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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三. 천상열차분야지도
성립과 구성
조선 초기의 천문학은 서운관의 설치와, 태조 4년(1395) 12월에 완성된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제작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의 역대 왕조는 모두 왕조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왕조의 운명을 내다보기 위해 천문관측에 많은 관심을 가졌었다.
거기서 얻은 관측결과가 천문도를 제작하는데 쓰여진 것이다. 태조는 건국과 동시에 왕조의 정통성을 위해 새 왕조가 하늘의 뜻에 의해 세워진 것임을 천명하기 위하여 천문도의 제작을 서둘렀다.
그 결과 즉위한지 4년 만인 1395년에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완성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권근 등 11명의 학자와 천문학자의 노력이 깃들어진 것이다.
이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하늘의 적도를 12분야로 나누어 차례로 늘어 놓은 그림이란 뜻이다. 이 천문도는 가로 122.8cm, 세로 200.9cm의 흑요석에 세겨졌다. 권근이 지은 글을 설경수가 썼다. 추산은 유방택이 했다.
권근의 글은 그의 저서 『양촌집(陽村集)』천문도시(天文圖詩)에서도 확인된다. 이 때 만든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경복궁에 보존되어 있었는데, 임진왜란 이후 그대로 방치되어 보존상태가 좋지 않았다. 영조 46년(1770)에 영조는 그것을 제대로 보존하기 위해서 관상감에 흠경각(欽敬閣)을 지어 숙종 때에 새로 새긴 『천상열차분야지도』와 함께 설치하게 했다.
권근은 이 천문도 제작의 의의를 이렇게 썼다.
“ 옛부터 제왕이 하늘을 받드는 정치는 역상(曆象)과 수시(授時)를 으뜸으로 삼지 않음이 없었다. 요임금은 사시(四時)의 절후를 바로잡게 했고, 순임금은 선기옥형으로 칠정(七政)을 관측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권장함에 있어서 시기를 늦추지 아니한 것이다. ···(중략)···먼저 중성을 바로 잡은 것은 즉 요·순의 정치를 본받은 것이지만, 요순이 천상을 관찰하고 기계를 만든 본 마음을 추구해 보면 그 근본은 다만 하늘을 공경하는 데에 있을 뿐이다. 삼가 생각하건대 전하께서도 역시 공경함을 마음에 두어, 위로는 천시(天時)를 받들고 아래로는 백성의 일에 힘쓰면, 그 신공(神功)이 성대하게 빛나서 마땅히 요·순과 같이 융성하게 될 것이다. 더구나 이 성도(星圖)를 정민(貞珉)에 새겨서 영원히 자손만대의 보배로 삼으려 하니, 참으로 위대하다.
(권근 『양촌집(陽村集)』권 22, 천무도시(天文圖詩))
천문도를 대략 2등분한 선에 접해서 직경 76cm의 원을 그려 성도(星圖)를 그렸다. 원의 중심에 북극이 있고 북극을 중심으로 하여 관측지의 출지도(出地度)에 따른 작은 원과, 더 큰 적도 및 황도권이 그려져 있다.
1464개의 별이 그려져 있는 별자리 그림의 원의 둘레에는 28수(宿)의 이름과 적도수도(赤道宿度)(각각의 28수가 적도 상(上)에서 차지하는 도수)기록되어 있고, 각 수의 거성(距星)(각 수(宿)에서 한 개의 별을 골라서 그 수의 표준별로 정하여 거성(距星)이라 하였다.)과 북극을 연결하는 선에 의하여 개개의 별의 입수도(入宿度)가 목산(目算)으로도 정확하게 읽어 나갈 수 있게 그려져 있다.
관측기사에는 24절기의 중성(中星)(혼(昏)·효(曉)(황혼과 새벽)에 자오선을 지나는 별)에 대한 천상(天象)기사) 12국분야, 및 28수의 성수(星數), 일수(日宿)(천상열차분야지도에는 '일수(日宿)'라는 제목으로 태양의 궤도에 관하여 간단히 적어 놓은 것이 있다. 여기에서는 적도와 황도의 경사가 24도다 되는 것을 지적하였고, 음과 양의 교체에 따라서 추위와 더위가 생긴다는 것을 말하였다. 태양을 임금에 비유하였고, 임금과 백성과의 관계를 설명하였다.)와 월수(月宿)(달의 궤도 운행을 말한다. 월수란 달이 천구상 매일 거쳐 가는 곳, 천구상의 운행하는 길을 말한다. 월의 운행궤도를 황도를 중심으로 9도로 나누었다. 즉 황도의 동쪽으로 가는 것을 청도(靑道)로 하였고, 남, 서, 북쪽으로 가는 것을 각각 적도(赤道), 백도(白道), 흑도(黑道)라 하였고 황도 안과 밖의 둘을 합하여 9도(九道)라고 하였다.)의 기사 등이 쓰여 있다.
천문도의 중간 아래쪽에는 이 천문도의 이름인 '천상열차분야지도'란 제자가 새겨졌다.
그 아래에 논천설 즉 『진서』천문지를 인용하여 혼천설과 개천설을 주로 한 중국의 전통적 우주설을 기술했다. 그리고 28수 거극분도(去極分道)(과거 동양천문에서는 천체의 적위(赤緯) 대신 거극도 또는 거극분도란 말을 썼다. 적위와 거극도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천체의 적위) + (그 천체의 거극도) = 90°), 천문도 제작 경위, 태조를 찬양하는 천문도 제작의 의의,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관직과 성명, 제작 연월일을 기록하였다.
지금 남아 있는 태조 때의 『천상열차분야지도』의 각석에는 그 뒷면에 마모가 심한 또 하나의 천문도가 그려져 있다. 그것이 미완성의 각석인지, 아니면 원래의 것인지 분명치 않다.
『증보문헌비고』권 2, 상위고에 의하면, 세종 15년(1433)에도 새 천문도가 돌에 새겨졌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것은 전해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심하게 마모된 쪽이 태조 때의 것이고 비교적 온전한 쪽이 세종 때에 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있다.)
이 글을 쓰신 님께
저는 96년도부터 수도생활을 해본다고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몇 년 전 정신없이 이것저것 자료를 구해 보던 중 인터넷을 통하여 님께서 쓰신 글을 보고 소중하게 간직하여 오다가 저의 브로그를 정리하며 귀한 자료라 사료되어 이곳에 올려놓았습니다. 수시로 탐독하며 공부해 나가는데 마음을 다스르며, 차후에라도 인연이 있는 분들이 게시면 수행에 참고하실 수 있게 하고 싶은 욕심에서입니다. 귀중한 글을 담아오며 아무런 양해의 말씀도 드리지 못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곳을 통하여 사죄의 말씀을 드리오며 이곳에 이 글을 올려둘 수 있도록 선처하여 주시기를 간청 올립니다. 만약 저작권 관계로 불허하신다면 글을 남겨주십시오.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재삼 너그러우신 아량으로 용서하여 주시기를 간청 올림니다. 현풍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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