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단학

日月之書 11) 修眞九要 (1)

검은바람현풍 2012. 1. 24. 11:32

 

수 진 구 요 修眞九要

 

 

 

서문 序文

 

참됨을 닦는 도는 천하제일의 큰일이며 또한 천하제일의 어려운 일이라 하겠다. 그것이 지극히 크고도 어렵기 때문에 옛 사람들이 천하의 希有한 일이라 한 것이다. 이 일은 조화에 밝고 음양을 통철하며 경서에 뜻을 두어 오래도록 변하지 아니하며 점진적으로 닦아나가는 자가 아니면 능히 행할 수 없다.

후세의 학인들이 이 일을 궁구하지 않는다면 달리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일찍이 도를 배우지 아니하고도 즉시 도를 이루고자 하고 사람의 길을 배우지 아니하고 곧바로 신선이 되고자 하니 도를 닦는다는 자들이 소의 털과 같이 많은데도 실제 도를 이루는 자는 기린의 뿔과 같이 적음이 조금도 괴이함이 없다 할 것이다.

내 어려서부터 도를 사모하였으나 正人을 만나지 못하여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였다. 이에 마음은 어지럽고 몸은 아쉬워져 거의 해만 입게 되었다. 후에 다행히 스승 감곡노인을 만나 대략의 香風을 얻어듣고 비로소 종전 수행의 허물을 알게 되었으며 또한 천하 도인들의 태반이 모두 그릇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때문에 나는 스승의 뜻을 서술하여 修眞하는 강령을 아홉 가지로 나누고 修眞九要라 명하였다. 그 법이 얕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이끌고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오르게 하니 초학자들을 위하여 차례대로 단계를 마련한 것이다.

도를 배우는 자(學道)나 닦는자(修道)를 막론하고 이 구요를 의지하여 순서대로 닦아나가면 마침내는 반드시 자득하게 될 것이다.

또한 능히 눈 먼 스승(盲師)과 눈 밝은 스승(明師)을 식별하고 正道와 邪道를 분별할 수 있게 되며 능히 천하에서 희유한 일을 행하지는 못할지라도 이 세상에 이런 희귀한 大事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니 부질없이 세월만 보내고 일생을 허비하지는 않을 것이다.

大淸 가경 삼년 戊午年 9월 9일 오원자 유일명이 自在窩中에서 敍하노라.

 

 

제1요 第一要 감파세사 勘破世事

 

오호라, 사람이 세상을 사는 것이 꿈같고 환상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나니 백년 세월이 순식간일 뿐이니 무상하기 짝이 없다.

비록 금광과 銀山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팔아서 性命을 살 수는 없을 것이며 효자 현손이 있다 하나 질병과 걱정을 덜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서둘러 수련하여 닦지 않는다면 임종할 때에 손은 바쁘고 발은 어지러워 허둥댐을 면할 수 없다.

염왕과 노자는 情에 머물기를 좋아하지 않으니 한번 사람의 몸을 잃으면 한없는 세월을 다시 태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도에 뜻을 둔 자 모름지기 입을 굳게 다물고 급히 수련하여야 바야흐로 큰길로 통함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즉 티끌 같은 세상의 인연을 끊지 못하고 망령되이 도를 이루는 환상을 갖게 되니 비록 몸은 이미 출가하였으되 마음은 아직도 出家하지 못한 것이 되어 일거수일투족이 세상에 있을 때의 공부와 다름이 없고 한번 행하고 그침이 모두 人情을 따라서 움직이므로 도를 이루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도를 듣지도 못하게 되니 어찌 출가를 귀하다 할 것인가?

예로부터 무수한 학인들이 모두 이와 같이 답습하니 도를 배우는 자는 소의 털과 같이 많으나 도를 이루는 자는 기린의 뿔과 같이 적다.

오진편에 이르기를 금을 쌓기를 산같이 하였더라도 때맞춰 장사꾼이 오지 않는다면 아무 쓸모가 없다고 하였고 了道歌에 이르기를 먼저 세상일을 가지고 가지런히 하고 초탈한 후에 道理를 잡고 세밀히 정을 연마하였으니 이 말은 세상일은 모두 거짓이고 性命이 최고로 진실하다는 뜻이다. 그 참됨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그 거짓됨을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한번 그 거짓된 것을 인식하게 되면 마음이 거짓 현상을 따르게 되어 모든 것이 거짓 되게 일어나게 되니 道와는 날로 거리가 멀어진다.

