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 대 제국 정영일 저
一. 太古의 밝음이 東方에 비치고
우주에는 인간이 살 수 있는 지구가 있어 만물을 관장하는 조물주께서 인간이 거기서 살 수 있는 지혜를 주셨다. 우리 東方에서 고대에 이것을 하늘이 내리신 환의 이치라 하여 환을 밝고 넓은 전일이라 하였다. 따라서 인간이 살아가는 길은 만물의 영장으로 밝고 어질고 자비로워야 함이라 머나먼 그 옛날에 하나님이 동방에 환인의 나라를 점지하셨다.
긴 역사의 흐름 속에 인간은 흩어지고 갈라지고 하여 우랄 산맥을 경계로 동서로 나뉘어 생활 터전을 마련하였다. 동방의 환인 왕국의 말기에 인구가 많아짐에 천하 만민이 분쟁을 일으켜 살기가 어려워지고 질서가 마비되니 하나님은 이를 불쌍히 여겨 인간사회에 홍익인간의 제세구민(사람을 서로 돕고 사랑하며 살도록 세상을 구하는)할 사자를 세상에 보내시니 이가 환웅 천왕이라 환웅이 천제위 명을 받아 태백산 단목하에 하강하시어 백성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추대하니 환웅은 삼천의 무리를 이끌고 단목하에 단을 모아 하나님께 제사를 올리고 천왕 위에 등극하니 왕은 곧 제사장이며 옹립한 각부 추장들은 사제들이다. 고대 제정일치 사상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한웅 천왕은 만백성에게 조서를 내려 가라사대 내가 하나님의 계시를 너희들에게 이르나니 이제 백성들이 질서를 지키고 편하게 살도록 하기 위하여 신시를 열어 구휼할 것이니 오훈으로 국시를 삼아 널리 알리나니 부지런히 살펴 행하여라. 그에 이르기를 ,
일. 성신불위하고(성실하고 믿음을 두터이 하여 속이지 말 것이며),,
이. 경군 불퇴하며(서로 공경하고 근면하여 게으르지 말 것이고),,
삼. 효순 불위하고(부모에게 효도하고 순종함에 틀림이 없게 할 것이다.),,
사. 廉義不淫하여(염치를 중히 하여 의리를 지키고 음난행위를 하지말 것이며),,
오. 겸화 부쟁하고(항상 겸손하여 화합하여 싸우지 말고) 「단군 세기」 덕을 쌓아 풍속을 순화하고 각부 추장은 솔선 수범하여 백성을 교화하라' 하였다.
이어 국호를 배달이라 하고 오계(다섯 가지 계율)를 제정 공포하여 백성들의 생업을 안정케 하고 산업을 진흥하여 상고 사회의 풍속을 순화하는데 힘을 기울여 신시가 융성하고 평화하여 스스로 자족하니 구환의 백성이 화합을 이루고 기뻐하였다. 환웅 천왕 재위 94년에 장수하고 허다한 업적을 남겨 원시사회에 개혁의 기틀을 마련해 놓고 승천하셨다. 이로부터 14대 환웅 치우 천왕이 등극하셨다. 일명 자우지환웅이라고도 한다. 치우는 천성이 활달 영매하고 지략과 재능이 출중하여 따를 자가 없었다. 소시부터 전왕을 따라 병란이 일어나는 전쟁터에 종군하여 종횡 무진한 용맹과 기발한 용병술을 구사하여 백전백승하니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일찍이 천하 통일의 대지를 품고 천문과 지리를 깊이 연구하고 천리를 통달하여 바람을 일으키고 비를 부르는 재주를 익혀 만민이 우러러보는 천하제일의 천왕이였다. 청구에 도읍을 정하고(청구는 중원 하북 부근으로 추측「君子曰北朝陽之谷一靑丘國在其北山海經」 ) 중원 경영에 나섰다. 이때 중원에는 수십개 민족이 각기 한 부를 이루어 분립하여 서로 싸우고 중원의 좋은 땅을 서로 차지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동북에는 강대한 동이족(조선족)이 있고, 북에는 몽고족(동이족에서 분리)이 있고, 서북에는 흉노와 돌궐 진 상은족이 있고, 서남에는 한족과 남만 팔개족이 있고 여타 소수 민족이 잡거하였다. 치우천왕은 군량을 쌓고 무기를 만들고 군사를 조련하여 부지런히 전쟁 준비를 갖추었다. 이때 처음으로 동이 주조되어 무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중원 진압에 출사하니 이때에 중원에는 황제 헌원씨가 탁록에 도읍하고 중원 최강을 뽐내고 북쪽을 대요가 관장하고, 동에는 창힐이 관장하고, 서쪽은 소호가 웅거 하야 백성을 잔휼하였다. 치우천왕은 구환의 군사를 징발하여 사로로 나누어 진격할 새 제1군은 멀리 적진 깊숙이 들어가 소호 왕의 도읍지 진류성을 포위하고, 제2군은 대요 왕을 공격하며 진류성을 포위한 제1군은 싸움을 돋구지 말고 다른 곳과의 교통을 막으라 하고 천왕은 친히 제4군을 몰고 탁녹을 향하여 달려가니 연도의 백성들에게 추호도 해롭게 하지 말 것을 엄명하고 위풍 담당하여 근접 추장들은 치우천왕의 용맹 지략이 귀신같다는 것을 지난날의 싸움에서 익히 아는지라 가는 곳마다 관문을 열고 환영하며 감히 막는 자가 없었다. 치우는 탁녹에 접근하여 기마 정병 3천을 선봉 삼아 비호같이 헌원의 방위벽을 분쇄하고 닥치는 대로 섬멸하니 헌원은 일진을 패하고 중군을 수습하여 치우와 대전할 새 미처 진용을 차릴 여가도 없이 치우군이 좌충우돌하며 맹공격을 가하니 헌원의 전군이 지리멸렬하여 반격할 능력을 잃고 헌원은 수하 수백기 이끌고 멀리 달아났다. 치우는 일지군을 이끌고 적군을 추격하여도 간 곳을 찾을 수가 없어 돌아왔다.
