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의 공통단법
(6) 胎息
만일 단을 빨리 만들고자 한다면 먼저 장차 망념의 상태를 없애야 할 것이다.
마음과 마음으로 靈藥을 보호하라. 호흡과 호흡으로 창조의 처음으로 돌아가라
세 개의 섬으로 기가 다시 통하면, 神은 잊혀지면서 태허와 합해진다
오는 것과 같고 더불어 가는 것과 같다면 眞如가 아닌 곳이 없다
(7) 符火
태식이 면면히 이어지는 곳에서
모름지기 동정의 기틀(機)을 구별해야만 한다
陽의 빛은 마땅히 더욱 증진되어야 하며
陰의 魄이 날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연못 속의 진주는 풍경을 포함한다
산 봉우리의 달은 빛을 토한다
하루의 24시간을 게으름 피우지 말아라.
약초의 싹에 물을 풍부히 주어라
(8) 接藥
현묘한 기틀이 반쯤 깨달아졌으니,
丹의 머리가 마치 이슬처럼 응결된다.
능히 견고해지고 수명이 안전되고 연성함으로 얻었다고는 하나
코를 보면서 순수한 양에 접하라.
신적인 납(神鉛)이 신체를 통과하여 영령해지니, 먹이되 모름지기 신중함을 포함하라
완전히 충만해지면 곧 날아오르게 될 것이다.
(9) 煉神
생겨나기 전, 사리라는 것이 어느 날 나의 심장으로 들어간다.
가득 찬 그릇을 들고있는 것처럼 조심하라.
마치 어린아이를 어루만지는 것처럼 부드럽게 하라.
땅의 문은 모름지기 굳건해야 하며, 하늘의 빗장은 먼저 열려있어야만 한다
누런 싹을 깨끗이 씻어라. 산 봉우리에서는 벼락이 땅에서 우뢰친다.
(10) 服食
큰 다스림은 산과 못을 이루는 가운데 창조(造化)를 포함한다.
아침에는 태양새의 기운을 우러르고, 밤에는 달의 정기를 들이마셔라
때가 되면 단은 능히 캐어질 수 있다.
해(年)가 꽃피면 몸이 능히 가벼워지며
元神이 오고 가는 곳, 그 수많은 구멍에서 광명을 발한다.
(11) 穀
이미 靈氣가 먹임을 얻었으니, 폐부가 깨끗해지고 차갑게 되어 뛰어나지리라.
神을 잊어라. 서로 드러나는 것은 없다. 극과 합쳐지면 있던 空은 떠나간다.
아침 식사는 야생의 토란이 좋고 어두울 무렵 배가 고파지면 습지의 버섯을 캐고
만일 연기와 불을 혼합하려거든 신체가 옥 연못을 밟아서는 안 된다.
內丹時에 처음 접하는 사람은 우선 이 수많은 상징들에 압도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는 논리적인 설명을 기대할 수 없다. 마치 불교의 만신전 앞에 서 있을 때처럼, 인간의 종교적 상상력의 결과로 묘사된 이 화려한 세계 앞에 압도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수많은 상징들에 대해 쉬뻬르는 경전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陽은 상승하는 것이므로 어린 소년으로, 한 마리의 용으로, 불과 하늘, 구름, 태양, 그리고 말과 뱀. 새벽, 마차, 꽃 등으로 묘사된다. 반면에 음은 하강하는 것이며, 어린 소녀로, 한 마리 호랑이로, 물과 땅, 비, 거북, 달, 황소(거세한 수소), 봄, 진흙, 배, 꽃받침으로 묘사된다.
이를 참고한다면 손불이의 시는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다. 세 섬이란 세 개의 단전, 즉 머리에 있는 상단전, 흉부에 있는 중단전, 그리고 복부에 있는 하단전의 은유이다. 인간의 몸은 본래 太虛로부터 왔다. 그것이 일단 물질적인 형태 안으로 떨어지게 되면 태허와 합쳐질 수 없다. 물질적인 형태가 집중과 명상에 의해서 제거되면 그것은 태허와 합쳐진다. 창조의 시작은 참된 虛이며, 참된 허란 곧 도의 깨달음이다. 진실로 그러함을 뜻하는 진여라는 말은 불교의 용어이다. 이는 다시 말해서 이같은 수행의 과정에서 얻어지는 체험이 환술과는 관계가 없는, 거짓이 아닌, 진실로 참된 체험임을 力說하고 있는 것이다.
