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제자 : 活子時와 正子時가 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오원자 : 道의 眞法을 모르고서는 알지 못한다. 活子時로 말할 것 같으면, 先天 眞陽이 後天에 가려져 있어서 스스로 修煉하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 그리고 活子時는 수시로 생기지만 사람들이 日用에 쓰기 때문에 생겨나도 소비하고 만다. 또 사람들이 모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가짜로 진짜로 믿기 때문에 진물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수련하는 사람이 이 경계에 이르러서 先天의 기운이 한번 발생할 때 眞法을 순리대로 써서 漸次로 닦고 점차로 거두어서(漸收) 약물이 축적하여 따스하게 기르면(溫之養之) 기운이 충족하고 神技가 온전하여 지며, 이때에 正子時가 이르러 大藥이 발생하게 된다. 이때에 服食工法을 써서 약을 採取해서 먹으면 眞汞(眞藥)이 나와 더불어 서로 相合하여 다시 원래대로 온전한 것이 되며, 혼돈한 기운이 큰 造化로써 합해 지느니라. 약을 먹은 다음 이레 동안 정신을 잃고 혼돈하여지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이로부터 後天 坎離法은 버리고 先天의 새싹(根苗)이 有爲에서 無爲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니라.
41) 제자 : 金丹의 道는 한번 얻으면 영원히 얻는다는데 어찌해서 죽은 다음에서 다시 태어나야 하는 위험한 것입니까?
오원자 : 正子時는 생명의 근원을 다시 잇는 한 때 (正子時內接命之一時)를 말한다. 眞鉛이 眞汞에 投合하여 鉛汞이 서로 하나가 될 때, 百脈이 숨을 숙이고 만 가지 생각이 寂滅하여 混沌의 구멍에 들어갈 때, 한 토막의 생각이 일어나도 丹은 流失되고 만다. 바로 이 순간이 가장 긴요한 관문이 된다. 接命이 이때에 이루어지며 傷命도 이 순간에 달려 있다. 古人들이 이른바 混沌七日四復生이라는 것이다. 이레 동안 정신이 황홀한 경지에서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경우를 말한다. 이때에 오로지 伴侶를 써서 물과 불을 조화시켜야(水火旣濟)하는 것이다.
42) 제자 : 結丹의 소식을 자신의 몸 안에서 듣게 되는데, 어찌 水火를 조정할 수 있습니까?
오원자 : 이 伴侶하는 법은 내 몸 밖에서 하는 것이 아니요 물과 불은 몸 안에서 하는 伴侶이니라. 물과 불은 一心자리가 잡힌 사람이면 능히 음양을 조정하여 나의 힘을 돕게 한다. 我主, 他客을 他主,我客으로 위치를 바꾼 다음에, 그와 나의 두 性情이 합하여 서로 交配시킴으로써 陽과 陰이 鉛汞으로 바뀌면 물과 불이 鼎爐가운데서 스스로 삶고 다려져서(自烹自煎) 一龍一虎가 조화의 굴속에서 서로 잡아먹음(相呑相嚼)으로써 神으로 응결되고 기운이 모여서 道兒의 모양이 잉태되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伴侶하는 공부가 없다면 어찌 능히 이 경계에 이를 수 있겠는가. 다만 이 伴侶공부는 가장 하기 어려운 것이다. 오호라! 凡俗들이 天機를 얻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세간財物을 써야 한다. 만일 베픈 陰德은 적고 인색(吝嗇)함이 많으면 아무리 仙神들이 많이 있어도 돌보아주지 않을 것이다.
43) 제자 : 修行人이 첫째 경계할 일은 財物에 인색함인데, 이미 말씀하신 世間의 財物 을 써야 한다(用世間財) 하시고 또 인색하면 千萬의 神仙이 돌봐주지 않는다고 하시니, 실제로 財物을 쓰는 것입니까 쓰지 않는 것입니까?
오원자 : 쓰되 쓰지 않느니라. 대저, 財라는 것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인 바, 財物로써 사람의 환심을 쉽게 살 수 있으며, 하늘의 眞寶도 살 수 있으되 하늘과 사람이 그 術數안에 들어 있지 않음이 없다. 그런데 財物을 쓰지 않고 眞寶를 억지로 얻으려고 한다면 이는 强取强求하려는 것이라. 하늘은 나를 따라오지 않으며 사람도 나를 따르지 않을 것인 즉, 이는 반드시 행함이 적고 마음이 인색하면 神仙들이 어찌 돌보아 주겠는가. 이러한 경우에는 世上財物을 써야 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세상 재물을 비록 풍족하게 썼다 해도 사람한테 德을 펴지 못하고, 사람을 때려 상하게 했거나, 생명을 건짐에 재물이 아까 와서 돌보지 않은 行爲가 있었다면 어리석은 짓이라. 나는 아직 그렇게 재물을 쓰는 경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德을 먼저 베풀고 財를 쓰되, 德을 근본으로 삼으며 財物은 그 다음이다. 이런 것이 세상재물을 쓰지 않는 이치라. 단 이 세상재물이란 世間의 善行하는 財物을 뜻하고, 世間에서 말하는 보통의 財物과는 다르다 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44) 제자 : 財物이 풍족하면 사람의 마음도 살 수 있고, 財物로서 하늘의 보물도 살 수 있다는 말은 修煉하는 일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까?
