丹 经
성리대전 性理大全 사제 문답 ( 3 )
~ 유일명 저 블러그 대안에서 ~
54) 제자 : 識神이 이미 元神과 서로 합해졌다면 識神을 닦으면 元神도 함께 닦는 것이 되는데 어찌하여 또 말씀하시기를 識神을 닦아서 몸 안의 陰을 없이하라 합니까?
오원자 : 이 學說은 사람이 처음 태어날 때 識神과 元神이 서로 만나 하나가 되었다가 十六歲에 이르러純陽의 몸이 일단 파괴되면(及至二八 純陽之體一破), 그로부터 둘로 갈라져서 先天의 氣運은 사라지고 後天의 기운이 발생하여 識神이 用事하게 된다. 元神은 어디론가 숨어버리고(遁藏) 오래도록 순전히 識神이 내 몸 一身을 지배하여 운용하게 된다(識神當權).
元神이 소멸되었는데 그 누가 죽지 않고 능히 自生할 수 있으리오. 만약에 한가지 修己法에만 의지한다면 겨우 識神만 닦는 것인즉 世人들은 이것만으로써 極樂往生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天梯(천제:天階塔)를 타고 天界에 올라가려면 逆天하는 先天道法을 닦지 않고는 極樂世界에 들 수 없을 뿐 아니라, 종내에는 空亡에 떨어질 따름이니라(終落空亡耳종락공망이).
55) 제자 : 先天이 한번 흩어지게 되면 後天이 用事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先天이 어디에 있다가 다시 돌아옵니까?
오원자 : 先天이 비록 後天에 가리어 숨어 있었다 해도 아주 없어진 것이 아니라, 後天속에 숨어 있을 따름이다. 옛 仙人들이 말하기를 一毫陽氣 不盡不死(한 톨의 양기는 죽지 않고 살아 있다)고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 죽지 않고 살아남아 있는 그곳에 다시 生氣를 불어넣어서 다시 소생시키게 한다면, 가히 無에서 有를 창조하여 元來의 眞身으로 還元返本환원반본하는 일이 무엇이 어렵다 하겠는가.
56) 제자 : 後天은 形象과 物質을 위한 것이라면 先天이 없으면 物質도 없고 形象도 없다고 하심은 무슨 뜻입니까?
오원자 : 後天의 형상은 陰의 혼탁한 물질이라. 그것은 가짜이지 진짜가 아니다. 이른바 "無先天 無形無象"의 뜻은 곧 순수한 精을 말하며, 그 안에는 진짜만 있고 가짜는 없다. 이른바 丹道의 <取坎진離>가 그것이다. 여기에 離는 형상이 있고, 坎은 형상이 없다.
57) 제자 : 先天은 無形無象의 것인데 어찌 능히 坎을 뽑아다가 離에 메울 수 있습니까?
오원자 : 기운 비록 형상은 없으나 生氣(命理)는 갖춰져 있다. 다만 사람들이 이치를 모를 따름이다. 그러나 그 실체를 알면 형체가 비었어도 그 안에 형체가 있고 大地가 없어도 그 속에 노란 싹이 자라서(形虛以有形 無大地裏黃芽長) 乾坤이 가득 차면 金銀花가 피어나게 된다. 漸採漸煉 水淨金生(점채점련 수정금생:道法을 바르게 지키면 물이 맑아져서 眞金이 생겨나게 된다).
漸採漸煉 水淨金生이 경지에 이르면 元氣는 元身으로 변화해서 天花(滿月)같이 나타났다가, 다시 돌아오게 된다(因其時而復之). 그러므로 아무 어려울 것이 없느니라.
58) 제자 : 丹道에 火候工夫가 있고 溫養工夫가 있다는데 어떻게 어렵지 않다고 하십니까?
오원자 : 어렵지 않다는 말은, 그때그때의 得藥을 말함이다. 어렵다는 말은 火候공부의 세밀한 부분은 알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悟眞篇에서 말하기를 주사와 黑鉛의 修煉法則을 안다 해도 火候의 이치는 알지 못한다. 마치 大都에 나가서 한가하게 지내면서도 修煉을 쌓아 올리되 털끝만큼이라도 차질이 생기면 丹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火候공부의 세밀한 법칙을 알고 나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니라.