치우천왕은 양도를 염려하여 오래 머무르지 아니하고 전군에 회군 명령을 내려 청구로 반사하니 각 군이 모두 합류하여 동반하였다. 한편 헌원은 치우군이 철수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탁녹으로 돌아와 패전의 뒷수습을 한 후 각지 추장들로 하여금 집결할 수 있도록 전쟁 준비를 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리고 성곽을 수리하고 군량을 준비하여 대비하니 그 위세를 회복하였다. 치우천왕은 헌원이 탁녹에 돌아와서 전쟁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는 간자의 첩보를 받고 다시 출사 준비를 하였다. 이번에는 기필코 헌원을 멸할 각오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삼군을 호령하여 탁녹으로 진격할 새 치우천왕은 짐승의 가죽으로 전포를 만들어 입고 동으로 단조한 갑옷과 투구를 쓰고 (獸身人語銅頭鐵額長沙造五丘丈刀載太芎 史馬遷 史記) 대궁을 메고 오구 장도를 휘두르니 연도 관문의 수비군이 감히 저항하지 못하고 도주하니 이르는 곳마다 적군의 방어진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탁녹을 우회하여 멀리 요로에 매복하여 헌원의 퇴로를 차단하고 강갈과 대요에게도 각기 일지군을 보내여 공격을 가하고 탁녹을 총공격할 계책을 짜고 있는데 치우천왕의 아우 한 장수가 일지군을 이끌고 공격 명령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전공을 세우고자 돌진하였다가 헌원이 파 놓은 함정에 빠져 전사하였다.
이 사건을 가지고 후세 한나라 사가 중에 헌원이 치우를 잡아 죽였다고 산해경에 추기하였다. 그리고 동화를 꾸며 치우가 풍우를 불러일으켜 공격함으로 헌원이 비를 그치게 하는 여신을 불러 풍우를 그치게 하고 잡아죽였다 하였다. 치우천왕은 항상 전쟁 선두에서 용맹하게 싸워 공을 세우는 동생을 잃고 진중에 눈물을 참고 총공격에 들어갔다. 양군이 고각을 울리며 백병전이 벌어져 함성이 천지를 진동하고 치우는 선두에서 대노를 휘둘러 닥치는 곳에는 적의 머리가 추풍낙엽같이 떨어지니 적이 두려워 쳐다보지 못하고 흩어지니 질풍같이 헌원의 본진으로 돌진하니 만군 지중에 탁월한 무예와 용맹을 당할 자 없는지라 헌원은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전세가 기우니 본거지를 버리고 패잔군을 재촉하여 대요에게 의지코자 찾아갔으나 대요 또한 패하여 치우에게 항복하였고 다시 창힐에게로 가니 그도 이미 항복하였는지라 소호는 포위되어 있고 하여 또 다시 멀리 달아나려고 가다가 복병이 난데없이 돌출하여 잡히고 말았다.
이리하여 탁녹이 함몰하니 탁녹명임에는 시체가 산과 같이 쌓이고 피흘려 강이 되었다. 후세 사가 관중은 이 광경을 '所課天下之君項敗一怒伏屍編野是也'라 비유하였다. 한나라 시대 사마천이 말하기를 역대의 제후들이 치우가 능히 헌원을 정벌하는 천하 영웅을 흠모하였다. 또 말하기를 치우의 위엄이 천하에 진동하던 옛날에 천자로 불렀다. 치우천왕은 평생소원이 중원에 만백성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군악을 진정하고 고대 신시와 같은 이상 사회를 이루고자 헌신하였다. 그는 일찍이 천리를 깨닫고 천기를 살피고 環宇의 신비를 규명한 신인이라 하여 후세에 다만 천제의 아들이 이 세상에 낫다 하였다.
