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神의 世界

[스크랩] 7.영혼이 사는 곳

검은바람현풍 2012. 3. 7. 15:38
 

영혼이 사는 곳


 3천의 귀신과 4천의 신명은 5천 이상의 선신(仙神)들과는 달리 지상에 가까이 거하고 있다. 이는 인계의 영적 차원이 대체로 이들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선계는 지상과는 동떨어진 하늘나라, 즉 우주의 어느 한 공간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형계와 영계(상계)의 공간 개념은 상이한 것으로, 형계에서의 공간은 결정적(決定的)이지만 상계에서의 공간은 가변적(可變的)이다. 그런즉 인간의 정신 수준에 따라 얼마든지 그 거리를 좁힐 수 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이치를 깨달아 정신이 5천에 오르게 된다면 이 자에 한해서는 선계가 지상에 접하여 있는 것이 될 것이다. 반면에 감정에 영향을 쉽게 받고 판단력이 흐려 언행이 불순한 사람이 있다면, 이 자는 3천의 귀계가 접하여 있을 것이다. 또한, 이 보다 더 심각하여 육신의 환락만 추구하고 충동적으로 언행 하는 자는 실로 그 정신이 동물적이라 할 수 있는 바 2천의 축신계와 접하여 있다 할 것이다. 

 이렇게 신이 응하는 것도 인간의 영적 수준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따라서 신계의 위치는 곧 영적 차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지상에 가장 근접해 있는 귀신들은 어디에서 기거하고 있는가?

 옛 사람들은 귀신 하면 으례이 무덤에서 사는 것으로 믿어 왔다.    다음의 설화에서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옛날 어떤 나그네가 산길을 가다가 그만 날이 저물고 말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묘 옆에서 자기로 했다. 한참을 자는 데 어디선가 사람소리가 나서 깼다. 가만히 들어보니, “여보게, 여보게!”하고 조금 떨어진 묘에서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왜 부르나?”하고 나그네가 있는 묘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저쪽 묘에서, “오늘 밤이 내가 죽은 날일세. 그래서 아들 녀석이 오늘 밤에 내 제사를 지낸다네. 나하고 같이 제사밥이나 먹으로 가세나.”

 그러니까 다시 이쪽 묘에서 소리가 났다.

 “나는 보다시피 손님이 와서 못 가네. 자네나 얼른 다녀 오게.”

 “하는 수 없지. 그럼 나만 다녀 오겠네.”

 그리고는 이내 조용해져서 나그네는 다시 잠이 들었다. 한 참을 자고 있었는데 다시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 다녀 왔네. 자네 집의 손님은 잘 있나?”

 “으응, 잘 있네. 그런데 어째서 벌써 왔어?”

 “가 보니까 신통치 않아 이렇게 일찍 왔네.”

 “아니, 뭐가 그리 신통치 않아?”

 “제사 지내는 태도들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아 손주녀석을 아궁이에다 집어 넣고 왔네.”

 “그게 무슨 소리야? 얼마나 잘못했기에 그랬어?”

 “아, 국이라고 보니 글쎄 구렁이를 집어 넣어 놓고, 밥이라고 보니 바위덩이를 넣어 놓았는데 어디 먹을 맘이 생기겠는가? 그래 홧김에 손주 녀석을 아궁이에다 집어 넣고 왔다네.”

 “듣고 보니 자식들이 원체 잘못했구만.”

 나그네는 이런 말소리를 듣다고 피곤하여 그대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 밤에 헛것을 들은 것은 아닌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무덤에서 들린 아들의 이름을 기억하여 물어물어 찾아갔다. 그리고는 주인에게 물었다.

 “혹시 어젯밤에 아무 일 없었습니까?”

 “아이고, 어제 저녁에 제사를 지냈는데, 우리 집 아들녀석이 아궁이에 데어 경황이 없었습니다.”

 “어제 누구의 제사를 지냈습니까?”

 “예, 저의 아버지 제사를 지냈습니다.”

 나그네는 어제 밤에 묘에서 들은 이야기를 하고는 밥과 국을 살펴보니, 과연 밥에는 돌이 들었고 국에는 머리카락이 빠져있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자신이 어제 밤에 헛것을 본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 집 주인은 감명을 받아 다시 제물을 마련하여 정성껏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최운식,《충청남도 민담》)


 그런데 실제로 귀신은 이상의 설화 같이 무덤에만 거하는 것은 아니다. 흔히 귀신들은 백(魄/시체)이 놓여진 무덤에 기거하기도 하고, 여기서 벗어나 자유로이 떠돌아다니기도 한다. 무덤에 기거하는 경우는 영이 아주 퇴화하여 해체의 위기에 놓여 백을 통하여 지기를 얻고자 하는 경우와, 자신의 사인에 원한이 사무친 경우를 들 수 있다. 후자의 경우는 대개의 귀신들이 억울하게 비명횡사하였을 때 그 죽은 자리를 좀처럼 떠나지 않는데 있다. 가령, 물귀신이라 하면 물에 빠져 죽은 귀신인데, 억울하게 객사하였기 때문에 원한이 남아 아직도 죽은 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이다. 차에 쳐 죽은 귀신도 흔히 그 차에 계속해서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귀신이 정혼으로 되어 있어 원한이 사무치면 죽은 자리를 떠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명산을 찾아가 조상신을 찾아 제 자리를 찾게 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흘러야 하는바, 죽은 자의 후손이나 친지가 직접 천도제를 올려 조상신계로 인도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제 명에 맞게 죽는 경우는 대개 저승사자가 대기하고 있어 신계에서 자리잡기에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돌발적인 사태에 의하여 객사하는 경우는 명부에서도 손 쓸 겨를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귀신은 객귀가 되어 떠돌아다니기도 하고, 퇴화되어 무덤에 거하며 지기를 흡기하거나 죽은 장소를 떠나지 못하고 맴돌기도 한다. 명부를 거쳐 조상신계에 들어온 귀신이나 신명들은 지령부에 속하여 신계의 일을 맡아 하거나, 산천을 중심으로 무리를 지어 모여 살기도 하고, 혹은 집집마다의 터주가 되기도 한다. 집에서도 부엌, 안채, 마당, 변소, 사랑방 등등에 따라 나누어 신이 거하기도 한다. 그리고 무속에서 보는 것과 같이 인간에 들어 붙어 강신을 내리기도 하는 등, 실로 귀신과 신명은 이렇게 광범위하게 인간 세상과 연관을 맺으며 존재하고 있다. 실제로 이신통(耳神通)이 일어나 영혼의 소리를 듣게 되면 명동 거리에 사람이 붐비는 것과 같이 주변에 귀신이나 신명이 널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지 그 영향이 미미하여 있는 듯 없는 듯 할 뿐이지 신이 인간의 주위에 지천으로 널려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출처 : 태극선법 (玄同仙院)
글쓴이 : 玄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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