59) 제자 : 한때의 得藥은 火候를 쓰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어째서 火候工夫에 細密함 이 있다고 하십니까?
오원자 : 이른바 <一時得藥>이란 것은 약을 얻는 효과를 말한다. 이른바 <火候>란 것은 수련을 계속해 나가는 일이다. 還丹하는 일은 아주 쉬우나 煉己하는 일은 아주 어렵다. 모든 聖人들이 해를 거듭하면서 道를 닦되 이<一時得藥>하는 그 한때에 약을 얻기 위하여 神功을 움직이고 藥을 따서 병 안에 간직한다(運動神功 採藥歸아). 그리하여 三百日 공부로서 한 순간에 結胎시키는 일을 <一時得藥>이라 한다. 이는 가장 쉬운 일이다. 그러나 煉己와 火候 공부를 게을리 하면 鉛은 이르되 汞이 달아나는 것이므로 坎을 불러들였어도 離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가 왔어도 내가 기다리지 않으니 서로 어긋나고 말게 됨으로, 얻었다가 도리어 잃고 만다.
60) 제자 : 그가(坎卦) 오고 내가(離卦) 기다림)을 어떻게 알게 됩니까?(彼來而我待)
오원자 : 그가 올 때, 내가 기다리는 일은 잘 알 수 있다. 太上(老子)께서 말하기를 황홀한 가운데 물체가 있다. 오묘한가운데 정기가 있다(恍兮惚兮其中有物, 杳兮冥兮 其中有精황혜홀혜기중유물, 묘혜명혜 기중유정)이라 했다. 이 精氣야 말로 가장 진짜여서 그 가운데 믿음이 들어있다. 이 물건은 범속한 물건이 아니며, 곧 藥物인 것이다. 이 精氣 또한 혼탁한 물건이 아니라 진짜精氣다. 이 진짜는 범속한 진짜가 아니라 곧 天眞이다. 또 信도 보통의 믿음 따위가 아니며 곧 實信을 뜻한다. 이 實信이 한 번 오면 범이 소리를 질러 바람을 일으키고 용이 으르렁대어 구름을 일으킨다(虎嘯風生 龍吟雲起). 大修行人은 이때에 용을 몰아 범과 짝 지우고(驅龍就虎) 범을 용과 만나게 하여 둘을 거두어(以虎會龍) 黃庭에 있는 가마솥에 몰아넣어(收於黃庭土釜) 丹을 맺도록(結而成丹)한다. 이러한 작업은 天機에 속한다. 깨달은 사람은 지척간이고 깨치지 못한 사람은 천리보다 멀다.
61) 제자 : 黃庭土釜란 中宮(中央戊己土)에 있는 黃庭穴(丹田穴)입니까?
오원자 : 이것은 五行을 모으고 四象을 화합시킨 無形無象의 眞土이며 몸 안에 들어 있는 有形有象의 黃庭이 아니다. 다만 비유해서 하는 말이다. 仙道에서 말하는 黃庭은 있고 없음에 상관하지 않으며 어느 一定한 자리에 구애받지 않는다. 採藥으로 말할 것 같으면 <황파黃婆>라하고, 煉藥으로 말할 것 같으면 토부土釜라하고, 結胎로 말할 것 같으면 黃庭이라 한다. 黃婆는 陰陽을 調和시키는 일을 하고, 土釜는 鉛汞을 삶고 굽는(烹煉) 일을 하며, 黃庭은 谷神을 고요히 기르는 일을 한다. 만약 後天의 幻身에 들어있는 黃庭穴을 진짜로 알고 있다면 어떻게 陰陽을 調和시키며 鉛汞을 단련시키며 谷神을 靜養할 수 있겠는가. 陸子野가 말하기를 眞土는 일정한 자리가 없고, 眞意는 형체가 없다고 했다. 즉 이런 것을 黃庭이니 土釜니 하는 뜻이니라.
