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四節 精,氣, 神 三位一體
太初點(태초점)에 의해 太一(태일)의 統一性(통일성)이 깨지면서 솟아나온 精(정), 氣(기), 神(신)은 果然(과연) 三極(삼극) 相互間(상호간)에 어떻게 맞물리며 또한 어떤 作用(작용)을 하는 것인가?
이 精(정), 氣(기), 神(신)의 屬性(속성)과 作用(작용)은 오직 敎外別傳(교외별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가위, 바위, 보’ 놀이에서만 그 秘義(비의)를 찾아 볼 수 있다.
‘가위 바위 보’ 놀이는 어른 아이를 莫論(막론)하고 누구나 즐겨하는 놀이이나 그 裏面(이면)에는 太一(태일)을 構成(구성)하는 要素(요소)이며 天地創造(천지창조)의 열쇠인 ‘精氣神(정기신)’의 神秘(신비)가 숨겨져 있다.
太一(태일)은 太初點(태초점)에 의해 統一性(통일성)이 깨지면서 그 構成要素(구성요소)였던 元氣(원기)에서 精(정)과 氣(기)가 나오고, 元神(원신)에서 神(신)이 튀어나오게 되었다. 이 精氣神(정기신)이 곧 서로 맞물리며 象界(상계)와 形界(형계)를 創造(창조)하게 된 것으로 실로 天地創造(천지창조)의 主役(주역)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森羅萬象(삼라만상)을 쪼개고 쪼개어도 結局(결국) 存在(존재)하는 것은 이 精氣神(정기신) 셋뿐이며 이것이 하나로 統一(통일)된 즉, 太一(태일)인 것이다. 이것이 곧 國祖壇檢(국조단검)님의 三位一體思想(삼위일체사상)으로, 宇宙變化原理(우주변화원리)를 풀 수 있는 唯一(유일)한 열쇠인 것이다.
이렇게 莫重(막중)한 精氣神(정기신)의 原理(원리)에 대한 것이 現世(현세)에 이르도록 전해오는 것도, 硏究(연구)된 바도 없으며, 오직 民間(민간)에서 모든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고 있는 ‘가위 바위 보’ 놀이에서만 그 痕迹(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가위’란 주먹에서 엄지와 새끼를 펴고 있는 것으로 위 아래로 動(동)하려는 性質(성질)(波動性(파동성))을 지닌 ‘氣(기)’를 表現(표현)하고 있다. 오늘날 使用(사용)하고 있는 엄지와 검지를 편 가위는 전해 내려오는 過程(과정)에서 便利(편리)를 위해 變形(변형)된 것이다.
‘바위’란 곧 꽉 뭉쳐있는 形局(형국)으로 잡아 당겨 統一(통일)을 이루려는 ‘精(정)’의 性質(성질)을 表現(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보자기’란 萬物(만물)의 바탕을 이루며 氣散作用(기산작용)을 하는 神(신)의 모습을 象徵(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가위 바위 보 놀이의 勝敗原理(승패원리)와 같이 精(정), 氣(기), 神(신)에도 相互(상호) 優勢原理(우세원리)가 作用(작용)하고 있음이다. 즉, 바위가 가위를 이기듯 ‘精(정)’이 ‘氣(기)’를 制壓(제압)하고 統制(통제)할 수 있으며, 가위가 보자기를 이기듯 ‘氣(기)’가 ‘神(신)’에 적잖은 影響(영향)을 끼치며 左之右之(좌지우지)할 수 있다. 또한 보자기가 바위를 이기듯 ‘神(신)’이 ‘精(정)’을 完全(완전)히 制御(제어)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神(신)’이 ‘氣(기)’의 統制(통제)를 벗어나 거꾸로 ‘氣(기)’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必要量(필요량)의 ‘精(정)’을 끌어 모아야 한다.
人間(인간)의 精神(정신)을 觀(관)하건데, 대부분이 ‘氣(기)’의 影響(영향)을 받아 ‘神(신)’이 動(동)하는 形局(형국)이다. 神(신)이 일으키는 생각이란 것은 ‘氣(기)’를 타고 솟아나오는 것인데, 이 생각의 造成(조성)을 마음대로 統制(통제)할 수 있는 凡人(범인)은 없다. 가령, 더러운 똥을 보고도 더러운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 싱그럽고 華奢(화사)한 꽃을 보고도 어떤 感情(감정)도 일어나지 않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마 成佛(성불)하신 佛(불), 菩薩(보살)의 境地(경지)라면야 모를까, 왠만한 覺者(각자)나 道人(도인)의 境地(경지)로도 至難(지난)할 것이다.
