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종교

[스크랩] 도교(道敎)의 기원과 사상

검은바람현풍 2011. 9. 10. 18:48

도교(道敎)의 기원과 사상

 

 

도교사상의 기원

 

도교는 중국의 토착종교로서 선진시기의 신선신앙이 장기간에 걸쳐 발전해오면서 도가사상과 중국고대의 무술(巫術)이 서로 결합되어 동한 말년에 형성되었다.

 

신선(神仙)신앙은 그 기원이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고증할 수는 없지만 지금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주요한 문헌기재로 한나라 사람들이 편찬한 사서가 있다. 선진시기 신선장생의 신앙과 관련있는 신화전설은 초(楚)문화와 연제(燕齊)문화, 이 두가지 계통 속에 존재한다. 신선설은 인류의 장생불사에 대한 추구를 기초로 하고 있는데, <좌전> 중의 안앵과 제경공의 대화, 제국(齊國)의 명문(銘文)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장생불사할 수 있는 인간이 바로 신선이다. 따라서 신화(神話)라는 것은 신선이 되어 오래 살고자하는 신앙에 대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신화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곤륜(崑崙)신화로 서방의 곤륜산 위에 신인(神人)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옥석의 정화를 먹고 죽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봉래(蓬萊)신화이다. 발해(渤海)에 세 신령스런 산이 있는데 그 위에는 선인(仙人)과 불사약이 있었다는 것이다.

 

고힐강(顧頡剛)은 <장자>와 <초사>중에서 곤륜과 봉래 두 종류의 신화가 융합되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기했고 서구인은 신을 말하지만 동양인은 신선을 말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봉래신화가 곤륜신화에서 나온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곤륜신화는 서부고원지대에서 발원한 괴이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인데 동방에 전해진 이후로 대해라는 자연 조건과 결합하여 연오제월(燕吳齊越)연해지구에서 봉래신화계통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이 두 종류의 신화계통은 각자 발전해 오다가 전국시대 중후기에 이르러 새로운 역사 조건아래에서 사람들에 의해 결합되어 새로이 통일된 신화세계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신선신앙은 결코 중원문화와 동이(東夷)문화의 산물이 아니다. 문일다(聞一多)도 역시 도교신앙의 기원은 서강(西羌)문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진시기의 신선사상을 언급할때면 대부분 <장자>, <초사>와 <史記.封禪傳>에서 그 흔적을 찾는다. <장자>와 <초사>는 모두 한 사람에 의해 어느 한 시기에 쓰여진 것은 아니지만 우리들이 신선사상이 사회에 끼친 영향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신선사상이 유전과정 중에서 점차 다른 사상설과 서로 융합되어 갔으며 동시에 적송, 왕교 등과 같은 많은 신선들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알려준다. <전국책>,<한비자>등에는 제후들에게 불사약을 바쳤다는 기재가 나온다. 이 당시 사회에는 이미 신선과 선약을 말하는 “방사”들이 출현했었다. 진시황때에 이르면 이들 방사의 말에 따라 불사약을 구하러 동남동녀를 바다 건너 보냈다는 기록이 나오고, 무제때에는 이소군, 소옹 등 방사들이 군주의 총애를 받으면서 신선신앙의 영향은 날로 확대되었다.

 

선진시기의 기학(氣學)은 신선사상에 대해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관자(管子)>중의 <內業>, <心術>편은 선진시기의 기학을 대표하는데 도가의 한 가지이다. 중국의 기학은 중국유물주의 철학전통의 대표로 간주되지만 최초의 정기설(精氣說)에서 말하는 기는 정신적인 것이고 “형기(形氣)”의 관념은 후대에 나온 것이다. 그들은 정기를 가지고 세상의 모든 생명이 있는 존재들을 설명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은 그가 형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정기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기는 천지간에 흩어져 있는데 이를 “도(道)”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도는 천지간에 흘러나왔을 때 귀신을 만들어 낸다. 물체에 들어가면 사람, 생물, 생명의 빛이 있는 천체를 만들어 낸다. 인간의 정신과 지혜는 바로 이 “천지의 정신”에서 기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천지로부터 기를 얻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를 얻는 방법이 정신의 고요한 사색과 욕심을 줄이는 것이다. “신(神)”이라는 것도 기인데, 정기신(精氣神) 이 세 개념은 여기서 그 내용이 같다. 선진시기 사람들이 말했던 기는 대부분 정신적인 것을 말한다.