62) 제자 : 眞土에 정해둔 위치가 없고 眞意에 형상이 없다면, 聖胎가 응결하는 자리도 없습니까?
오원자 : 정한 자리가 없다는 것은 採藥할 때의 경우이고, 結胎할 경우에는 陰陽이 <中央戊己土>에서 서로 합하게 된다. 이것을 노른자위 안에서 理가 상통하여 正位에서 道體가 들어앉음(黃中通理 正位居體)이라 한다. 혼연한 한 기운이 丹元자리에 생겨서 형체를 이룬다. 비록 자리는 없어도 실제로는 자리가 있다. 다만 그 자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어떤 자리도 아니다(非一切着空執相之位). 이는 형체가 없으며 다만 動과 靜을 구별할 따름이니라.
63) 제자 : 土는 본시 움직이지 않는 것인데 動을 말씀하시니, 가짜와 접촉하지 않고도 얻게 됩니까?
오원자 : 흔히 말하는 動靜의 자리(土)가 아니며 先天眞土에서 하는 動靜을 뜻한다. 動은 陽에 속하며 밖의 黃婆를 움직이는 것이고, 靜은 陰에 속하면서 안의 黃婆를 지키는 것이며. 밖의 黃婆는 소위 兩家를 좋게 和合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한 자리가 없어도 움직이고, 안의 黃婆는 소위 한차례의 들여보내는 일을 한다(傳一時之過送전일시지과송). 그러므로 자리가 있어서 靜한 것이다. 動은 소위 採藥함이오. 靜은 소위 煉藥함이니라. 움직이지 않고 先天의 기운을 어찌 불러 드릴 수 있으며(如何招攝的來) 靜하지 않고 先天의 기운을 어찌 응결시켜 結胎시킬 수 있겠는가. 이것이 內外의 구별이며 動靜의 분별이니라.
64) 제자 : 土를 쓰는데 안 밖이 있다면 四象을 씀에도 역시 內外가 있습니까?
오원자 : 四象에 土를 붙이면 五行이 된다. 外 五行은 先天을 따라서 命을 완성시킴이오(傳一時之過送), 內五行은 後天을 닦아서 性을 마무리 짓는 것이다(成候天而了性). 안과 밖을 모두 고루 갖춤이 곧 性命을 修하는 道의 원리이니라(內外俱了 性命 修之道也).
65)제자 :性은 안에 속하고, 命은 밖에 속하는데, 그렇다면 몸 안에는 命이 없습니까?
오원자 : 하늘은 陰陽五行으로서 만물을 化生하고, 氣는 形體를 이루는 동시에 理 또 한 갖춘다. 氣는 命이며 理는 性이다. 氣는 理를 떠나지 않으며 理도 氣와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이치를 <性不離命 命不離性> 이라 한다. 어찌 性은 있고, 命이 없겠는가.
66) 제자 : 사람 몸속에 이미 命이 있어서, 한 몸을 닦으면 그 命이 온전할 수 있는데, 어째서 다시 他家의 것을 구합니까?
오원자 : 命은 先天에 속한 것이고, 性은 後天에 속한다. 사람이 先天에서부터 받은 기운을 消失하여 命이 일그러져서 상처를 입었다(人自先天之氣 失散於命有虧). 만일 命 한 가지만 닦는다면, 그 닦는 사람은 性이 비고 만다(空性). 만약 性理 하나만을 닦는다면 닦는 것은 탁한 물건이며 현재에 가진 기운을 그대로 보존하여 잃지 않을 따름이다. 이미 잃어버린 기운을 回復시키려면 반드시 他家(坎)의 죽지 않는 不死方을 써야 하며, 이미 잃어버린 수량만큼의 기운을 다시 불러들여 攝理시켜야 招攝(초섭:不死藥을 내 몸에 交接시키는 일)하느니라.
67) 제자 : 先天의 기운은 형상이 없는 것이며 이미 잃었다면 없어졌다는 뜻인데 어떻게 다시 불러 올 수 있습니까?
