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북중국 피라미드는 누가 만들었나?
만주(滿洲). 북중국에 가면, 정체 불명의 피라미드들이 수 없이 서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것은 100개 이상이다. 평균 25-100 m 높이의 피라미드들이다. 이집트 최대 피라미드보다 더 큰 것도 있다. 제작 시기도 이집트보다 몇백 몇천년 앞선다. 이런 것을 축조하기 위해서는, 고대의 기술로는 연인원 100만명이 소요된다고 한다. 큰 것은 이집트 최대 피라미드 보다 더 크다. 바로 우리 배달(倍達)의 조상들이 건축해 놓은 것들이다.
2001년 07월 09일, 중국 신화 통신은 만주에서 5,000여 년 전의 피라미드를 발견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들 배달국의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7개의 묘장과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는 제단이 있다고 한다. 바로 배달국 (BCE 3,898-2,333)의 것이다. 이집트의 가장 오래된 피라미드는 BCE 2,690년 기자 지역의 키오프스(Cheops)의 피라미드로 알려져 있는데, 이집트의 가장 오래된 피라미드 보다 300년이나 앞서서 만들어진 것이다.
배달국의 피라미드 문화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거쳐 이집트 문명으로 전파된 것이다. 중국의 고고학자 왕시핑 Wang ShiPing 교수는 중국 서안 일대의 피라미드도 조사했었는데, 배달국 연대의 것이라고 한다. 중국의 북부와 서안 지역에 가면, 이런 피라미드가 100 개도 넘게 있는데, 그 중에는 이집트에서 가장 높은 쿠푸왕 피라미드 (146.5m) 보다 두 배 이상 높은 300m 이상의 것도 있다.
현재, 이들 유적들은 중국 공안 당국에 의해 철저하게 숨겨지고 있다. 학술적인 조사도 불가능하며 중국에 의한 연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중국 당국은 1960년대, 1970년대에 이미 이들 피라미드들을 발굴하다가 동이족 <배달 민족>의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므로 발굴을 중단했다. 황하 문명보다 배달 문명이 빨랐다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 후 중국 당국은 위 피라미드들에 접근 금지를 시키고 고조선, 고구려를 중국 역사라 우기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독일의 고고학자인 ‘하우스돌프’씨는 ‘피터 크랴샤’ 라는 친구와 함께 여행객으로 가장하고 평상시 잘 알고 지내던 중국의 관광부 장관과의 긴밀한 관계를 이용해 외국인 금지 구역으로 묶여있던 북중국 일대의 피라미드들을 몰래 사진으로 담는데 성공하였다.
그 후, 중국 공안 당국은 촬영 사실을 알아내고 하우스돌프씨와 그의 친구를 검거하여 카메라 및 필름 등을 압수하였으나, 다행히 촬영 직후 곧바로 사진들을 독일로 보내, 서방 세계에 북중국의 피라미드들을 알리는데 성공하였다.
세계 역사를 다시 써야 하는 21세기 최고의 고고학 발견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렵의 수 많은 서구의 고고학자들이 중국 정부에 발굴을 허가해 달라는 공문과 압력을 수차례 보냈다. 처음에 중국 정부에서는 "북중국 및 만주 땅에는 옛날부터 야만 민족과 기마 민족들이 살았던 곳이라 진보된 문명이 없다"고 말하고, "독일 학자의 사진과 보고서는 조작된 것이다."라고 발뺌 하였다.
하지만, 야만 민족이나 기마 민족이 만들기에는 너무나도 정교하고 웅장하여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계속 발뺌해 오던 중국 정부에서는 계속되는 서구 학자들의 발굴 요구 및 서구 케이블 TV에서 몰래 중국에 잠입해 카메라로 찍어 서구 사회에 방송하는 노력에 힘입어 최근에 중국의 일부 학자들이 그 존재를 인정하고 아직 발굴 기술과 유물 보존 기술이 부족해 다음 세대로 발굴을 연기하게 되었다는 말만 살짝 흘렸다고 한다.
그 발표와 함께 10년 전부터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켜 자국 학생에게 가르치고 전 세계에 고구려 역사가 중국 역사라고 홍보하고 있는 중이다. 보이는 바와 같이, 북중국의 피라미드들은 위로 갈수록 낮아지고 계단식 형태의 모양을 띄는 만주와 한반도에 널려있는 고구려의 무덤과 너무나도 똑같은 모양과 형태를 가지고 있다.
학계에서는 이런 건축 공법을 [들여쌓기 공법]이라고 부르며, 중국과 일본에는 찾아볼 수 없는 고구려 고유의 건축 공법이라는데 이의를 다는 학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면, 5,000년 전에 이 지역에서 이런 문명을 가진 집단은 누구일까? 중국인인가? 아니다. 중국인은 황하 유역에서 농사짓고 있었다. 몽골인인가? 아니다. 몽골인들은 당시 존재도 없었다. 거란족? 오환족? 이들은 완전 유목민으로서 정착 문명과 관계없다. 여진족? 이들도 유목민이다.
