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宇宙進法인 十進法 生成의 原理
‘數’란 1에서 3이 나온 후부터는 그 불리는 方法에 있어서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數를 불리는 法을 일러 進法(진법)이라 하는 데, 二進法에서 三進法, 四進法, 五進法……等等으로 無限히 뻗어 나갈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進法 中에서 東西古今을 莫論(막론)하고 惟獨(유독) 널리 使用되고 있는 것이 바로 十進法이다.
물론 原始社會에 있어서는 여러 進法이 通用되었던 것이 事實(사실)이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차츰 十進法의 通用이 늘어나게 되었고, 結局 東西에 걸쳐 普遍的(보편적) 進法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오늘날에 와서도 二進法 等等 몇몇 進法이 使用되고 있는 것은 事實이나, 이것은 特定用途(특정용도)를 위한 것이지 결코 普遍的인 것은 아니다.
數를 처음으로 發見할 당시의 狀況(상황)을 假定하면 十進法보다는 二進法이나 三進法, 四進法 等이 오히려 簡便(간편)하고 便利(편리)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몇몇 未開(미개)한 文明을 除外하고는 大部分이 十進法을 數理의 根幹(근간)으로 삼았던 것이다.
宇宙原理의 精髓(정수)를 貫通(관통)하고 있는 東洋의 陰陽五行 思想 또한 數理를 根幹으로 體系化된 理論으로, 이것 또한 十進法을 基準으로 삼고 있다. 假令 河圖(하도)와 洛書(낙서)는 公認된 世界 最初의 數理 體系로서, 이 또한 十進法을 바탕으로 宇宙 變化의 神秘를 파헤치고 있다. 또한 이것에 依存하여 수많은 哲學의 領域(영역)들이 생겨나고 發展하게 되었다. 그런데 만약 ‘十進法’이 여러 進法 가운데 하나에 不過한 것이고, 결코 宇宙의 普遍的 進法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런 偏狹(편협)된 數理 體系를 가지고 宇宙의 眞理를 論하는 것 自體가 크나큰 矛盾(모순)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數理가 불어나는 原理는 오직 十進法 하나 만으로 되어 있는 것이 宇宙의 理法이라 한다면, 十進法을 土臺(토대)로 宇宙 變化를 把握(파악)하고 豫測(예측)하는 陰陽五行과, 이에서 비롯된 諸般(제반)의 哲理(철리)들이 妥當性(타당성)을 띨 것은 自明하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모든 宇宙 理論들은 한낱 偏狹(편협)된 數理 體系를 발판으로 形成된 主觀的 理論에 不過하게 될 것이다. 數 世紀 동안 地盤(지반)도 確認(확인)하지 않고 무조건 집만 華麗(화려)하게 올린, 砂上樓閣(사상누각)의 愚(우)를 犯한 꼴이 될 것이다. 실로 생각만 하여도 虛妄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果然 宇宙의 普遍的 數理 體系는 어떤 것인지, 아니면 普遍的 數理란 存在하지 않으며 必要에 따라 定하여 使用하게 된 것인지 그 實狀을 알아보자.
十進法의 發生原因에 대해서 주로 두 가지 主張이 通用된다. 첫째로 여러 進法들과 더불어 使用하는 科程에서 十進法이 그 便利를 認定받아 普遍化되었다는 主張과, 둘째로 처음 使用할 때부터 十進法이 널리 使用되었다는 主張이 그것이다. 後者의 主張을 보면, 人間이 數를 셀 수 있는 가장 便利한 道具는 結局 손가락이고, 이것이 열 개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十進法은 自然스럽게 널리 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듣고 보면 이 두 主張에는 나름대로의 論理가 있으며 큰 問題點도 없는 듯하다. 그러나 十進法이 單純한 數學의 領域이 아닌 宇宙變化 原理를 究明(구명)하는 尺度(척도)로서 使用된다는 觀點(관점)에서 본다면 便利(편리)해서 普遍化되었다는 主張이나, 손가락 발가락이 열 개여서 널리 使用되었다는 主張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自然은 自然일진대 人間이 主觀的으로 便利하다 하여, 또는 손가락 발가락이 열 개라 하여 十進法을 使用하고, 이런 人間에게만 局限된 十進法으로써 宇宙의 秘密(비밀)을 풀고자 한다면, 이는 실로 ‘偏狹(편협)’으로 ‘普遍(보편)’을 얻으려는 至極히 愚昧(우매)한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요컨대, 十進法이 宇宙 本然의 數理 體系라는 것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東洋 哲學의 根幹을 이루고 있는 ‘象數論’이 主觀的 偏狹이나 虛荒(허황)된 迷信(미신)으로 轉落(전락)하고 말 것이 自明하다.