오원자 : 옛 祖師들이 말씀과 마음으로써 전해 내려온 秘法은 곧 이것을 가르쳐 온 것이니라. 萬劫에 한번 전해준 道法도 또한 이것이니라. 잃은 것은 어디서 잃었으며, 돌아오려면 어디서 구해야 하는가(失物從何失 還從何求). 先天의 기운은 한 陰이 구에 와서 잃게 되므로 (來구而失. 天風의 자리) 이제 一陰이 자리에 왔을 때, 잃어버린 故物(元物)을 다시 찾는다. 현재는 그를 기다려서 求하지 않더라도 순리로서 구하게 된다. 周易에 이르되 몸을 닦으면 멀지 않아 다시 돌아온다(不遠復以修身)고 한 것이 이를 가리킨 말이니라.
비록 그렇다고는 하나, 先天의 靈藥을 採取함에 있어서 먼저 貴人을 만남이 중요하다(莫先得乎貴人막선득호귀인). 만약에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先天은 돌아오지 않는다. 陸子野가 말하기를 靈藥은 西南 坤方에서 생기는데 坤方에서 찾는 사람이 어찌 離임을 알리오(藥出西南是坤位 欲尋坤位豈離人)라고 했다. 이 말 가운데 참뜻이 설파되어 있으니 제군들은 반드시 알아둬야 할 것이다. 다만 서로 만났어도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지 못할까 두려울 따름이다. 그러므로 만약에 밝은 스승으로부터 직접 전해 듣지 않고는 이 藥物과 이 사람의 참 뜻을 어찌 쉽게 알 수 있겠는가.
68) 제자 : 性命이란 내 自身의 性命이므로 修煉도 자기 몸 안에서 하는 것이며 他人의 힘을 빌릴 수 없을진대 이제 말씀하신 離人을 얻지 못 하면 사람을 구할 수가 없습니까?(不離人得 毋求於人乎 불리인득 무구어인호)
오원자 : 이 사람은 몸 밖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곧 죽지 않는 사람인 즉 本來의 眞 人이다.
古仙들이 말하기를 만일 諸君들이 죽지 않으려면 반드시 죽지 않는 사람을 찾으라(若要君不死 須尋不死人). 이 죽지 않는 사람의 이름을 金公이라 부른다. 金公은 원래 내 자신의 것인데 다른 곳으로 달아나서 길을 잃고 돌아올 줄 모르는 迷兒이다. 내 몸에 있을 때는 純陽의 眞童子였는데 달아난 후로는 眞을 잃어버린 迷兒가 되어 돌아오지 못한다. 만약에 한 가지 修己法만을 닦게 되면 迷兒가 된 나의 金公을 찾을 길이 없다. 그러므로 다시 金太郞을 불러 오려면 반드시 나를 만들어준 본래의 어머니와 다시 配合시킴으로써(必喚回金公 與我本母配合), 비로소 능히 藥을 낳게 하여 단을 맺을 수가 있느니라(方能生藥結丹방능생약결단)
69) 제자 : 金公을 어떻게 불러들일 수 있습니까?
오원자 : 불러들이는 일은 매우 쉬운 일이다. 특히 어려운 일은 이러한 道의 원리를 인정하느냐 않느냐에 달려있다. 이것을 病患이라 한다. 확고한 믿음이 섰을 때는 마치 한번 크게 소리를 지르면 산울림처럼(一呼就到 如空谷傳聲) 되돌아오지 않음이 없다. 이미 가버린 金公은 내가 소홀했던 탓으로 간 것이므로 이제 그 救命하는 방법을 알았으므로 親之愛之하여 잘 다스려 불러들이면 당장에 옛 품으로 돌아올 것인 즉, 무슨 큰 어려움이 있겠는가.
70) 제자 : 金公을 디시 불러오는 것이 곧 생명을 얻는 것이 됩니까?
