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구조
http://cafe.daum.net/temple10 불법과 놀자 - 허해구님 글
이 세상의 일치고 결과가 없는 일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에도 반드시 결과가 있으므로 영혼은 존재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영적현상에 대해 현명히 대처하고 인간의 삶에 가장 소중한 생명과 정신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사실로 존재하는 영혼의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되며 더욱 확실히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오늘날 세상에는 영혼에 대해 알지 못하다 보니 지독한 어리석음을 범하는 경우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첫째는 무당에 관한 이야기이다.
요즘 영적 현상이 많이 나타나다 보니 이것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긴다. 그래서 무당들을 일반 사람보다 탁월한 영성을 지닌 뛰어난 존재라는 주장도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함부로 짓는 口業에 해당한다.
무당이란 존재는 한 마디로 말해서 자기의 정신이 약한 관계로 다른 영혼에게 자신의 영혼을 점령당한 상태를 말한다.
한과 집착이 있어 세상을 헤매던 유혼들은 자기와 인연이 닿거나 병에 걸리어 극히 기운이 약해진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오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영매들은 무당의 집안이라든가 병이 걸려 몸이 약해진 사람, 그리고 금식을 많이 하여 몸이 영혼을 지켜주지 못할 정도로 허약해진 상태에서 귀신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당이나 영매는 남다른 영성이 있어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어둡고 잘못된 삶으로 자신을 망침으로써 유혼들이 보기에 극히 의식이 허약하고 만만하여 유혼의 재물이 된 것이다.
유혼이 사람의 몸에 들어오면 그 혼은 안전한 보호막을 갖게 되기 때문에 매우 편안함을 얻게 되어 그 사람을 떠나려고 하지 아니하며 또 사람의 몸에서 기운을 흡수하여 덩치가 커지기 때문에 들어오기는 쉬워도 떠나기는 어렵다.
더구나 유혼들은 올바른 정신을 가지지 않은 욕망과 집착이 많은 의식체이기 때문에 유혼이 남의 몸을 차지하면 유혼은 그 사람의 몸을 빌어 자신의 집착이나 한을 풀려고 하며 몸 주인에게 온갖 무리한 요구를 하여 몸 주인은 파행적인 행동과 정신분열현상을 보이게 된다.
그리하여 유혼에게 자신의 몸을 점령당한 몸 주인은 남의 삶을 살게 되며 결국은 남의 한풀이를 하다 유혼과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이와 같이 영혼들이 많이 나타나는 나라가 바로 인도나 티벳과 같은 동남아시아 쪽인데 그쪽의 귀신들은 생자들 속에서도 자신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영적 비밀을 많이 알고 있어 세상 속에 귀신이 나타나 영향력을 발휘하는 무서운 일들을 많이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생사가 구별되어야 할 생명의 원리를 혼란시킴으로서 사회를 크게 어둡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는데 그 좋은 사례가 인도의 유명한 요기 "사이바바"의 환생사건이다.
요기 "사이바바"는 오래전에 죽은 사람인데 어느 날 갑자기 젊은 사람이 나타나 자신이 사이바바가 재림한 것이라 선언하면서 생전의 사이바바와 비슷한 행동을 하여 사람들이 다시 그를 사이바바라고 믿고 따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속에 숨어있는 영적 비밀은 사이바바의 영혼이 세상을 떠돌다 한 나약한 젊은이의 영혼을 누르고 그의 몸을 빌어 세상에 나타난 것으로 그의 세상에 대한 집착과 명예욕이 죽음에도 눈을 감지 못하고 떠돌다가 생사의 이치를 어기고 다른 사람의 몸을 빌어 나타나 무당의 혼주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라마교의 달라이라마의 이야기가 있다.
사람은 죽으면 죽음과 동시에 깊은 잠에 들어 반야의 세계로 들어간다.
반야의 세계는 모든 것이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는 우주의 근본자리인 것이다. 이때 과거의 모든 기억은 사라지고 기질과 성품과 근기만이 남아 다시 새로운 인연을 만나 생명으로 태어나게 되는데 그래서 모든 사람은 새로 태어나면 과거의 기억이 없는 것이 정상인 것이다.
이것은 한 알의 밀알이 완전히 썩어야 새싹을 낼 수 있듯이 과거의 자신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서는 새 생명으로 날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인 것이다.
과거의 기억이 남아있다는 것은 아직 과거의 자기가 죽지 않은 것으로 유혼의 상태로 떠도는 것을 의미한다.
위의 두 가지 경우에 영매가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죽은 자 의 영혼이 다른 사람의 몸으로 들어간 때문인 것이다.