이에 스스로 성명을 아끼는 사람이 되지 못하여 허망한 것에 매달려 실답지 못하니 허송세월만 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니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옛날에 여조께서는 한번 꿈으로 인하여 모든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났으며 마조는 죽음을 깨달음으로써 도를 이룸이 가장 빠르게 되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먼저 세상의 일을 감파(勘破)한 후에 도를 닦음이 일반인들의 修眞보다 더욱 쉽고 빠르다 할 수 있겠다.

하물며 出家修行은 세상일을 감파한 후에 모든 것을 버리고 이루는 것인데 만약 세상일을 버리지 못하고 억지로 출가한다면 有名無實하여 하늘에 오르고자 한 것이 오히려 땅에 떨어진 셈이 되어 결국 모든 것을 패망케 되니 어찌 그릇되게 심기만 허비함이 아니겠는가?

내가 學人에게 바라는 것은 在家나 出家를 논하지 말고 진실로 우리에게 간절한 大事가 무엇인가를 분별하려면 먼저 세상일을 겪고 깊이 탐구하여야 할 것이다.

이렇게 이일 저 일을 탐구하다 보면 결국 모든 것이 허망함을 알게 되어 세상일에 탐착을 끊게 된다.

성명의 일은 진실로 큰 것이니 이를 따라 몸을 추스리고 바깥의 허망한 일을 지워버려야 할 것이며 실지를 몸소 밟고 스승을 찾고 도우를 방문하여 용맹전진하여 도를 위하여 몸을 잊는다면 자연 한결 같은 정성이 하늘에 통하게 되리니 조사가 暗中에서 이끌고 진인의 인도함이 있게 될 것이다.

 

 

제 2요 第二要 적덕수행 積德修行

 

오진편에 이르기를 만약 수행에 陰德을 쌓음이 없다면 動함에 여러 마구니들의 훼방이 있게 되니 가히 수행함에 덕을 쌓음이 修道者의 중요한 일이 됨을 알아야 한다.

만일 덕을 떠나서 따로 道를 말한다면 이는 이단의 사설이나 방문 외도가 되는 것이니 실제와는 차이가 많다. 그러므로 옛 성인들은 반드시 먼저 道를 밝히었고 옛 현인들은 반드시 먼저 덕을 쌓았다.

도를 밝히지 아니하고도 능히 성인을 이룬 사람은 있지 아니하며 덕을 쌓지 아니하고도 능히 현인이 된 자도 없었다.

그러므로 성인이 되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먼저 현인이 되어야 하고 도를 이루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덕을 쌓아야 한다.

따라서 도와 덕을 함께 하고 내외가 고르게 되어야 성현의 학업을 얻게 되리라.

도는 나를 위한 일이며 덕은 남을 위하는 일이다.

비록 도를 닦음은 끝이 있을지라도 덕을 쌓음에는 끝이 없다.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도록 仙, 佛, 神, 聖께서 도를 이루신 후에도 오히려 반드시 화광동진(和光同塵)하고 적공누행(積功累行)하여 三千功이 가득 차고 八百行이 완전해지기를 기다려 바야흐로 하늘의 조칙을 받는 것이다.

하물며 金丹의 大道는 귀신이 꺼리는 것이어서 大忠大孝한 사람이 아니면 능히 알 수가 없고 大賢大德한 사람이 아니면 감히 함부로 전하여서도 아니 된다. 억지로 전하여 노출시키는 것은 귀신이 기뻐하지 아니하여 암중에 재앙을 내리고 그 수명을 단축시키니 한갓 이익 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가 된다.

내가 감곡 노인의 선법을 얻고 大公으로서의 뜻을 품고 매양 뜻있는 사람을 보면 문득 이끌어주고 싶어 혹 물어보거나 간략히 한 자락을 보여주었다.

후에 그들을 살펴보니 자만자족하여 능히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날이 갈수록 게을러져 뜻과 기를 다 잃고 탐내고 번뇌함이 보통 사람보다 오히려 더 심하였다.

앞뒤의 몇 사람이 모두 다 이와 같으니 아, 슬프다!

이러한 무리는 반드시 선조의 덕이 없고 스스로의 行마저 쌓음이 없어 처음에는 부지런하나 나중에는 게을러 眞宗을 만회하지 못함이니라.

내가 조심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실언하여 사람들을 그릇되게 하였으니 또한 여러 차례 마장을 만났으나 크게 얽혀 들지 않아서 보배로움을 잃지 않은 것은 아주 다행한 일이라 하겠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느껴지는 바가 많았다.