못이란 아래쪽을 의미하며, 氣海라고 일컬어지는 자궁의 은유이다. 산이란 위쪽이며, 가슴 사이의 부분을 은유한다. 진주의 빛은 숨어 있고 물러나 있으며, 달의 빛은 밝게 빛나는 것이다. 연못 안에 상을 품고 있음은 정과 심원한 물러남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산의 정상에서 빛을 비춘다는 말은 운동의 작용이 발산되고 표출되며 드러난다는 말이다. 인간 몸에서의 24시간이란 간단히 말해서 신과 기의 동정을 의미하며, 음과 양의 상승과 하강 과정을 의미한다. 사리는 불교에서 빌려온 용어로서, 여기서는 생겨나기 이전의 결정체라는 의미이므로 본래적 신, 즉 原神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모든 신적인 능력, 또는 영적인 능력이 인간 존재의 본성 안에 선천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것과 같다. 이러한 신적인 어떤 것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선천적으로 지녔던 모습이다. 모든 영적 능력이 인간 존재의 본성으로부터 온 것이지 외부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구원을 인간 내부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손불이 원군은 이미 이같은 강렬한 체험을, 산 꼭대기와 바다 밑바닥에서 비가 내리고 번개가 친다는 말로써 표현한 바 있다.
첸잉닝에 따르면, 이 단계에서는 비록 존재의 완전한 변신이나 변형을 이루지는 못했으나 내단이 이미 결정체로 맺혀졌기 때문에 이미 반 정도는 신선이 된 셈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이슬이란 공기중의 수증기가 차가운 밤 공기에 식고 땅과 만나 맺혀지는 결정체로서, 내단의 완성과정과 유사한 것으로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 일단 내단이 구체화되면, 몸 안의 精, 氣, 그리고 神은 완전히 단단하게 굳어진다. Chen Yinging의 설명에 따르면, 하늘과 인간의 호흡은 앞뒤로 흐르는 하나의 연속체라고 할 수 있다. 양기는 마치 한 방울의 이슬처럼, 혹은 번개가 치는 것처럼 태허에서 자발적으로 발생하면서 인간의 배꼽으로 들어가서는 척추를 지나 뇌의 중앙부까지 올라간다. 그곳에서 양기는 달콤한 빗방울로 변하여 장기 위로 쏟아져내린다. 그러므로 옛부터 현자들은 하늘의 운행을 관찰해왔고 그들의 행동에 있어서 이러한 운행의 방식을 따랐다. 따라서 따라서 현자들은 이 기를 일으켜 자신들의 몸 안 전체에서 순환시키면서 몸을 정화시키고 더러운 것들을 태워버렸으며 마침내는 자신의 신체를 청정한 덩어리로 바꾸어버렸던 것이다.
자신의 몸을 통해서 우주와 세계를 이해하게 되고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며 또한 그것과 하나가 된다는 것이 곧 도교적 수양론이자 구원관이다. 궁극적 실재자, 혹은 진리에 대한 지적인 앎과 체험, 깨달음,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하나가 되는 모든 작업이 자신의 신체를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에는 몸을 정련하여 마치 수정이나 옥처럼 깨끗하고 맑게 만들려는 몸부림, 곧 부패해버릴 육체이며 유한한 육체가 지닌 한계와 오염을 극복하고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참된 신체, 참된 인간, 청정한 존재가 되는 일, 요컨대 계속 존재할 것인가 아니면 사라져서 소멸해버리고 말 것인가는 오직 나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육체를 바꾸고 완전히 새로운 몸으로 변화하여 상승하여 불멸의 몸이 되려는, 구원에서의 강렬한 바람이 강하게 엿보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수많은 상징과 은유 속에서는 신비주의적인 색채 역시 강하게 엿보인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가히 이름지어 부를 수 없는, 不可知的인 神秘的인 道의 속성을 가리켜 玄이라 하고 無라고 하였다. 그러나 도교 전통에서는 無形의 道에서 시작되고 無形의 道로 돌아감으로써 완성된다는, 도교적 진리의 독특성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전수하려고 노력하였다. 손불이의 <<단도비서>>와 <<곤도공부차제>> 14수에도 이러한 시도가 끊임없이 드러난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으며 실증할 수도 없는 신비스러운 道의 세계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상징과 은유, 그리고 짤막하고 함축적인 時적 언어 외에는 다른 적절한 방편이 없었을 것이다. 쉬뻬르는 우리가 이같은 상징들에 대면하여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한다.