삼신기에 이르기를 치우는 균화천에 있고 왕검은 안덕천에 있다 하였다. 상고하건대 삼신설에 이르기를 삼신은 천일이요, 지일이요, 태일이니, 일은 삼으로 작용한다 했으니(표훈천사) 치우는 태일이 주관하는 치화의 임무를 수행하셨다. 고대 중원에서 오래도록 무신으로 받들어서 태일 주체로 추앙하였다. 후세에 남긴 병법으로는 치우이편 탱리병법일편 천일병법 삼십오편 천일음도 이십사편권이 있다. 이것은 후일에 중원의 춘추 전국 시절 강태공의 통치 군사 지침서가 되고 오나라 부차왕을 도와 강한 월나라를 정복한 손자 병법 기초 자료가 되고 후한의 유비를 도와 천하를 삼분한 제갈량의 팔진법이 모두 여기서 전수된 것이라 한다. 치우천왕의 삼신 사상은 후세 중원에 널리 퍼져 삼신 일체 사상의 태일 제사는 제나라에서 시작되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팔신장은 강태공 이래의 행사라 하여 제나라가 나라에 제사를 하였다고 하며 언제 시작하여 언제 그치는지 알 수 없다 하였고 팔신은
일. 왈 천주이시니 하늘에 제사하고,
이. 왈 지주이시니 태산에 제사하고,
삼. 왈 병주이시니 치우를 제사하며 치우는 동녘 평육 감향이니 제나라의 서쪽 경계 너머이고,
사. 왈 음주이시니 삼산에 제사하고,
오. 왈 양주이시니 지부에서 제사하고,
육. 왈 월주이시니 내산에서 제사하고 모두 제나라 북쪽 발해이고(발해는 고대 조선족의 내해이고 발은 고어로 물이다.),
칠. 왈 일주이니 성산에서 제사하고 성산은 바다로 들어가는 제나라의 동북쪽이며 해뜨는 곳이다.
팔. 왈 사기주이시니 낭야에서 제사하고 제나라 동쪽이며 서해가 시작되는 곳이다. 라고 하였다.
치우천왕은 헌원과의 십년 전쟁에서 칠십삼회 대전에서 백전백승하니 하늘에서 나타난 천제의 아들이라 하여 천하 만민이 경복하고 수 천년을 무신으로 추존된 치우천왕은 중원의 미개한 여러 야만 종족들의 분쟁을 종식시키고 하늘을 존경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신앙 정신을 일깨워 고대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가져왔다. BC 2490년 인류 사회에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파란 많은 생을 수도 청구에서 생을 마감하시니 비단 동이족뿐만 아니라 대륙의 모든 종족 민초가 슬퍼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능은 산동성 동평군 예장현 궐나성중에 있으며 능의 높이는 칠십 척에 이른다고 하였다. 진나라(秦)와 한나라(漢)에 이르도록 시월이면 백성들이 제사를 지내며 반드시 붉은 기운이 나와서 치우의 깃발이 나부끼듯하여 그 영혼이 여상스럽게 천년을 지나도 사라지지 아니 하야 헌원도 그의 도읍지에 영혼이 머물음에 영원히 따랐다고 한다.
또 이르되 치우천왕의 위엄이 떨쳐 후세에도 이어서 수산 통로(중원에서 배달 나라로 조공하는 길) 지방은 항상 두려워하였다.
강태공서에 치우천왕의 활약상을 동화(童話)에 비유하여 왜곡한 후세 사가의 행위는 심한 짓이라 하였다. 치우천왕은 고대 조선 중원에서 무위와 지용과 인덕이 세상을 덮어 중원 풍패 지방에는 치우천왕의 사당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그중 하나는 산동성 편현 서안에 있는 구성의 서북 물가에 있다고 하였다.
시인 소동파가 이곳을 지나다가 쓴 기행문에 고대의 퇴락한 사당을 보고 감개무량하여 읊은 시에 '오랜 세월 퇴락한 환웅 사당은 새들이 만나고 머무르는 집일새 라 하였고 춘추좌전에 이 사당의 신주는 동해 사람으로 나랏말이 같지 아니한데 그러나 같이 살았다고 하였다.
후세에 이곳에 살던 동족은 난리를 피하여 요동으로 피하였거나 그 나라 사람으로 동화하였으니 누가 보존하고 제사하랴!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다른 모든 유적들도 {한서 지리지}에도 '단지 황제와 치우가 탁녹에서 싸웠다'라고 했을 뿐 아무런 기록도 하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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