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삼혼 칠백 (三魂七魄) 이야기
다음은 봉우사상연구소 에서 옮겨 온 것이다.
전통적으로 고대 도인(道人)들은 인간의 영혼이 혼(魂)과 백(魄)이라는 두 가지 기질(氣質)의 존재로 이루어져있다고 보았다. 또한 혼은 세 가지 형태로 이루어지고, 백은 일곱 가지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삼혼칠백(三魂七魄)의 용어가 제일 먼저 보이는 책은 지금부터 1600 여년 전 사람인 중국 서진(西晉)시대 말엽의 갈홍(葛洪)이 지은 선서(仙書) ≪포박자(抱朴子)≫의 지진(地眞)편이다.
여기에 보면 신령스런 도를 통하려면 마땅히 수화(水火)로써 형체를 분리해야 한다. 형체를 떠나면 곧 내 몸이 삼혼칠백으로 되어 있음을 스스로 알게 되리라 하며 인간이 삼혼칠백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역시 중국 송대(宋代)에 편찬된 도교총서(道敎叢書)인 <운급칠첨> 54권에는 무릇 사람의 몸에는 세 혼이 있는데 하나는 태광(胎光)이라 하고 태청양화(太淸陽和)의 기운이다. 또 하나는 상령(爽靈)이라 하여 음기(陰氣)의 변화를 말한다. 다른 하나는 유정(幽精)이라 하며 음기의 잡다(雜多)함을 뜻한다.라고 삼혼의 이름과 성질을 언급해놓고 있다.
유명한 도교경전인 ≪황정내경경(黃庭內景經)≫에도 여러 군데에서 삼혼칠백이 언급되어 있고, 특히 「상도장(上覩章)」에는 선도(仙道)수련을 통해 삼혼이 스스로 편안해져 상제께서 그 이름을 신선명부에 적도록 명한다.하고 그 주(注)에 수도자에게는 섭혼(攝魂:혼을 거둬들임)의 법이 있다. 삼혼은 영구하고 백(魄)은 쇠하여 무너짐이 없다.고 하였다.
또한 ≪통진태상도군원단상경(洞眞太上道君元丹上經)≫에는
선도수련의 하나인 생각을 보존하는 공부를 행할 때, 내 몸의 좌측에 있는 삼혼은 나의 간(肝)속에 있고, 우측에 있는 칠백은 나의 폐(肺)속에 있게 되며, 백 이십 가지 형체의 그림자가 이천 가지 정광(精光)을 이어받아 나의 입 속에서 천교(天橋)로 들어가는데 위로 곤륜산(昆侖山)에 있는 범양군(范陽郡)의 무위지향(無爲之鄕)으로 올라간다 고 하였으며
≪통진고상옥제자일옥검오로보경(洞眞高上玉帝雌一玉檢五老寶經)≫에는
삼혼이란 것은 세 사람을 뜻하는데, 형체는 조상(兆狀)과 같고 길이는 일척팔촌인데 황소원군(黃素元君)이 비액(鼻額) 가운데에 바로 앉아서 밖을 향하고 있다 라고 하며 삼혼이 원신(元身)을 뜻한다고 비유하였다.
다시 ≪황정내경경(黃庭內景經)≫과 ≪운급칠첨≫을 보면 칠백(七魄)의 이름을 명시하고 있다.
제일백(第一魄)은 시구(尸狗)요, 제이백(第二魄)은 복시(伏矢), 제삼백(第三魄)은 작음(雀陰), 제사백(第四魄)은 탄적(呑賊), 제오백(第五魄)은 비독(非毒), 제육백(第六魄)은 제예(除穢), 제칠백(第七魄)은 취폐(臭肺)가 그것이다.
위와같은 칠백이 매달 초하루, 보름, 그믐날에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귀매(鬼魅)와 교통하니 이것을 돌아오게 하는 방법으로서 환백법(還魄法)을 장황하게 소개하고 있다. 아무튼 전통사상 특히 선도(仙道)와 도교(道敎)에서는 정신의 주체를 혼백으로 정의하고 이 혼백이 육신을 관장한다고 하는 개념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 혼백의 개념을 다시 삼혼칠백론(三魂七魄論)으로 확장 부연하여 정신의 세밀한 작용까지 분석해놓았던 것이다.