이름이 많기는 하지만 이들은 모두 상징이다. 다섯 개의 聖山과 八仙, 四海, 세 개의 섬, 황금의 땅, 옥녀...이들은 모두다 이들 모두를 지칭하기 위한 은유이다. 예외없이 이들은 모두 우리의 의식을 지지해주는 데는 소용이 없는 것들이다. 물고기가 잡혀지지 않는 한, 우리는 그물없이 일할 수 없는가? 마차는 길을 따라 달린다.
태식은 그 목적이 어머니의 자궁에 있는 태아의 호흡을 재현하는 데 있기 때문에 그런 명칭이 붙었다. <<胎息口訣>>에서는 태식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자궁 가운데 태아가 자리잡고 있으니, 어머니의 몸 밖으로 나와 태어나면 유아가 된다. 태아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는 동안, 그 입은 진흙을 머금고 있으며, 그 호흡은 바깥과 통하지 않아 겨우겨우 숨쉴 뿐이다...태식의 방법을 습득하여 도를 진실로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무엇보다도 먼저 태식의 근원, 즉 어머니 몸 속에서 태아가 쉬는 숨을 알아야 할 것이고, 그런 다음에 실천해야 마땅하다. 바로 그렇기에 이러한 호흡 방법을 태식이라 하는 것이다. 본 바탕으로 돌아가고 근원으로 돌아감으로써, 우리는 늙음을 몰아내고 태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태식 수련에서는 단을 형성하는 과정을 하나의 후천기를 품어 어린아이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빗대어 묘사하는 것이다. 막스 칼텐마크에 따르면, 몸 속에 있는 동자는 道의 君主이며, 빛의 존재로서, 마치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부화할 알과 같은 존재라고 한다. 부화는 몸 속에 있는 존재, 혹은 동자들이 신들의 역할을 하게 될 때를 의미한다. 또한 두 눈, 즉 陽과 달의 빛이 미간에 자리잡을 때 이 빛으로 노자를 비추었을 때 나타난 노자의 모습이 또한 어린아이 모습이었다고 하면서, 어린 아이를 노자의 진정한 형상이라고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내단수련의 절정
(12) 面壁
만사가 모두 끝나 엉겼다고 말하니, 그러한 즉 작은 감실에 앉아라.
가벼운 몸은 자줏빛 기에 올라타고 평정한 본성은 맑은 못을 흐르고
기는 합해져서 음과 양이 하나이다.
신은 천지와 같아지고, 三功이 완성되고 조정은 옥대궐이다.
긴 휘파람은 희미한 안개를 몰아친다
(13) 出神
몸 밖에 다시 몸이 있다. 환술과는 관계가 없다.
이 신령한 기를 완전히 통하게 하는 것은 살아있으며 활동하며 하나인 본래적 神이다.
밝은 달은 금액을 엉겨내고 푸른 연꽃은 옥을 단련하여 참되게 한다
새를 삶아내어 골수를 벗겨내니 진주는 빛나서 가난함을 염려하지 않는다.
(14) 擧
아름다운 때가 바야흐로 계곡으로부터 오니
가볍게 하늘로 솟아오른다.