그렇다면, 이제 十進法 生成의 秘密을 살펴보자.
앞에서 살펴본 대로 太一에서 셋, 즉 一, 二, 三이 同時에 나오게 되었다. 注意(주의)할 것은 ‘一生三’의 表現에서 三은 數字인 三을 말한 것이 아니고 一, 二, 三 셋이 同時에 나온 것을 뜻하는 것이며, ‘셋’이 있다는 것은 또한 一, 二, 三의 數字가 있음을 同時에 內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問題는 ‘三’에서부터 始作된다. ‘三’은 곧 絶對的인 ‘一’의 影響圈(영향권)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오로지 하나만을 選擇(선택)할 수 있는 絶對槪念에서, 兩者擇一(양자택일)도 可能한 相對槪念으로 轉換(전환)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곧 ‘三’부터 相對界가 始作된 것을 意味하는 것으로, 老子가 ‘三生萬物’이라 表現한 理由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三’은 一과 二와 結合하여 四와 五를 만들며 數를 불리게 된다. 이것은 個數로 볼 때, 세 個(개)에서 모두 다섯 個로 불어난 것으로 ‘三生五’인 것이다. 이것을 잘못 理解하면 三生四, 四生五로 理解할 수도 있으나, 三에서 一과 먼저 結合하고 그 뒤에 二와 結合하라는 法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三은’ 四와 五를 만듬에 있어서 그 順序가 ‘五, 四’도 ‘四, 五’도 모두 可能한 것으로, 이것은 곧 同時에 四五가 만들어진 것을 意味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三이 만들 수 있는 數의 最大數는 곧 ‘五’이며, 이 ‘五’의 生成은 結局 四의 生成도 同時에 包含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個數로 表現하자면 하나에서 세 개가 만들어졌고, 세 개에서 다섯 개가 만들어진 것이다. 즉, 하나에서 세 개가 同時에 만들어 졌고, 이 세 개는 組合에 의하여 다시 다섯 개를 同時에 만들게 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다섯개’는 곧 一太極體에서 始生된 木火土金水 五行을 象徵(상징)하는 것이다.
요컨대, 太一에서 同時에 만들어진 精氣神 셋이, 自體的으로 어우러지고 變化하여 結局 다섯인 五行을 産出하게 된 것이다. 이 ‘오행’이야말로 循環의 最小 마디이며 變化의 根幹要素로, ‘數’의 體系란 곧 이 五行을 基点으로 하여 展開(전개)되는 것이다.
그런데 다섯 개가 또 한 번 어우러져 組合(조합)하게 된 즉, 아홉 개가 生成하게 된 것이다. 이는, 六(五+一), 七(五+二), 八(五+三), 九(五+四)가 同時에 生成된 것으로, 五行이 一變하여 所産된 것을 意味한다. 즉 六, 七, 八, 九의 數에는 모두 五가 內部에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이는 五를 軸으로 한 一, 二, 三, 四의 變化인 것이다. 五의 調節(조절)을 받아 一, 二, 三, 四가 六, 七, 八, 九로 變化하게 된 것은 곧, 壬(1), 丁(2), 甲(3), 辛(4)이 土(5)와 結合하여 癸(6), 丙(7), 乙(8), 庚(9)이 生成하게 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요컨데 ‘三’이 循環의 最小 마디인 ‘五’를 生하게 되었고, 이‘五’를 軸으로 하여 六, 七, 八, 九의 數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런데, 問題는 ‘九’에서 비롯하게 된다. 지금까지 數字의 生成原理대로 라며 當然히 ‘九’를 中心으로 또 한 번 變化하여야 할 것이다. 假令, ‘十七’, 三十三, 六十五, 一百二十九……等으로 無限이 뻗어 나갈 것이다. 그러나, ‘九’에서는 더 以上 數를 불릴 수 없다는 데에 참으로 神秘한 變化의 秘密이 숨어 있는 것이다.
대저, 萬物을 構成(구성)하는 最小 마디로 쪼개어 들어간다면, 物質을 構成하는 極微者(극미자)는 形을 이루기에 가장 單純한 基本構造(기본구조)로 되어 있다. 이 基本構造보다 더 單純化된다면, 이는 解體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즉 物質 形成의 最小 成立要件(성립요건)인 基本構造를 갖춰야만 점차로 複雜(복잡)한 構造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象’의 世界 또한 마찬가지이다. 氣와 精이 엮어지면서 循環을 이루며 變化할 수 있는 最小의 마디가 形成되면, 이 마디를 基本構造로 하여 점차로 複雜한 構造로까지 變化發展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요컨대 象界나 形界를 構成하는 모든 것들은 바로 最小의 基本構造를 根幹으로 變化되고 發展된 것으로, 여기서의 基本構造가 數理上에서는 循環의 最小 單位인 ‘五’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三’이 構成의 基本要素라면, ‘五’는 變化의 基本構造인 것이다. 즉, 萬象과 萬物을 構成하는 實際(실제)의 모습은 바로 精,氣,神 셋의 組合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萬象과 萬物이 제아무리 構造가 複雜하여도, 그 構造를 成立케 하는 最小의 基本構造는 바로 木火土金水 다섯 개의 마디에 不過한 것이다. 이는 精,氣,神 셋이 木火土金水 다섯의 組合 原理를 利用하여 萬象과 萬物을 創出하는 것으로, 數理로 表現하자면 “三用五生萬物”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一’에서 ‘五’까지 數理上의 變化를 表現하면 “一生三, 三生五而用之化生萬物”이 된다.
