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단학

丹學人物考 (1) 박 엽(朴燁)

검은바람현풍 2012. 2. 23. 18:36

丹學人物考 (1) 박 엽(朴燁)

 

 

 

그는 조선 오백년을 통하여 가장 출중한 文武兼全(문무겸전)의 英傑(영걸)이었고, 八道(팔도)의 才士(재사), 術客(술객), 壯士(장사)들이 모두 그에게로 雲集(운집)하였다.

 

朝鮮朝의 문관(文官)으로 1570년(宣祖3年)에 태어나 1623년(仁祖1年)에 卒하였다. 자(子)는 叔夜(숙야), 號(호)는 菊窓(국창), 本貫(본관)은 반남이다.

1597年宣祖(선조30년)에 文科(문과)에 급제, 內外職(내외직)을 歷任(역임)하여 가는 곳마다 治績(치적)을 올렸다. 咸鏡南道兵司(함경남도병사)가 되어 城池(성지)를 修築(수축)하여 北西(북서)의 防備(방비)를 鞏固(공고)히 했고 黃海道兵司(황해도병사)를 거쳐 平安道 觀察司(평안도 관찰사)가 되어 6年동안에 治績(치적)이 나타나서 名聲(명성)이 높았다.

北胡(북호)들의 動靜(동정)을 잘알고 防備(방비)하였으므로 그들의 감히 沿邊(연변)을 浸犯(침범)하지 못하였다. 당대의 權臣 李爾瞻(권신 이이첨)을 모욕하고도 無事하리만큼 名聲을 떨쳤다.

仁祖反正 後(인조반정후) 그의 부인 光海君의 인척이었다는 理由(이유)로 그를 두려워하는 勳臣(훈신)들에게 모함을 받아 사형당하였다.

叔夜(숙야)는 氣運(기운)이 絶倫하여 6, 7 歲(세)에 이미 그 오줌줄기가 담장을 넘었다고 하니 가히 그의 精力(정력)을 짐작할 수 있을 만 하다.

그가 平安道 觀察司( 평안도 관찰사)로 있을 때의 일이다.

每日(매일) 밤 초저녁이면 감영을 떠났다가 새벽녘에야 돌아오는 일이 자주 있었다.

하루는 그의 첩 小栢舟(소백주) 가 참다 못하여 한마디 참견을 하였다.

「무슨 재미가 그토록 진진하여 밤새는 줄도 모르고 계시오니까?」

「그게 무슨 소리인고?」

「그렇지 않으시다면 어인 일로 밤마다 出入(출입)이 그토록 늦기까지 하시겠습니까?」

숙야는 사랑하는 첩의 영문을 모르고 하는 말에 그저 빙그레 웃으면서 답하는 말이 「아녀자가 참견할 바가 아니니라, 긴한 일이 있어 며칠 늦은 것이니 그리 알라」하고 달랬으나 소백주는 물러나지 않고 응석부리듯이 「그토록 재미있는 일이라면 소첩도 한번 데려가 주시겠습니까?」하고 보채었다.

숙야는 엄숙한 안색을 하면서도 그날 밤 소백주를 말에 태우고 질풍같이 어둠속을 달렸다.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뒤에 탄 소백주의 눈에는 먼 곳의 불빛과 귓전의 바람소리만 들릴 뿐이어서 어디를 얼마나 가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였다.

한참이나 달리고 난 후에 숙야는 말을 서서히 멈추어 낮은 소리로 「예가 만주 안동 땅이다. 내 지금부터 하는 일을 너는 예서 조용히 숨어 구경이나 하여라」고 일렀다.

叔夜(숙야)는 곧 靑太祖(청태조) ‘누루하치’의 軍營(군영)을 찾았다.

‘누루하치’가 조선을 圖謀(도모)코저 安東(안동)까지 진출하여 虎視耽耽(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叔夜將軍(숙야장군) 단 한사람의 위력에 눌려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있는 판이었다.

叔夜(숙야)는 거침없이 ‘누루하지’에게 말하였다.

「자 오늘은 최후 결판이다. 다시 또 무슨 군말이 있다면 너 “누루하지”도 대장부가 아니니라」 여러 날 밤, 두 사람이 재주를 겨루어 왔던 것이다.

게다가 “누루하지”는 재주가 밀릴 때 마다 이러니저러니 口實(구실)을 붙여 다시 對決(대결)하기를 請(청)했던 것이다.

“누루하치”도 더는 염치없어 오늘밤을 決判(결판)의 날로 할 것을 다짐하였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말없이 대결하였으나 내리치고 찌르는 한수 한수는 온갖 秘法(비법)과 운신의 精力(정력)을 기울인 必殺(필살)의 一槍과 一劍이었다.

처음에는 말을 타고 겨루던 두 사람이 나중에는 창칼만 번쩍일 뿐 사람은 보이지 않고 龍虎相爭(용호상쟁)하는 神妙를 다하는 기량의 對決(대결)이라 숨어 보던 소백주는 숨이 막힐 듯 하였다.

부질없는 아녀자의 질투로 사랑하는 이를 잃는가 걱정도 되었겠지만 한편 자신이 모시는 어른이 저토록 훌륭한 분인 것을 어찌 감히 생각이나 하였겠는가, 다만 침을 삼키고 숨을 죽이고 바라볼 뿐이었다.