5,000년 전에 이 지역에 관계된 국가나 민족은 누구인가? 모든 역사책에는 이 지역에 고조선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고조선(古朝鮮) 이전에 배달(倍達)이라는 나라가 있었고 우리 민족은 배달(倍達)의 후예인 배달(倍達) 민족이다. 그럼, 북중국 및 만주에서 발견되는 피라미드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바로 배달(倍達) 민족인 우리나라 조상인 것이다.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의 홍산(紅山) 문화는 1920년대 프랑스 에밀 리쌍이 처음 발굴을 시작하였고, 1930년대 중국 철학자 양계초의 아들 양사영이 홍산(紅山) 유적지를 조사한 이래 많은 학자들이 연구에 뛰어 들었다. 그 후, 중국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발굴하였는데, 1980년대에 홍산(紅山)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우하량 유적이 발굴되어 전세계가 깜짝 놀랐다. 이 곳에서 나오는 유물들은 중국의 황하 문명 보다 2-3천년 앞 서 있었고, 유적과 유물들을 자세히 살펴 보면 그 지역의 문명은 이미 국가 단계의 구비 조건을 모두 갖춘 문명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의 홍산(紅山) 문화의 유적과 유물들은 세계 문명의 발상지라고 꼽히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문명 보다 훨씬 앞 선 문명 형태였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홍산 문화의 소하서 지역 유적들은 무려 8,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결론적으로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 홍산(紅山) 유적지 발굴은 세계 문명사를 다시 쓰게 하는 엄청난 사건이다. 최근에도 중국은 동북(東北) 공정의 일환으로 이 곳을 계속 발굴하고 있다.
현재, 중국은 홍산(紅山) 문화를 ‘요하(遼河) 문명’이라고 하여 자기네 역사 유적이라고 우기고 있지만 그 유적지의 위치와 문명 양식 등을 보면 동이족(東夷族) 배달(倍達)의 문화 양식임에는 어쩔 수가 없다. 중국이 만주의 홍산(紅山) 유적지 문화를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는 것은 마치 송곳을 주머니 속에 넣고 감추는 것과 같다. 결국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신시(神市) 개천경(開天經)'기록에 의하면, 환국(桓國)의 말엽에 환웅(桓雄)이 있었다. 그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광명이세(光明理世)의 뜻을 간직하고 있었다. 환웅(桓雄)은 동방 땅 백두산(白頭山)에 문명 개척단 3,000명과 함께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을 건설하였다.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년)은 신시 배달(神市백두산,1-13대 환웅)과 청구 배달(靑丘산동성.태산(泰山),14대-18대 환웅)로 나누어진다. 배달국(倍達國)의 환웅(桓雄)이 북만주와 대진국(발해) 연안의 땅에 뛰어난 석공예와 질공예를 남겼는데, 이것을 배달(倍達) 환웅(桓雄)의 '홍산(紅山) 문화'라고 한다.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은 다시 고조선(古朝鮮,BC 2,333-238)으로 이어졌다.
우리 민족의 역사가 환국(桓國,BC 7,199-3,897),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BC 2,333-238). 부여.옥저.동예.낙랑국.마한.변한.진한. 고구려.백제.신라로 이어져서 무려 9,200년이나 된다.
환국(桓國)의 신교(神敎)문화는 고대 문화의 원형이고, 배달국(倍達國)으로 이어졌으며, 환국과 배달국의 문화는 세계 4대 문명의 뿌리가 되었다. 환국(桓國)의 12개 나라 가운데, 수밀이국과 우루국은 그동안 서양에서 최초의 문명족으로 알려져 있던 나라 이름이고, B.C 3,500년 전의 고대 메소포타미아(수메르) 문명을 일으킨 나라이다.
최근 120여 년 동안의 고고학 발굴 결과,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B.C 3,500년 경에 오늘의 서양 문명의 뿌리인 수메르(Sumer) 문명이 있었고, 이 문명을 건설한 수메르 민족은 동방에서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메르 문명은 다시 이집트 문명에게 영향을 주었고, 또한 고대 희랍 문화에 영향을 미쳤으며 로마제국을 거쳐 오늘날 서양 문명이 나온 것이다. 인더스 문명 또한 북방문명에서 기원했다고 하며, 배달국(倍達國)의 문화가 유입되어 인더스강 유역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중국의 황하 문명은 B.C3,000-2,500년경에 황하강 유역에서 발생했는데, 이것은 북만주와 산동반도 유역의 배달국(倍達國, B.C3,898-2,333) 문명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것이다. 근래에 만주에서 동북 공정의 일환으로 ‘요하(遼河) 문명’ 유적을 발굴하고 있는데, 요하(遼河) 문명은 배달(倍達) 문명의 일부이다. '황하 문명' 보다 앞선 유적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중국 당국이 발칵 뒤집혔다.
배달(倍達 BCE 3,898-2,333)의 홍산 문화는 메소포타미아 문명(BCE 3,500-2,600년). 황하 문명(BCE 3,000-2,500년). 인더스 문명(BCE 2,500년경). 이집트 문명(BCE 3,100년경) 보다 앞선 것이며, 세계 4대 문명에게 영향을 준 것이라는 증거와 유적들이 최근 속속 발굴되고 있다.
'한민족의 배달(倍達) 문명이 중국 민족의 황하 문명보다 빨랐고, 중국의 황하 문명은 한민족 배달(倍達) 문명을 받아서 생긴 것이다.' 라는 역사적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역사가 환국(桓國,BC 7,199-3,897), 배달국(倍達國,BC 3,897-2,333), 고조선(古朝鮮,BC 2,333-238). 부여.옥저.동예.낙랑국.마한.변한.진한. 고구려.백제.신라로 이어져서 무려 9,200년이나 된다.
환국(桓國)의 장자국(長子國)이 배달국(倍達國)이었고, 배달국(倍達國)의 장자국(長子國)이 고조선(古朝鮮)이었음을 비추어 볼 때, 우리 배달(倍達)민족과 한국이 세계 4대 문명의 정통성을 이어 받은 민족이며 나라임을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