오원자 : 사람은 坤方에 매여 있으므로 세상女子가 가진 寶物이나 天上의 보물과는 상관이 없으며, 또 世間의 金石 따위와는 상관이 없다(坤方之人 乃不死之人). 그러므로 세상재물이 神仙을 부르는 것이다. 하늘 위에 있는 寶物이란 곧 가운데 있는 한 寶物(中有一寶之物)로써 세간에서 찾고 있는 진짜 寶物인 것이다. 그런데도 女子나 金石에서 眞經이나 藥物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은 聖道를 그르치는 사람들이니라.
45) 제자 : 세상 재물을 쓴다는 말은 곧 法財를 말하는 것입니까?
오원자 : 財는 財이고 法은 法이니라, 이 두 가지는 같은 것이 아니다. 法과 財를 함께 쓴다는 말은, 法은 修煉하는 法則이고, 財는 誠心으로 祈求하는 禮物을 뜻한다. 法이 있으되 財가 없으면, 虛妄에 걸려서 속이 차지 않고(懸虛不實) 財는 있으되 法이 없으면, 불질하는 공부에 틈이 생겨서(火候有差) 나의 眞器가 이루어지지 못 한다. 法과 財가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옛 사람들이 이르기를 法과 財는 法中에 재가 있고 재중에 법이 있다(法中有財 財中有法)고 했다. 이는 세간의 金銀과 錢財가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니라.
46) 제자 : 財라는 뜻이 金銀으로 된 財物이 아니라면 어째서 抱朴子가 問道 20年에 집 안에 싸놓은 財物이 없어서 이루지 못했다고 했으며, 上陽子는 貧者患無財 有財患無侶(가난한 사람은 財가 없어서 禍를 당하고, 財物은 있어도 伴侶者가 없으면 화를 당한다) 고 했으며, 또 張三峯은 "金花朶朶鮮 無錢難修煉금화타타선 무전난수련"이라 했으니, 이런 말들이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오원자 : 이런 말속에는 機密이 들어있어서 眞師가 아니면 알지 못하는 것이다. 대저, 修眞의 道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上德者가 닦는 道全其形의 法이고, 하나는 下德者가 닦는 以術延命하는 法度이다. 上德者는 純陽을 잃지 않는 道體의 保全者임으로 財를 쓰지 않으며, 함이 없는 공부(行無爲之功)로서 修性도 하고 修命도 할 수 있다(性了而命亦了). 下德者는 先天을 모두 잃고 갖지 못함으로써, 마치 거지가 재물이 없음과 같아서 반드시 남의 것은 빌어서 延命해 나가는 이치와 같다. 그러므로 함이 있는 道(行有爲之道)를 닦아야만 비로소 능히 命을 보전하게 되고 性은 닦게 되는 것이니라. 抱朴子가 楣미20年이라는 뜻은 而道全形하는 法을 닦아서 된 일이고, "家無積聚 不得爲者"라는 뜻은, 法과 財를 가지지 못하여 道를 이루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金銀寶貨가 없이는 얻을 수도 없으므로 반드시 응분의 財物을 써야만 道도 성취할 수 있다는 뜻이다. 抱朴子는 貴族의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인데도 어찌 모아둔 재물이 없겠으며 또 馬丹陽도 고을 甲富인데도 어찌하여 집을 버리고 토굴 속에 들어가 道를 알려고 苦行하였으며, 劉海蟾은 어찌하여 정승의 자리를 버리고 江湖를 해메었으며, 羅狀元은 어찌하여 富貴를 내던지고 貧寒과 苦行을 감수하였는가? 옛 聖賢들은 모두 이와 같았다. 무엇 때문에 自身들이 가진 財物을 버리고, 구하기 어렵다는 남의 재물을 찾아 江山을 누비고 헤메이겠느냐? 道法이 따로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世間에 쌓여있는 凡俗의 財物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니라.
