丹學人物考 (13) 강감찬(姜邯贊)
연 대 : 948(정종3) ~ 1031(현종22)
본 관 : 금주(衿州)
父 - 삼한벽상공신 궁진(三韓壁上功臣 弓珍)
시 호 : 인헌(仁憲)
강감찬은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지략이 뛰어나 고려성종때 갑과(甲科)에 장원급제하고 예부시랑이 되었다.
일찍이 한양부 판관으로 있을 때 한양에는 호랑이가 자주 길가에까지 나와 대낮에도 사람을 해치는 일이 많았다. 그리하여 한양유수는 이 호랑이 때문에 근심이 대단하였다. 그러자 강감찬은 “이것은 매우 쉬운 일이요, 빨리 없애 버립시다”라며 장담하였다.
“어떻게 해야 하오?”하고 유수가 묻자 “다만 보기나 하시오” 하고서 손으로 한 문서를 써서 아전에게 명하기를 “북문 밖을 나가 몇 번째 골짜기에 이르면 틀림없이 두 중이 있을 것이니 이것을 내어 주도록 하라”고 하였다.
아전이 그의 말을 따라 어느 골짜기에 이르니 과연 두 중이 있었다.
아전은 그들에게 강감찬이 써준 문서를 주었더니 중은 일어나 아전을 따라와 동헌 뜰아래 엎드려 절을 하였다. 그러자 동헌에 유수와 함께 앉아 있던 강감찬은 “너희들은 무었 때문에 살던 곳을 버리고 감히 거리에까지 내려와 사람을 해침이 이와 같으냐? 속히 무리를 이끌고 멀리가되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벌을 내리리라!”하였다. 두 중은 머리를 조아리며 “명령대로 하겠습니다”고 하였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유수가 웃으면서 “판관은 노망했소? 중더러 호랑이라 하다니요” 그러자 강감찬은 두 중을 가리키며 “너희들은 잠시 본신을 드러내 보여라”하였다. 이에 두 중은 가사를 벗고 커다란 두 마리의 호랑이로 변하여 훌쩍 뛰어 계단을 올라와 난간을 기어오르고 으르릉거리며 울부짖었다. 옆에 있던 아전들은 일시에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고 유수는 놀라 쓰러져 기절을 하고 말았다.
강감찬은 “빨리 네 갈 곳으로 가거라” 하니 호랑이는 훌쩍 뛰어 담장을 넘어갔는데 그 뒤부터는 호랑이로 인한 근심은 없었다 한다.
해동이적에는 이르기를, 강감찬이 태어날 때 왕의 사신(使臣)이 밤중에 시흥군(지금의 衿川)으로 들어 갔다가 큰 성운이 인가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서 아전을 보내 가서 살펴보도록 하였다. 아전이 가서보니 성운이 떨어진 집의 부인이 마침 사내아이를 낳았다. 사신은 마음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하고 데리고 돌아와서 길렀다. 후에 이 아기는 자라서 재상이 되었다. 그때 송나라 사신이 와서 그를 보고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절을 하며 “문곡성(文曲星)이 보이지 않은지 오래 되었는데 이제보니 여기에 있었군요” 하였다.
1010년(고려현종1) 글안의 성종이 40만군으로 침입하여 고려에서는 강조(康兆)가 30만군을 이끌고 나가 싸우다 패하여 많은 신하가 왕께 항복하기를 권했으나 유독 강감찬만이 이를 반대하고 하공진(河拱辰)을 적진에 보내어 타일러서 물러가게 했다.
그 뒤 한림학사(翰林學士), 서경유수(西京留守), 문하평장사(門下平章士)를 차례로 역임하면서 왕의 총애를 받았다.
1018년(현종9) 글안의 성종은 다시 소배압(簫排押)을 시켜 대군으로 고려를 침공케 하니 서북면 행영도통사(西北面 行營都統使)로 있던 강감찬이 상원수(上元帥)가 되어 20만 8천군을 이끌고 나가 경솔히 진격을 계속하는 적의 후면을 공격하여 구주(龜州)에서 크게 이겨 살아 돌아간 적군이 불과 수천이었다. 거의 적을 전멸시킨 이 싸움에서 적의 시체는 석천(石川~皇華川)에서 반령(盤嶺~八營嶺)에 이르기까지 들을 덮었으며, 강감찬은 수많은 포로와 전리품을 거두어 돌아오니, 왕은 친히 영파역(迎破驛)까지 나와 얼싸안고 환영하면서 금화팔지(金花八枝)를 머리에 꽂아 주었다.
허백당(虛白堂) 성현(成現)의 시에
적을 서경에서 물리치어
살쩍에 꽃을 꽂았네.
그의 위엄이 북한산에 행해져
호랑이가 본색을 드러냈고,
문득 대낮에 신선이 되어 올라가니
전과 같이 푸른 하늘에
한점 별이 되었네.
敵退西京花揷? 滅行北漢呈形
?然百日登仙去 依舊靑天一點星 라고 하였다.
강감찬은 나이 70이 되어 궤장(?杖)을 하사받고, 성남별장으로 돌아가서 84세에 돌아가셨다. 시호는 인헌(仁憲)이다.
세상에서는 강공이 신선이 되어 올라 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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