한참만에야 호령하는 叔夜將軍의 말소리가 우렁차게 들리었다.

「자 이젠 어쩔텐가? 그래도 敢不生心(감불생심) 이 나라를 넘보겠는가?」

땅에 떨어진 “누루하치”의 목에 칼을 겨누고 하는 일갈이다.

「알았소이다 이제 다시는....」“누루하치”는 끝을 맺지 못하였다.

그 또한 장정 萬명이 당해내지 못할 勇猛(용맹)을 자랑하던 將軍(장군)일 뿐 아니라 수년을 計劃(계획)한 大事(대사)를 말 한마디 못하고 포기하지 않을 수 없으니 그 허탈감은 어떠했으랴.

결국 “靑太祖 누루하치”는 전군을 이끌고 回軍(회군)하였다.

한번의 접전도 해보지 못하고 敗戰(패전)한 것이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회군하던 淸軍(청군)은 캄캄한 칠야에 進退維谷(진퇴유곡)에 빠지고 말았다.

분명 어제까지 훤하게 나있던 길은 간데 없고 앞에는 層岩絶壁(층암절벽)에 그 밑에는 퍼런 江물이 출렁이고 있으며 뒤에는 千軍萬馬(천군만마)를 거느린 大將軍(대장군) 叔夜(숙야)가 버티고 서있는 것이 아닌가?

“누루하치”는 고개를 떨구고 숙야 앞에 섰다.

「回軍(회군)하라 하시면 길이라도 열어주시기를...」

숙야는 말없이 손짓하였다. 「어서 가보아라」

淸(청)의 大軍(대군)은 소리 없이 회군하고 말았다.

이제는 絶壁(절벽)도, 강물도 이미 다 사라지고 없었다.

그後(후) 淸軍(청군)의 軍士(군사)들은 叔夜(숙야)장군을 軍神(군신)처럼 우러러 보았다 한다.

이와같은 非凡(비범)한 術數(술수)는 어디에서 누구에게 배웠던가?

그는 어려서부터 타고난 絶倫(절륜)의 精力(정력)을 살려 스승 宋龜峰先生(송구봉선생)을 따라 丹學(단학)의 左右兩道(좌우양도)를 아울러 닦은 분이다.

또한 그 階梯(계제)가 상당히 高階(고계)에까지 올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뒷날 仁祖反正(인조반정)으로 光海君(광해군)이 왕위에서 물러났을 때 바로 그날 한 사람의 副將(부장)이 나타나 叔夜將軍(숙야장군)께 아뢰기를 「小將(소장) 問安(문안)드립니다. 」

「그대가 웬일인고」

「나라에는 反正(반정)이 있었습니다」

「 나도 알고 있느니라」

「 將軍(장군)은 장차 어찌하시렵니까?

小將이 세가지의 計策(계책)을 아뢰올까 하옵는데 들어주시렵니까?」

叔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러면 아뢰겠습니다.

이제 大監이 거느리는 휘하의 十萬軍卒(십만군졸)을 휘몰아 中原을 들이치신다면 天下는 가히 뉘 손에 넘어갈지 알 수 없는 일이니 한번 꾀할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上策(상책)이올시다.

다음은 淸人(청인)과 힘을 합하여 天下의 일을 꾀하신다면」천하는 비록 兩分(양분)이 될지언정 더욱 확고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中策(중책)이올시다.」

그러나 叔夜는 아무런 應答이 없었다. 마치 冥想에 잠긴 듯 눈을 감은 채 말이 없는 것이다.

副將은 말을 이었다. 「그러면 마지막 下策(하책)을 아뢰겠습니다.

평양의 軍卒(군졸)을 이끌고 晝夜(주야)로 길을 달려서 서울로 향하신다면 前王(전왕)을 다시 뫼시는데 3日 까지야 걸리겠습니까?」

叔夜는 조용히 눈을 떴다.

「부당한 일이다. 昏君(혼군:光海君을 지칭)이 아니시드냐?

數많은 百姓이 도탄에 빠지는 줄 알면서 어찌 홀로 나만의 安寧과 榮達을 위하여.....」그는 말을 잇지 않았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른다면 그의 말대로 준마 비껴타고 千軍萬馬를 號令하여 한번 天下를 圖謀해보고 싶기도 하지만 이제 民族의 運은 衰하여 大陸의 한귀에 몰리고 그 體統마저 이어가기 어려운 형편이 아닌가?

너무나 훤히 내다보이는 앞날이었다.

「물러가거라」

「하오면 坐以待死(좌이대사)하시렵니까?」

그는 말없이 눈을 감았다.

果然(과연) 그 후 곧 어명에 依하여 叔夜將軍은 사형되었고 휘하 몇몇 장사들은 편협한 조정의 처사에 반발하여 淸나라로 亡命하였다.

그때 計策을 올리던 副將(부장)이 바로 후일 淸(청)나라의 龍骨大(용골대)이다.

叔夜將軍없는 朝鮮은 텅 빈 성곽과도 같았다.

역시 박엽의 수하 부장중의 하나였던 林慶業將軍(임경업)의 勇猛(용맹)도 淸軍(청군)의 智略(지략)과 武力(무력)앞에는 束手無策(속수무책)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