달라이라마가 전생을 기억한다는 것도 바로 죽은 그의 영혼이 어린 아이의 몸에 스며들어가 아이의 영을 점령한 것을 의미하는데 그는 아기 때부터 몸을 점령함으로서 완전히 새롭게 윤회한 것처럼 고도의 위장술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다른 사람의 영혼을 제압하고 남의 몸을 빌리는 것은 생명의 이치에 어긋나는 가장 큰 죄악이라는 사실이다.
남의 생명을 해치는 일은 죽은 자의 영혼은 보존될 수 있지만 남의 영혼을 침범하는 일은 그의 후생까지도 완전히 소멸시킴으로써 생명의 원리에 위배되는 가장 큰 죄악인 것이다.
이것은 성자들이 엄격히 금한 일로서 산자와 죽은 자가 어울리게 되면 생명의 질서가 흐려지며 산자들에게는 온갖 병과 액운이 닥치게 된다.
성자들은 살아있을 때 자신에게 주어진 인연에 따라 자신의 할 일을 묵묵히 다하고 아무런 한이 없이 근원의 세계로 돌아가셨을 뿐, 한이 되어 이 세상에 떠도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세상에 떠도는 유혼이 되면, 세상의 탁기와 고통에 의해 자신의 영혼을 보존할 수 없고 어두운 운명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영혼의 이러한 비밀을 알게 되면 윤회에 대한 많은 의문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요즘 윤회에 관한 책이 많이 나오고 최면술의 기억퇴행에서 전생을 기억해내는 사례가 많이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 사람의 전생이 아니라 그 사람의 몸속에 스며든 수많은 영적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영혼은 생명의 순환과정에서 모든 것이 지워지고 다시 나는 반야라고 하는 망각의 공간을 건너오기 때문에 결코 어떠한 과거의 기억도 남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어떤 수단을 통해 전생체험을 한다는 것은 모두 떠도는 영에 의한 환상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영이란 산자가 죽어 유혼이 된 것이니 영매들이 하는 말이 모두 거짓말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그들은 잘못된 욕망과 집착에 사로잡힌 영들로서 유계를 떠돌면서 겪은 수많은 고통 속에 그 의식이 정상이 아닌 상태이기 때문에 그들의 말은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최면 등을 통한 전생체험을 가급적 하지 않는 것이 좋으며 대부분의 윤회에 관한 글들도 각자의 생각이나 환상을 써 놓은 것이니 가능하면 이들을 멀리해야 한다.
오늘날의 현실은 한이 이슬처럼 내린다고 할 정도로 떠도는 유혼이 온 세상에 가득 차 있으며 병적 증상들 중 반 이상이 영이 붙어 생긴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와 같이 영혼의 문제는 우리주변에서 사람들의 생활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이를 그냥 외면하고 지나갈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나의 경우에도 명상을 하다보면 내 영혼이 분리되어 나의 몸을 내려 보는 유체이탈 현상을 많이 체험하곤 했는데 어떤 경우에는 돌아다니다 어떤 장소를 보고 와서 깨어나 그곳에 가보면 내가 본 일들이 정확히 존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영의 실재성과 중요성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자신의 영혼을 잘 가꾸는 법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열의를 다해 배워야 하는 것이다.
영혼은 존재하는 것이며 삶은 생명의 씨앗인 영혼을 기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영혼은 생명의 순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으로 마치 농사를 짓는데 있어 씨앗과 같다.
삶은 자기의 씨앗을 잘 키워 가장 좋은 인간완성이라는 열매를 맺는 과정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올바른 인간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영혼의 구조와 그 형성과정을 잘 알아야 한다.
이것을 알게 되면 오늘날 나와있는 모든 교육론이나 심리학은 다시 써야 할 지 모른다.
과거 존 로크의 오성론과 같은 것은 영혼의 실체와 구조를 모른 상태에서 경험적인 접근을 한 것이니 단순한 이론에 불과할 뿐 실재는 아니다.
그는 인간의 마음은 백지상태에서 시작되어 경험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했다. 그러나 사람은 나면서부터 모든 사람의 성품과 근기가 다르고 업도 다 다르다. 사람은 겉으로는 다 똑같은 사람 같아도 그 천성은 풀과 같은 사람에서부터 돼지 같은 사람, 맹수 같은 사람, 원숭이 같은 사람, 천신과 같은 사람 등 그 유형이 끝이 없다.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도 다 그에 맞는 의식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성질이 다르고 취미가 다른 것은 그 의식 속에 입력되어 있는 일들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똑 같은 환경을 만나도 각자 대응하는 방식이 모두 다 다른 것이다.
