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종교

[스크랩] 주자학의 성립과 전개

검은바람현풍 2011. 9. 10. 19:09

주자학의 성립과 전개


 

 주희(朱熹)는 남송 초기 양자강 이북을 이민족이 지배하던 시기를 살았다. 젊어서는 노자와 불교 등에 두루 관심을 두다가 이동에게서 성리학을 배웠다. 만년에 ‘거짓 학문(僞學)’으로 몰렸지만 북송 성리학의 집대성하여 동아시아의 보편적 세계관을 세웠다. 대표적인 성리학자들의 학설을 정리한 ?근사록(近思錄)?, ?태극도설해(太極圖說解)?와 ?통서해(通書解)?, ?정몽해(正蒙解)?와 ?서명해(西銘解)?, 북송 성리학자들의 주석에 자신의 사상을 보탠 ?사서집주(四書集註)?와 ?사서혹문(四書或問)?등을 지었다. 또한 ?시집전(詩集傳)?․?서집전(書集傳)?)․?주역본의(周易本義)?, ?역학계몽(易學啓蒙)?, ?주자가례(朱子家禮)? 등을 남겼다.

 

그의 성리학설은 이기론을 중심으로 한 ‘천’에 대한 논의, 심성론(心性論)을 중심으로 한 ‘인’에 대한 논의, 공부론(工夫論)을 중심으로 한 ‘천인합일’에 대한 논의로 나눈다. 리기론은 정이의 리본체(理本體) 사상과 장재의 기본체(氣本體) 사상을 합쳐 리일원론(理一元論)의 리기(理氣) 사상을 완성한다. 그는 리와 기가 서로 떨어질 수 없다고 하면서도 서로 섞일 수 없다고 한다.

 

주희는 리를 형이상자(形而上者)인 도(道)와 등치시키면서 ‘헤아림’과 ‘움직임’이 없다고 한 반면 기를 형이하자(形而下者)인 기(器)와 등치시키면서 헤아림과 운동의 특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무형의 리가 유형의 기를 낳고 존재하게 하며 또 운동하게 한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기는 유한하지만 리는 영원히 존재한다. 그의 리기론과 리일분수설에 따르면 유형의 사물세계는 참 존재의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변화무상하고 일시적인 기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참 존재의 세계는 리의 세계로, 질서정연하며 적막하리만치 정적감이 감도는 영원함의 세계인 것이다.

 

주희는 인간에 대해 장재와 정이의 이론을 받아들여 심통성정론(心統性情論)과 본연(本然)․기질지성론(氣質之性論)을 말하였다. 또한 심에 대해서도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으로 나누고 욕망을 따라 지각하는 것이 인심이며 리에 뿌리를 두고 도덕원칙에 합치하도록 지각하는 것이 도심이라고 하였다. 아울러 도심으로 하여금 늘 자신을 주재하도록 하고 인심으로 하여금 도심에게서 명령받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부에 대해서는 ?중용?의 존덕성(尊德性)과 도문학(道問學)을 끌어와 천인합일에 이르는 두 길을 제시한 뒤 정이의 경공부(敬工夫)와 치지공부(致知工夫)를 여기에 연결시킨다. 또한 지행이 함께 가는 ‘지행호발․병진설(知行互發․並進說)’을 말하면서도 앎이 먼저라는 지선행후(知先行後)를 말하였다.

 

주희는 여러 차례 논쟁을 했다. 마음(心)의 존양공부(存養工夫)에 대해 장식과 토론한 ‘중화논쟁(中和論爭)’을 바탕으로 경敬을 통한 미발의 심체공부를 마음공부의 본령(本領)으로 삼게 된다. 또 진량과는 도덕(義)과 공리(利), 왕도(王道)와 패도(覇道) 문제에 대해 ‘왕패논쟁’을 벌인다.

 

이 논쟁은 한고조(漢高祖)와 당태종(唐太宗)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고 전개되었는데, 동기와 결과, 도덕과 공리, 왕도와 패도라는 의리학파와 사공학파간의 윤리관과 사회역사관의 차별성을 선명히 드러내준다. 세 번째로 육구연과 존덕성(尊德性)․도문학(道問學)의 공부 문제에 대해 토론한 ‘아호논쟁’이 있다. 아호논쟁은 육구연이 존덕성공부만을 주장한 반면 주희는 존덕성공부와 도문학공부가 병행되어야 함을 주장한 첫 번째 논쟁과 주돈이(周敦頤)의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벌어진 세 번째 논쟁이 중요하다.

 

주자학은 주희 사후 학금(學禁)이 풀리면서 제자들에 의해 남송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제자들은 주희의 어록인 ?주자어류?와 문집인 ?주문공문집?을 편찬하였고, 육구연의 상산학파와 논쟁을 벌여갔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이론 전개 없이 주희의 학설을 정리, 묵수하는 경학화(經學化)와 말류 현상을 나타낸다.

 

주자학은 이민족 왕조인 원나라에서 1313년 과거제의 실시와 함께 주희의 ?사서집주? 등이 과거교재로 채택됨으로써 관학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오징을 중심으로 주자학과 상산학의 절충사조인 ‘주륙화회론(朱陸和會論)’이 전개된다. 그 뒤 명나라를 거쳐 청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500여 년간 관학으로 기능하였다.

출처 :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은
글쓴이 : 지식창고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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