하늘이 도왔다 여기고 처녀의 집으로 돌아왔다. 혼절한 처녀를 간호하여 정신을 차리게 하였다.

 이튿날 아침, 신립이 떠나려 하자 처녀는 신립의 발 아래 엎드려,

“저는 의지할 때가 없는 몸입니다. 첩으로도 좋고, 종으로도 좋으니 저를 데리고 가 주십시오”하고 간청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신립은,

 “나는 이미 장가를 가서 처자가 있는 몸이오. 당신은 여기 있다가 마땅한 혼처를 구하여 시집을 가시오”하고는 일언에 거절하고 집을 나왔다. 신립이 막 동구밖을 나오려는데 처녀가 부르는 소리가 세번식이나 들려왔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돌아보니, 그 처녀는 자기 집에다 불을 지르고 지붕위에 올라가 있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장인께 이 일을 아뢰니, 장인은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죽였다고 꾸중을 하였다.

 그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 영남지방의 패전 보고가 들어오자, 임금은 신립에게 나가 막으라 하였다. 남쪽으로 내려온 신립은 문경 새재에서 순변사 일일 장군과 만나 작전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 때 신립 앞에 한 승려가 나타나 천험의 요새인 조령에 진을 치고 반격하면 왜병을 물리칠 수 있다고 간곡히 조언하였다. 신립은 망설이고 있었는데, 바로 그 때 전에 죽은 그 처녀귀신이 나타나서 말했다.

“신장군님, 안녕하신지요? 왜병을 무찌르는 데 어찌 이처럼 협착한 새재에 포진하여 남의 웃음거리가 되시려 합니까? 충주 탄금대에 가서 배수진(背水陣)을 치고 싸우면 대승할 것입니다.” 

 신립장군은 승려와 부장들의 말을 묵살하고 원귀의 말을 따라 조령을 버리고 충주 탄금대에 진을 쳤다.

 한편 왜장 소서행장은 조령에 군사가 없는 것을 보고 손뼉을 치고 기뻐하며 조령을 넘어 탄금대로 향하였다. 원귀의 말을 들은 신립은 탄금대에서 왜병을 맞아 싸우다가 크게 패하였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구비문학대계》) 


 이상의 두 편의 설화는 원한 맺힌 귀신이 얼마나 집요하게 복수하려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오랜 병으로 시달리는 사람이나 정신 이상의 증후를 보이는 사람, 또는 그 가정을 보면 이런 원귀가 서려있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원귀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전생이나 이생의 원한 관계에서 출발한 전형적인 원귀와, 어떤 요구를 들어달라는 간절한 바램에서 오는 원귀가 있다. 후자의 경우는 대부분 문제가 있는 조상신들에 해당한다. 가령, 무덤 주위에 가시가 많으면 따가와 하며1) 자손에게 붙어 괴롭힌다. 물론 소통이 될 수 없으니 언제까지고 병적 요인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한 번은 강릉에서 열두마당의 굿판을 구경한 일이 있었다. 대략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서른 살 정도 먹은 처녀가 오랫동안 신병(神病)으로 고생하였는데, 이 병이 신을 받으라는 것인지, 아니면 조상신들의 요구나 불만이 심하여 일어난 병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부모형제를 모시고 큰 굿을 한바탕 벌인 것이다. 이 처녀와 어머니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은 큰 돈을 들여 굿을 하는 것에 모두 못마땅해 하며 비웃는 태도였다. 특히 아버지는 신들린 무당들이 하는 말(공수)에 말끗마다 ‘그렇지 않다’ ‘그런 일이 없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하였다. 한 번은 한 무당이,

 “아이고 목이 타들어가고 창자가 꼬이는 걸 보니, 당신 조상 중에 분명 약 먹고 죽은 사람 있지?”하였다. 아버지는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잡아 떼었다. 무당들의 점괘가 자꾸만 빗나가자 굿판의 흥이 떨어지고, 구경 온 많은 신도들의 신임을 잃게 생긴 것이다. 그러자 무당 측에서, “이제부터는 신을 우리가 받지 않고 당신들(가족)에게 붙여서 한 판 벌일테니 누구 지원자 나오십시요.”하는 것이었다. 신이 있을 턱이 없다고 여긴 가족들은 그래도 웃고만 있었다. 그러자 무당은 나이가 있는 사람이 좀 더 조상을 접해 봤으니 어머니가 나와 신과 소통할 것을 요구하였다. 신당 앞에 선 어머니 주위에 무당 둘이 붙어 징과 괭가리를 치며 주문을 외워댔다. 그러자 어머니의 몸에서 전율이 일어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말문이 터져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조상신이 하나씩 들려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데 소상한 일까지 모두 알고 있는 것이었다. 불만도 가지각색이고 요구하는 것도 다양했다. 다리를 오랫동안 절다 돌아가신 고조 할아버지는, “네, 다리 아픈 것이 다 내가 와서 그런 것이니 나를 좋은 곳으로 보내줘. 제발······”하는 것이다. 얼마 전 돌아가신 외삼촌은, “내 무덤에 들쥐들이 많아 못살겠다. 그 놈들을 좀 없애줘.”하는 것이다. 조상마다 불만이나 요구 없는 조상이 없었다. 그러더니 수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목과 가슴을 웅켜쥐고 아픈 표정을 지으며,

 “아들아, 네 엄마가 나를 죽였어. 죽였어.”하였다.      

