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단학

日月之書 11) 修眞九要 (3)

검은바람현풍 2012. 1. 24. 11:36

 

제 5요 第五要 연기축기 煉己築基

 

심원춘이 이르기를 칠반환단七返還丹은 사람이 하는 것이나 먼저 반드시 련기煉己를 하여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하였고 오진편에 이르기를 만약 구전환단을 닦아 이루고자 한다면 먼저 반드시 연기하여 마음의 체를 잡아야 한다고 하였으며 대개 수진修眞의 道는 환단이 가장 쉽고 연기가 지극히 어렵다. 만일 연기하지 아니하고 환단부터 이루고자 한다면 이는 절대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환단이란 집의 기둥과 같고 연기란 집의 터를 다지는 것과 같다. 집의 터를 다지지 아니하고 대들보와 기둥을 어디에 세울 것인가?

일찍이 연기를 아니 하고도 환단을 맺은 자는 없었다. 배우는 자 스승의 구결을 얻거든 급히 연기하라. 연기가 순수해져 화로가 마련되면 좌우의 근원이 서로 만나 마음을 얻어 응수하게 되는 것이니 련과 홍이 서로 엉기고 정과 성이 서로 합하게 되면 이때부터는 얻고 나서 다시 잃어버리는 걱정이 없게 된다.

특히 사람이 출생한 후로 양이 다하여 음이 생기고 선천이 다하여 후천으로 용사用事하게 된다.

현재 내가 쓰는 오래된 물건들이 모두 본래 나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었는데도 백가지 근심을 그 마음에 더하고 만 가지 일로 그 몸을 수고롭게 하여 精이 새고 神이 어두워지며 氣를 패퇴시키니 이 환신幻身을 깨진 항아리나 이지러진 솥과 같이 하니 깨진 항아리로 어찌 물을 담을 수 있겠는가? 사람의 신체가 쇠패하면 단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니 모두 같은 이치이다.

그러므로 비록 후천의 거짓된 물질이라고는 하나 환단의 약재가 아니겠는가?

환단하지 아니하였을 때에는 이것의 도움을 받아 공을 이루는 것이니 또한 이 몸을 손상시키는 것은 옳지 못하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선천의 진종眞種이 없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다만 후천이 넉넉하지 못함을 두려워하라고 했으니 대개 후천이 넉넉하면 선천을 회복할 수 있고 선천을 회복한즉 후천을 기화氣化시킬 수 있으니 련기煉氣와 축기築氣의 공을 어찌 가볍게 볼 수 있겠는가?

무엇을 煉氣라 하는가?

탐애貪愛를 줄이고 음정陰精을 굳게 가두고 잠을 쫓고 나를 수고롭게 하여 남에게 이로움을 주며 세상의 번거로움에서 벗어나고 겸손의 미덕을 쌓고 세상일에 물들지 아니하고 용맹정진하여 道로써 머물고 옛 선인들의 수도하던 곳을 찾아 그 뜻을 새기고 부귀富貴하여도 음란淫亂하지 아니하며 가난하여도 뜻을 굽히거나 옮기지 아니하고 무력武力에도 굴복하지 아니하며 거친 베옷 속에 玉을 품은 듯이 큰 지혜智慧는 어리석음으로 지키고 큰 재주는 졸렬拙劣한 것 같음이 또한 연기이다.

연기의 공이 수없이 많으나 모두 無己-無我에로 귀착되는 것이다.

노자가 이르기를 나에게 큰 근심이 있으니 이는 나에게 有身이 있는 것이다. 내가 無身이라면 무슨 근심이 있겠는가? 연기하여 無己에 도달하였다면 그 몸을 바깥 하여도 몸이 보존되고 후천이 온당하여 바탕이 견고하여지니 후천의 진양이 래복來復하고 혼돈混沌한 것 같으나 一如하다.

선천기와 후천기를 얻은 자, 마치 취한 것 같으나 일시진 내에 丹을 이루게 된다.

만약 연기하지 않은 채 功을 운행한다면 후천이 견고하지 못하여 비록 선천이 지척咫尺에 이르러도 맞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니 대개 鉛(납)이 이르렀으나 水銀이 맞지 못함이며 坎(水)이 왔으나 離(火)가 받아주지 못함이 되는 것이다. 저가 왔음에도 내가 대접치 못하는 것이니 슬프다, 축기할 때에는 반드시 탁약(호흡)을 사용해야 하며 연기 시에는 眞煉을 필요로 하니 연기와 축기가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제 6요 第六要 화합음양 和合陰陽

 

修眞의 道는 金丹의 道이다. 금단의 도는 造化의 도이다. 조화의 도는 음양의 도이다. 易에 말하기를 한번 음하고 한번 양하는 것을 도라 이른다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천지가 인온(氤氳:만물을 생성하는 기운이 왕성한 모양)하여 만물이 화순하고(자연의 생육) 남녀가 정을 이끌어 만물을 化生하니 짝 없는 음으로서는 生할 수 없고 홀로된 양은 기르지(養) 못한다. 음과 양이 서로 합하여야 만이 능히 낳고 기를 수 있다.