 

정(精)은 점차 생명활동과 신기한 현상을 설명하는데 사용되어졌다. “정기는 모이게 되면 반드시 들어가게 되는데 날개달린 새에 모이면 날게 되고, 걸어 다니는 짐승에 모이게 되면 걷게 되고, 주옥에 모이게 되면 영롱하게 빛나게 된다....”이렇게 생물과 혹은 무생물에 깃들인 공능과 신기한 현상은 모두 정기를 받아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산(子産)은 이것을 “물정(物精)”이라고 불렀다. 기학과 음양오행설이 결합하면서 많은 구체적인 이름을 생겨났는데, 음정(陰精), 양정(陽精), 오행지정(五行之精), 오방지정(五方之精) 등이 그것이다. 인간의 心肝脾肺腎과 오행오방이 서로 상응하고 또한 오행지정을 받았다. 또 어떤 금수도 상응하는 정기를 받았고 신들도 어떤 정기를 받게 된다. 중국인들은 어떤 사물도 수련을 거쳐 정기를 받게 되면 능히 정(精)이 되고 괴(怪)가 되 고 신(神)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신(神)이라는 개념은 고대에 세 가지 종류가 있었다. 변화(變化), 정신(精神, 神明), 신령(神靈)이 그것인데 이것들은 모두 기와 본질적으로 관계가 있다. 인격적 의미의 신령이 바로 기이다. 기학의 영향으로 중국고대인들은 신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내렸고 어떤 정신상의 기를 받은 신으로 변화되었다. 천지간의 정기가 사람에게 들어와 어떤 부분에 멈춘 것이 바로 어떤 기관의 신이 된다. 도교가 형성되기 이전에 이미 이러한 몸의 신이 많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오장신(五臟神)이고 그 외에도 발신(髮神), 비신(鼻神), 이신(耳神)등이 있다.

 

이상의 사상은 모두 도교와 관련이 있다. 진한시대의 전적에서 기학이 신선신앙과 결합되기 시작했음을 알려주는 많은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신선사상은 한대에 이르면 중국고대의 종교신앙과 巫術이 결합해서 하나로 발전한다. 많은 도교사의 저작들은 중국고대 종교와 무술이 도교의 래원중의 하나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도교가 흡수한 고대종교신앙과 무술 중의 대부분은 신선사상과 기학신비주의의 이중 흡수와 개조를 거친 것임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신선신앙 역시 이러한 중국문화의 각 부분에 침투되어 있는 것이다. 한대에는 이것이 바로 각종 방술(方術), 예를 들자면 복식(服食), 방중(房中), 환단금액(還丹金液)으로 표현되었다. 이외에도 본래는 신선장생과 무관한 잡술(雜術)이 한대에 크게 유행했는데 이 또한 이후에 도교에 의해 흡수되었다.

 

한대의 황로(黃老)사상 역시 신선사상이 도교로 발전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제공했다. 한초의 황로학은 주로 황제지술이라고 할 수 있으며 후대 양생으로 신선이 될 수 있다는 사상이 황로학의 주요 경향이 되었다. 학술이 황로를 숭배하는 것으로 전환되어 황로도(黃老道)가 출현했던 것이고 이 때 노자도 신격화되기 시작한다.

 

'도교'라는 명칭의 기원

 