 “무슨 소리에요 아버지?”

 “약먹여 죽였지. 나를 약먹여 죽였지.”

 “에이, 아버지도. 그 약은 술 끊는 약이어요.”

 “무슨 소리. 네 엄마가 길 건너 장사하는 아무개하고 바람나서 나를 죽이려고 약에다 조금씩 독약을 넣었어. 지금 네 엄마 딴 살림 차린거 나 죽은 후가 아니야. 그 전에 이미 그놈하고 붙었어.”

 이말을 들은 아버지와 자식들은 순간 전율에 휩싸여 상기되어 있었다. 바로 그때, 어머니에게 들렸던 할아버지 신을 비집고 증조할머니가 들어왔다.

 “나쁜년, 나쁜년, 이 년이 내 아들을 죽였어. 손자야 네 어미가 니 아버지 죽였어. 나는 다 알아······나쁜년, 천하에 나쁜년!······”

 이 광경을 지켜 보던 자식들은 털석 주저앉아 울거나, 남보기가 부끄러워 자리를 피하거나 하였다. 살인과 관련된 충격적 발언이 나오자 무당들은 서둘러 구경꾼들을 내보내고 수습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이런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은 모두들 신이 있기는 있는가 보다라고 말하며 떠밀리다시피 하여 자리를 떠났다.

    

 이상의 광경은 내가 직접 목격한 것이다. 굿판을 수없이 봐 왔지만, 이렇게 인간과 인간이 대화하는 것과 같이 선명한 공수2)는 드물었다. 어쨌든 할아버지는 할머니에 의해 죽어 원귀(怨鬼)가 되었고 그 억울함을 알아달라고 자식들을 괴롭혔다. 그리고 다른 조상신들도 제각각 자신의 요구사항을 들어달라고 자손들을 괴롭혔다. 혹자는 아무리 죽어 귀신이 되었다고 어떻게 자식이나 자손들을 괴롭힐 수 있는가 의문을 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누누히 말하지만 영적으로 발달되지 못한 3천의 귀신은 생전과 같은 가치판단을 하지 못한다. 이성적 사유는 죽음과 동시에 변질되어 아집과 욕구, 원한만 남은 순수 반응체가 되는 것이다.

 여하튼 이렇게 생전에 남은 원한으로 인해 귀신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 원한을 해소하는 것을 해원(解怨)이라 한다. 해원의 방법으로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천도제를 올리기도 하고, 굿판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결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뿌리 깊게 파인 원한과 욕구가 일시적인 대접에 말끔히 해소되지는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무서운 신장(神將)을 움직여 위협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당장은 말을 듣는 듯 하지만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 귀신노름이 또다시 발동한다. 그래서 굿판을 벌인 바 있는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1~3년 주기로 또다시 굿판을 벌인다. 즉, 주기적으로 신을 누르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귀신문제를 다루는 것은 매우 복잡하여 뾰족한 처방이 없는 실정이다.

 요컨대, 각종 귀신문제의 처방은 해원이다. 그러나 전형적인 원귀는 원한을 갚기 전에는 결코 해원이 되지 않는다. 이것이 신계의 큰 두통거리이고 또한 부지불식중 인간사에서도 피해를 입고 있다.

 해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생전에 영적 순준을 높여 3천의 귀신으로 전락하지 않는 방법이다. 적어도 4천의 신명만 되어도 어느 정도 감정 통제가 가능하다. 원한을 갚기를 포기하고 더 높은 영적 진화를 위해 곧바로 윤회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인류 전체의 정신 수준을 한 차원 더 높인다면 원귀에 의한 각종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일시적인 해원의 방법에서 벗어나 좀 더 근원적인 방법을 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현생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자신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소중한 정신을 팽개치고 물질의 노예로 살다가 끝내 귀신으로 전락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신을 아끼는 사람이라면 이 점을 깊이 통찰하고 정신계발에 힘써야 되지 않을까 싶다.    

-----------------------------

7) 죽어 영혼이 되었으면 가시와 같은 물리적 자극에 영향 받지 않아야 할 것인데, 영적 수준이 떨어지는 3천의 귀신은 살았을 때의 기억으로 실제로 아픈 것 마냥 느끼는 것이다.

8) 신이 들려 말하는 소리


출처 : 태극선법 (玄同仙院)
글쓴이 : 玄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