어떤 학인이 삼혼칠백에 대해 봉우선생에게 물었는데 답변은 생각보다 무척 간단한 것이었다. 답변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사람은 처음 수태(受胎)될 때 혼이 들어와야 임신이 되는데 이때 들어오는 혼이 일혼(一魂)이고, 태어나며 고고성을 외칠 때 이혼(二魂)이 들어오며, 이것이 현생(現生)에 있어서 자아(自我)가 된다.
이 자아가 현세에 생기면 영계(靈界)에도 똑같은 하나의 자아가 생긴다.
이것은 우주의 삼일(三一), 일삼(一三)원리에 의한 현상으로서 이 우주 내에 어떤 하나의 존재가 생기면 이미 동시에 셋이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주재주(主宰主) ● 알과 알을 둘러싼 공간과 알의 부피, 이 셋이다. 여기서 ● 알의 부피만큼 저쪽 세계에 생기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삼혼(三魂)은 시기에 무관히 들어오는데, 전생이 좋고 정신수련이 깊은 사람일수록 이 삼혼이 빨리 들어와 정착한다. 어릴 때 천재 소릴 듣는 사람들이 삼혼이 빨리 들어온 경우에 해당한다. 나이 들어서도 무녀리 소리 들어가며 지각(知覺)이 어벙벙 한 사람은 대개 이 삼혼이 아주 안 들어온 경우이다. 즉, 삼혼이 일찍 안정되어야만 정신이 온전해지고 총명해지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삼혼(三魂)이 자아(自我)를 주관하는 영체인데 반해, 칠백(七魄)은 육신을 관장하는 영체로서 삼혼에 비해 유한성(有限性)을 띄고 있다.
우리가 죽은 사람을 제사지낼 때, 그 사람의 삼혼은 이미 영계(靈界)로 돌아가 있고 지상의 시신에 남아 있는 칠백이 제사를 받아먹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칠백이 영원히 지상에 남아 제사를 받아먹는 것은 아니다. 칠백의 존재에는 그 한계가 있는 것이다.
정신수련의 고단자일수록 혼이 백을 주도하므로 그 혼과 같이 백도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다. 젊은 시절 중국에 들어가 관운장(關雲長)이 젊어서 공부하던 터를 찾아가 뵙기를 심축(心祝)하니, 현령하였는데 나타난 그 모습이 바로 젊은이의 모습이었다. 나중에 나이 들어 공부한 장소를 찾아가 역시 뵙기를 청하니 이번에는 늙은이의 모습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백(魄)이란 이렇게 유동적(流動的) 존재이다.
영혼의 분신체라 할 수도 있으며 그 사람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난다.
사람이 벼슬할 때 관작에 따라 외양이 많이 달라지듯이 백(魄)도 그 혼의 정황에 따라 수많은 변화상을 보이는 것이다.
전에도 다른 학인이 정기신(精氣神)의 정확한 의미를 질문하자 선생은 나는 답변 못해, 그건 공자님이 다시 나오셔도 답변 못 하실 거야.하며 답변을 거절하신 적이 있었는데, 이는 이 문제가 논리 이전의 문제로서 우리의 언설(言說)로서 답변할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는 심종(心宗)적 입장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즉 마음으로 궁구(窮究)하며 정신을 집중하는 수도자(修道者)의 입장에서 투철히 깨달아(悟道覺性) 혜안(慧眼)을 얻어야 비로소 정(精)과 기(氣)와 신(神)이 활물(活物)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삼혼칠백론 역시 전통적으로 다양한 견해가 있었지만 선생은 이에 일일이 대응하여 답변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던지, 대체적 서술로서 그 존재만 인정했을 뿐 세세한 부연은 회피하신 듯 하다.
하지만 짧은 언급이 담고 있는 내용은 도장경(道藏經) 수천 권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 독특한 의미와 방향을 함축하고 있어 후세 학인들의 장고(長考)와 심사(深思)를 요구하고 있다.
2. 천상으로 올라가는 비밀통로
대금장인인 최종진씨에 따르면 ‘소설 단(丹)’의 주인공인 우학도인(羽鶴道人)은 생전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2006/01/12, http://blog.naver.com/jung2744/20020658830
출처 카페 >신화(神話)와 신비한 이야기 지구인
“1988년 성지순례를 다닐 때 대황조님을 친견했지.
대황조님께서 계신 곳은 북극성으로, 수많은 성인들이 대황조님을 가운데 모시고 둘러싸고 있는 곳이지.
석가모니불의 후광만큼 크고 밝은 빛을 지닌 성인들이 3천 명이나 있다네.