金丹의 도는 오직 선천의 진일한 기운을 채취하는 것이다. 선천의 氣는 無形無象이어서 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듣지 못한다. 잡으려 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니 지극히 허무한 가운데 저절로 오는 것이다.

성인은 實다운 것이나 모양은 虛하고 참으로 있는 것이나 모양은 無인 것을 쓴다. 이 실다운 것과 참으로 있는 것은 바로 眞陰과 眞陽이다. 虛와 無라는 것은 二八初弦의 기이다(진음진양의 처음 싹트는 기운, 즉 처음 피어나오는 선천진일지기, 즉 감坎☵中의 天生一과 리離☲中의 天生七의 合이 八이요, 坎中의 地生六, 離中의 地生二의 合이 또한 八이다). 이 기운은 음양의 교감이 아니면 능히 象을 나타낼 수 없다.

만약 금단의 대도를 닦고자 한다면 이 음과 양을 터전삼지 않고는 달리 어떤 술책이 없다. 다만 음양이 한 가지가 아니어서 진실로 거짓된 것과 참된 것을 알아야 하니 잘못하면 몸과 마음을 수고롭게 할뿐 이익은 없고 손해만 있게 되니 밝게 분변하지 않을 수 없다.

남녀의 음양은 탁한 세상의 음양이며, 신장과 심장의 음양은 환신幻身의 음양이다. 해와 달은 천지의 음양이며 동지와 하지는 일년의 음양이다. 초하루와 보름은 한달의 음양이고 자시와 오시는 하루의 음양이며 二候와 四候는(陽生一候 藥生一候 合而二候 마음이 죽으면 神이 되살아나고 몸이 虛하면 기가 일어난다. 달마는 二候에 모니를 캐고 四候에 別神功한다고 했음) 한때의 음양이다.

무릇 이 모두는 금단의 음양이 아닌 것이니 금단의 음양은 我家로써 음을 삼고 他家로써 양을 삼으며 나는 이離가 되고 他는 감坎이 되어 離 가운데 一陰이 眞陰이 되고 감중의 일양이 진양이 된다.

이것은 坎으로써 離를 메우는 것이니 이는 진음이 진양을 求하는 것이며 진양으로써 진음을 건지는 것이다. 이 음양은 또한 內外의 다름이 있다. 內의 음양은 順行의 음양으로써 生身 이후의 일이며 후천이요, 人道이다. 外의 음양은 逆運의 음양이며 生身 이전의 일로써 선천이며 仙道이다.

내외의 음양은 모두 남녀의 相이 없으며 非色非空이요, 卽色卽空이다.

有도 아니고 無도 아니면서 卽有卽無이다. 만약 색이나 공, 유와 무의 형상에 집착한다면 이는 진음, 진양의 실다운 자취가 아니다. 이미 음양을 알았다면 다음은 조화가 중요하다.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도록 하고 어느 한쪽에 편중되지도 않아야 하며 너무 빠르거나 늦지도 말아야 하며 有도 아니고 無도 아니며 너무 밀착하거나 떠나 있지도 않으며 너무 서두르거나 게으르지도 않아야 한다.

혹 양이 움직이면 음이 따르고 음이 느껴지면 양이 응한다. 혹 음 중의 양을 쓰며 양 중의 음을 쓴다. 혹 음을 빌려 양을 온전히 하고 양을 써서 음을 제어하기도 한다. 혹 속의 음양으로써 바깥을 돕고 혹 바깥의 음양으로써 안을 건진다. 따라서 모두 內外가 合道해야 한다.

금단은 허무한 가운데 맺어지는 것으로 채취한 후에 복식하여 장생불사 한다.

참동계에 이르기를 같은 종류는 교묘함을 베풀기가 쉬우나 다른 종류끼리는 교묘하기가 어렵다 하였고 오진편에 이르기를 내약을 돌이키면 외약과 같은 것이니 內가 통하면 外도 또한 반드시 통한다 하였다.

丹頭가 서로 화합하면 類가 서로 같아지니 온양은 두 가지 작용이 있다.

