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儒家)사상의 전개, 맹자와 순자
1. 맹자의 사상
맹자(孟子, 기원전 372~298)는 공자 죽고 100여 년 지난 전국시대에 태어났다.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세 번 이사했다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유명한 고사이다. 맹자는 스스로 공자를 이었다고 자부하였다. 맹자가 당시 많은 호응을 얻던 양주(楊朱), 묵자 등의 비판에 심혈을 기울인 것도 공자의 사상을 지키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맹자도 공자처럼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많은 임금들을 찾아다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70세 무렵 고향으로 돌아와 제자들을 가르치고 책을 지었다. 맹자의 사상이 담겨 있는 ?맹자?는 상․하로 나누어진 7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맹자가 쓴 부분도 있고 제자들이 정리한 부분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맹자의 중심사상은 도덕성을 인간의 본질로 규정한 성선설이다. 맹자는 성선의 기준을 인간 내면에 두었으며, 이 같은 주장은 공자의 인(仁)을 체계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맹자는 사람의 외모와 감각에 공통점이 있듯이 마음에도 공통점이 있다고 봄으로써 자연 법칙과 도덕 법칙을 일치시켰다. 맹자는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인․의․예․지의 실마리라고 보고 사단(四端)이라 불렀으며, 그 근거를 하늘에 두었다. 기 같은 사유는 양명학으로 이어졌고, 맹자가 말한 양지양능(良知良能)도 양명학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는다. 맹자는 도덕적 인간의 완성을 위한 수양 방법으로 사단을 잘 기를 것,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를 것, 욕심을 줄일 것,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 잡을 것 등을 제시하였다. 물론 맹자도 인간의 감각적․생리적인 요소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감각 기관의 욕구를 따르는 사람은 소인이고 마음의 욕구를 따르는 사람은 군자라고 보았다. 이 같은 구분이 지배 계층과 피지배 계층의 차이를 인정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는 지배계층의 도덕적 자각을 통해 현실의 혼란을 바로잡고자 했던 맹자의 생각이 담겨 있다. 맹자는 인간의 악한 행동의 원인은 바깥 환경 때문이라고 보았다.
맹자는 전국시대의 혼란을 끝낼 방법으로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제시하였는데, 성선의 근거가 하늘에 있었던 것처럼, 왕도정치의 시행 또한 하늘의 뜻을 실현하는 일이었다. 맹자는 덕이 많은 사람만이 천명을 받아 임금이 될 수 있으며 덕이 많은지 적은지는 백성들이 따르는지 안 따르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함으로써 천명정치사상에 민본사상(民本思想)을 결합시켰다. 맹자는 임금 자신의 선한 본성을 바탕으로 백성들이 마음으로 따르도록 하는 왕도정치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백성들을 힘으로 복종시키는 패도(覇道)정치로 구분하였다. 왕도정치의 현실적 전개는 민본정치였으며, 구체적인 방법은 백성과 함께 즐기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이었다. 또한 맹자는 이상적 토지 제도인 정전제(井田制)와 함께 의․식․주를 보장하라고 하였다. 특히 맹자의 정치사상은 처음에 천명을 받아 임금이 되었더라도 덕을 잃으면 천명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간다고 함으로써 혁명을 인정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2. 순자의 사상
순자(荀子, 기원전 298?~238?)는 서서히 통일의 기운이 무르익던 전국시대 말기에 태어나 유가사상을 현실화시킨 인물이다. 순자는 제나라 직하학파(稷下學派) 최고 사상가로 꼽혔으며, 국가 제사를 주관하는 좨주를 세 번이나 지냈다. 순자의 사상이 담긴 ?순자?는 대화체 형식의 ?논어?, ?맹자?와 달리 대부분 순자가 직접 쓴 논문 형식의 글이다.
순자사상의 핵심은 성악설이며, 그 기준은 객관적인 사회 상황에 있었다. 순자는 잘 다스려진 상태가 선이고 혼란스러운 상태가 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사회가 혼란한 이유는 이로움을 좋아하는 자연적이고 생리적인 인간의 본성 때문이라고 보았다. 순자는 인간의 마음 작용을 성(性)․정(情)․려(慮)․위(僞)의 4 단계로 나누었다. ‘성’은 생리적이며 감각적인 욕구이고, ‘정’은 사물과 만나서 생기는 감정이며, ‘려’는 이성적 사고에 바탕 한 선택이고, ‘위’는 선택을 실천하는 의지이다. 순자는 ‘성’은 악이고 ‘위’는 선이므로 의지적 실천을 통해 본성을 변화시키는 ‘화성기위(化性起僞)’를 주장하였다. 이처럼 순자의 사상 속에는 인간 본성에 대한 신뢰는 없지만 의지적 실천에 대한 확신이 담겨 있다. 그러한 의지적인 노력을 제도화하려고 한 것이 예였다.
순자 이전의 사상가들은 모든 것을 하늘이 주관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지배 권력의 통치 합리화 이데올로기였고, 민중들의 숙명의식이기도 했다. 그러나 순자는 하늘을 인간과 상관없이 기계처럼 운행하는 존재라고 보았다. 이러한 순자의 생각은 인문정신의 완성이었다. 하지만 기우제, 제례, 점치는 행위 등이 가진 문화적 기능을 인정하기도 하였다. 결론적으로 순자는 사람이 하늘, 땅과 대등하게 만물의 변화에 참여하는 존재라는 뜻에서 ‘‘능참(能參)’이라는 표현을 끌어내었다.
순자는 인간이 사회를 떠나 살 수는 없으며 화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보았다. 더구나 욕심은 끝이 없고 재물은 부족해서 그대로 두면 더 혼란해질 것이기 때문에, 이들을 화합하게 하는 수단이 예라는 것이다. 따라서 예는 요청된 규범이므로 인간의 본질이 아니다. 순자는 성인이 예의 제도를 만들었지만 변법(變法)의 생명은 기존 예법을 지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맞는지를 따지는 시의성에 달려 있으며, 오늘에 맞는 예의 제도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자신의 악한 본성을 극복한 지금의 임금이라고 보았다. 이 같은 관점은 주나라 제도를 회복하려는 복고적 입장의 공자나 맹자와는 다른 미래지향적 관점이었다. 이 같은 생각을 후왕사상(後王思想)이라고 하며, 세습제에 대한 철저한 부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순자는 군주란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백성의 뜻을 거스르는 군주는 뒤집어엎을 수 있다고 함으로써 천명에 근거를 둔 맹자의 혁명론과 달리 직접적인 민중의 의지에 기반을 두기도 하였다. 예를 강조한 순자의 생각은 한비자(韓非子)와 이사(李斯) 같은 제자들을 통해 법가사상으로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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