한배검님 후광은 엄청난 크기로 온 사방을 비추고 있었고 가운데로 큰 불기둥 같은 것이 하늘 위로 올라가고 있었어. 참 굉장하더군.
대황조님은 나보고 입조심하라고 당부하셨지.”
“나는 보통 1시간이면 저 북극성에 도달하는데, 우리나라에 북극성으로 가는 통로가 있지.
내가 『수단기(修丹記)』에 구계법론을 써 놓았는데 그렇다고 초계에서 구계까지가 공부의 전부는 아니야.
구계 이상으로도 정신의 계제가 끝없이 있다고 봐야지.
인간세상을 기준으로 해서 볼 때 구계까지 가신 분들을 성인으로 보는 거지 그 이상 가면 또 실력 차이가 천차만별이거든.
대개 구계까지는 가야 현재 있는 자리에서 정신의 빛인 삼화가 북극성까지 뻗친다고 하지.”
3. 삼혼칠백 三魂七魄
http://www.kidoham.co.kr/bbs/board.php?bo_table=8&wr_id=7
대순진리회 기도수련 에서
식물인 초목은 다만 하나의 혼이 있는데 생혼生魂이라는 것으로서 그 머리는 아래를 향하여 있으며, 싹을 틔우고 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만 알지, 괴롭거나 즐거움 같은 감정은 느낄 줄 모른다.
동물인 날짐승이나 길짐승은 生魂과 覺魂이라는 두 개의 魂이 있는데, 그 중 生魂은 오래 살 것과 달리고 움직일 줄만 아는 魂이고, 覺魂은 아프고 괴롭고 기쁘고 즐거운 것만 알 뿐이다. 날짐승이나 길짐승은 머리가 옆으로 가로질러 뻗어 있는데, 재난을 보면 피할 줄 알고, 음식을 보면 먹을 줄 알고, 따뜻하고 배부른 것을 알며, 은인과 원수를 구별할 줄 아는 것 등이 비록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草木보다는 훨씬 많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직 사람만이 魂 셋을 다 갖추고 있는데 하나는 生魂이며 하나는 覺魂이며 나머지 하나는 령혼靈魂이라 하는데, 이 三魂이 있어 사람은 머리가 위로 향하여 능히 하늘을 이고 발로 땅을 딛고 설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은 몸에 이 三魂이 있으므로 모르는 것이 없고 깨닫지 못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사람만이 最上의 영지靈智가 있는 것은 三魂이 天地人 三才의 형상形象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한 고로 생장生長함에 건장健壯하고, 아픔과 가려움을 알고, 선악善惡을 밝게 알고, 깊은 정감情感이 있고, 능히 사고思考할 줄 알므로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라 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善行이 있으면 하늘에 아뢰고 惡行이 있어도 숨김없이 들춰내어 사명司命께서 회동하여 庚申日과 甲子日에 모조리 다 하늘에 아뢰어 바치므로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늘은 속일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 三魂들은 항상 七魄과 더불어 한 곳에 모여 자기 主人을 농락한다.
七魄이란 첫째, 먹기를 좋아하는 시구狗好라는 魄과 둘째, 옷 입는 것을 좋아하는 복시伏矢라는 魄과 셋째, 음행을 좋아하는 작음雀陰이라는 魄과 넷째, 놀음을 좋아하는 탄적呑賊이라는 魄과 다섯째, 앙화殃禍를 좋아하는 비독蜚毒이라는 魄과 여섯째, 탐貪내기를 좋아하는 제예除穢라는 魄과 일곱째, 잡雜스런 일만을 좋아하는 취폐臭肺라는 魄을 말한다.
이 魄들은 항상 심장 구멍 속에 숨어 있다. 사람의 心臟엔 일곱 개의 규안竅眼이 있어 生時를 미루어 계산해 보면 북두칠성에 따라 七魄이 작용을 일으키는데, 본명本命인 자기 운명과 일치하는 七魄 중 한 魄이 한 구멍에 있으면서 그 맡은 일을 주관한다.
어떤 사람은 놀음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옷 입는 것을 좋아하는 등, 사람마다 타고난 성질이 같지 않은 까닭은 다 이 일곱가지 종류의 魄이 타고난 운명에 따라 그 사람을 갖고 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행인修行人들은 삼시三尸와 구적九賊을 제거除去하도록 하라. 수도인修道人들은 三魂을 연마煉磨하고 七魄을 제어制御하여 그것들이 제멋대로 날뛰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죽고서 49일 안에는 生魂은 영도靈棹(장사 지내기 전 집에 모셔놓은 제청祭廳)에 있고, 覺魂은 무덤에 있으며, 靈魂은 음부陰府인 염라국閻羅國에 있게 된다.