다시 原點으로 돌아와서, ‘九’에서 더 以上 數가 불어나지 않는 理由는 바로 이와 같이 모든 構造(구조)는 最小의 基本 構造를 바탕으로 成立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最小의 基本 構造인 ‘五’가 成立된 以上, 모든 變化는 이것을 骨幹으로 變化하고 發展하는 것이 宇宙의 普遍的 理法인 것이다. 故로 ‘九’에서 結局 數는 끝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九’ 以上의 數는 果然 무엇이란 말인가?
‘九’에서 數가 그친다는 것은, 基本 構造인 ‘五’ 軸으로 하여 變化함에 있어 ‘九’에 이르게 되면 한 번의 變化가 終結(종결)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五가 四와 合하여 九를 만든 다음은 더 以上 불릴 數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시 ‘一’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고, 이것은 곧 循環이 成立된 것을 象徵(상징)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시 돌아온 ‘一’은 처음에 始作된 ‘一’과는 根本的으로 전혀 다른 ‘一’인 것이다. 즉,一에서 九까지 불어나고 다시 復歸한 ‘一’은 처음 始作된 ‘一’과는 여러 면에서 다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一’을 한 번 循環하였다 하여 ‘環一’이라 한즉, 環一, 環二, 環三, 環四, 環五, 環六, 環七, 環八, 環九가 生成하게 된다. 여기서 또 한 번 循環하면, 二環一, 二環二, 二環三, 二環四, 二環五, 二環六, 二環七, 二環八, 二環九가 생기게 되고, 繼續(계속)해서 三環一, 三環二, 三環三, 三環四, 三環五, 三環六, 三環七, 三環八, 三環九……로 無限히 불어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數가 불어나는 것에는 一定한 軸이 또 하나 생기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最小의 循環 構造인 ‘五’를 軸으로 하여 이렇게 數가 無數히 불어나게 되었는데, 그 불어나는 過程을 全體的인 視野(시야)로 觀察(관측)해 보면 또 다른 ‘第二의 軸이’ 形成되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즉, ‘九’에서 ‘環一’의 사이, 環九에서 二環一의 사이, 二環九에서 三環一의 사이……等에는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軸’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 ‘軸’을 中心으로 하여 모든 數가 九變으로 進行되어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 軸을 ‘環’이라 이름짓게 되면 1, 2, 3, 4, 5, 6, 7, 8, 9, 環, 環1, 環2, 環3, 環4, 環5, 環6, 環7, 環8, 環9, 2環, 2環1, 2環2, 2環3, 2環4, 2環5, 2環6, 2環7, 2環8, 2環9, 3環, 3環1, 3環2, 3環3, 3環4, 3環5, 3環6, 3環7, 3環8, 3環9, 4環, 4環1……으로 無限이 불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環의 고리가 環만큼 되었을 때를 培環(배환)이라고 이름 진다면, 數는 培培環, 培培培環, 培培培培環, 培培培培培環……으로 無限히 불어나게 되는 것이다.
分裂(분열)의 끝인 ‘九’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過程에 形成된 軸이 곧 ‘環’이며, 이 ‘環’의 名稱을 어떻게 불러도 關係없는 것이다. ‘십’이라 불러도, ‘TEN’이라 불러도, ‘스’라고 불러도 모두 無關한 것으로, 우리는‘十’, ‘열’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렇게 ‘十의 軸’으로 數가 發展하는 數理 體界를 일컬어 ‘十進法’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十進法’이 形成된 原理이다. 人間이 單純히 便利(편리)하다는 理由만으로 採擇(채택)된 것도 아니며, 열 개의 손가락 발가락에 影響(영향)을 받아 形成된 것도 아니다. ‘十進法’은 至極히 自然的으로 形成된 宇宙의 數理 體系인 것으로, 그 以上도 以下도 아닌 自然 그대로의 모습일 뿐이다.