도교의 본뜻은 ‘도’를 설한 ‘가르침’이다. ‘도’는 유가, 도가를 비롯한 모든 제자학설의 중심이며 중국민중의 의식 밑바탕에 존재하고 있다. ‘도교’라는 말이 문헌에 나타난 최초의 사례는 <묵자>에서이다. 여기서 도교는 유가의 가르침, “성인도술에 유가, 도가를 비롯한 ‘제자백가’ 더 나아가 ‘술수(術數)’, ‘방기(方技)’등 각 요소가 혼합되어 쓰였던 후한 시대에는 ‘황로’신앙의 객체화가 진행되었고 농민.민중신앙에 의한 구체적 집단인 ‘도’가 성립되었다. 후한대에는 ‘황로도’,‘선도(善道)’,‘귀도(鬼道)’가 나타났으며 이러한 것들을 기원으로 해서 ‘태평도(太平道)’, ‘오두미도(五斗米道)’가 생겨났다. 또한 동진이후에 나타난 ‘천사도(天師道)’도 그 한 예이다. 그런가하면 동진이후에는 훗날의 유.불.도 삼교 중의 도교를 ‘도가’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도가’라는 말은 전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서 <사기>의 다음과 같은 설명, “음양의 큰 순리에 따르며 儒.墨의 善을 채용하고 名.法의 요체를 섭취하고 때에 따라 움직이며 사물에 응하여 변화한다”는 말에서 볼 때 그것은 다양한 학파를 종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도가사상에 黃帝가 결합된 것은 전국말부터이고 전한 초에 이르면 황제를 도가의 시조로 보아 ‘황제지술’,‘황로도덕지술’,‘황로...지언’‘황로’등과 같은 표현이 <사기> 곳곳에서 보인다. 따라서 전한 초에는 ‘황로’가 도가와 같은 내용으로 생각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진초의 갈홍의 <포박자>에 이르면 ‘도가’의 많은 요소가 포함되고 훗날의 이른바 ‘도교’의 내용과 가깝게 된다. 갈홍은 도가의 여러 가지 요소 가운데, 신선(神僊),금단(金丹),양생(養生),연년(延年),방약(方藥) 등을 중심으로 중국 전통문화의 과학적인 면을 중시하여 훗날의 도홍경과 함께 도교과학에 있어서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5세기경 북위의 구겸지는 삼교중의 불교 또는 도교를 도교라고 부르는가 하면 후세의 도교를 도가라고 하여 도교가 포함하고 있는 각 요소를 총괄적으로 서술하였다.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면, ‘도교’는 최초에는 ‘성인의 도’를 설한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고 그러한 의미에서 유불의 가르침까지 지칭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5세기에 도가만을 도교라고 부르게 된 것 같다. 도가가 유교.불교에 대항해서 도교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과정은 사실상 도교의 성립과정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5세기에 들어서 도교가 하나의 큰 세력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인 사실들도 위와 같은 성립사를 방증한다.


일반적으로 도가는 철학이고 도교는 종교라고 구분하지만 이는 편의적이고 상식적인 것이다. 도가의 철학적 측면과 도가의 종교적인 측면이 합쳐져서 도교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도교 발전사

 

도교전사(前史)갑골문에 의하면 은대인들은 나라의 행사와 왕의 일상생활 등을 행할 때 모두 점을 쳐서 신의 의사를 물었다. 당시 제사지냈던 신들은 은왕직계의 선조신, 동맹제족의 선조신, 원래의 신하들, 산, 강, 바람, 토지 그외의 자연신, 천계의 신등이었을 것이다. 발굴된 부장품으로 보건대 당시 사람들은 죽은 사람은 내세에서도 현세와 같은 생활을 한다고 생각했으리라는 것, 즉 바꾸어 말하면 현세와 내세가 서로 통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뒤에 가서 신선설의 성립에 일익을 담당하게 되는 것 같다.

 

주대에는 은대의 생각이 발전한 결과였는지 혹은 서방이나 북방의 유목민족 사상의 영향이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하늘(天)에 대한 관념이 형성되었고 그 결과 ‘천자(天子)’라고 부르는 존재도 생겨났다. 이 천은 은의 상제와 똑같은 신격을 가진 것으로 정치, 종교 방면에서 권위를 가지게 되는데 천명(天命)은 뒤에 인간이 행하는 것에 따라 좌우된다고 생각되었다.

 

전국시대가 되면 제자백가라 불리던 여러 학파와 사상가가 나타났는데 그 중에는 특히 유교에 강한 반대를 표명하고 도교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도가가 있었다.

 

노자는 실재인물이고 공자의 선배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그의 전기는 불분명하다. 그에 관해서는 수많은 전설이 있는데 대개가 후세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모친의 겨드랑이에서 생겨났다거나, 81년간을 모친의 태내에 있다가 백발을 하고 나와 노자라고 불렸다거나 태어나서 오얏나무를 가리켰기 때문에 성이 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사기>에 전하는 공자가 노자에게 예를 물었다는 것도 도가가 유가와 심하게 대립했으며 노자를 도가의 시조로 생각했던 기원전 3세기 말이나 2세기 초, 진과 한초에 도가가 유가를 능가하려고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있다. 또한 도덕경이라는 것도 사실이 아닐 수 있고 ‘노자화호설(化胡說)’도 믿을 수 없다.