그 후부터는 입을 굳게 닫고 함부로 법을 노출시키지 않았으니 이는 반드시 자질과 덕을 갖춘 자를 기다려 법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세상의 學人들은 門戶에 들기만 하면 곧 신선이 쉽게 되는 줄로 생각하여 동네방네 다 속이고 다니면서 삼갈 줄을 알지 못한다.

또한 한 올의 실과 한 톨의 쌀이 모두 온 세상 사람들의 피와 땀이며 한번 마시고 한번 먹는 것이 모두 중생의 수고로움이란 것을 생각지 않는다.

또 어떤 이는 口頭禪으로 사람들의 인기를 모으고 혹은 거짓 도법으로 사람들의 재물을 모으며 혹은 黃白術로써 속임수를 쓰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계교를 꾸미니 책으로 다 열거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후일 이러한 거짓이 쌓여 가득 차게 되면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알지 못할 것이다.

옛 사람들이 이르기를 두 뿔이 혹은 있다 하고 혹은 없다 하며 그 끝이 천 갈래 만 갈래로 달라진다 하니 이러한 무리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모름지기 이 도에 뜻을 둔 자는 반드시 덕행을 중히 여기고 스스로 節操를 세워서 진흙탕 같은 곳에서 조그만 이익을 얻고자 다투는 것으로 앞길을 망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무엇을 德이라 하는가?

노인과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겨 구제하고 고아와 과부를 가엾게 여겨 약과 차를 대접하며 다리와 길을 보수하고 위태롭고 곤경에 처한 이를 도우며 의리를 중히 여기고 재물을 가볍게 여기어 널리 방편을 행하는 것이니라.

무엇을 行이라 하는가?

자신이 힘들더라도 남을 이익이 되게 하며 세상의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아니하고 덕을 베풀되 갚음을 바라지 아니하고 원망이 있으되 원수를 맺지 아니하며 공이 있으되 자랑하지 아니하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옳음을 보면 반드시 하는 것이다.

능히 덕을 쌓고 행실을 세워 오래도록 힘을 다하면 마침내 귀신이 덕에 복종하며 품성이 세속을 초탈하여 당당하게 될 것이니 高人이 한번 봄에 곧바로 점찍어 제자로 삼을 것이니 大道를 가히 바라볼 만하다.

그렇지 아니한즉 한 가지 덕과 행실도 쌓지 아니하고 망령되이 도를 이룰 것을 상상하다가 우연히 高人을 만나게 되면 그 착하지 못함을 숨기고 착한 체 하며 스스로 고인을 속였다 자랑하니 이는 남이 자신을 보기를 간과 폐를 환히 꿰뚫듯 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또 다른 본분에 힘쓰지 않는 무리가 있으니 온갖 천박한 일을 다 행하니 아침에는 술집이요, 저녁에는 기생집이라. 입으로는 도덕을 말하나 속마음은 도적이다. 남에게 손해를 입히더라도 자신을 이롭게 하는 데에 천 가지 기이함과 백가지 괴이한 일을 다 꾸미고도 스스로 뉘우칠 줄을 알지 못한다. 이에 끝내는 자신을 원망하게 되어 복과 록이 다 없어진다.

단경을 훼손하고 다 미친 말이라 비방하니 참으로 지옥의 種子다.

이러한 사람들은 이단의 무리에 입문하여 사람이 되기를 구하나 끝내 얻지 못할 것이니 어떻게 감히 신선을 바랄 수 있겠는가?

오호라, 덕은 자기가 세상을 사는 일이요, 도는 스승이 전하여 신선을 이루는 일이니 덕을 쌓지 못하고서 도를 닦고자 한다면 사람의 일도 능히 이루지 못함인데 선도를 어찌 이룰 것인가?

재삼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글을 쓰신 님께

 

저는 96년도부터 수도생활을 해본다고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몇 년 전 정신없이 이것저것 자료를 구해 보던 중 인터넷을 통하여 님께서 쓰신 글을 보고 소중하게 간직하여 오다가 저의 브로그를 정리하며 귀한 자료라 사료되어 이곳에 올려놓았습니다. 수시로 탐독하며 공부해 나가는데 마음을 다스르며, 차후에라도 인연이 있는 분들이 게시면 수행에 참고하실 수 있게 하고 싶은 욕심에서입니다. 귀중한 글을 담아오며 아무런 양해의 말씀도 드리지 못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곳을 통하여 사죄의 말씀을 드리오며 이곳에 이 글을 올려둘 수 있도록 선처하여 주시기를 간청 올립니다. 만약 저작권 관계로 불허하신다면 글을 남겨주십시오.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재삼 너그러우신 아량으로 용서하여 주시기를 간청 올림니다. 현풍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