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단학

日月之書 28) 임진왜란 비화(秘話)

검은바람현풍 2012. 1. 24. 13:08

 

 임진왜란 비화(秘話)

 

 

 

1.

임진왜란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개국한 지 꼭 200년만인 1592년에 발발했다. 16C에 접어들면서 조선은 변란이나 정란이 잦아 혼란했던 개국 초기와는 달리 오랜 동안 평온을 유지하여 관료들은 문치위주의 안정기를 구가하였지만 상대적으로 병권(兵權)은 약해져서 문약(文弱)을 드러내고 있었다. 게다가 잦은 사화(士禍)와 당쟁(黨爭) 속에 양반관료들의 편당(偏黨)이 만연되어 있었으며 그만큼 정치기강도 해이해져 있었다.

한편, 바다건너 왜(倭)에서는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100여 년의 전국시대를 마감하고 통일천하의 장을 열고 있었는데, 히데요시는 국내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불평 세력들의 관심을 밖으로 돌리고 또한 자신의 정복욕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대륙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우선 왜에서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한반도를 장악하여야 하므로 조선(朝鮮)을 먼저 침략하여 대륙 정복의 발판을 삼고자 일으킨 전쟁이 임진왜란(壬辰倭亂)이다. 당시 조선과 왜의 정치적 실정을 고려해 보면 조선의 패배는 예정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처음 약 두 달간(1592. 4∼1592. 6)은 조선이 밀리는 듯했으나 곧바로 도인(道人)들이 주축이 된 의병 활동과 명국(明國)의 개입 등으로 전세가 역전되니 왜는 조선에 망신만 당한 채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 중에 죽자 전쟁은 흐지부지되었다.

 

2.

최풍헌은 선조(宣祖)가 피난 간 의주로 가서 거지차림으로 막사를 돌며 “나에게 병권을 주면 왜적을 3일에 물리치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선조가 그를 믿어주지 않자 그는 병권을 얻지 못하여 역사(役事)를 하지 못했다. 만약 최풍헌이 병권(兵權)을 가졌더라면 당시 왜적이 3파로 나뉘어 공격해오는 길목에 서서 적장의 목을 하루에 한 명씩 베어버리면 사흘 만에 전쟁을 끝낼 수 있었을 것이다.

진묵은 불도(佛道)에 통한 자라 그 법술이 신통하였으나 역시 전쟁에 나설 수 없었고, 송구봉 역시 서자 출신으로 인정받을 수 없었으므로 나설 수 없었다. 다만, 송구봉은 거북선의 설계도를 이순신에게 넘겼다는 다음과 같은 전설(傳說)이 전한다.

이순신이 12, 3세 때의 일이었다. 이순신은 어려서부터 전쟁놀이를 좋아하였으며 친구들과 함께 진(陣)을 치고 진법(陣法) 연습을 하곤 했다. 하루는 송구봉이 지나가다 이 광경을 목도하였다. 송구봉은 이순신의 진법놀이를 지켜보다가 자기의 집에 다녀갈 것을 종용했다고 한다.

이순신이 밤에 송구봉의 집을 찾아갔더니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방에 누워 있었다. 그런데 벽에 구선도(龜船圖), 즉 거북선 그림이 걸려 있었다.

훗날 이순신은 무과에 급제하여 여수 수사로 부임하여 여수 둔덕재의 소나무로 어려서 본 그림대로 거북선을 만들었다. 그런데 거북선에 있는 여덟 개의 구멍 중 한 개의 용도를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모를 일이었다. 이순신은 다시 송구봉을 찾아 물었더니 그 구멍은 사청목(蛇聽目)이라 하였다. 뱀은 눈으로 소리를 듣기 때문에 바깥의 말을 듣기 위해서 한 구멍을 만들어 두어야 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임진왜란 때 적군을 벌벌 떨게 했던 거북선이 완성되었다.

 

3.

율곡은 십만 양병설을 주장했으나 반대파의 주장에 밀려 실패하고 단지 이항복에게 “슬프지 않은 울음에 고춧가루를 싼 수건이 좋으리라”고 가르쳤고, 이순신에게는 ‘두율천독(杜律千讀)’만 가르쳤으나 이것이 훗날 임진왜란을 당하여 크게 쓰일 것은 말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율곡의 이 애매모호한 말은 훗날 임진왜란에서 나라를 구하는데 크게 쓰이게 되었다.

이항복에게 일러준 가르침은 명나라 장수 이여송을 감동시켰으며, 이순신에게 말해준 두율천독은 해전(海戰)에서 크게 쓰여 왜의 보급로를 끊음으로써 왜군을 궁지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왜군이 쳐들어오자 아무런 대비책도 없던 조정에서는 북으로 도망가며 한편으로 명(明)에 원군(援軍)을 청하였다. 그러나 명군은 처음부터 남의 나라 싸움에 분투하고자 하는 마음도 크게 없었으며 게다가 구원병을 이끌고 온 이여송(李如松)은 의주로 피난 온 선조의 볼품없는 몰골을 보고 실망하여 돌아가려 하였다.

다급해진 이항복은 좋은 꾀가 생각났다. 이항복은 선조에게 막사 내에서 항아리를 끌어안고 울라고 하였다. 항아리에 머리를 박고 울면 그 소리가 웅장하게 나므로 이항복은 이여송으로 하여금 선조가 외모는 보잘 것 없지만 속은 웅대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그러나 선조는 슬프지 않는데 어떻게 우느냐고 하며 울지 않자 이항복은 꾀를 쓸 수가 없었다.