 

<도덕경>이 설하고 있는 중심사상은 ‘도’인데 이를 간단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귀나 눈 등의 오관으로는 감지할 수 없고 무엇이라고 형용하기 어려운 존재

2. 만물의 근원

3. 만물 중의 어떤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물이 ‘도’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4. 그 작용은 ‘무위’이지만 그래도 모든 만물을 성립시키는 것, 따라서 그 작용을 ‘자연’이라고도 한다.

5. 시공을 초월한 무한의 존재이면서도 상주불변(常住不變)한다.

 

노자의 뒤를 이어 나온 <장자>는 후대 도교경전으로 취급되어 <남화진경(南華眞經)>으로도 불리는데 그 중에서 양생술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장자에는 진재(眞宰)의 입장에서 보면 죽음이라든가 삶이라든가 하는 것은 사물의 단순한 변화에 불과하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생사초월사상이 있다. 생사를 초월하는 것은 하늘과 하나가 되어 절대가 되는 것인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마음을 진재와 일치시키고 지혜, 욕망, 입신, 욕망, 출신, 명예나 이익등을 멀리하고 감정과 감각을 억제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설한다. 이것이 양생술의 마음가짐이다. 이렇게 해서 절대의 경지가 되면 안심입명하게 되고 시비선악과 미추를 초월해서 유유자적할 수 있다고 하며 그 구체적인 실천방법으로 심호흡법이나 마음가지는 법을 설하고 있다.

 

심호흡법에 대해서는 태고에 있었던 진인은 발뒤꿈치부터 깊고 여유있게 호흡을 하나 지금의 사람들은 목구멍으로부터 조급하게 호흡하기 때문에 생명력이 없어져 버린다고 주장했다. 마음가짐에 대해서는 ‘좌망(坐忘)’을 권하다. 좌망이라는 것은 몸 전체에 힘을 빼 모든 감각을 없애고 심신을 공허하게 만들어 ‘도’의 효능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그것을 실행하면 사흘이 됐을 때 인간사회를, 이레가 됐을 때 외물을, 또 아흐레가 되면 자신의 존재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아침에 깼을때와 같은 아주 맑은 기분이 되고 이어서 하늘과 땅과 하나가 되며 생사를 초월하는 경지가 된다고 한다. 이 가운데서 심호흡법은 도교과 신선설에서 취하여져서 조식(調息)이 되고 후자인 좌망은 <좌망론>이라는 도교의 경전을 성립시키게 된다. 이와 같은 양생술로서 최고의 경지--무가유(無可有)의 고향--에 도달하게 되면 하늘과 합일하게 되며 그와 같은 존재를 장자에서는 진인(眞人), 지인(至人), 신인, 성인으로 부른다.

 

음행오행설과 신선사상


도교와 음양설을 연결시켜 말하자면 도교에서는 음의 기운을 배제하고 양의 기운을 숭상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조식법을 예로 들어보면 하루 중 양의 기운이 지배하는 때에 이 법을 행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음양설에서는 짝수를 음, 홀수를 양으로 보는데 도교에서는 음보다 양, 그중에서도 양중의 양이라고 하는 아홉이라는 숫자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오행설은 음양설과 같이 중국고대의 자연철학 혹은 세계관으로 기원전 5세기 말에 생겨난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당시에 이미 목, 화, 토, 금, 수를 오행으로 보고 있었으며 이미 그 전에 인간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오재(五材)가 있어서 오행의 기초가 되었던 것 같다. 도교에서도 이러한 영향으로 인간의 몸에 있는 오장(五臟)에 각각 신이 있다든지 혹은 동서남북,중앙의 다섯 방위에 신을 상정한다든지 하늘을 다섯으로 분류하는 등 오행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신선설에 관한 묘사 중에서 가장 이른 것은 <사기>의 봉선서 가운데 나오는 삼신산에 사람을 파견했다는 기록이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것은 알수 없지만 신선설에 대한 진시황의 집착만큼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곧 신 또는 신선에 마음을 두고 있었던 것 같은데 천하를 통일한 다음해 동쪽으로 순행할 때 태산에 올라가 봉선(封禪)을 행했다. 봉선이라는 것은 천명을 받은 제왕이 태산의 꼭대기와 산기슭에서 하늘과 땅의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으나 실은 신과 통하는 것이 그 본질적인 것이었던 것 같다.