오원자 : 아니다. 金公이 오는 것은 眞種이 손에 들어온 것에 불과하다. 이로부터 땅 에 심는 공부를 해야 한다. 밭을 갈아야 하고, 씨를 뿌려 가꿔야 한다. 그리해서 싹이 터서 땅위에 얼굴을 드러내면 이를 溫之養之하면서 성숙하게 자라도록 온갖 정성을 기울여 가을이 되어 열매가 結實한 다음에 열매를 따서 먹게 되는데(呑以服之) 이로써 능히 接命永住할 수 있는 것이다.
71) 제자 : 接命하는 道가 곧 性理學입니까 ?
오원자 : 그렇다. 性을 닦지 않고 어떻게 立命할 수 있겠는가. 대저 性 이란 것은 命에 붙어 있고, 命은 性에 의존하여 있다(性者命之寄 命者性之存성자명지기 명자성지존). 性命은 원래 一家이다. 어찌 性品을 닦지 않고 命줄을 얻겠는가.
72) 제자 : 性命이 一家라면 命을 닦으면 性도 닦일 것인데 어찌해서 命을 닦은 다음에 또 性을 닦는 것입니까?
오원자 : 命을 닦을 때 닦는 性은 하늘에서 받은 性(天賦之性천부지성)이다. 命을 닦은 후에 닦는 性은 텅빈 性(虛無之性)이다. 天賦의 性은 陰陽안에서 오는 것이고, 虛無의 性은 太極안에서 오는 것이므로 한가지로 봐서는 안 되느니라.
73) 제자 : 虛無의 性을 닦는데도 火候를 써야 합니까?
오원자 : 性을 닦는 이치는 道로써 몸을 온전하게 하는 것이며(道爾全形), 하나를 안고 아무일도하지 않는(抱一無爲之事) 법도다. 비록 無爲라고는 하나, 그 하지 않는 속에서 危險함을 예방하는 공부가 있다. 寂滅하며 全無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 까닭은 능히 진짜로 돌아가는 것인즉, 오묘한 깨침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能歸於眞 如妙覺之地也).
74) 제자 : 眞에 돌아감이 妙覺과 같다면, 道의 頂上에 도달한 것입니까?
오원자 : 아니다. 虛空을 打破한 다음에 비로소 道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虛空을 버리는 공부를 해야 한다. 몸 가운데 虛空이 남아있으면 道를 완성했다고는 말할 수 없느니라.
75) 제자 : 먼저 命을 닦고 뒤에 性을 닦는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이제 또 먼저 性을 닦고 뒤에 命을 닦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오원자 : 이 말은 돈오頓悟한 다음에 점차로 닦아 나간다는 뜻이니라. 사람은 타고날 때에 맑은 기운을 받은 사람과 탁한 기운을 받은 사람이 있다. 맑은 기운을 받은 사람은 또 性根에도 예리한(利) 것과 우둔한(鈍) 구별이 있다. 맑은 기운과 예리한 性根을 받은 사람은 스승을 만나 한번 가르침을 받으면 단번에 깨침이 열려서, 그가 태어나기 이전의 본래모습을 알아차려서, 이로부터 점수법漸修法을 공부해서 자신의 본래 참모습을 보전해야 한다. 이것은 性을 닦음으로써 命을 닦는 법(由性而修命)이고, 다른 하나는, 타고난 기질이 혼탁하고 성품이 우둔한 사람은, 비록 스승을 만나 진법을 들었다 해도, 즉시에 생명의 비밀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므로 점차로 깨달아 나가야 하는데, 이것을 가리켜 命을 닦으므로 써 性도 닦이는 법(由命而修 性유명이수성)이라 한다.
76) 제자 : 命을 닦는 도법은 점차로 닦아 나가는 공부(漸修之功점수지공)입니까?
오원자 : 先天의 기운은 점차로 소멸하는 것이다. 이제 다시 돌이키려면 역시 점차로 부활시켜나가야 하느니라. 悟眞篇에서 말하기를, <大都로 나가서 하는 공부는 전적으로 몸에 힘을 기르기 위함인 즉,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나게 되면 丹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古仙들이 말하기를 말이 통하지 않으면 권속이 아니고(言語不通非卷屬언어부통비권속) 공부가 미치지 못하면 둥글지 않는다(工夫不到不方圓공부부도부방원)고 했으니, 이 말들이 점수漸修하는 공부를 말한 것이니라.