그때 문득 율곡이 말해준 ‘슬프지 않은 울음에 고춧가루를 싼 수건이 좋으리라’는 말이 생각났다. 이항복은 수건에 고춧가루를 싸서 선조에게 눈을 닦으라고 하였다. 선조의 눈에서 절로 눈물이 쏟아져 나오고 한 번 눈물이 나자 선조는 그동안 쌓였던 어려움과 설움이 한꺼번에 복받쳐 올라 항아리를 끌어안고 엉엉 울어대니 그 소리가 이여송의 막사에까지 울려 퍼졌다.

이여송이 그 소리를 들으니 용성(龍聲)인지라 깜짝 놀라 어떤 위인 이길래 이렇게 울음소리가 우렁찬가 알아보라 하니 선조의 막사에서 나는 소리였다. 이에 이여송은 선조의 몰골은 형편없어도 그 마음에 품은 웅지(雄志)는 크다 하여 도와주기로 결심하고 사명당이 이끄는 조선의 승병과 합세하여 왜병을 물리쳐 주었다. 또 이순신은 거북선을 이끌고 남해 해전에서 승승장구 왜군을 물리치자 왜군은 보급로가 끊어지는 등 큰 타격을 입게 되었는데 이때 왜군의 계략에 빠진 원균이 이순신을 모함하니 이순신은 삭탈관직 당하였고 이후 다시 복귀되었으나 원균은 이미 수백 척의 배를 잃어버렸고 그 자신도 죽어버렸다.

남은 배는 겨우 12척이었다. 조정에서는 싸울 수 없다고 하였으나 이순신은 아직 12척이나 남아있으므로 싸울 수 있다고 하며 전투에 임했다. 적군은 수백 척의 배로 몰려왔고 병사들의 사기는 떨어져 있었다.

이때 이순신은 병사들에게 칼로 뱃전을 두드리면서 두보(杜甫)의 시를 외우도록 하였다. 두보 시의 특징은 비장미(悲壯美)이다. 그러므로 두보의 시를 읽게 되면 사람의 마음이 비장해져 자신도 모르게 힘이 충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보의 시를 읽는 병사들의 사기가 충천(衝天)하였고, 12척의 배로 수백 척의 적선을 물리치는 사상(史上) 유례없는 대전과를 올렸다.

 

4.

사명당이 일본에 사신으로 건너가 협상할 때 일본조정에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를 시험하였다.

사명당이 사신으로 오는 길목에 왜는 병풍을 군데군데 세워두고 자랑을 하였다. 병풍에는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보낸 술사(術士) 서복과 동남동녀 500쌍이 일본에 머물렀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나중에 사명당이 도착하자 영접 나온 학자들이 길목의 병풍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사명당은 이때 한 자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답하였으나 끝내 한 장의 내용을 답하지 못하였다. 왜 그런가 물었더니 병풍에 글이 없었다고 하였다. 사실을 확인해보니 바람에 병풍이 접혀져 있었던 것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의 도술시험을 모두 물리치자 왜인들은 몹시 놀랐다. 그래서 아예 죽여서 후환을 없애고자 구리로 숙소를 만들고 장작불을 때어 태워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다음날 방문을 열어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불에 타 죽었을 것이라 여겼던 사명당이 “일본은 덥다더니 어이 이리 추운고!” 하며 수염에 허연 고드름이 붙은 채로 추위에 덜덜 떨며 앉아 있었던 것이다. 사방 벽에는 얼음 빙(氷)자가 붙어 있었다.

그러자 일본은 더 이상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굴복하였다. 사명당은 왜왕에게 젊은 청년의 고환(睾丸) 서 말을 매년 조선에 보내고 조선의 백성들을 모두 돌려보내지 않으면 목이 달아날 것이라고 엄포를 놓으니 왜왕은 기겁을 하고 그대로 시행하였다. 결국 왜의 도술이 조선의 도술에 굴복함으로써 왜는 전쟁에 이기지도 못하고 커다란 피해만 본 셈이었다. 국력만 소모한 채 전쟁은 흐지부지되고 전쟁을 일으킨 지 7년이란 세월이 지나가 버렸으니 왜가 얻은 소득은 아무 것도 없었다.

(※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선도실명소설 '단'에 등장하는 삼비팔주 중 한 명인 산주 박 양래 선생의 전신(前身)이 사명대사였다고 한다. 일찌기 산주 박 양래 선생은 경허 스님의 수제자인 만공 스님 문하에서 불가의 진리를 터득하였으며 이후 전수월, 혜월에게도 인도되어 불문의 정수를 익혔다고 한다. 산주 박 양래 선생의 신출귀몰한 이적은 정신세계사 간 정재승 편저의 '민족비전정신수련법'에서도 일부 소개가 되고 있거니와 정신계제 5계의 중진급으로 통한다.)

 

 

 

이 글을 쓰신 님께

 

저는 96년도부터 수도생활을 해본다고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몇 년 전 정신없이 이것저것 자료를 구해 보던 중 인터넷을 통하여 님께서 쓰신 글을 보고 소중하게 간직하여 오다가 저의 브로그를 정리하며 귀한 자료라 사료되어 이곳에 올려놓았습니다. 수시로 탐독하며 공부해 나가는데 마음을 다스르며, 차후에라도 인연이 있는 분들이 게시면 수행에 참고하실 수 있게 하고 싶은 욕심에서입니다. 귀중한 글을 담아오며 아무런 양해의 말씀도 드리지 못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곳을 통하여 사죄의 말씀을 드리오며 이곳에 이 글을 올려둘 수 있도록 선처하여 주시기를 간청 올립니다. 만약 저작권 관계로 불허하신다면 글을 남겨주십시오.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재삼 너그러우신 아량으로 용서하여 주시기를 간청 올림니다. 현풍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