시구尸狗의 세 가지 흘림이란, 남을 잡아먹을 때는 땀을 흘리게 되고, 남에게 먹히게 되면 눈물을 흘리고, 남이 먹는 것을 보면 침을 흘리게 되는 것을 말한다.
魂은 간肝에 있고, 魄은 폐肺에 있으며, 본성本性은 현관玄關(건물建物의 출입문出入門이나 건물建物에 붙이어 따로 달아낸 어귀: 깊고 묘한 이치理致에 드는 문. 보통普通 참선으로 드는 어귀를 말함)에 있다.
밖을 향하고 있는 七魄의 안구眼球의 규竅는 입 하나, 양쪽 눈, 양쪽 귀, 콧구멍 둘을 합한 일곱 구명 칠규七竅를 말하고 구적九賊이란 이 일곱 구멍인 七竅에다 대소변大小便 구멍을 합한 것을 말한다.
4. 귀신(영혼)에 대한 동서양의 탐구
氣·파동 등 이용한 과학적 접근 잇따라 이범진 주간조선 기자
▶ 동양의 귀신 탐구
용재총화(齋叢話), 추강냉화(秋江掠話),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 어우야담(於于野譚) 등 우리 선조는 귀신에 관해 여러 문헌을 남겼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조선전기의 학자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 쓴 ‘금오신화(金鰲新話)’다. 이 글에서 김시습은 “산에 사는 요물을 소()라 하고, 물에 사는 괴물을 역()이라 하며, 계곡에 사는 괴물은 용망상(龍芒象)이라 하고, 나무와 돌에 사는 귀신을 기망량(夔)이라 한다”며 귀신의 종류를 밝혔다. 이어 “만물을 해치는 요물을 여()라 하고, 만물을 괴롭히는 요물은 마(魔)라 하며, 만물에 붙어사는 요물을 요(妖)라 하고, 만물을 유혹하는 요물은 매(魅)라 하는데, 이들을 모두 귀(鬼)라 한다”며 귀신을 분류했다. 그는 귀신의 특성에 대해 “산, 물, 계곡, 나무, 돌 등 곳곳에 존재하며 만물을 유혹하고 괴롭힐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개념은 조선후기의 이익(李瀷·1681~1763)으로 이어진다. 이익은 저서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귀(鬼)는 지각을 가지고 있으니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고, 귀는 기(氣)이므로 어디든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없다”며 “귀의 성질은 사람을 현혹시키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곳에 나타나 사람을 깜짝 놀라게도 하고 속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익은 “귀(鬼)는 음(陰)의 영(靈)이고 신(神)은 양(陽)의 영(靈)이며, 정령(精靈)은 백(魄)으로 되어 있고 신명(神明)은 혼(魂)으로 되어 있다”며 “먼저 정령이 있고 그 다음에 신명이 있으니, 이 두 가지 영(靈)이 물체를 떠났을 때 혼(魂)·백(魄) 또는 귀신(鬼神)이 된다”고 적었다. 그는 귀신의 특성에 대해 “영원히 존재하지 못하고 언젠가는 소멸된다”고 했다.
귀신에 관한 우리의 사상은 중국의 사상과도 상통한다. 귀신의 존재를 언급한 최초의 중국 문헌으로 알려진 것은 주나라 때 지어졌다는 유가(儒家) 최고의 경전 ‘상서(尙書=서경·書經)’다. 이 책은 죽은 사람을 ‘신(神)’이라 표현, ‘사람이 죽으면 신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이 당시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이후 법가(法家)의 기틀을 다진 제(齊)나라의 정치가 관자(管子·?∼BC 645)가 ‘내업(內業)’에서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하늘이 정기(精氣)를 주고 땅이 지기(地氣)를 내주어 이뤄지는 것이니,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면 살고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살지 못한다(凡人之生也 天出其精 地出其形 合此以爲人 和湍生 不和不生)”라며 “사람이 생명을 다하게 되면 신(神)은 하늘로 돌아가고 백(魄)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귀신의 성질을 기록했다.