77) 弟子 : 眞火는 본시 때가 없으며 大藥은 저울로 달 수 없다는데, 만약에 眞法을 얻어 곧 바로 修煉한다면 어떤 효험을 얻게 됩니까?
오원자 : 眞火는 본시 때가 없다(無候)고 한 것은, 子時니 午時니 하는 일정한 시간 을 정하지 않는다는 뜻(不刻時中分子午也)이니라. 大藥은 저울로 달아서 크고 적음을 계산할 수 없다(大藥不計斤)함은 공부가 원숙하지 않으면 단이 영글지 않는다는 뜻이니라. 子午의 시간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지 않는다는 말은, 進退法則에 있어서 수기응변隨機應變하되 정한시간은 없어도, 정해둔 공부는 있다. 이 정해둔 한도의 공부에 미치지 못 하면 약은 익지 않으며 丹도 둥글지 않는다. 採藥하고 煉藥하여 기운을 길러서 神明을 온전하게 완성시키는 일을 어찌 斤量으로 계산할 수 있으리오. 특히 金丹大道는 가장 정밀한 공부이며 거기에는 길吉.흉凶과 지止.족足 과 노老.눈嫩 과 급急.완緩의 차등이 있으므로 참으로 근신謹愼하고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느니라.
78) 제자 : 吉凶과 止足과 老嫩과 急緩을 다루는 법도를 알고 싶습니다.
오원자 : 先天으로 돌아가는 일을 吉이라 하고(復其先天爲吉) 後天으로 내려가는 것 을 凶이라 한다. 藥이 이미 성숙해진 것을 足이라 하고, 불질하는 공부(火功)가 다 차서 그쳐야 할 때를 止라하고, 藥이 기운이 막 생겨나는 것을 嫩눈이라하고, 藥기운이 이미 늙어서 못 쓰게 된 것을 老라하고, 藥기운을 얻지 못했을 때를 急급이라고 하고, 藥을 이미 얻었을 때 안 사람은 丹을 還元시켜서 능히 結胎할 수 있다. 그러므로 逆行과 順行을 공부함에 있어서 뜻대로 되지 않음이 없느니라(逆順運用 無不如意也)
79) 제자 : 先天의 道는 逆道인데 어찌해서 順道라 하십니까?
오원자 : 逆이란 것은, 先天의 기운을 훔쳐서 陽을 되돌리는 일이다. 順이란 것은, 後天의 공부를 이루어서 陰을 물러가게 하는 것이다. 陽을 返還시키고 陰을 퇴거시키되(返陽退陰) 先天은 天道에 어긋나지 않아야 하고(先天而天弗違), 後天은 천시를 받들어야 하느니라(後天而 奉天時)
80) 제자 : 先天의 기운도 天地가 낳은 것인데, 어찌하여 하늘이 나를 어기지 않는다 하십니까
오원자 : 기운은 비록 하늘과 땅이 낳아서 사람 몸에 이르러, 능히 몸을 편안히 함이 天地보다 앞섰다 해도, 한평생을 기다리면서 天地의 기운을 뽑아서 쓰되(採之使天地), 나로 하여금 깨닫지 못하게 한다(不我覺). 그러므로 周易 박괘剝卦 上爻에 이르기를, 큰 과일은 먹지 못한다(碩果不食).
대개 하나의 陽이 정지하여 나아가지 않을 때, 이것을 그 본래자리로 되돌리는 것을 소위 先天의 학문이라 한다(蓋留其一陽 止而不進 將爲返還之本 所以謂 先天之學也).
81) 제자 : 剝이란 것은, 陰이 陽을 박탈한 것인데, 어찌 능히 박탈된 陽을 되돌릴 수 있습니까?