삼봉조사 말하기를 세간의 음양은 남녀가 서로 짝을 이루어 子孫을 낳아 대대로 전하여지는 것이니 順하여 범인이 되고 逆하여 仙이 되는 것은 다만 中間에서 전도함에 달려 있으니 음양을 조화하는 도가 모두 여기에 있다.

 

 

제 7요 第七要 심명대후 審明大候

 

옛 경서에 이르기를 "성인께서 약은 전하였으나 火는 전하지 않아서 화후를 아는 사람이 적다" 한즉 이는 약은 쉬우나 화후는 가장 어렵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대개 약물이 비록 찾기가 어렵다고는 하나 만약 밝은 스승을 만나 지점하여 환히 밝게 보이게 하여 참으로 알게 해준다면 현재 있는 것을 취하고 다른 곳에서 구함을 바라지 않게 되니 이것이 곧 쉽게 알 수 있는 까닭이다.

화후에 이르러서는 문팽(文烹-삶다)이 있고 무련(武煉) 下手가 있고 휴갈休歇이 있으며 내외가 있고 時刻이 있고 爻銖(효수)가 있으며 빠르고 늦음이 있고 止足이 있으며 一步에는 一步의 화후가 있고 步步에는 步步의 화후가 있어 변화가 다난하므로 수시로 적절히 행하여야 하니 바야흐로 그때그때의 법도가 있다. 만약 털끝만치의 차이가 벌어진다면 문득 천리나 잃게 될 것이니 무릇 五行을 모우고 四相을 화합한다는 것은 천지의 生機를 훔치고 음양의 祖氣를 훔치는 것이다.

두병을 돌리고 천강을 굴리며(眞意와 眞氣를 말하나 천강을 잡고 두병을 돌린다 함은 소주천의 火로 약을 달이는 것을 표시한 것으로 진정한 소주천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암시하고 있다) 곤문坤門을 열고 간호艮戶를 막으니 그 묘함이 적음積陰의 아래에서 일양이 來復하는 때에 있다.

이 때라는 것은 천지와 더불어 그 덕을 합하고 일월과 더불어 그 밝음을 합하고 四時와 더불어 그 차서를 합하고 귀신과 더불어 그 길흉을 합하는 것이니 이른바 일 년에 다만 一月이 있고 일월에 다만 하루가 있고 하루에 다만 한 時가 있으니 이 一時는 참으로 놓치기는 쉽고 찾기는 어려우며 어긋나기는 쉽고 만나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를 얻은즉 生道에 들 수 있고 잃은즉 死道에 들게 된다.

성인은 이 一時에 陰符와 陽火를 움직여 天根을 뽑고(만물의 근본이며 우리의 육신을 생하는 원천이다. 坤☷이 乾☰의 中爻 陽精을 얻으니 곧 坎☵이 된다. 이로 인하여 眞陽이 발생하니 天根이라 한다) 월굴月窟을 뚫으며(活午時를 말한다. 진양화眞陽火가 정문頂門에 올라 一陰이 생하기를 기다리니 그 상이 乾이 巽을 기다림이며 월굴이라 한다) 혼돈混沌을 파하고 (神 이 서로 교합할 때에 天地人我가 모두 아득하여 그 어떠한 것도 분명함이 없는 상태) 서주를 딴다.

칠십 이후를 돌리고 이십사절기의 正氣를 빼앗으니 水火(연홍의 體 火가 水 속에 들어가면 眞意로써 成丹한다) 상제相濟함이 여기에 있고 금목교병金木交倂(팔만 사천 모공이 활짝 열리는 것은 金이 發하는 것이요, 모든 것이 부드러워져 없는 것 같음은 木의 性이 發하는 것이다. 이때에 精이 性으로 돌아간다)이 여기에 있다.

연홍상투鉛汞相投(연은 본래 火體이며 금정金情이고, 은 본래 水體이며 본성本性이다. 이 두 가지는 先天의 神이다. 이 두 가지를 솥 안에 넣고 달이면 功을 이룬다)가 여기에 있고 安身立命이 여기에 있으며 出死入生이 여기에 있다.

만약 이때를 잃으면 음양은 분리되고 참된 것은 숨게 되고 가짜가 일을 주관하게 되니 이미 후천에 떨어져 억지로 쓸 수가 없다.

曲江의 언덕에 이르러 달이 밝다 함은 약을 生하는 화후이며 소식이 오는 때에 근본을 구한다 함은 약을 캐는 화후이다.

水가 二를 生함이 바르고 참되니 만약 三을 기다린다면 더 나아갈 수 없다 함은 약이 어리고 늙음의 화후이고 鉛이 癸를 만날 때에 급히 캐고 金이 가득하면 도리어 감당할 수 없다함은 빠르고 늦음의 화후이다. 홀연히 나타난 龍이 단전에 있음을 보면 급히 맹렬히 단련하여 찌고 삶아야 한다. 다만 호랑이가 휘파람 소리를 내며 굴에 들어가는 것을 들으면 마땅히 전도하여서 거꾸로 베풀어야 하는 것이니 武式의 화후를 써야 한다.