옥녀는 푸른 봉황을 마차로 삼고
금 동자는 진홍빛 복숭아를 바치며,
꽃 가운데에서 무늬를 새긴 퉁소를 연주하고
달 아래서 비단 거문고를 뜯는 어느 날
신선과 보통 사람이 따로 떨어지니
자연히 바다의 물결을 건너리라
면벽 역시 벽곡이나 태식과 마찬가지로 내단 수련법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으나, 손불이의 시에서는 하나의 수련법을 넘어선 어떤 경지, 즉 도를 체험하고 도에 근접한 단계의 신비적 체험을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Chen Yingning 자신도 신적인 빛이 나온 뒤에 일어나는 다양한 기능을 경험해보지 못했다고 하고, 자신의 스승들 역시 이 단계에 대해서는 말하기를 삼갔다고 한다. 그들이 말한 것은 단지 때가 오면 알게될 것이라는 말 뿐이었다. 손불이 원군이 여기서 말하고자 한 것은 인식불가능한 왕국이나 영역에 대한 것을 전달하고자 한 것이라는 점 뿐이다.
이 단계의 시들이 전달하는 느낌이란 아마도 해방의 느낌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손불이는 이 단계를 마치 누에고치가 고치집에서 벗어나 자신의 옛 껍질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리고 새 날개를 달고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것처럼 묘사한다. 더 이상 자신의 부패할 신체 안에 구속되는 것이 아니라, 신체를 벗어나 자신의 신체 밖에 노니는 것이며, 음악과 빛이 충만한 가운데 대양을 건너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불사의 신체는 살아있는 가시적인 신체 안에서 신비롭게 형성된다. 가시적인 신체를 이루고 있는 멸하는 요소들이 점차 불멸하는 요소들로 대체됨으로써 불사의 신체가 형성되는 것이다. 예컨대 "뼈는 금이 되고, 살은 경옥(硬玉)이 된다. 그러므로 실제로 가시적인 생명과 불사의 생명 사이에 단절은 없으며,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의 전이가 있을 뿐"이다.
<<도덕경>>에서 道는 종종 어떤 존재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신비스럽기 짝이 없는 존재이다. 인간이 감각을 통해서 그것을 인식하려고 들면 곧장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눈으로 보아도 보이지 않으므로 희미하다고 한다. 귀를 기울여도 들리지 않으므로 가냘프다고 한다. 손을 대도 잡히지 않으므로 미세하다고 한다. 이 세 가지는 더 이상 파고들 수가 없으며, 서로 뒤섞여 하나로 통일되어 있을 뿐이다. . . 무한정 넓어서 무어라 이름붙일 수도 없고, 대상세계를 초월한 불가지의 세계로 되돌아간다.
이처럼 알 듯 하면서도 알지 못하는 신비스러운 도의 속성에 반해, 氣의 체험은 충격적이고 엄청난 변화를 수반한다. 바람소리, 문이 열리고, 섬광이 눈에 번쩍이는 등으로 묘사된다. 이는 사람의 일상적인 인지체계를 반영하고 있다. 체내경, 즉 인간 몸의 내적 자연 경관은 곧 일상적 주위 환경이나 촌락,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세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몸의 신비한 체험을 천둥소리, 문이 번갈아 열림, 기의 바다, 빛과 어둠 등 다양하게 표현하지만 참된 진리와 궁극적 실재가 몸을 중심으로 경험되며 이루어진다. 몸 없이는 체험할 수 없고 말할 수도 없으며 설명할 수도 없고, 전달이 불가능하다. 몸에 직접적으로 체험하지 않고서는 깨달을 수도 없고 전달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체험이야말로 참되고 가장 진실된 것이며, 이를 체험한 사람이야말로 참된 인간인 眞人인 것이다. 이는 이는 추상적인 어떤 개념에 대한 논리적 설명이 아니다. 이는 논리적으로 설명되거나 증명할 수 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체험으로써만 전달될 수 있는, 언어적 한계를 넘어선 어떤 신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직접 체험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결 론
이상과 같이 손불이의 <<丹道秘書>>와 <<坤道功夫次第>> 14 수를 중심으로 여단 수련에 기초한 도교 수양론과 구원관을 살펴보았다. 손불이의 신체관과 우주관, 그리고 수양론은 모두 '국가의 표상으로서의 인간의 신체'라는 기존의 도교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이를테면, 단순한 은유를 넘어서서, 인간 존재와 주위 환경 사이의 상호 의존성은 물론, 인간의 내부와 외부를 같게 보려고 하는 도교의 근본적 가르침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 신체 안에는 신체 밖의 세상이 그대로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인간의 몸은 소우주이며, 이는 인간 몸 바깥에 존재하는 외부 세계인 대우주의 모든 측면과 대응되며 일치하고 있다.