人間(인간)이 ‘知(지)’의 領域(영역)에서는 ‘情(정)’의 領域(영역)과는 달리 대부분이 自身(자신)의 統制下(통제하)에서 思念(사념)을 일으킬 수 있다. 이는 본래 ‘精(정)’으로써 ‘氣(기)’를 잡아 情報(정보)를 모으고 知(지), 不知(부지)의 反應(반응)을 하는 것이 곧 ‘知(지)’ 固有(고유)의 作用(작용)이기 때문에 可能(가능)한 것이다. 만일 知作用(지작용)에 있어서 ‘精(정)’이 不足(부족)하거나 아예 없다고 한다면 主體(주체)인 ‘神(신)’이 ‘氣(기)’의 完全(완전)한 操縱(조종)을 받아 秩序的(질서적) 反應(반응)을 잃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人間(인간)은 萬物(만물)의 靈長(영장)으로서의 特徵(특징)인 ‘理性(이성)’을 영영 잃어버리고 마는 悲運(비운)을 맞게 될 것이다. 主體(주체)인 나, 즉 ‘神(신)’은 ‘精(정)’이 不足(부족)하여 ‘氣(기)’의 支配(지배)를 받으면 받을수록 점점 本能化(본능화)되어 因果(인과)라는 틀 속에 틀어박히게 되는 바, 실로 輪廻(윤회)의 굴레에서 헤어나기란 점점 어려워지게 되는 것이다.
人間(인간)은 人間(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一定量(일정량)의 ‘精(정)’이 ‘神(신)’과 엮어져 있는바, 이를 ‘精神(정신)’이라 하는 것이다. 突然變異(돌연변이)로 ‘精(정)’이 不及(불급)하게 태어나거나 혹은 後天的(후천적) 影響(영향)으로 ‘精(정)’의 極甚(극심)한 減退(감퇴)가 發生(발생)한다며 畸形兒(기형아)나 정신박아의 原因(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神(신)’을 啓發(계발)하거나(參禪(참선)), 혹은 ‘氣(기)’를 모으는 方法(방법)(丹田呼吸(단전호흡))으로 ‘精(정)’을 蓄積(축적)하여 나간다면 이내 ‘氣(기)’를 쉽게 制御(제어)하여 禪靜(선정)에 沒入(몰입)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될 때, ‘神(신)’은 明(명)을 얻어 象界(상계)와 形界(형계)에 두루 미치어 그 聰明(총명)함이 天文(천문)에 닿고 地理(지리)를 꿰뚫게 되는 것이다. 실로 仙人(선인)의 반열에 오르게 됨이며, 더 精進(정진)하여 精氣神(정기신)의 統一(통일)로까지 이어진다면 ‘佛(불)’, ‘菩薩(보살)’의 境地(경지)까지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여하튼, ‘神(신)’은 오직 ‘精(정)’으로써만이 豫測不許(예측불허)인 ‘氣(기)’를 統制(통제)할 수 있는 것인바, 靈的(영적) 成長(성장)에 뜻을 둔 者(자)는 必(필)히 이 理致(이치)를 새겨두어야 할 것이다.
‘神(신)’이 ‘精(정)’으로써 그 優勢(우세)인 ‘氣(기)’를 制御(제어)할 수 있다면, ‘精(정)’도 ‘氣(기)’로써 ‘神(신)’을 制御(제어)하고, ‘氣(기)’도 ‘神(신)’으로써 ‘精(정)’을 制御(제어)할 수 있어 極甚(극심)한 昏亂(혼란)을 惹起(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境遇(경우)는 결코 發生(발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精氣神(정기신)’ 중에 ‘精(정)’과 ‘氣(기)’는 太一(태일)에서 갈라져 나올 때 그 母體(모체)가 ‘元氣(원기)’인바, 主體作用(주체작용)을 일으키는 ‘元神(원신)’에서 나온 ‘神(신)’과는 그 性質(성질)이 判異(판이)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精氣神(정기신)’ 三要素(삼요소)는 ‘가위 바위 보’ 놀이의 原理(원리)와 같이 셋의 優勢(우세)가 서로 맞물리면서 變化(변화)해 나가는 것으로, 특히 ‘神(신)’의 境遇(경우)는 ‘精(정)’과 結合(결합)하여 ‘精神(정신)’을 形成(형성)한즉, ‘氣(기)’를 統制(통제)할 수 있다. 이는 ‘神(신)’이 結局(결국) ‘精(정)’, ‘氣(기)’를 모두 거느리게 된 것으로 ‘太一(태일)’의 複製版(복제판)인 ‘人間(인간)’의 出現(출현)을 豫告(예고)하는 奇蹟(기적)의 事件(사건)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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