47) 제자 : 世間의 財가 아니라면 外護說도 황당한 말 일진데, 어찌해서 杏林이 道光에게 말하기를 네가 급히 큰 도시로 나가서 유력한 부자를 의지하라 하였습니까? [汝急往通邑大都 依巨富大力者 여급왕통읍대도 의거부대력자]
오원자 : 세간 재물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는 外護에 어찌 안과 밖이 없으리오. 안의 外護는 곧 金公이 法身이 되는 것이고, 밖의 外護는 즉 世間의 外護를 뜻한다. 이른바 幻身의 보호이다. 이 몸에는 세속의 災難이 들어있다. 外護라는 것은 나의 性命을 보호하여 道를 이루는 일을 돕기 위하여 大都市로 나가서 世間의 法을 닦는 것이다. 대개 이 道를 닦으려면 남들의 비방도 받아야 하며 大都로 나가서 俗人들과 함께 섞임은, 이른바 사람들로 하여금 알아차리지 못하게 함 이며, 이른바 潛修密煉하기 위함이니라. 慧能(曹溪六組)이 사냥꾼 무리 속에 숨어 몸을 감췄고, 道光이 두 번 俗世에 내려와 道를 성취한 사실들이 이러한 뜻이니라.
48) 제자 : 修道하는 일은 光明正大한 공부인데도 어찌해서 사람들이 비방합니까?
오원자 : 이 道는 世間의 道와 다르기 때문이다. 世間의 道는 名利와 恩愛를 중히 여기나. 修道는 名利와 恩愛을 가볍게 한다.
世間의 道는 총명함과 영리함을 진짜로 보나, 修道는 총명과 영리함을 가짜로 여긴다. 富를 쌓으려면 어짐을 잃으며, 어짐을 쌓으려면 富를 버려야 한다. 두 가지는 서로 상반된다. 소위 神仙의 道는 세인들이 싫어하는 바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으며 반드시 邪가 생기느니라. 大修行人은 外圓內方(밖으로 둥글게 안으로 모나게)하여 俗人들과 함께 어울리는 가운데서 光明을 조화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뜻이니라.(混俗和光혼속화광)
49) 제자 : 修道者는 원래 속세를 떠나서 만 가지 인연을 끊는다 하셨는데 이제 와서 混俗和光한다면 속세의 먼지에 물들지 않습니까?
오원자 : 마음속을 텅 비워 아무 것도 함이 없는 경지(空寂無爲공적무위)는 丹을 체득한 다음 의 일이다. 만일 得丹하지 못한 단계에서 造化의 힘을 어디에서 얻을 것이며, 生死문제를 어디서 해결할 것이냐. 混俗和光하는 일은 바로 造化의 힘을 얻고 生死의 관건을 초월하려는 일이라. 사람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실제로 脫俗하며, 塵世속에 살면서 실제로 塵世를 벗어나서 大丹이 丹宮안에 凝結한 다음에는, 空寂을 바라지 않아도 스스로 몸이 텅 비어서 俗世를 끊고 塵世를 떠나게 되어 世上事와 상관하지 않게 된다. 九年面壁의 功이 끝나서 비로소 超脫의 경지에 들 수 있느니라.
50) 제자 : 九年面壁의 功이 반드시 九年동안 벽을 마주해야 합니까?
오원자 : 아니다. 소위 九年이란 것은 즉 "九還"의 뜻을 말하고 面壁이란 것은 正坐 한다는 뜻이 아니며, 특히 뜻이 흩어지지 않고 정신을 통일시키되 털끝만한 잡념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말함이라. 비유하면 泰山이 萬年을 서있으되 그 움직임을 볼 수 없음과 같으며 一萬가지 법도가 모두 虛空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니라. 道兒를 조용히 길들이며 陽神을 해탈시키는 일은 話頭나 소위 參禪하는 식의 靜坐와 다르다. 一切의 생각을 끊고 벽을 마주하여 神明을 養生하는 공부를 九年이라 하고, 또 九轉이라고 한다.
이 글을 쓰신 님께
저는 96년도부터 수도생활을 해본다고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몇 년 전 정신없이 이것저것 자료를 구해 보던 중 인터넷을 통하여 님께서 쓰신 글을 보고 소중하게 간직하여 오다가 저의 브로그를 정리하며 귀한 자료라 사료되어 이곳에 올려놓았습니다. 수시로 탐독하며 공부해 나가는데 마음을 다스르며, 차후에라도 인연이 있는 분들이 게시면 수행에 참고하실 수 있게 하고 싶은 욕심에서입니다. 귀중한 글을 담아오며 아무런 양해의 말씀도 드리지 못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곳을 통하여 사죄의 말씀을 드리오며 이곳에 이 글을 올려둘 수 있도록 선처하여 주시기를 간청 올립니다. 만약 저작권 관계로 불허하신다면 글을 남겨주십시오.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재삼 너그러우신 아량으로 용서하여 주시기를 간청 올림니다. 현풍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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