화로에 불을 지펴 약을 달이고 있을 때에는 神을 편안히 하고 숨을 고르게 하여 天然스럽게 하여야 하니 이는 文의 화후를 쓴다.

아직 환단하지 못하여 급히 단련하며 또 단련을 마치고 止足을 아는 것은 온양溫養의 화후이며 다만 화력을 조화롭게 한 후에 眞種子를 얻어 황아(神을 단련하여 이루는 眞 , 黃이란 中黃이며 芽는 생기生機의 싹으로 대약이 처음 나타나는 모습을 연유한 이름이다)를 점차 자라게 하는 것은 단을 이루는 화후이다.

마음을 자연함에 맡기고 삼가 조심하여 지키며 화로의 화후를 지켜보는 것은 단을 보전하는 화후이다. 大丹의 화후는 별도의 묘용이 있으니 吉함을 받아들이고 이룬 후의 위험을 방지하는 것은 태를 맺는 화후이며 혼돈 七日에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며 도반道伴을 의지하고 水火를 고르게 함은 고제固濟의 화후이다.

흙 가마에 돌아가 굳게 가두어 봉고封庫하고 구슬의 힘을 보급 받는 것은 태를 기르는 화후이며 납을 쓰되 보통의 납은 쓰지 아니하고 진연眞鉛을 쓰며 쓴 후에는 버린다 함은 추첨의 화후이다.

단조(丹灶)와 하거河車는 지나치지 않게 편안하게 할 것이며 학태구식鶴胎龜息을 면면히 함은 목욕의 화후이다. 하루 12시진 내에 뜻이 이르는 대로 하는 것은 위험을 방지하는 화후이다.

영아嬰兒(옥액환단 시에 그 단이 처음으로 뚜렷한 모양을 이룬다. 無中生有이므로 영아라 한다. * 선학사전에는 위와 같이 실려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대약의 씨앗을 진종자라 하고 그 진종자가 피어나오는 것을 黃芽라 하고 황아가 뚜렷이 모습을 이룬 것을 영아라 하며 이 영아가 도태를 이루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가 한결 같이 진기를 머금고 태를 이루어 성인의 기초를 이루는 화후이며 소주천 공부를 마쳤을 때에 처음 나타난다.

물음을 모두 물리치고 단을 성숙시켜 범상한 틀에서 벗어나 만년을 사는 것은 탈태脫胎의 화후이다. 이러한 대단종시大丹終始의 화후에도 문득 내외양용內外兩用의 화후가 있으니 범속凡俗에서 天上의 일을 구하며 12 때에 따라 세간의 재물을 쓴다 함은 약을 캐는 화후 中의 화후이다.

"언월로 가운데에서 옥꽃술이 생겨나고 주사의 솥 가운데에 수은이 고르다." 함은 단을 맺는 화후 中의 화후이다. 입정 七日에 진양이 다시 머리를 쳐들고 별도의 묘용으로 百神을 혼합한다 함은 胎를 맺는 화후 中의 화후이다.

유무有無가 모두 평립平立하고 물아物我가 모두 귀공歸空함은 태를 벗어나는 화후 中의 화후이다.

이에 內外二丹의 화후의 비밀을 모두 밝혔으니 그 가운데 또 더욱 미묘하고 오묘한 것은 神으로써 밝혀야 하는 것이니 사람마다 그때그때 알맞게 변통해야 할 것이며 문자로써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글을 쓰신 님께

 

저는 96년도부터 수도생활을 해본다고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몇 년 전 정신없이 이것저것 자료를 구해 보던 중 인터넷을 통하여 님께서 쓰신 글을 보고 소중하게 간직하여 오다가 저의 브로그를 정리하며 귀한 자료라 사료되어 이곳에 올려놓았습니다. 수시로 탐독하며 공부해 나가는데 마음을 다스르며, 차후에라도 인연이 있는 분들이 게시면 수행에 참고하실 수 있게 하고 싶은 욕심에서입니다. 귀중한 글을 담아오며 아무런 양해의 말씀도 드리지 못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곳을 통하여 사죄의 말씀을 드리오며 이곳에 이 글을 올려둘 수 있도록 선처하여 주시기를 간청 올립니다. 만약 저작권 관계로 불허하신다면 글을 남겨주십시오.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재삼 너그러우신 아량으로 용서하여 주시기를 간청 올림니다. 현풍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