 

도교적 종교집단의 성립

 

태평교와 오두미교 : 후한대에는 도가, 황노학, 신선설, 참위설 등의 사상과 신앙이 행해지는 한편 불교도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 수용되었다. 아울러 동중서(董仲舒)에 의해 신비적인 경향이 가미된 유학은 후한대에 들어서 참위서의 사상과 신선설 혹은 황노학의 영향도 받게 되었다. 방술, 도술, 참위서 등에 정통한 유가도 꽤 많았고 그들 중에서는 주술적인 힘을 인정하는 경향조차 보이게 되었다. 그들은 각기 작은 집단을 만들어 자신들의 주장을 폈는데 이것은 학파라기 보다는 종교적인 집단에 가까웠다. 당시 촌락공동체의 붕괴로 인해 사회적, 정치적 혼란중에서 신앙과 공동체를 대신할 조직을 구하게 되었고 그 결과 종교색을 띤 많은 반란이 속출하였다. 이들 가운데 세력이 가장 큰 것이 태평도와 오두미도였다.

 

지금까지 통설로는 오두미도를 설했던 장릉을 도교의 개조(開祖)로 하고 오두미교를 최초의 도교교단으로 보지만 사실은 태평도가 먼저 성립되었다. 태평도의 교법은 후한의 순제때(126-144) 산동출신의 간길(干吉)이 감득(感得)한 <태평청령서>에 기초하고 있는데 <후한서>의 기록에 의하면 장각은 스스로 대현량사(大賢良師)라고 칭하고 ‘황노’의 도를 받들어서 제자를 양육하고 교단을 통솔했다고 한다. 그는 인간의 병고의 원인을 당사자의 죄과에 두고 그것을 참회고백하게 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영력이 있는 부수(符水)와 주술을 사용하여 병을 치료하는 새로운 교법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큰 효과를 내어 불과 10여년 만에 화북지방에서 수십만 사람을 신자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 태평도와 거의 때를 같이해서 서쪽에서는 장릉(張陵)에 의해서 창도된 오두미교교단이 출현해서 2대 장형(張衡), 3대 장노(張魯)에 이르기까지 약 20여년간 섬서(陝西)에서 사천(四川)지방에 이르는 지역에 종교와 정치 및 군사 등에 지배권을 가진 종교왕국을 구축했다. 그러나 이교단은 위나라의 조조에게 항복한 뒤로는 위정권에 협력하면서 겨우 종교활동만을 했다. 이 교단의 교법은 장노때 완성되어, “신자에게 <노자오천문(老子五千文)>을 통독시키고 환자가 있으면 조용한 방에 집어 넣고 그때까지 범했던 죄과를 고백하게 해” 신의 용서를 벌게 한 다음, 天.地.水, 삼관(三官)에게 세 통의 참회문을 바쳐서 신들에게 서약하게 하는 이른바 ‘삼관수서(三官手書)’를 행해 많은 신자들을 모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오두미도라는 이름도 신자들로부터 5두의 쌀을 입신료(入信料)로 받은 것에 근거한다.

 

 도교집단의 확립


천사도 : 오두미도가 <태평경>에서 ‘도’로 상징되는 천신의 말씀의 전달자로서 ‘천사’라는 용어를 쓰고 더 나아가서 후에는 교단의 이름을 천사도라고 했던 사실은 태평도의 교법이 오두미도에 계승되어 실질적으로 통합되었다는 것을 추측하게 한다. 오두미도가 천사도의 명칭으로 불려진 시기는 황건적의 난이 진정되고 태평도교단이 없어진 바로 직후, 즉 3세기 초엽까지 소급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 천사도는 남북조시대 동안 문자 그대로 도교를 대표하는 위치에 있었고 그후에도 역대 천사의 통솔하에 면면리 이어져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오늘날 장천사의 64대손이 대만에 남아 있는 것도 육조이래로 수많은 도교교파의 융기와 더불어 교학이 복잡하게 성쇠되는 가운데에서 천사도가 어쨌든 정통적인 위치를 지켜 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위진남북조에는 경학의 쇠퇴와 더불어 신흥도교가 성장, 완성되었던 시기로서 황실이나 귀족 등 일부 국한된 계층의 지지와 애호를 넘어 일반 대중의 의식까지 깊숙이 뿌리내렸다. 조직화된 종교로서의 도교는 당대에 번성했다. 그 까닭은 황실의 성이 노자와 같은 이씨였기 때문이다. 이 시기 도교는 부득이 유교 불교와 경쟁하는 중압감에 시달리며 인습적 도덕의 설교사 역할을 하게 된다. 이백과 같은 재능있는 시인들 또한 도교를 받아들여 자신의 작품세계에 반영시켰다.