오원자 : 剝은 天地가 순행하는 造化를 가르친다. 一陽이 머물러 나아가지 않을 때, 聖人은 이를 돌리기 위하여 逆行하는 造化를 부린다. 剝으로 말미암아 다시 後天안에 先天을 되돌림(由剝而復後天中 返先天)에 있어서 여섯"六"을 쓰되 여섯만을 쓰는 것이 아니다(用六而不爲六所用). 대개 陰을 빌어서 陽을 구하고 져 할 따름이다(蓋欲借陰以救陽耳개욕차음이구양이). 陰符經에는 이러한 이치를 그 기밀을 훔치는 일은, 천하사람들이 능히 알지 못하며 보지도 못한다(其盜機也 天下莫能知 莫能見)라 했다.
82) 제자 : 道는 하늘과 땅 가운데 있으며, 光明正大한 것인데, 어찌해서 훔친다(盜機)고 합니까?
오원자 : 하늘이 사람에게 잠시 동안 기운을 빌려주었을 뿐이다. 너무 오래 빌려 쓰면 다시 걷어 드린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죽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永生不老코져 하는 사람은 天地의 기운을 훔치지 않고는 不可能한 일이므로, 그들이 天地기운을 훔치는 仙法을 알아 가지고 자신의 기운이 다 소멸되기를 기다리지 말고 天地가 알지 못하는 틈을 타서, 도리어 天地의 기운을 훔쳐서(不得氣盡而 乘天地之不覺 返盜天地之氣) 오래도록 삶을 누릴 수 있느니라. 만약에 훔치는 지식과 기술도 없으면서 마치 훔치는 양, 가짜 道를 닦으면 天地가 이를 미리 알고 노발대발하여 힘을 다하여 제지할 것인 즉, 요행하게 얻었다 해도 이미 진짜를 잃게 되며 가짜를 얻게 되어서, 보고도 쓰지 못한다(見之不可用). 그러므로 쓰고도 보이지 않도록(用之不可見)하여서 한 수 하늘보다 앞선다면 하늘과 땅도 내 도술 안에 머물게 되어서, 내가 쓰고 져 할 때 안 되는 일이 없느니라(惟其先乎天則 天地在我術中 無不爲我所用矣).
83) 제자 : 사람이 天地, 陰陽, 五行의 기운을 타고 생겨났으므로, 나도 天地 사이의 한 물건인데 어찌해서 능히 하늘을 이기며 하늘이 나의 術中에 들어 있다고 하십니까?
오원자 : 聖人이 소이 능히 하늘을 이 긴다는 것은 天地를 포용하는 道를 가졌기 때문이다(聖人之所以能勝於天者 以其有包羅天地之道也).
天地를 포용하는 것은 天地 밖에서 거꾸로 운행하기 때문이다(在天地之外逆運). 그러므로 능히 내 생명은 나에게 메여 있는 것이지(故能我命由我) 하늘에 매어있지 않느니라(不由天也).
84) 제자 : 사람의 힘으로써 하늘을 이기는 道를 들려줄 수 있습니까?
오원자 : 道라는 것은, 先天의 비고 없는(虛.無)데서 생기는 한 기운을 가리킨다. 이 한 기운이 하늘도 낳고(生天), 땅도 낳고(生地), 모든 물질을 낳는 근본이 된다. 그래서 道를 닦는 工夫는 처음부터 許와 無 가운데서 시작한다. 그러므로 능히 하늘도 나를 어기지 않는다(故能天不我違也).
세상 사람들의 목숨을 부지하는 형편을 살펴 보건데, 어떤 사람은 자식이 없고(孤寡), 어떤 사람은 일직 죽고(夭折), 어떤 이는 빈곤하다(窮困). 만일 그들이 한번 크게 마음을 먹고 道를 닦으면 자식 없는 사람은 도리어 자식 부자가 될 것이며, 요절할 사람은 長壽 할 것이며, 가난한 사람은 도리어 부귀를 얻으리라. 道德이 높으면 하늘도 이기게 된다(德足勝天).
이로서 道가 하늘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니 이상할 것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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