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학/단학

仙道功夫 16) 대학 삼강령 본래의 의미

검은바람현풍 2012. 1. 21. 23:59

16. 대학 삼강령 본래의 의미 (397쪽)

 

유가에서 공자님 직법으로 나오는 것은 『大學대학』과 『中庸중용』 이 두 가지인데, 대학에 이게 조금 둔감한 소리를 하는 것이,

주자께서 大學之道대학지도, 在明明德재명명덕, 在新民재신민, 在止於至善재지어지선, 이라고 구절을 찍으셨어요. 찍으셨는데, 주자가 모르시고 찍으신 게 있어요.

성현인데 800여년 뒤에 후생이, 우리가 감히 거기다 토를 가서 이리 달았네 저리 달았네 하면, 그건 예전 같으면 향교에 가서 사문난적이라고 볼기를 맞아요. 그런 건데 의심나는 건 얘기 안 할 도리가 없어요.

주자께서 『대학』을 모르고 그랬다는 건 천부당만부당 한 일이예요. 알고 하시면서도 뒷사람들이 대학을 이상하게 볼까 봐 토를 가서 고쳐 달으셨어요. 그 구절을...

그 양반 하신 거 여러 가지를 보면 그 알고 하시는 건데, 뒷사람 글 읽는 사람이 글로 읽어야지 문학으로 봐서 글로 읽어야지, 그거 안 읽고 정신이니 뭐니 하고 딴소리를 하면 공부를 잘 못 할까봐 그러셨겠죠.

그 『대학』이라는 게 어디서 뭣 때문에 나왔는고 하니, 공자님이 안자顔子가 일찍 돌아가시니까, 道의 心法을 전할 데가 없으니까 대학을 만들고 중용을 만들어 내 놓은 겁니다.

내놓는데 대학이란 책으로 만들어 내놓지 않고 『禮記예기』에다가 소학교에서 열다섯 살 까지 공부 하는 거, 지금 같으면 소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이 주장이야,

소학교 주장을 실어서 그게 중학교 쯤 해서 나와서 『대학』에 본디 들어가서 공부 할 때는 이것으로서 하라는 규정을 『예기』 절차에다가 대목대목 넣으셨어요.

넣어 놓으셨을 때 글자로만 넣어 놓으셨지, 구절을 찍어서 내놓으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것을 주자가 처음으로 『예기』에서 그거를 한 대목 씩 한 대목 씩 가서 뽑아서 대학을 만들었어요.

이거 넣어 놓으시기는 공자님이 해 놓으신 건데 책으로 만들기는 주자가 한 거요.

『중용』은 책으로 되었었고, 대학은 『예기』속에 든 구절입니다.

그런데 그걸 갖다 만들 적에 “ 大學之道는 在明明德하며 在新民하며 在止於至善이니라 ” 이렇게 다루셨거든.

대학의 도라는 것은, 대학을 공부하는 사람의 도라는 것은, 재명명덕하며, 明德명덕을 밝히는데 있으며, 재신민하며 백성을 새롭게 하는데 있으며, 재지어지선이라 지극히 최선의 노력을 다 하는데 있느니라. 이렇게 하셨는데 이것이 공자 원문에 한 거와 조금 다르지 않나 이렇게 봐요.

대학이라는 책은 삼강령三綱令 팔조목八條目이라 합니다.

강령은 하나 둘 셋으로 나눠 놨고, 조목은 여덟 가지로 나눠 놨다 그랬는데, 주자가 토를 단 것처럼 대학지도는 재명명덕하며 재신민하며 재지어지선이라면, 도 하나지 어디 셋으로 나눠 놓은 데가 없어요. 도 하나밖에 안된단 말이야.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이건 공자님 당신이 행하신 사상이 아니지 않느냐 그래요. 내 생각으로는 공자님의 원래 대학사상이 이랫다고 봅니다.

大學之道대학지도는 대학이라는 데서 도를 가르치려고 하면,

道라는거는 在明明재명명 하며 선천적으로 타고 나, 하느님한테 타고나서 어린애 응아하고 나올 적에 선천에 밝았던 것을 다시 밝히는데 있으며,

德이라는 것은 도는 형이상이요 덕은 형이하 이므로 德은 在新재신하며, 새롭게 자꾸 새롭게 하는데 있으며, 在新民재신민이 아니다 말이야, 주자는 신新이라 않고 親이다 백성을 친하는 데 있다 해석하여 親民친민이다 했어.

民은 백성은, 이게 임금한테 올리는 책이요, 임금을 천자라 해서 ... , 하니까 보통 백성들은 在止於至善재지어지선이여, 제 힘껏 최선의 노력을 하면 된다 이거지.

주자가 뒤의 학생들이 공부하지 않고 딴 짓 만 할까봐, 明明명명이란게 뭔가 하고 자꾸 공부하게 하려고 저기 갖다 찍은 거예요.

우린 그렇게 봅니다.

道라는 건 형이상학인데 밝았던 걸 환하게 보는 거, 형이상 그걸 보는데 있고,

德이라는 건 日新일신해, 날마다 새로워지는 거니까 요새 과학이지. 과학이란 새것이 자꾸 나오지. 溫故而知新온고이지신 옛 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안다 할망정 새로 되는 것이 주장이여. 在新재신이여, 새롭게 하는 것이 있고, 저 처음에는 우주가 개벽한 뒤부터 지금까지 앞으로 개벽되는 것이, 자꾸 묵은 건 가고 새것이 나오는 그게 德이다 말이야.

民 백성이라는 것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道 그 德을 본받아 가면서 자기 힘껏 자기 역량 껏 해라 이거야.

이제 거기서 차이점이 생긴단 말이야.

선비들이 하는 소리와 차이가 생기는데 그 여기 학자님들한테 가서 삐죽하니 그런 소리를 내놓으면 깜짝 놀랍니다. 아 古聖고성들이 하신 일을 두고 그렇게 해석함이 말이 되느냐고 하는데, 옛 성인이 그렇게 하실 리가 없어요. 그래야 삼조목이 되지, 그렇지 않으면 삼조목이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