이러한 귀신을 사람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기술한 학자는 묵자(墨子·BC 480~BC 390)다. 그는 ‘명귀(明鬼)’라는 글에서 “선현이나 성왕들은 귀신을 공경하고 제사를 중시했다”며 귀신의 영명합(鬼神之明)에 주목했고, 도가(道家)의 기틀을 다진 장자(莊子·BC 369~BC 289?)는 “정(精)․ 기(氣)․ 신(神), 세 가지가 모여 인간의 몸을 이룬다”며 신(神)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후 송나라 때의 ‘태평광기(太平廣記)’, 청나라 때의 ‘요재지이(聊齋志異)’ 등은 귀신, 요괴 등과 관련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채집·수록해 전했다. 이 문헌들은 모두 ‘사람이 죽고 나면 이후 귀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귀신의 존재를 조망했다.
▶ 서양의 귀신 탐구
심령학계에선 1848년 3월 31일을 주목한다. ‘뉴욕 하이즈빌(Hydesville)에 살던 폭스(K. Fox)란 여성이 살해된 사람의 영혼과 교신하는 데 성공한 날’이란 것이다. 이를 계기로 심령학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양 여러 나라로 퍼져갔고, 심령학자들은 이날을 근대 심령학이 탄생한 날로 기리고 있다.
이후 서양에선 영혼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이뤄지기 시작한다. 작업의 선두에 섰던 사람은 적자생존론을 주장했던 생태학자 알프레드 러셀 왈러스(Alfred Russel Wallace·1823~1913) 박사였다. 심령주의(spiritualism)에 관심을 가진 왈러스 박사는 ‘심령주의와 과학(Spiritualism and Science)’ ‘심령주의와 사회적 책무(Spiritualism and Social Duty)’ 등의 저술을 발표하면서 영(靈)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켰다. ‘셜록 홈스’의 작가 코넌 도일(Doyle, Arthur Conan·1859~1930)도 대열에 합류했다. 말년에 심령학에 심취한 그는 세계심령학회 회장을 지내며 인세수입 상당액을 심령학 연구에 투자했다.
방사성 물질의 스펙트럼을 분석해 1861년 탈륨(thallium)을 발견하고 원자량을 측정했던 과학자 윌리엄 크룩스(William Crookes·1832~1919)경도 심령학에 심취한 학자다. 그는 공중부양(levitation)에 관심을 갖고 탐구, 연구결과를 학술 계간지 ‘과학 저널(Quarterly Journal of Science)’에 싣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 덕으로 서양학계에선 “심령현상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같은 배경을 깔고 태어난 것이 영국 심령연구협회(The Society for Psychical Research; SPR)다. 1882년 케임브리지대학 학자 중심으로 런던서 창립된 이 협회는 미국학계에 영향을 끼쳤고, 그 결과 1885년 미국에서도 심령연구협회(American Society for Psychical Research; ASPR)가 발족된다. 하버드대학 교수 중심으로 뉴욕서 발족한 이 학회는 인간의식과 영혼의 문제를 파고들었다.
그 결과의 하나가 유명한 ‘영혼의 무게는 21g’이란 주장이다. 던컨 맥두걸( Duncan MacDougall·1866~1920) 박사가 1907년 과학저널(Scienti? Journal)에 발표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이 실험은 ‘인간의 영혼 역시 하나의 물질’이란 가설에서 시작한다. 맥두걸 박사는 ‘사람이 죽은 뒤 정말로 영혼이 육체를 떠난다면, 물리적으로 그 실재(physical presence)를 측정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의문을 품었다. 박사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초정밀 저울을 이용해 임종 환자의 무게를 측정했다. 그 결과 사람이 숨을 거둘 때 반드시 체중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땀, 속변 등의 수분과 폐에 들어있던 공기가 신체에서 빠져나가기 때문”이란 것이다. 박사가 주목한 것은 이 부분이었다. 6명의 환자 몸무게를 정밀 측정한 결과 “수분과 공기를 합한 무게보다 21g이 더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맥두걸 박사는 “이 21g이 바로 영혼의 무게”라고 주장했다. 그는 “숨진 환자의 몸에 인위적으로 숨을 불어넣어 봤지만 한번 줄어든 의문의 21g은 다시 회복되지 않았다”며 “떠나간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개 15마리를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했다. 하지만 “사람과 달리 개는 죽을 때 몸무겐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박사는 그 이유에 대해 “사람에겐 영혼이 있지만, 개에겐 영혼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는 그 해 3월 11일자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와 미국 의약학회지(American Medicine) 4월호에 속개되면서 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하지만 “실험에 사용된 샘플 규모가 너무 작은 데다, 임종환자 몸무게 변화치의 신뢰도가 크지 않다”는 반론이 힘을 얻게 되면서 박사의 연구는 점차 잊혀져갔다. 하지만 이 연구결과는 2003년 ‘21그램’이란 제목의 영화로 제작되어서 다시한번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후 서양의 심령학 연구는 체계를 갖춰 초능력을 탐구하는 초심리학(parapsychology)으로 발전했다. 1969년 세계 최대의 과학단체인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The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는 초심리학을 과학으로 인정, 미국 초심리학회(PA; Parapsychological Association)를 협회의 정식회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후 미국에선 초심리학회를 중심으로 정신감응(telepathy), 투시(clairvoyance), 염력(psychokinesis), 심령요법(psychic healing), 예지(precognition) 등에 관한 연구를 강화하고 있다.