손불이의 내단 수련은 또한 다분히 신비주의적 성격을 띠는 것으로, 도의 속성이나 그 체험은 모두 여성성. 신비적 임신. 새로운 자아를 낳는 것 등 여성적 몸의 체험을 중심으로 삼고 있다. 쉬뻬르에 따르면, 불사를 추구하는 과정은 진정한 자아인 불멸의 태, 즉 성태를 기르는 사람들은 곧 어머니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신화적이고 신비적인 사건화이기는 하지만 여성의 우월성을 강조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는 결국 옥녀라든지 성모라든지 하는 것은 그리스도 교회 안에서의 여성의 뚜렷한 역할을 가져오지 못하게 하고 있는데 비해, 도교 전통은 여성에게도 깨달음의 세계를 개방하고 있다고 말한다. 오히려 여성의 생물학적 성차를 배려하여 여성 자신의 신체 안에 있는 참됨, 지극히 진실한 어떤 것을 추구해 나가도록 한다. 이 세상의 수련자들은 남성이나 여성 모두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참됨'을 붙잡아 불멸의 원리를 계속해서 계발하고 발달시키고 키워나가는데, 그는 어머니, 그것도 자신의 아이를 가진 어머니이며, 배태기간 가운데 여성적 인격(feminine personality)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며 적응해나가는 구체적인 방법을 실행해야 한다. 이러한 단순한 사실은 도교적 전통의 전 역사를 통해 드러난다. 도의 몸이란 곧 여성의 몸이다. 여성의 몸은 임신한 어머니의 몸이며, 이야말로 유일하게 완전한 몸이고, 변신과 변화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몸이다. 이에 대해 쉬뻬르는 우리의 생물학적 몸과 사회적 몸 안에 여성적 가치와 여성성을 체현하지 않고서 어떻게 도의 몸과 하나가 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만물이 시작하는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수련 과정에 있어서, 그러한 근원이란 다름아닌 어머니이고, 신들 이전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실체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생명의 원천이다. 생명력은 외부를 지향하는 대신 반대로 내부로 집중, 응축하게 되며, 그 결과 내단의 수행자는 바로 자기 자신 속에 새로운 인간을 하나 더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관념을 표상하는 상징으로는 연단에 쓰이는 세발 솥으로부터 휘황찬란하게 솟아오르는 금단의 모습, 또는 감괘와 이괘의 결합의 산물로서 수행자의 신체 깊숙한 곳에 작은 아이의 형태를 취하는 모습 등이 주로 등장한다. 이러한 어린아이의 형상은 바로 도교 수행자들이 만들어내고자 하는 불멸의 영혼을 표상하는 것이다. 막스 칼텐마크가 말한 바대로, 이 어린아이가 내단의 위대한 수행이 완성되었을 때 결국 외재화하여 죽음이 찾아온 시신을 떠나 승천하여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 참고도서
【1차 사료】
1. <곤도공부차제십사수>, <<손불이원군법어>>, <<도장집요>>
2. <손불이원군법어단도비서>, <<손불이원군법어>>, <<도장집요>>
3. <女攻內丹次第>, <<손불이원군법어>>, <<도장집요>>
【2차 사료】
1. Kristofer Schipper, The Taoist Bod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3
2. Thomas Cleary, Immortal Sisters, Shambhala, 1989
3. translated by Eva Wong, Seven Taoist Masters, Shambhala, 1990
4. 陳垣, "婦女之歸依第八", <<南宋初河北新道敎考目錄>>, 中華書局出版, 1962
5. 잔 스추앙, 『여성과 도교』, 안동준/깊영수 옮김, 여강출판사, 1993
6. 卿希泰, 中國道敎史 第 三 卷 四川人民出版社, 1993
7. 막스 칼텐마르크, 『노자와 도교』, 장원철 옮김, 까치, 1993
8. 뤼스 이리가레, 「성적 차이의 윤리」, 『알튀세르를 위한 강의』, 공감,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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