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지 符都誌
제 6 장 : 잃어버린 부도의 법
第二十五章
이로부터, 천산(天山) 남쪽 태원(太原)의 지역이, 뒤숭숭하고 떠들썩하며, 주인이 없는 것과 같아서, 소위 왕이란 자는 눈이 멀고, 소위 장님은 백성이 되어, 암흑이 중첩하였다. 강자는 위에 있고, 약자는 아래에 있어, 왕과 제후를 나라에 봉하고, 생민(生民)을 제압하는 풍폐(風幣)가 만연하여 고질이 되고 마침내 서로 침탈하기에 이르니, 헛되게 생령(生靈)을 죽이고, 한가지도 세상에 이로운 것이 없었다. 그러한 까닭으로, 하은(夏殷)이, 다 그 법으로 망하고서도, 끝내 그 까닭을 알지 못하니, 이는 스스로 부도에서 떨어져 나가, 진리의 도를 들을 수 없게 된 까닭이었다. 어느덧 유호씨가 그 무리를 이끌고, 월식성생(月息星生)의 땅에 들어가니, 즉 백소씨(白巢氏)와 흑소씨(黑巢氏)의 후예가, 오히려 소(巢)를 만드는 풍속을 잊지 아니하고, 고탑(高塔)과 층대(層臺)를 많이 만들었다. 그러나 천부(天符)의 본음(本音)을 잊어버리고, 탑을 만드는 이유를 깨닫지 못하여, 도를 와전하여, 이도(異道)가 되고, 서로 시기하고 의심하여, 싸우고 정벌하는 것으로 일을 삼았다. 마고(麻姑)의 일은 거의가 기괴하게 되어, 허망하게도, 형적이 아주 없어지니, 유호씨가 두루 제족의 지역을 돌고, 마고와 천부의 이(理)를 설(說) 하였으나, 모두가 의아하게 여기고,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오직 그 전고자(典古者)가 송구스럽게 일어나서 맞이하였으므로, 이에 유호씨가 본리(本理)를 술회하여, 그것을 전하였다.
第二十六章
임검씨가 유호씨의 행상(行狀)을 듣고, 그 길을 장하게 여겨, 유호씨의 족(族)에게 교부(敎部)에 취업하게 하여 살도록 하였다. 이때에, 임검씨가 하토(夏土)의 형세를 심히 걱정을 하고, 마침내 입산(入山)하여, 해혹복본(解惑復本)의 도를 전수(專修)하였다. 임검씨의 아들 부루씨(夫婁氏)가 천부삼인을 이어받아, 천지가 하나의 이치가 되는 것을 증명하여, 인생이 일족(一族)이 되어, 크게 부조(父祖)의 도를 일으키고, 널리 <천웅(天雄)의 법을 행하여, 인세 증리(證理)의 일에 전념하였다. 일찍이 <운해족(雲海族)과 긴밀하게 연락하여, 하토(夏土)가 하나로 돌아오기를 시도하더니, 이도(異道)가 점차 성하여,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부루씨(夫婁氏)가 천부를 아들 읍루씨(?婁氏)에게 전하고 입산하였다. 읍루씨가 날 때부터, 대비(大悲)의 원(願)이 있어, 천부삼인을 이어받고, 하족(夏族)이 도탄에 빠진 것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진리가 사단(詐端)의 지역에 떨어진 것을 슬프게 생각하여 마침내, 명지(明地)의 단에 천부를 봉쇄하고, 곧 입산하여, 복본의 대원(大願)을 전수(專修)하며, 백년 동안 나오지 아니하니, 유중(遺衆)이 통곡하였다.
임검씨가 후천(後天)의 말세의 초에 태여나, 사해의 장래를 미리 살피고, 부도 건설을 시범하니, 천년 사이에 그 공업이 크게 이루어졌다. 이에 이르러 천부의 전해짐이 끊어져, 마고 분거(分居) 이래로, 황궁(黃穹), 유인(有因), 환인(桓因), 환웅(桓雄), 임검(壬儉), 부루(夫婁), 읍루(?婁)의 7세에 천부가 전해진 것이 7천년이었다.
[91] 요(曜)가 끝나는 것을 복(服)이라 하니 요복(曜服)이라 함은 각 요일의 시작에서 끝까지 그러니까 7일을 뜻하는 것이다.
[92] 오늘날의 윤년을 말한다
[93] 단기고사에 보면 43세 단군 때 융안(隆安)의 사냥꾼 우화충(于和沖)이 장군을 자칭하며 무리를 모아 서북 36군을 함락 시키며 난을 일으키고, 46세 단군 때에 한개(韓介)가 수유의 군대를 이끌고 궁궐을 침입하였고, 47세 단군 때는 해모수가 웅심산(熊心山)을 내려와 군대를 일으키는등 삼한(조선)의 말기에는 크고 작은 반란이 곳곳에서 일어나게 된다.
[94] 우화충(于和沖)의 반란을 진압하고 단군이 되어 나라의 이름을 대부여(大夫餘)로 고치고 삼한(三韓)을 삼조선(三朝鮮)으로 바꿔 불렀다. 삼조선이란 신조선(辰韓), 불조선(卞韓), 번조선(馬韓)을 말한다.
[95] 낙랑(樂浪), 진번(眞番), 임둔(臨屯), 현도(玄 )
[96] 사마천은 조선과 한의 전쟁을 하던 B.C 108년에 한무제에 의해 태사령(太史令)에 등용된다. 태사령이란 비록 그 지위는 낮으나 조정의 문서, 역사, 천문, 역법 등을 관장하는 부서의 최고 책임자였다.
그는 당시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 수가 있는 위치였고, 이것을 기록으로 남기니 이것이 사기(史記) 115권 조선열전(朝鮮列傳)이다. 따라서 당시의 이 기록은 후세의 어느 기록보다 신뢰성이 있는 기록이라 하겠다. 만약 한나라가 조선을 이겨 한사군을 설치를 했으면, 이 중요한 기록이 사기에 빠졌을 이유가 없다.
[97] 번조선의 유민인 조선족 장수 최(最)가 우거를 죽이고, 우거가 죽자 다시 반항하던 성기(成己)를 죽였는데 이 일의 주역이 모두 조선족이다.
[98] 강단사학자들이 주장하는 국사에서는 조선의 강역을 한반도로 한정을 했는데 여기에서 보면 최소 발해 연안에서 산동반도 까지 인 것을 알 수 있다.
[99] 신라를 세운 인물로 부도지(符都誌)를 만든 박제상의 직계 조상이 된다.
[100] 금(金)이란 고귀한 성스러운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척(尺)이란 자로서 사물을 재는 척도로 사용하는 도구로 바른 법도(法道)나 기준(基準)을 뜻하는 것이다. 해서 금척이란 고귀한, 또는 성스러운 법도 즉 부도의 법을 상징하는 것이다.
* 김태형의 부도지 해설서 <마고 복본을 꿈꾸며>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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