5. 유교 귀신론 간단 메모
브로그 종교학벌레 http://bhang813.egloos.com/10455680 에서
1. 원시유교 경전에서
귀신론 논의의 역사를 관통하는 두 줄기는, 제사 대상으로서의 귀신의 존재를 승인하려는 태도와 자연현상의 일한으로서 합리화하는 태도라고 생각된다. 고대 문헌에서 이 두 태도를 볼 수 있다. 귀신의 덕을 찬양하는 <<중용>>은 제사에서 받들어지는 귀신에 대한 이야기이다.(후에 다산은 이 구절로부터 만인의 모심을 받는 상제로서의 귀신 개념을 주장한다고 한다.) 반면에 <<주역>>의 귀신은 우주의 운행과 관련되는 생뚱맞을 정도로 추상적인 존재.
“귀신의 덕德은 성대하도다. 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지만 만물의 주체가 되어 빠뜨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천하 사람으로 하여금 재계하고 옷차림을 깨끗이 하여 제사를 받들되, 신이 위에 계신 것처럼 옆에 계신 것처럼 여기게 한다.” <<중용>>
“정기精氣가 어리어 사물이 되고 혼魂이 유산遊散하여 변화하니, 이로써 귀신의 정상情狀을 알 수 있다.” <<주역>>, <계사전>
2. 송대 성리학에서
성리학에서는 귀신을 세계의 운행 과정의 일환으로 합리화하려 한다. 정이는 귀신이 “조화의 자취”(造化之迹)라고 상당히 추상화시켜서 이야기한다. 주희의 <<주자어류>>에는 귀신에 대한 논의가 풍성하게 담겨 있어서 나중에 찾아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도 귀신을 펴지고 구부러지는(屈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리학의 전형적인 논리라고 생각된다. 또 주희는 제사의 근거로 귀신 개념을 확립하려고 했는데, 이 언급은 한국의 종교생활에도 큰 영향을 끼친 중요한 언급이라고 생각된다.
“신神은 펴지는 것이고 귀鬼는 구부러지는 것이다.……귀신은 음과 양이 줄어들고 늘어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귀신은 단지 귀일 뿐이다.”
“사람이 죽게 되면 결국은 흩어지는데 곧바로 다 흩어지지는 않기 때문에 제사 때 감응感應하여 오는 이치가 있다. 세대가 먼 선조는 그 기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그의 자손이라면 결국 같은 氣이기 때문에 감응하여 통하는 이치가 있다.” <<주자어류>>, <귀신>
3. 한국 성리학에서
조선 성리학에서 귀신을 제사의 근거로 삼는 논리는 심화되었다. 특히 귀신을 사후에 氣가 흩어지는 과정에만 존재하는 일시적인 존재로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그런 일시적인 존재에 대한 제사가 헛된 것이 아님을 논증하는 일은 유학자들에게 난제였던 모양이다. 4대 이후의 먼 조상에 대한 제사가 유효한, 다시 말해 감응하여 통할 수 있는 것임을 말하기 위해서 이이(율곡)는 氣뿐만 아니라 理를 통해서도 귀신과의 감응이 일어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그의 이기론에서 다소 무리한 논증이라고 한다. 그만큼 제사의 정당성을 밝히는 것이 시급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먼 대의 선조는 진실로 능히 감통感通할 기氣는 없지만 일념지성一念至誠으로 드디어 감통할 수 있는 것은, 비록 감통할 氣는 없으나 능히 감통할 수 있는 리理가 있기 때문이다. 죽은 지 오래지 않으면 氣로써 감통하고 죽은 지가 이미 오래이면 理로써 감통하니, 氣가 있거나 없거나 그 감통함은 마찬가지이다. <<율곡집>>, <사생귀신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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