영혼의 구조를 살펴보면 기운으로 된 의식의 핵이 있고 이 핵은 기운의 움직임을 통해 의식을 나타내며 의식은 환경을 만나면 마음을 낸다.
그래서 사람들은 체험을 통해 새로운 사실들을 마음에 입력시키게 되고 경험한 사실들은 마음을 거쳐 그 핵인 영혼에 저장되게 된다.
그리하여 한번 저장된 업은 영원히 되풀이되면서 자신의 행위를 되풀이하게 되는데 전과가 있거나 한번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은 다음에도 똑 같이 일을 저지르는 경향이 강한 것은 이와 같이 자신의 마음속에 그러한 업이 잠재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한번 의식 속에 들어가게 되면 어떤 작은 일도 쉽게 없어지지 않으면서 자신의 활동에 계속 영향을 주게 된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잘 살고 싶은데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러한 현상들은 과거 자신 속에 있었던 일들의 흔적들 때문이며 이와 같이 우리들의 마음속에 깃들어 우리자신을 움직이고 있는 의식 속의 일들을 두고 업(業)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삶의 모든 활동은 미래의 자신과 후생을 있게 하는 원인들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매 순간마다 좋은 인연을 접해야 하며, 바른 이치를 배우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바른 이치를 알고, 좋은 일들을 만들게 되면 그만큼 그 업이 맑아지고, 우리가 잘못 알고 잘못된 일을 하게 하면 의식은 그 잘못된 일들을 받아들여, 의식이 어두워져 자신도 모르는 불행을 짓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명확한 생명의 이치와 인과의 법칙을 알게 되면 사람은 지금과 같이 쉽게 잘못을 저지를 수 없게 된다.
오늘날 우리사회에는 너무나 많은 나쁜 환경과 인과의 이치에 어긋나는 헛된 망상들이 세상을 가득 메우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나쁜 원인에 물들기 쉬운 상황으로 사람들이 나쁜 경험을 많이 하게 되면 세상은 더욱 어두워지고 그 사람의 미래와 운명은 더욱 불행 쪽으로 흐르게 된다. 그러므로 이를 안다면 우리들은 우리사회에 난무하고 있는 나쁜 환경과 요인들에 대해 남의 일처럼 소홀히 할 수가 없는 것이며 내 집안을 가꾸듯 우리사회의 불의와 부정과 탐욕과 어둠에 대해 단호히 대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탁류는 너무나 거대하여 그 흐름을 억제할 길이 없기 때문에 인류의 미래는 암담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좋은 것은 좋은 결과를 낳고 나쁜 원인은 불행을 가져온다는 인과의 이치 속에 인간완성의 길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된 원인에 의해 자신의 마음속에 형성된 업을 없애버리면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동양에는 그동안 인간완성에 이르기 위한 수많은 명상법이 많이 나왔지만 명상을 통해 삼매에 든다는 것은 하나의 보조수단에 불과할 뿐 그것은 인간완성에 이르게 하는 정법이 아니다.
인간이 자신의 업을 태우고 인간완성에 이를 수 있는 최고의 정법은 진리와 세상에 대한 사랑의 불로 자신의 사사로움과 애욕을 태우는 한 길 뿐이다.
명상을 통해 인위적으로 삼매에 들어가는 것은 흙탕물이 가라앉은 것과 같아서 고요히 앉아 있을 때는 업이 가라앉아 깨달음이 온 것 같아도 움직여 세상의 인연에 휩쓸리게 되면 또 다시 번뇌가 일어나 어지러워지고 만다. 삼매와 마음의 평안은 업을 가라앉히는 것이 아니라 진리와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 모든 사심과 욕망을 불살라 버림으로써 티끌하나 없는 맑은 반야심을 증득하게 될 때 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진실한 삶을 통한 인과의 결과로 완성에 이르지 아니하고 갖가지 명상법으로 요령을 부리거나 욕심으로 깨달음을 얻으려고 해서는 오히려 화가 오게 된다.
오늘날 구도의 길을 가다 사이비종교의 교주가 되는 많은 수행자들은 바로 이와 같이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 진리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완성에 이르려는 명예욕으로 도를 구하다가 마의 유혹에 넘어가게 된 것이다.
인간완성(해탈)은
하늘도 꺽지 못할 용기와 세상을 덮을 만한 사랑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으로 해탈에 이르기에 그에 합당한 선과의 축적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완전한 인과의 법칙이며 깨달음의 정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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