 

송대 초기까지도 도교는 계속 그 지위를 보유하다가 그 이후로는 쇠미해지게 된다. 송대 초기 이학가들은 유학에 부족한 우주론을 확립함에 있어 도교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주돈이의 태극도설이 화산파(華山派) 진단(陳摶)계통의 수련 중에 사용하던 무극도를 입수, 개조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주희도 유학으로 입신한 이후에는 명분상으로 도교를 이단시 했으나 입신전에는 자양(紫陽)이라는 도호를 가지고 도교수련에 몰두했었고 또 우주론의 체계 확립과 관련하여 도교에 대해 융통성있는 입장을 지녔다. 몽고라든가 청왕조는 도교의 정치적 입장을 적지않게 의심하였다. 이것은 백련비밀결사의 조직과 해체에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도교는 상품, 중품, 하품 등 세 계층으로 구분되는데 상품은 노자의 무위자연을 숭상하고 중품은 불로장생을 추구하며 선단을 만들어 먹거나 단전호흡과 같은 수련을 하는 층이고 하품은 부록(符籙)으로 재화를 막는 계층이다. 이것은 위진남북조시대로 들어서면서 위백양(魏伯陽)과 갈홍(葛洪)을 중심으로하는 단정파(丹鼎派)와 도굉경(陶宏景)과 구겸지(寇謙之)를 중심으로하는 부록파(符籙派)로 분열되었다. 단정파는 호흡을 통한 수련방법으로 내단술과 금단을 복용하는 외단술을 모두 사용하여 장수를 갈구하였고 부록파는 도인벽곡을 이용하였는데 구겸지의 천사도는 이 두 방법을 모두 이용하였다. 요.금나라 때에는 수성(修性)을 강조하는 남종파(南宗派)와 술과 담배를 금하고 출가하여 수명(修命)할 것을 강조하는 북종파(北宗派)로 나뉘어졌다. 청나라 초기에는 도교가 난립하였지만 요제빙(寥帝聘)이 창립한 진공교(眞空敎)가 중심이 되었다.


장생술


도가의 복잡한 장생술을 窪德忠은 벽곡, 복이, 조식, 도인(導引), 방중(房中) 등 다섯가지로 분류한다. 도교의 주목적은 불로장생이기 때문에 도사들은 양생술을 중시하여 각 교파나름대로 독자적인 방법을 고안해 내었으며 수행에도 힘썼다. 다섯가지 가운데 벽곡과 복이는 외적 방법(外丹)이고 그 나머지는 내적 방법(內丹)이지만 어느 쪽이든 도교의 수행에는 ‘氣’가 필수적이다. 예들 들어 외단법의 연단(練丹)을 복이(服餌)하는 경우에도 반드시 내단에서 행하는 조식(調息)과 행기(行氣)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상의 다섯 가지 중에서 도인은 많은 사람들에게 낯선 용어인데, 이는 신체를 동요시켜 사지를 잡아당기고 관절을 움직이는 일종의 유연체조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정통도장(正統道藏)>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호랑이 동작(虎戱)은 사지를 땅에서 뗀 채로 앞으로 가면서 세 번 움추리고 허리를 길게 펴고 하늘을 바라본 뒤 곧바로 원상태로 되돌아온다. 걸으며 전진하고 뒤로 물러나기를 각각 일곱 번씩 한다.

 

사슴동작(鹿戱)은 사지를 땅에서 뗀 채로 목을 빼고 뒤돌아보기를 왼쪽으로 세 번 오른쪽으로 두 번하고 좌우로 다리를 펴서 구부렸다 폈다 하기를 세 번씩 한다........”


오늘날 방중술이라고 하면 곧 性과 관계되는 이런저런 방법을 상상하는데 이는 <소녀경>등에서 설명하고 있는 성의 기교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의심방>권28에 인용되고 있는 <洞玄子>에서는 분명히 말한다.