우리가 道學工夫를 하다 보면 神界와 자주 접하게 되는데, 神界의 構造가 九天까지 올라가서 멈추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九天에 계신 神들을 九天上帝, 九天玄女, 九天仙管……等으로 名稱하고 있음인데, 이런 ‘九天’의 槪念(개념)은 幻想이 아닌 實際의 모습으로, 바로 分裂의 極인 ‘九’에서 그 作用이 멈추게 된 結果인 것이다.
그리고, 九天의 위는 바로 一切 諸佛과 菩薩님들의 法身이 居하고 있는 ‘涅槃’인 것으로, 數理로 表現한다면 0과 一이 共存하고 있는 太一로서, [01]로 表示하는 것이다. 世間에는 모두들 九天 위를 ‘十無極’이라 하여 ‘十’이 絶對界를 象徵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는 無知의 所致에 지나지 않는다. 偉大(위대)한 文明이 사라진 후 오랜 歲月(세월) 동안 어느 누구도 이것을 바로 잡은 이가 없었음이니, 歲月이 남긴 空虛함에 절로 歎息(탄식)과 虛脫에 젖어들지 않을 수 없음이다.
‘十’은 轉換(전환)의 軸으로 九와 十一의 境界이며, 分裂과 循環의 境界이며, 終末과 始作의 境界이며, 나아가 象界와 形界의 境界이며, 物質과 精神의 境界이며, 神界와 人界의 境界인 것으로, 宇宙를 構成하는 커다란 軸이 곧 ‘十’인 것이다. 이 ‘十’은 無極도, 絶對界도, 하느님도, 完成과 統一도 아닌, 變化 創出의 작은 마디인 ‘五’에 比해 좀 더 큰 變化를 堪當(감당)할 수 있는, 變化創出의 커다란 기틀인 것이다.
모든 絶對的 槪念은 ‘十’에 있는 것이 아니며, 오직 [01]인 太一에 있는 것이다. 그 大綱의 變化를 보면, [01]에서 [3]이 나오고, [3]에서 [5]가 나오고, [5]에서 [10]이 나오고, [10]에서 數가 無限大로 生成되어 나아가는 것이다. 즉, [一生三, 三生五, 五生十, 十生萬物]이 되는 것이다. 이 表現을 달리 [一生三, 三生萬物]이라고 하면 이는 ‘三’인 精氣神의 重要性을 浮刻(부각)한 表現이 된다. 또한 [一生三, 三生五而用之化生萬物]로 한다면, 이는 變化의 最小 單位인 五行이 成立되면서 實際的 變化가 이루어지게 된 점을 浮刻하는 表現인 것이다. 그리고 처음의 [一生三, 三生五, 五生十,十生萬物]은 象界와 形界의 境界인 ‘十’을 浮刻한 表現인 것으로, 이 점은 앞으로 자세히 나오게 된다. 여기서의 三은 ‘精氣神’이요, 五는 ‘木火土金水’요, 十은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인 것으로, 이 ‘三, 五, 十’을 十의 範圍(범위) 안에서 論하는 것을 象學 또는 形而上學이라 하고, 十의 範圍를 넘어 論하는 것을 形學 또는 形而下學이라 한다. 前者는 物質 以前인 無形의 世界를 究明하는 道學이나 神學의 分野(분야)이고, 後者는 科學 等과 같이 오직 有形의 物質만을 對象으로 究明하는, 形而上學을 除外한 모든 學文의 領域인 것이다.
‘三一’ (精氣神 三位一體)의 神秘는 익히 들어 알고 있음인데, ‘三五十’의 神秘는 어떠한가!
‘三一’이 ‘三五十’의 作用을 하는 곳에 天地創造의 秘密이 숨어 있음을 정년 아는가 모르는가!
(1) 1 + 0 = 1 1 + 2 = 2 1 + 2 = 3 |
(2) 3 + 1 = 4 3 + 2 = 5 |
(3) 5 + 1 = 6 5 + 2 = 7 5 + 3 = 8 5 + 4 = 9 |
(4) 9→10→11 12 13 14 15 16 17 18 19 |
(5) 19→20→21 22 23 24 25 26 27 28 29 |
十進法 生成表
1, 2, 3 ⇒ 4, 5 ⇒ 6, 7, 8, 9 ⇒ 10 ⇒ 11, 12, 13, 14, 15, 16, 17, 18, 19 ⇒ 20 ⇒ 21, 22, 23, 24, 25, 26, 27, 28, 29 ⇒ 30 ⇒ 31, 32, 33, 34, 35, 36…… |
數 發生表
一用五生萬物 一生三, 三生五而用之化生萬物 |
一生三, 三生五, 五生十, 十生萬物 太一生精氣神, 精氣神生木火土金水, 木火土金水生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 |
三極, 五行, 天干 生成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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