 

“사람이 존중하는 것 가운데 방중의 욕구보다 더한 것은 없다. 하늘을 본받고 땅을 본뜨며 음을 본보기로 하고 양을 표준으로 하지만 그 도리를 깨달은 자는 생명을 길러 장수할 수 있다. 진리를 얕보는 자는 신이 상하여 일찍 죽는다.”

 

요컨대 방중의 바른 도를 실행하는가 못하는가에 따라서 오래 살고 오래 살지 못하는 차이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방중술은 예로부터 양생법의 하나, 즉 불로장생법의 하나로 간주되어 왔다.


<종합정리>

이상의 논의와 학자들의 도교와 도가에 대한 논의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 노자는 도 또는 자연의 일원론을 설하는데, 도교는 도의 최고관념을 지고신(至高神)으로 정하고 그것을 천(天).상제(上帝)로 삼는다. 도교에서는 천.상제라는 유일 최고신이 정치성을 상실하고 옥황이 되었다. 이 유일 최고신의 지배하에 몇 단계를 이루고 있는 다신이 신앙된다. 옥황 이전에는 노자를 신격화했던 태상로군(太上老君)과 원시천존(元始天尊)이 최고신으로 불려지기도 하고 삼청(三淸)등도 만들어졌기 때문에 교체신교라고도 할 수 있으나 세계 대종교와 같은 일신교라고는 말할 수 없다.


* 도교는 중국의 오랜 민간신앙에서 발달한 것으로 그 내용이나 형식 면에서보면 두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도관(道觀).도사(道士)의 교단조직을 가진 성립도교(교회도교, 교단도교라고도 한다.)이고, 다른 하나는 민중 사이에서 행해졌던 모든 도교신앙을 포괄하여 총칭하는 민중도교이다. 도교의 내용에는 (1)도가적 철학, (2) 참위, 무축, 음양, 신선, 복서(卜筮)등의 수술(數術)적 부문, (3) 벽곡(辟穀), 복이(服餌), 조식(調息), 도인(導引), 방중(房中)등의 의술적인 부문, (4) 민중윤리적 부문을 포함한다. 도교는 이러한 내용을 기본으로 하고 불교와 병행해서 성립된 자연종교이다.


* ‘도가’와 ‘도교’는 일반적으로, 특히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동일하게 사용된다. 엄격하게 구별한다면 도가는 Philosophical Taoism이고, 도교는 Religious Taoism이다. 도교에서는 노자를 신격화하여 태상노군, 현원황제(玄元皇帝)등이라 부르며 숭배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많은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묘관(廟觀)과 교단을 가진 종교이다. 도교는 원시도교(古道敎, 寇謙之 이전의 도교), 舊도교(正一敎중심)와 新도교(全眞敎중심)로 발전하였다.


* 고대의 민간신앙과 신선사상 및 다른 여러 가지 잡다한 종교적 또는 의사 종교적인 모든 요소가 결합한 것이 도교이다. 그것이 교단으로 처음 조직된 것은 후한 말로서, 당시 농촌사회의 정세와 민중신앙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도교는 중국의 민족적인 종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고대의 민간신앙과 신선사상, 노장사상을 결합하고 노자를 대창자로 하여 유교의 도덕사상과 불교의 인과응보사상, 불교의 경전, 교단조직을 모방해서 성립한 것이 도교이다.


* 중국 고대의 샤마니즘적인 주술신앙을 기반으로 하면서 유가의 神道와 제사의 의례, 사상, 노장사상의 ‘玄’과 ‘眞’의 형이상학을 그 상부에 두고, 거기에다가 불교의 교리.의례등을 복합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수.당시대에는 교단으로서의 조직되어 의례를 일단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도의 불멸’과 일체가 되는 것을 궁극의 이상으로 하는 중국 민중의 토착적이고 전통적인 종교가 도교이다.


<참고문헌>

酒井忠夫외 지음, 최준식옮김, <도교란 무엇인가>, (서울: 민족사, 1990)

窪德忠지음, 최준식옮김, <도교사>, (서울: 분도출판사, 1990)

 

* 중국의 민간 신앙

 

 

 

                   ▲ 롱성(隴城) 여와묘                                                   ▲ 천수(天水) 복희묘

 

 

 

             ▲칠리돈(七里墩) 여와상                                             ▲낙양(洛陽) 관림(關林)

 

 

 

                   ▲관우상                                                   ▲송자관음 (送子觀音

출처 :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은
글쓴이 : 지식창고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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